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스톤’ 개발자로 유명한 벤 브로드가 마블 IP의 온라인 CCG ‘마블스냅’을 만든다고 발표했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마블’ IP에 하스스톤을 결합한 ‘마블스톤’ 같은 게임이 나올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난 18일 공개된 마블 스냅의 실제 모습은 그 예상을 다소 빗겨 나갔다. 왜냐면 이 게임은 의외로 브로드를 유명 개발자 반열에 오르게 해준 역작 하스스톤을 닮은 게 아니라, CD 프로젝트 레드의 CCG인 ‘궨트’를 빼 닮았기 때문이다. ‘마블궨트’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마블스냅은 어떤 점에서 궨트를 닮았다는 것일까? 마블스냅을 체험해보고 진행방식과 그 특징을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명치 때리기’가 아닌 ‘점수 쌓기’ 승부
아마 많은 이들이 벤 브로드 하면 하스스톤, 그리고 하스스톤 하면 ‘명치’를 떠올릴 것이다. 여기서 명치는 실제 신체 부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상에서의 플레이어 라이프 포인트이자, 직접 공격을 통해 그 라이프 포인트를 직접 깎는 플레이를 의미한다. 벤 브로드의 새 게임 마블 스냅은 명치와 거리가 멀다. 아니, 애초에 ‘명치’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라이프 포인트라는 개념이 없고, 플레이어를 직접 공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지금껏 낸 유닛의 힘 점수를 모두 합산하고, 그 결과를 비교해 우위를 겨루는 식으로 승패를 정한다.
마블스냅의 이러한 점수 쌓기 방식은 하스스톤 보다는 CD 프로젝트 레드의 궨트와 매우 흡사하다. 궨트에는 이미 필드에 낸 유닛의 힘 점수를 증폭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어, 여러 수단을 조합해 점수를 극대화하거나 상대의 점수를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 마블 스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게임에서도 플레이어는 단순히 카드를 매 턴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조합해 점수를 극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언 맨은 출격 시 같이 배치된 모든 아군의 점수 합을 두 배로 올려주는 능력이 있는 식이다.
물론 마블스냅이 궨트 판박이라는 뜻은 아니다. 필드에 깔린 모든 유닛의 점수를 합해 비교하는 궨트와 달리, 마블 스냅은 필드가 세 개로 나뉘었다. 마블 스냅의 필드는 기본적으로 서로 독립된 세 개 구역으로 구성되며, 구역마다 따로 점수를 집계한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6턴이 끝날 때 적보다 많은 구역에서 점수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한다. 즉, 하나의 구역에 내 모든 강력한 카드를 배치해 확보한다 해도, 나머지 두 개의 구역을 빼앗기면 패배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세 구역 분할 덕분에 마블 스냅 플레이는 궨트와 사뭇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 만약 하나의 구역에서 적에게 밀리게 되면, 아예 그 필드를 내어주고 다른 두 개의 구역 확보에 힘을 쏟으면 된다. 또한 한 구역에 놓인 유닛이 다른 필드에 영향을 주는 능력도 있다. 예를 들어 미스터 판타스틱은 자기 자신의 힘 점수는 2로 그리 높지 않지만, 자신이 배치된 양 옆 구역에 각각 2점씩 힘을 더해준다. 중앙 구역에 배치될 때 최고 효율을 자랑하는 지원가인 셈이다.
이렇듯 마블스냅은 전반적으로 치고 받는 액션성에 중점을 둔 하스스톤보다는, 각종 콤보를 응용해 상대보다 높은 점수를 쌓아야 하는 궨트에 가까운 모양새다. 다만 세 개의 독립된 필드 구역을 활용하여 보다 변칙적인 승부구도를 자아내고 있다. 또한 여담이지만, 이런 구성은 묘하게 하스스톤에서 전장을 두 개로 나누었다는 점으로 차별화를 꾀했던 엘더 스크롤 IP CCG ‘엘더 스크롤: 레전드’를 연상시킨다.
눈치싸움과 무작위 요소로 극대화된 긴장감
물론 마블스냅이 그저 필드를 세 개로 나눈 궨트는 아니다. 그 외에도 이 게임 고유의 시스템이 몇 개 더 있다. 이러한 시스템들의 종합적인 감상은 대략 눈치싸움의 극대화로 다가온다. 상대의 배치와 무작위 요소에 따른 상황 변화가 전체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각 구역은 저마다 고유한 특수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 효과는 게임의 판세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서 ‘온슬로트의 요새’라는 구역은 지속효과 효과를 두 배로 증폭시켜준다. 배치 양 옆 구역에 2씩 점수를 더해주는 미스터 판타스틱의 효과는 4를 더해주는 것으로 증폭되고, 배치된 구역의 아군 점수를 두 배로 만들어주는 아이언맨 효과는 네 배가 된다. 또 ‘소형화된 연구소’는 3, 4, 5턴에 유닛 배치가 불가하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닛을 낼 타이밍을 신중히 정해야 한다.
게다가 각 구역은 게임이 시작할 때는 효과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턴이 지남에 따라 순차적으로 필드 왼쪽 구역부터 하나씩 효과가 드러나므로, 매판 각 구역 효과가 무엇인지 몰라 긴장하게 된다. 또 일단 구역 효과가 공개되면 발빠르게 거기 맞춰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점도 스릴을 배가해준다. 다만 때때로 지역 효과 때문에 전략이 어그러지게 되면, 게임 판세가 무작위성에 지나치게 자주 큰 영향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스릴은 높지만, 치밀한 전략을 추구하기는 다소 힘든 구성이다.
