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통상적인 근무 환경은 9 to 6에 한 시간의 식사 시간을 제외해 일간 8시간, 즉 주간 40시간 정도다. 이걸 왜 이야기하느냐면, 지스타 전주에 출근을 시작해 일자로는 총 6일, 시간으로는 48시간가량 일하다 영문도 모른 채 다녀와서 쓴 '2021 지스타 기행기'에 대한 사전 설명을 위해서다. 그렇다. 이 글이 바로 산삼보다 귀하다는 업무시간 두 자릿수 뉴비이자 게임메카의 진정한 막내가 지스타라는 하드 콘텐츠를 끝낸 후기다.
왜 산삼보다 귀하느냐?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천지 어디에 이런 이야기가 있겠나. 6일 출근하고 6일 출장 가는 신입을 본 적이 있는가? 이미 무수한 기자들의 무수한 기행기가 게임메카에 게재됐지만, 아무리 찾아도 지금까지 이런 기행기는 없었다.
이런 식의 출장 준비, 모두가 처음이었다
자고로 지스타란 무엇인가. 볼 거 없다 욕하면서 들어가 돌아올 때는 기차 안에서 품 한가득 끌어안은 굿즈를 보며 무슨 일이 있었던가 반추하는 바로 그 축제 아닌가. 단기적 서울 2호선이 된 센텀시티역에 내려 인파에 밀려 질질 끌려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취업 준비에 코로나까지 겹쳐 3년간 ‘올해는 꼭 가야지!’라는 염불을 외다가 마침내 갈 수 있게 된 지스타의 목적이 출장이다. 그것도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6일간. 신선한 실무 100% 농축액!
출근 첫째 날부터 기자 등록을 위해 명함을 신청했고, 명함 시안을 지스타 측에 제출하며 다급히 프레스 등록을 진행하고, 며칠 뒤 명함을 수령할 때 팀장님께 차분하게 질문을 드렸다.
“팀장님, 저희 출장 가면 가방 어떤 걸 가져가는 게 좋습니까?”
“큰 거.”
“예?”
“크으으으으은거.”
그 말씀을 듣고 있자니 이게 지금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름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지금까지 지스타에 놀러 간 통계에 의하면 아마 받게 될 물건이 큰 백팩 하나. 국내 여행 14박 15일도 배낭 하나로 끝냈으니, 대충 2백팩 단위라면 1캐리어(중)로 해결이 되리라 생각했다. 장비도 챙겨야 하니 ‘그럼 캐리어 하나에 가방 하나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선배님들의 어마무지한 캐리어를 보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돌아갈 때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이미 시작부터 모든 것이 예견됐다. 아, 일요일엔 짐을 양손으로 끌고 돌아와야 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머리가 나빠도 몸이 좋으면 모든 일은 힘으로 해결이 되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부산역이었고, 이제 더는 물러날 수 없었다. ‘이거 이대로 괜찮은가?’같은 것은 사실 사치스럽다. 50시간 일하고 출장 온 신입은 게임메카 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최초일 거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눴지만, 사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선배들 기행기를 보면 다들 일을 열심히 하고 남은 시간에 주변 여행도 하시고 하던데, 그건 정말, 지금의 나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물론 시국이 시국인 탓도 있지만, 내게 주어진 일을 제때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올라가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딱 하나의 목표를 잡았다. 당일치기로 지스타에 올 때마다 하던 코스인 '해운대 밤바다 구경 끝내고 옵스 빵 사서 돌아가기'였다.
두 덩이의 든든한 사리가 든 밀면을 먹고 숙소로 이동하는 길은 조금 ‘많이’ 험난했다. 숙소가 있던 수영역은 유독 길고 깊었는데, 숙소 방향 출구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엘리베이터도 없더라. 캐리어를 단단히 손에 쥔 채 팀장님이 앞서고 내가 뒤따라 올라오고 나니 뒤에 다른 선배님들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반대편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그리로 가셨다고 한다. 숨을 고르는 내 옆에서 팀장님은 ‘저 배신자들….’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하컨에 입문’당한’ 플레이타임 50시간 뉴비의 마음
숙소에 도착해 적당히 짐을 풀고 장비를 정리한 뒤에 일주일 내내 해야 할 일정이 정리된 시간표를 곱씹으며 벡스코로 향했다. 제1전시장으로 가는 길이 정말 휑했는데, '이렇게까지 휑해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어디 찍을 게 없나 주변을 살피며 지스타의 전날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기사에 쓰일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잘 몰랐던 내가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쓸만한 것이 못 되었고, 방역 문제 때문인지 전시장 내부로의 출입도 통제 당해 쓸만한 사진도 거의 건지지 못했다. 결국 함께 나간 선배님의 도움을 조금 받아 기사를 썼다. 하지만, 나는 외부 취재 경험도 없이 48시간 만에 와버렸지 않은가!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 질 필요가 있다.
