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를 잘못 꺼냈다. 여성부가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 하에 ‘셧다운제’를 추진했을 때 게임업계가 꺼낸 카드 중 하나는 ‘산업발전의 역행’이었다. 문화산업 수출의 역군으로써 효자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시점에서 게임산업을 규제한다는 것은 죽이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타당한 논리지만 셧다운제가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시점에서 돌아봤을 땐 우리가 꺼낸 카드가 얼마나 조악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MBC 100분토론’ 패널로 직접 참가한 이병찬 변호사는 셧다운제 찬성 패널에서 내세운 억지 근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일단 게임 자체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규정하고 말하는 시선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유해한 것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데 왜 난리냐”는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여성부와 대립했을 때 꺼낸 카드가 잘못된 탓이다. 게임메카는 100분 토론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이병찬, 이상엽 변호사를 통해 직접 들어봤다. 인터뷰는 25일 법무법인정진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왼쪽부터
법무법인정진 이상엽, 이병찬 변호사
100분 토론, 실제로 참여해보니 어땠나?
이병찬: 첫 방송 출현이라 긴장도 많이 했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많다. 토론을 보신 분들도 답답했다는 분들이 많았다. 토론이 잘 진행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상대패널에서는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대한 확신이 강한 것 같았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 일반적인 원칙에 타당하냐 타당하지 않느냐의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하는데 확신이 너무 강하니깐 토론이 진행되지 않고 논의가 평행선을 달렸다.
이상엽: 패널로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객석에서 직접 토론을 지켜봤다. 100분 토론에 참가 하기 전에 이병찬 변호사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어차피 우리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야기 해도 그쪽에서 부모에 대한 입장, 청소년을 지켜야 하는 입장 등 감성적인 이야기를 들고 나오면 우리가 어렵지 않겠냐. 거기에 대해서 같이 열을 내며 싸울 것이냐 아니면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하느냐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후자를 택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방송 진행에 대한 부분이었다. 방송의 초점은 셧다운제에 대한 것이었지만 부제 중 하나가 ‘게임 중독과 폭력성의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이 부분이 논의가 잘 안됐다. 먼저 게임이 유해한지 그렇지 않은지 논의가 진행 된 다음 셧다운제에 대한 찬반 토론이 진행되었으면 좀더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방송을 보신 학부모 분들은 80%이 이상이 셧다운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보였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처음 방송에 나왔던 자료 화면에서 GTA같은 18세 게임을 청소년이 하는걸 보여주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전제를 깔고 들어갔다. ‘이런 게임을 두고 셧다운제를 반대 한다는 말이야?’라고 말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할말이 별로 없다.
▲청소년이용불가
게임 보여주며 게임의 심각성을 화면에 담아낸 선정적 연출
셧다운제 찬성패널에서 들고 나온 주장 중 상당 부분이 논리 비약이 심했다. 그러나 반대 패널에서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가 누리꾼들의 중론이다.
이병찬: 게임이 정말 폭력성을 부르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연구자료가 있다. 그런데 학술적으로 아직 ‘인과관계가 정립되지 않았다’가 학계의 결론이다. 게임이 폭력을 부른다는 정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진다면 당연히 게임이 원인이니 규제가 들어가는 게 맞는데 아직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살인이나 폭력 등 무분별한 주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게임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보고 공격을 계속 하면 게임셧다운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이를 논리적으로 막기 상당히 어렵다.
이상엽: 앞으로 게임업계가 이런 싸움을 계속 한다면 축적된 데이터가 필요할 것 같다. 셧다운제 찬성 패널에서 ‘우리 아이가 안잔다’, ‘게임에 중독됐다’ 이렇게 안좋은 예를 들고 나오면 그에 반대되는 좋은 예를 설명 해야 하는데 좋은 사례들은 종종 기사로 소개되지만 축적된 데이터가 없다.
셧다운제는 이미 05년도에 한번 논의가 됐다가 게임업계가 ‘자율규제’ 하겠다고 해서 무산된 사례가 있다. 지금 게임업계가 할말이 없는 게 6년이 지났지만 딱히 진척된 바가 없다.