마블 스냅의 또다른 특징은 동시 턴 진행이다. 하스스톤, 궨트, 심지어 ‘매직: 더 개더링’이나 ‘유희왕’ 등 대부분의 CCG와 TCG는 플레이어들이 번갈아 가며 한 번씩 턴을 잡게 된다. 내가 한 번 하고 턴 넘기면, 그 다음에 상대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마블 스냅은 특이하게도 두 플레이어가 동시에 턴을 진행한다. 같이 제한된 시간 내에 패와 판세를 살핀 후 낼 카드를 한 장 정해 특정 구역에 배치하고, 두 플레이어가 모두 확인 버튼을 누르면 낸 카드가 공개되는 식이다.
이렇게 낸 카드는 공개(Revealed) 효과가 있을 시 능력이 발동되는데, 이 게임에서 적지 않은 ‘공개’ 효과는 상대가 나와 동시에 같은 구역에 유닛을 배치했을 때 격발한다. 예를 들어 ‘로켓’은 기본 힘 점수는 2로 낮지만, 냈을 때 상대도 ‘로켓’과 같은 구역에 유닛을 배치했을 시 추가로 힘 2를 얻는다. 따라서 ‘로켓’을 쓸 때는 상대가 유닛을 낼 것 같은 구역에 맞춰서 내야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다. 그 탓에 ‘마블 스냅’에서는 상대가 이번 턴 어디에 유닛을 낼 지 예상하는 ‘눈치게임’이 자주 발생한다.
눈치게임 요소는 그 외에도 더 있다. 바로 스냅’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화면 위쪽에는 영화에 나온 ‘테저렉트’ 비슷하게 생긴 아이콘이 하나 있는데, 이를 터치하면 게임이 끝나고 승자가 얻는 보상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스냅을 누르고 패배하면 지금까지 높인 보상 정도가 줄어든다. 일종의 판돈을 높이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이 끝날 때는 이미 올린 ‘스냅’을 무를 수 없으므로, 게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눈치를 봐서 올리는 식이 된다.
이렇듯 마블 스냅은 궨트를 기본으로 필드를 세 개로 늘린 뒤 각종 무작위 요소를 통해서 자주 판세를 뒤집을 수 있으며, 상대와 동시에 턴을 진행하고 카드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눈치게임 요소를 넣어 긴장감을 배가했다. 이러한 요소들 덕에 마블 스냅의 플레이 양상은 여타 게임들보다 훨씬 빠르고 변화무쌍하며 변칙적인 느낌을 준다.
마블 IP로 인지도를 높인, 경쾌해진 경량화 궨트 느낌
은 3판 2선승제에 소위 ‘명치’도 없어 매판이 오래 걸리고 피를 말렸던 같은 점수 쌓기 방식의 게임 궨트와 달리 매우 빠르고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동시 턴 진행 시스템 덕에 기다리는 시간을 극도로 압축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매 턴 카드를 한 장씩 내고 6턴이 지난 후에는 무조건 게임이 끝나기 때문에 플레이 호흡이 무척 빠르고 짧다. PC로 진득하게 즐기기엔 미묘할 수 있지만, 모바일로 잠깐씩 하기엔 아주 적합한 게임이다.
마블 IP로 인지도를 높인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만화 챙겨보던 시절 좋아했지만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보며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영화보다는 코믹스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상당히 많다보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만 챙겨보는 팬이라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실제로 시네마틱 유니버스만 즐긴 게임메카 팀장은 온슬로트나 안젤라 같은 캐릭터를 처음 봐 낯설다고 했는데, 이러한 게이머도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카드 수급 방식이다. 많은 온라인 CCG는 카드 수급 방식으로 부스터를 택하고 있다. 돈을 내고 디지털 카드 팩을 사고, 거기에 든 무작위 카드를 몇 장 받는 것이다. 소위 랜덤 박스나 가챠다. 그러나 은 부스터 방식으로 카드를 수급하지 않는다. 이 게임에는 각 카드 스킨마다 등급이 있는데, 이 등급은 플레이를 통해서 얻는 자원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그리고 등급을 올릴 때마다 수집 진척도가 증가하고, 진척도에 따라 새 카드를 받는 식이다.
물론 그 외에도 유료 시즌 패스가 있긴 하지만, 이것도 부스터와 거리가 멀다. 어쨌든 게임 플레이를 해야 진척되고, 주어지는 보상도 사전에 적시된 것들이 고정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유료로 특정 히어로의 스킨을 살 수도 있는데, 각 스킨마다 업그레이드가 별도로 집계되므로 수집 진척도를 더욱 빨리, 많이 높일 수 있기는 하다. 만약 막대한 현금을 쏟아붓고도 원하는 카드를 얻지 못할 수 있는 부스터에 질린 게이머라면 이러한 카드 수급 방식이 환영할 만할 것이다.
대신 현금을 써서 빠르게 대량의 카드를 얻고 싶은 게이머라면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품을 사더라도, 이 게임에서는 실제로 플레이를 해야 카드를 수급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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