사실 기가 조금 죽은 와중에도 팀장님이 챙겨주신 부대찌개와 떡볶이는 왜 그렇게도 맛있는지. 물떡에 만두를 더한 수영시장 분식 풀코스는 정말정말 완벽했다. 내 앨범에 이 사진이 없는 이유는 찍기 전에 전부 먹어서다. 접시가 깔끔해질 정도로 비운 뒤에는 내일은 실수를 덜 하겠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나름 열심히 쓰고 침대에 뻗었다. 아, 내일부터는 진짜 ‘기자’의 명찰을 단다!
자기 전에 들었는데, 원래라면 지스타의 프레스 등록은 지스타 전날 미리 해둔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역 때문인지 지스타 시작 당일에 등록을 해야만 한다고. 그래서 아침 8시쯤 일어나자마자 채비를 해 촬영 장비와 백팩을 등에 지고 천천히 프레스 등록장으로 향했다. 휑하고, 조용하고, 와중에 관람객 출입 구역으로 보이는 곳은 세팅을 끝내고 준비 중에 있었다. 원래 같았다면 아마 내가 저기에 있었을 건데.
프레스 등록은 어렵지 않았고, 목에 기자 표찰을 걸었다. 이거, 기분이 좀 묘하다. 목에 걸고 스티커를 하나 붙였을 뿐인데 지스타 내에 있는 모든 곳을 이동하는 것에 제한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수요일에는 참관객이 거의 없는 미디어 데이라 원활히 부스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소소하게, 모든 부스를 돌아볼 수 있게 노력해보겠다는 마음을 다잡고 기사를 위해 크래프톤 부스로 향했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어디서 뭐부터 시작해야 할 지 하나도 모르는 기자는 이 모든 과정이 평탄하지 못했다.
그래도 열심히, 그래도 상식적으로, 사회생활 다 똑같다는 말을 곱씹으며 부스도 돌고, 점심도 먹고, 다시 부스를 돌고 앉아서 열심히 기사를 썼다. 와중에 다른 매체 기자님들도 몇 분 뵀다. 선배님들이 소개해 주실 때마다 인사를 드렸는데, 다들 얼마나 일했냐고 물어보실 때마다 그만큼 수줍을 수가 없었다. 물론, 별 것 아닌 사실을 말하는데 그렇게 이상할 수가! "저번 주에 왔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기자님들이 다 웃고 가셨다.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도 함께. 그게 정말 감사했다.
어쨌든 인사도 나누고, 다시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곧 프레스룸에서 나가주셔야 한다고.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방역 문제로 5시 30분 까지만 프레스룸을 운영한단다. 이제 좀 기사에 집중할 뻔했는데! 하지만 방역은 중요하니 별 수 없다. 조용히 숙소로 향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다시 기사에 전념했다. 첫 날 내 기사는 세 개였고 내 몸은 하나이니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내 어떻게든 기사를 쓰고 피드백을 받아 수정을 하니 시간이 벌써 남들은 잘 준비를 할 시간이다. 세상에.
밤바다는 아름답고, 경험 또한 아름답다.
사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지스타 일정은 널널했다. 지난 행사들에 비해 부스도 적고, 관람객도 적었으니까. 내 모든 문제는 48시간으로부터 시작했다. 아무리 배운 게 있어도 새롭게 배워나가야 할 것들이 많으니 매일매일이 메모와 녹음의 연속이었다. 매번 선배님들이 봐주시지는 못하니 일을 잘 할 생각이 아니라 방해는 하지 말자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취재를 하고, 구경을 하고,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을 찍고 다시 프레스룸으로 돌아와 글을 쓰다 보면 다시 5시 30분. 정말 시간이 쏜살같았다.
