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타워 디펜스는 익숙한 장르 중 하나다. 풍선 타워 디펜스나 식물 대 좀비 등 유명한 타이틀은 물론, 얼마 전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다양한 디펜스 게임을 즐겨왔다. 오랜 기간 진하게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나면 다시금 플레이하게 되는 장르다.
그러다보니 지난 19일 출시된 ‘쿠니츠가미: 패스 오브 더 가데스(Kunitsugami: Path of the Goddess, 이하 쿠니츠가미)’에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처음에는 상당히 강한 일본풍 그래픽이 눈에 띄었고, 일본 대표 게임사 캡콤의 신규 타이틀이라는 점이 시선을 붙잡았다. 캡콤 작품은 완성도 측면에서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최근 ‘엑조프라이멀’이 아쉬운 성적을 거뒀으니 이제 ‘갓콤’이라는 소리를 듣게 해줄 수작이 등장할 차례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해본 쿠니츠가미는 진한 일본향이 묻어나긴 하나, 액션과 전략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은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진한 향신료 같은 일본풍 세계관
쿠니츠가미의 주무대는 신들이 사는 장소 ‘화복산’이다. 평화로웠던 화복산은 어느 날 ‘케가레’라는 검은 연기가 침식하며, 순식간에 요괴들이 가득한 폐허로 변하고 만다. 이를 정화하기 위해 화복산에 도착한 무녀 ‘요시로’는 영적 존재 ‘소우’를 지원군으로 소환한다. 플레이어는 소우를 조작해 요시로와 함께 마을과 주민을 정화하고, 케가레로부터 빼앗긴 11개의 가면을 되찾아야 한다.
처음 접한 쿠니츠가미의 세계는 마치 진한 일식 조미료를 잔뜩 넣은 음식 같았다. 마을 주민들이 착용하고 있는 가면, 요시로가 입은 무녀복, 기괴한 요괴들 외형 등은 진한 일본 느낌은 향이 강한 외국 음식을 먹은 것처럼 낯설다 못해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현기증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인도 영화를 연상케 하는 군무를 추는 순간 정점을 찍었다.
다만 향이 강한 음식도 먹을수록 적응하듯이,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독특한 세계가 점차 익숙해지며 숨겨져 있던 매력이 눈에 들어왔다. 화복산을 덮은 케가레의 기괴한 외형은 긴장감을 더하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여기에 스테이지 클리어 후에는 정화된 마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전과 상반된 평화로운 모습은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는 것처럼 평온함을 전달한다.
풍성한 전투를 만드는 액션과 전략의 적절한 밸런스
세계관 외에도, 쿠니츠가미는 액션과 디펜스를 결합한 독특한 장르로 많은 유저들의 주목을 받았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한편에서는 액션과 디펜스 양쪽 모두를 잡으려다가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쿠니츠가미는 낮과 밤으로 나뉜 스테이지 형식으로, 몬스터 헌터 라이즈에 등장했던 ‘백룡야행’에 호위 임무가 더해졌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낮에는 전투를 돕는 주민들을 배치하며 밤을 대비하고, 밤에는 몰려오는 적들로부터 요시로를 보호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요시로를 적들이 나오는 ‘이계의 문’까지 무사히 인도하면 스테이지가 클리어되는 구조다.
주민은 스테이지 공략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적들이 꽤 많이 몰려올 뿐 아니라, 플레이어 혼자서 이들을 전부 상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적들도 대미지 면역, 주변 몬스터 강화 등 다양한 스킬로 위협해 오기 때문에, 이를 격파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가진 직업 스킬의 적절한 활용이 필요하다.
주민의 직업은 총 12종으로 그리 종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주변 적을 도발하거나 강화 효과를 제거하는 등 각각 적 스킬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 전투 중에도 실시간으로 직업을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적을 확인하고 이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클리어의 핵심이다.
주민 직업 뿐 아니라 맵에 배치된 시설과 자유도 높은 배치는 전략성을 한층 끌어올린다. 맵에는 적의 진격을 막는 ‘관문’이나, 원거리 유닛의 사거리를 크게 증가시켜주는 ‘망루’ 등 다양한 시설이 등장한다. 이에 더해 언덕이나 좁은 골목 등 지형도 다채롭기에, 이를 활용하면 꽤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기자의 경우 요시로를 미끼로 활용해 일부러 좁은 지형으로 적들을 유도한 뒤, 광역 공격으로 최대한 많은 적을 일망타진했다. 아울러 주민에게 요시로 호위를 전담시키고, 직접 엘리트급 몬스터를 요격하러 나가기도 했다.
캡콤 작품답게 액션 요소도 합격점이었다. 초반에는 기술이 많이 없어 반복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중반부터 필살기에 해당하는 ‘칼코등이 기술’과 궁술, 차지 공격 등이 해금되며 액션이 한층 풍성해진다. 여기에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과 화려한 시각 효과로 타격감은 물론, 패링, 저스트 회피 등을 더해 손맛까지 챙겼다.
이와 함께 액션과 전략 어느 한쪽도 빠지지 않는 적절한 밸런스도 눈에 띄었다. 초반에는 플레이어 혼자서도 클리어에 문제가 없다. 반대로 주민들만 운용해도 마찬가지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주민이나 플레이어 캐릭터 어느 한 쪽이라도 비는 순간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하기에, 두 요소 모두 최대한 활용하도록 설계됐다. 그 점이 전략과 액션의 적절한 조화를 이끌어내며, 게임 전체에 풍성함을 더한다.
지루할 틈 없는 스테이지, 그래서 더욱 아쉬운 분량
스테이지 내에서도 진행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를 준다. 매 스테이지마다 새로운 적과 신규 직업이 해금되며, 어둠이 짙게 깔린 동굴, 바다 위 등 매번 다른 테마를 가진 맵이 등장한다. 맵마다 시야가 제한되거나 번개가 치는 등 각기 다른 기믹을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기믹이 계속해서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전투 경험을 제공한다.
다만 짧은 콘텐츠 분량은 아쉬움이 컸다. 기자는 플레이타임 13시간만에 엔딩을 봤다. 쿠니츠가미가 5만 4,800원에 제공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 대비 콘텐츠가 꽤 부족한 셈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스테이지 내 도전과제를 첫 클리어까지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2회차 플레이를 유도한다. 그러나 재입장 시에도 몬스터나 기믹이 달라지지 않기에, 다회차 플레이에 대한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쿠니츠가미에 대한 플레이 경험은 “역시 캡콤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진한 일본 느낌은 적응할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동시에 디펜스의 전략과 시원한 액션을 챙기며 게임성을 보완했다. 콘텐츠 분량이 아쉽긴 하지만, 이후 추가 콘텐츠나 후속작 등으로 보완하며 캡콤의 장수 IP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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