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국산 호러게임 대표작을 꼽는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손노리의 화이트데이, 정확히 말하자면 그 첫 작품인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을 뽑을 겁니다. 사일런트 힐이나 바이오하자드 등 서양적 공포가 아니라 한이 어린 한국적 귀신이 나오고, 그보다 더 무서운 수위가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이처럼 색다른 시도와 높은 완성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불법 다운로드의 희생양이 된 비운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1년, 손노리는 화이트데이를 출시하며 기대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색다른 방식의 광고를 시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임 광고는 메인 포스터나 게임 화면, 타이틀명과 게임 소개 등이 섞여 있는 구성인데, 화이트데이는 마치 공포 영화 팜플렛과 같은 심플한 느낌의 광고를 실었습니다. 실제로 제작진은 게임 제작에 있어 영화 여고괴담, 주온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광고 역시 공포게임 특유의 미묘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광고는 제우미디어 PC파워진 200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어두운 교실에서 여주인공 한소영이 관찰자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얼핏 평범한 미소녀 일러스트 같지만, 낡은 책걸상과 나무판자로 된 교실 바닥, 군데군데 열려 있는 사물함, 묘하게 창백하면서도 미스터리해 보이는 한소영의 미소가 말로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일러스트 외에 1면에 나온 정보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게임의 장르를 설명하는 ‘심령 학원 생존 게임’과 이를 뒷받침하는 메인 문구 ‘도망쳐라, 탈출하라, 살아남아라’, 맨 아래쪽의 배급사 위자드소프트와 개발사 손노리 표기 정도가 다입니다. 대신, 2면에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실었습니다. 실제 게임 스크린샷과 특징 등을 묘사했는데, 전반적으로 영화관 앞에 있는 영화 소개 팜플렛과 비슷한 구도입니다.
PC파워진 2001년 8월호 잡지에 실린 광고도 같은 구성입니다. 역시 메인에는 한소영이 나와 있는데, 두 달 전 광고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어두운 학교에 홀로 서서 관찰자를 바라보는 건 똑같은데,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멍하고 창백한 표정입니다. 흡사 귀신이라도 들린 듯한 표정인데, 대체 왜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2면의 게임 소개는 위와 비슷하니 생략합니다.
PC파워진 2001년 10월호에는 메인 모델이 바뀌었습니다. 안경 단발소녀인 설지현이 교실에 앉아 있네요. 이전까지 불 꺼진 교실을 배경으로 한 것과 달리, 이번 포스터는 방과후로 보이는 밝은 교실입니다. 게임의 배경이 3월 13일 한밤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 이 장면은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낮 시간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연급 캐릭터들을 하나씩 조명하는 점에서도 영화 팜플렛 같은 느낌이 확 사네요.
참고로 왼쪽 위에는 '왕리얼 엔진'이라는 엔진명이 쓰여 있습니다. 이 엔진은 당시에도 세계 최고 엔진 중 하나였던 언리얼 엔진의 이름을 패러디한 손노리 자체 3D 게임엔진인데요, 엔진 개발팀이 속한 이들이 나중에 분사한 것이 바로 엔트리브입니다. 이후 엔트리브는 왕리얼 엔진을 개량해 온라인 골프 게임 팡야를 개발했습니다. 왕리얼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손노리틱한 B급 유머 감각이 묻어나오네요.
2면 게임 소개도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스크린샷과 함께 나오는 게임 설명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시놉시스가 눈에 드려지는데요, ‘심야의 학교에 삼켜진 당신과 그녀, 연두고교에 안전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스터리의 조각들을 짜맞추어 진실을 밝혀내라’는 말만 들어도 화이트데이가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네 번째 광고는 PC파워진 200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게임의 진주인공이라 불리는 수위 아저씨가 메인에 서 있습니다.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게, 불 꺼진 학교를 순찰하는 멋진 모습이네요.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신관 경비를 맡는 신수위 아저씨로 보이는데, 대머리 이수위 아저씨보다는 기괴함이 조금 덜하지만 모자 때문에 더 무서워 보이는 인물이었습니다. 참고로, 원작에서 수위 아저씨들의 성우는 마비노기와 마영전, 듀랑고 등을 개발한 이은석 PD가 맡았다고 합니다.
영화 팜플릿을 연상시키는 화이트데이 광고는 게임 지면광고가 거의 없어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형식입니다. 대신 최근에는 영화 예고편 버금가는 트레일러 영상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만약 화이트데이가 지금 시기에 출시됐다면 완성도 높은 예고편 영상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해 봅니다. 여러모로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개발 중단 소식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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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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