그러면 다시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글을 쓰고, 내일 해야 할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하루종일 곱씹었다. 이 사이클을 수요일부터 반복했으니 날짜 감각은 당연히 없어진 지 오래였고. 기억에 남는 것은 선배 기자님들이 틈틈이 말씀해주신 잘 하고 있다는 말과, 무엇을 하면 좋은지, 어떤 스탠스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업무에 필요한 이야기 뿐이었다. 오늘이 수요일인지, 목요일인지 구분이 안 되니 애플워치를 틈만 나면 쳐다봤고, 이미 해운대며 옵스를 가겠다는 목표는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러다 겨우, 금요일 저녁에 기회가 되어 해운대에 갈 수 있었다. 회식을 겸한 전망 좋은 펍에서의 저녁자리였는데,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 마린시티 야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모든 고됨이 전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숙소에서 해운대로 가는 지하철에서만 해도 감도 안 잡히고 답이 없는 기사를 어떻게 수정할 것이며, 오늘 이 기사를 못 올리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 가득했는데 말이다. 하염없이 반짝이는 마천루와 그 빛을 반사하는 물의 흔들림과 적당히 좋은 날씨에 긴장이 풀려 정신 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때 맞은 편에 앉아 계시던 편집장님께서 한 마디를 해주셨다. “예쁘지? 여기가 야경이 좋아.” 세상에. 그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그냥 "예쁘지?"라는 한 마디였는데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눈이 빨개진 걸 숨기느라 치킨이며 생선튀김에 감자튀김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덕분에 소화를 시키느라 해변가를 걷는 동안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걸어야 했고, 애플워치를 다시 보니 운동 시간이 40분이나 집계되어 있었다. 발이 조금 무거웠지만 숙소에서 다시 노트북을 켜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홀가분했다. 하나하나 수정점을 배워나가는데도 ‘내가 다음에 또 이렇게 하면 어떡하지?'라는 부담감과 긴장이 없었다. 침대에 누웠을 때는 벌써 자정을 넘겨 토요일이었다.
지스타는 본디 일요일 까지지만, 대부분의 프레스는 토요일에 취재를 끝낸다고 한다. 게임메카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할 일을 끝낸 뒤에 칼같이 5시 30분에 프레스룸에서 내보내지고, 숙소에 짐을 놓고 회식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부산에 왔으면 회를 먹어야지!'라는 다수결에 따라 회를 먹다 말고 이유 모를 내기가 시작되었다. 내기 종목은 엄지손톱 만큼 생와사비를 입에 넣고 20초간 버티기. 조건은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는 순식간에 시작되었고, 몇 번의 경합 끝에 다른 선배님들은 전부 빠졌다. 그렇게 본 기자와 또 다른 0년차 신입 기자 둘만 남은 상황. 오직 단판 승부! 그리고 몇 번의 경합 끝에 결국 내가 걸렸다. 먹었냐고? 물론 먹었지. 와사비를 잘 먹는다고 자부하고, 실제로도 정말 엄청 먹어대는 편이라 20초를 버티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화학적인 자극 앞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어제조차도 잘 참았는데…!
‘EVERY LEGEND HAS A BEGINNING.’
여러 의미로 소란스러운 회식을 끝낸 다음 날, 숙소에서 부산역으로 돌아가는 걸음은 ‘예상대로’ 무거웠다. 캐리어(중) 하나를 전부 채웠고, 백팩을 전부 채웠고, 그나마도 모자라 지스타에서 받은 캐리어에 걸 수 있는 작은 가방 하나와 중간 사이즈의 숄더백도 가득 채웠다. 저 앞에서 캐리어(특대) 하나로 돌아가시는 선배님의 모습이 사실 정말 아주 조금 부러울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곱씹어 본 2021 지스타의 이미지는 여러모로 복합적이었다. 게이머로서는 그 어떤 지스타 중 가장 가벼웠고, 또 가장 조용했으며, 가장 평온했다. 하지만 기자로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지스타가 되어버렸다. 현장에서 부딪치며 배워나가 엉망진창이었고, 실수는 당연히 했고, 모자라기도 하고, 수정에 수정을 가하다보니 몇 척의 테세우스의 배를 뽑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자로서 첫 데뷔 무대가 아닌가!
아케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그런 말이 나온다. ‘EVERY LEGEND HAS A BEGINNING’. 그래, 전설적인 것들조차도 시작이 있다는데, 나는 시작부터 전설적인 일 투성이다. 조금 미숙한들 아무렴 어떤가, 남들은 해보지 못한 것을 해내고 있는데. 많은 걸 욕심내지는 않으려 한다. 그저 내년은 이번보다 더 나은 기자가 되어있기를, 그리고 막내에서도 벗어났기를! (선배님들 말씀으로는 아마 오래오래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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