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월광보합'으로 불리는 불법 게임기들이 오픈마켓을 점령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엔 불법 게임기라는 이유로 게임기 판매상가에서도 나름 암암리에 취급하던 제품들이었지만, 공중파 TV 예능 등을 통해 이런 제품들이 소위 '추억템'이나 '인싸템' 등으로 포장되어 양지로 기어올라왔다. 이제는 인터넷 오픈마켓, 혹은 대형마트나 전자기기 매장 등에서도 이런 불법 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엄연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의식은 갈수록 희석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오픈마켓 공식 광고에서도 이런 불법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게임메카가 지난 2월 보도했던 바와 같이,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쿠팡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는 광고면을 통해 불법 에뮬레이터 롬 모음집 게임기 등을 홍보해 왔다. 이러한 SNS 광고는 불법 게임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흐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큰데, 최근에는 국내 게임사인 안다미로의 '펌프' 관련 짝퉁 게임까지 등장해 또 한 차례 물의를 빚었다.
11월 9일, 쿠팡 공식 인스타그램 광고에는 아래와 같은 제품이 소개됐다. '쌍문동 펌프 오락실'이라 명명된 해당 제품은 휴대용 미니 펌프 게임기로, 본래 발로 밟아 즐기는 아케이드 ‘펌프 잇 업’ 기기 사이즈를 축소시켜 손가락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라고 소개돼 있다.
쿠팡 판매 페이지에 들어가면 이 기기의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펌프 특유의 화면 배치나 UI, 화살표 문양 등이 눈에 띄며, 트로트곡 10곡과 댄스곡 8곡이 포함된 총 18곡을 플레이 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패키지에는 "우리는 흥과 가무를 즐기는 트로트의 민족이였다"라는 복고풍 멘트와 함께 '전설의 압구정펌프왕'이라는 별도의 제목이 인쇄돼 있다. 제작은 중국이지만, 개발 및 수입자는 국내 업체인 데이비드토이며, 원작인 '펌프 잇 업' 제작사인 안다미로와의 라이선스 계약 여부는 기재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게임메카가 안다미로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해당 제품은 ‘펌프 잇 업’과 라이선스를 체결하지 않은 제품으로 확인됐다. 안다미로 관계자는 "해당 제품은 우리가 제조한 것이 아니며, 손가락으로 즐기는 미니 펌프 게임기 관련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적도 없다"라고 밝혔다.
한편, 해당 기기를 개발/판매하는 데이비드토이 관계자는 "이 제품은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도 받았고, 안에 삽입된 노래도 직접 제작했기에 음원 저작권 문제는 없다"라며 " 안다미로 측과 계약은 없었지만, 게임 내 UI나 콘텐츠 등을 직접 개발했기 때문에 라이선스 침해 소지는 없다. 개발 기획할 때 변리사를 통해 저작권이나 라이선스 관련 침해 소지가 없음을 확인하고 진행했으며, '펌프'라는 단어 역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기에 사용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확인 결과 데이비드토이 측 설명은 사실이었다. 2021년 11월 시점에서 안다미로는 펌프 잇 업 관련 상표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안다미로 관계자는 "과거엔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효기간이 끝나 만료된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작년 들어 뒤늦게 재출원을 신청했는데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즉, 안다미로가 펌프 잇 업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펌프’라는 명칭을 사용한 해당 미니게임기는 상표권 침해 사례에 해당한다. 부정경쟁방지법의 상표권 침해 관련 조항에는 타인의 등록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그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한 분야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상표권 침해 개연성이 높은 예비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다미로가 상표권 갱신을 잊어버려 게임 분야에서 펌프 잇 업 상표권 소유자가 없는 상황이므로, 현 상황에서 상표권 관련 법적 대응은 어렵다.
그러나, 디자인 측면에서 안다미로 펌프 잇 업과 흡사한 부분이 다수 보이는 점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다. 발판 화살표의 경우 중간의 'STOMP' 마크를 제외하면 펌프 잇 업 3세대 기기 발판과 거의 흡사하며, 기기 본체 디자인 역시 상단의 스피커 모양, 모니터 아래 무늬 등이 전반적으로 2010년 나온 TX 기체와 닮아 있다. 게임기명의 '펌프' 역시 타 분야에서도 널리 쓰이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리듬게임 분야에서는 펌프라는 단어가 안다미로의 '펌프 잇 업'을 의미함이 명백하기에 표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작사인 데이비드토이 측 역시 다른 ‘펌프’가 아니라 안다미로의 ‘펌프 잇 업’을 콕 짚어 마케팅에 사용한 정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게임기는 2020년 와디즈 펀딩을 진행했는데, 당시 펀딩 페이지에는 '용돈 모아서 펌프하던 그 때, 폭풍적 인기로 뒷사람 눈치에 맘껏 즐길 수 없던 펌프 이제 마구 즐겨요', '오락실 펌프에서 보던 화면 그대로! 실제 펌프와 같은 인터페이스' 같이 안다미로의 펌프 잇 업과 연계된 게임임이 강조돼 있다. 이와 함께 안다미로 펌프 잇 업 오락실 플레이 장면을 사이사이 끼워넣어 원작 게임과의 연계성을 시사했다.
더불어 데이비드토이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서는 실제 펌프 잇 업 발판 모양 채보가 비춰진다. 따라서 제작사 측의 '펌프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말'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으며, 마케팅 측면에서 안다미로의 제품을 무단 사용한 것이 확실한 정황이다. 게임성 측면에서도 '오락실 펌프 그대로 축소! H/W, S/W 유사 설계'라며 유사 복제 게임임을 인정했다.
한편, 해당 기기를 SNS에 광고한 쿠팡 관계자는 "자사는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불법 또는 온라인에서 판매가 금지된 상품들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상품 등록 과정에서 해당 상품들이 판매되지 않을 수 있도록 모니터링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사후 모니터링을 실시하여 지속적으로 적법한 상품만 판매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모니터링 과정에서 명백한 '짝퉁'이나 가품 제품이 아니고, 이 사례처럼 명백한 불법이 아닌 문제의 여지가 있는 상품의 경우 소명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즉각 대응하기 힘들다며 오픈마켓의 구조적 특성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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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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