이병찬: 100분 토론 나가기 전에 게임산업협회 관계자와도 대화를 많이 했는데 ‘피로도 시스템’이니 ‘선택적 셧다운제’에 대한 시범적인 운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진척된 건 없다. 만약 그 동안 자율적인 규제가 있었다면 현재 상황이 이렇게 까지 번지진 않았을 것이다. 게임업계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부분은 맞는 말이다. 게임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된 시점에서 규제는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셧다운제도를 통한 일률적인 시간 규제는 효용성의 측면에서 떠나서도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렇다면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동의 한다는 말인가?
이병찬: 일단은 그렇다. 가령, 부모가 자식과 상의해서 게임업체에 자녀 아이디에 대해 특정 시간대에 게임을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부분인데 현재는 약관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업체가 이를 받아드릴 의무가 없다 .만약 법적인 규제를 통해 이를 의무화 한다면 충분히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이상엽: 어떻게 보면 계약이다.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게임에 대해서 업체와 개인간의 개별적인 계약을 체결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굳이 셧다운제를 하지 않더라도 다른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의 종류나 사용자가 누구인지 불문하고 나이와 시간에 따라 게임을 제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토론이라고
하기 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였던 `100분 토론`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대화해보면 대부분 셧다운제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병찬: 사실 게임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매출 감소에 대한 문제를 떠나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유해한 것으로 규정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현재 게임을 보면 중독성을 이유로 술이나 담배, 심지어 마약으로 비유되지 않나. 그런 게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거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자존감이나 직업적인 윤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임 개발자들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컨텐츠’를 생산한다는 기쁨으로 일을 하는데 결국 “너희들은 나쁜 것을 마구 생산해서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게임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게임업계 있는 사람들은 직업적 윤리관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100분 토론에서 권장희 소장은 셧다운제 다음 규제로 쿼터제를 까지 진행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이상엽: 개인적인 생각으로 셧다운제든 쿼터제든 정말 잘 쓰여진다면 명칭이야 어쨌든 찬성한다. 쿼터제를 하더라도 부모와 자녀가 동의 하에 선택을 하도록 한다면 좋은 일이다. 나도 그렇고 이병찬 변호사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청소년을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것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동의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야기하는 쿼터제는 그것이 아니다. 일단 셧다운제로 시간을 막아 놓고 나머지 시간에 대한 것을 쿼터제로 더 제한하겠다는 말이다. 결국 점점 ‘빅브라더’의 영향력을 강화하자는 말밖에 안된다. 쿼터제까지 도입되면 청소년은 사실상 게임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규제만
있지 대안은 없는 셧다운제
셧다운제반대 운동본부 카페는 어떤 취지로 개설된 것인가?
이병찬: 3월 초에 만들었는데 당시 셧다운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급물살을 타기 직전이었다. 간헐적으로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기사는 나왔지만 실제로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 이상엽 변호사와 같이 카페를 만들었다. 처음엔 소소한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셧다운제가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회원이 갑자기 늘었다.
이상엽: 깜짝 놀랐던 것이 회원가입자의 연령대다. 당연히 셧다운제 대상자인 청소년 가입자가 많을 줄 알았는데 학부모 나이의 연령대가 상당히 많았다. 우리 회사에도 여러 변호사님이 있지만 당장 자식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 ‘그것이 무엇이 잘못됐냐’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있거나 관심이 있지만 그것을 법으로 통제하는 것은 잘못된게 아니냐라고 묻는 분들도 많다.
이병찬: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해보면 게임은 항상 폭탄을 던지거나 총을 쏘는 정도의 인식을 하는 것 같다. 온라인게임 대표 장르인 MMORPG의 경우 파티를 구성해서 퀘스트를 하거나 자기역할에 대한 책임감. 그것을 통제하는 리더쉽, 협동, 경쟁 등 보다 큰 가치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게임에 대해 인식을 완전히 다르다고 본다.
이상엽: 일부 오해로 비롯된 시선이 있는데 우리는 셧다운제를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선택적 셧다운제와 같이 연착륙하는걸 돕자는 것이다. 강제적 셧다운은 실효성이 의문이 들고 부작용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이를 법적인 규제를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게임 장르 중 교육게임이 있다. 우리 큰애가 6살인데 알라딘이 나와서 문제를 맞추는 게임을 한다. 물론 이 애가 밤 12시 이후에 게임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교육게임도 강제적 셧다운제에 다 포함되어 있다. 교육게임이든 기능성 게임이든 온라인이면 다 막아버리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셧다운제도 모순으로 PC온라인게임만 규제 대상인 것을 꼽는다. 콘솔이나 PC게임(비네크워크)은 규제 대상에 없는 이유는 뭘까?
이상엽: 그냥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웃음). 전기를 끊지 않은 다음에야 집에서 플스나 엑박을 한다고 해서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지 않나.
이병찬: 지난 칼럼에도 썼었지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도는 규제하기 용이하기 때문에 규제한다는 말밖에 안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게임의 ‘중독’은 비단 온라인 게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 시리즈가 보여주듯 비네크워크 게임에도 상당한 몰입감을 제공하는 게임이 많이 있다. 이런 문제를 떠나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밤에 하는 게임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온라인 게임이다. 학교에서건 학원에서건 친구들과 진짜 맘놓고 놀 수 없는 현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친구들과 수업시간 내내 옆에 앉아 있긴 과연 속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중독성이 높아서 게임에 접속하는 게 아니라 친구나 사람들간의 유대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접속시간이 높은 게 아닐까 한다.
▲요즘
아이들은 마땅이 즐긴 놀이 문화가 없다
뛰어놀 공간도 시간도 사라졌다
가상세계의 커뮤니티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인 건 맞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현재 정부나 여론에서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개발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일 예로 동시접속자 수는 그대로인데 매출이 꾸준히 오르는 게임을 보면 상당 수가 ‘복불복’ 아이템 등 사행성 측면이 강한 캐시아이템들이 들어가 있다. 메이저 회사들이 이런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채택하고 있어 청소년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병찬: 다른 이야기지만 이 부분은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철저히 조사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본다. 가장 좋은 사례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게임들이 잘되서 그런 게임들을 경쟁에서 밀어내 자연스럽게 도태되게 해야 하지 않겠나.
이상엽: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 하면서 돈을 버는 행태가 오래간다면 결국 게임은 유해물로 취급하게 될 것이고 게임업계의 수명도 오래는 못 갈 것이다. 게임업계가 더 성장을 하고 싶다면 지금 보다 더 강화된 자정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부분은 동의한다.
셧다운제는 결국 법사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 되었다. 어떤 노력이 부족했다고 보나?
이병찬: 일부 언론의 기사 방향도 큰 문제 중 하나다. 현재 상황을 보면 문화부와 여가부에서 입법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해서 ‘게임산업 진흥’이냐 ‘청소년 보호’냐라는 측면에서만 이야기 됐었는데 논의의 틀이 너무 단순하다. 당장 셧다운제 관련된 기사를 보면 ‘3중고에 시달리는 게임업계’, ‘셧다운제로 게임업체 울상’ 이런식으로 타이틀이 뽑히는데 사실상 셧다운제 시행으로 인해 게임업계의 피해는 미미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 포커스가 이렇게 맞춰져 있다보니 논의 자체가 ‘게임업계가 돈 때문에 청소년을 희생시키느냐 마냐’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많다. 좀더 균형있는 시각에서 게임을 유해산업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나 청소년과 자율권과 부모의 교육권의 통제, 무분별한 법적 규제의 문제점 등 논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게임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게임에 효자산업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매출액 증가, 문화콘텐츠 수출비중의 절반을 차지, 등 이런 산업적인 측면이 계속 부각된다. 물론 이 부분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논리가 셧다운제와 맞물리면 ‘게임은 돈도 많이 벌고 수출도 많이 하니깐 셧다운제 하면 안돼’ 이런 논리로 귀결되기 쉽다. 사실 게임산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놀이문화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업계관계자가 종사하고 있고 수많은 교육적 효과 잠재적 기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위축 되서는 안되는 것이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을
마약에 비유한 여성가족위원회 최영희 위원장
앞으로 게임업계는 어떤 노력을 해야될까?
이상엽: 기본권 침해를 받은 사람들이 헌법소원을 한다면 게임업계는 상당히 보수적인 헌법재반소 판관들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다. 게임업계에서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 승산이 있다. 헌법재판소 성격상 다분히 정치적이기 때문에 여론도 무시할 수가 없다. 셧다운제의 반대가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위한 반대라고 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게임산업은 정당한 것이고 우리가 자정노력을 거친다면 이런 제도가 없더라도 충분히 대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이병찬: 자정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앞으로 싸움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게임은 분명 교육이든 환자 치료를 위한 목적이든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산업이고 앞으로도 잠재적인 영향력이 무궁무진하다. 지금이라도 게임업계가 뭉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론은 틀림없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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