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을 두 달여 앞두고 게임 업계에 때아닌 소란이 일었다. 모처럼 e스포츠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음에도 그 종주국인 한국이 협회 지위 결격으로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전체육회 덕분에 최종적으로 잘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으려면 갈 길이 멀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씁쓸한 사건이었다.
▲ ‘페이커’를 아시안 게임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사실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냐 아니냐는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우리의 가치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e스포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정정당당한 규칙 아래 선수들이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고, 이에 관중이 뜨겁게 호응하는 모습이야말로 스포츠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우리를 흥분케 했던 역대 e스포츠 명장면을 모아봤다.
5위. WCS 2014 박세준 VS 아자렐리 (포켓몬스터)
포켓몬 마스터를 꿈꾸는 소년이 애니메이션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4년, 대한민국 대표 박세준은 북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포켓몬스터’ 국제대회 WCS 마스터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열여덟 살에 불과했던 박세준 선수는 미국의 강호 아자렐리를 맞아 치열한 2:2 대전을 벌였는데, 기존의 틀을 깨버리는 포켓몬 조합 및 전략을 들고나와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날 주역으로 활약한 포켓몬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치리스였다.
▲ ‘갓’치리스가 탄생하는 순간, 26분 45초부터 (출처: 포켓몬 공식 유튜브)
‘포켓몬스터 DP’에서 첫 등장한 파치리스는 피카츄 뒤를 잇는 4세대 전기쥐 포켓몬으로, 귀여운 외모와 별개로 종합 능력치가 낮아 실전에서 써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박세준 선수는 파치리스가 지닌 ‘날따름’이라는 도발기에 착안하여 2 대 2 대전에서 주력 딜러를 보호하는 탱커로 기용한 것. 그렇게 자그마한 파치리스가 적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내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이제껏 접하지 못한 색다른 감동이었다. 역시 세상에 쓸모 없는 포켓몬 따윈 존재치 않는다.
4위. EVER 스타리그 2004 임요환 VS 홍진호 (스타크래프트)
국내에 e스포츠 문화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스타크래프트’ 프로 리그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명경기를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황제테란’ 임요환과 ‘폭풍저그’ 홍진호의 라이벌 매치는 최정상급 경기력이 폭발하는 대목으로 언제부턴가 임진록이라 불리게 됐다. 그리고 수 차례에 걸친 임진록 가운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승부가 바로 2004년 열린 EVER 스타리그 4강 2주차 경기. 흔히 ‘삼연벙(3세트 연속 벙커링)’이라 불리는 명장면이 연출된 순간이었다.
▲ 속전속결로 끝난 ‘삼연벙’ 하이라이트 모음 (출처: 유튜브 Jae Lee)
당시 저그는 중반 이후를 도모하기 위해 빠르게 확장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자연히 초반 방어는 다소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 저그를 다루는 선수들도 이러한 약점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임요환은 이 틈을 파고들어 초장부터 홍진호의 턱밑에 벙커를 구축, 저그가 아예 초반을 넘기지 못하도록 압살했다. 심지어 이 회심의 벙커링은 3세트 전부 먹혀 들어 대략 1시간 사이 3 대 0 KO가 나와버린 희대의 경기였다.
3위. HOT6 롤챔스 2013 이상혁 VS 류상욱 (리그 오브 레전드)
총 열 명의 선수가 5 대 5로 승부를 벌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는 아무래도 개개인 기량보다 팀플레이가 중시되는 종목이다. 다만 아주 가끔씩 경지에 이른 실력으로 홀로 전황을 뒤집어버리는 선수가 있는데, 프로게이머들의 프로게이머라 불리는 ‘페이커’ 이상혁이 그렇다. 그가 데뷔 이래 5년간 최고의 미드라이너 자리를 지키며 쓰러트린 호적수가 셀 수 없을 지경. 특히 2013년 HOT6 롤챔스 결승에서 만난 ‘류’ 류상욱과 일전은 잊지 못할 명승부로 꼽힌다.
▲ 자료 화면으로 영원히 고통 받는 ‘류’ (출처: 유튜브 MrSwayMedia)
이날 결승에 오른 양 팀은 5세트까지 이어지는 숨막히는 접전을 벌였으며, 마지막 세트에서 양측 미드라이너 이상혁과 류상욱 모두 닌자 챔피언 제드로 승부수를 띄웠다. 제드는 손을 굉장히 많이 타는 챔피언인만큼 미드라이너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던 셈. 여기서 류상욱은 체력이 거의 바닥난 이상혁의 뒤를 잡았으나, 되려 눈으로 쫓기조차 힘든 재빠른 반격에 기술이 봉쇄당하고 치명상을 입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페이커(Faker)’에게 걸맞는 현란한 닌자 살법이었다.
2위. EVO 2014 우메하라 다이고 VS 저스틴 웡 (스트리트 파이터)
볼거리로는 싸움과 불구경이 최고라고, 대전격투 게임이야말로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e스포츠 종목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대전격투 게임대회 EVO(Evolution Championship Series)는 매년 숱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명승부를 꼽자면 역시 EVO 2004 ‘스트리트 파이터 3’ 종목에서 맞붙은 우메하라 다이고와 저스틴 웡의 준결승전. 어느덧 14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격투게임 플레이어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경기다.
▲ 대전격투 게임을 몰라도 느낄 수 있는 박력 (출처: EVO 공식 유튜브)
당시 춘리를 고른 저스틴은 우메하라의 류를 거세게 밀어붙여 승리를 확정 짓기 직전이었다. 체력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저스틴은 연속 발차기 기술인 봉익선으로 마지막 일격을 날렸는데, 가드 대미지조차 버텨낼 수 없음을 인지한 우메하라는 총 15회에 달하는 발차기를 모조리 블로킹한 후 반격 필살기를 작렬했다. 상대 공격 시 3프레임 이내로 블로킹할 경우 대미지는 물론 경직이 발생하지 않는 점을 120% 활용한, 참으로 신기에 가까운 대처 능력이었다.
1위. AWL 2007 박승현 VS 박준 (워크래프트 3)
신체 조건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여타 스포츠에 비해 e스포츠는 컨트롤러만 잡을 수 있다면 누구나 선수 생활이 가능하다. 게임도 인지능력과 반사신경처럼 이른바 피지컬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축구나 야구 등에 비할 바는 아니니까. 이러한 e스포츠의 개방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워크래프트 3’ 언데드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박승현 선수. 그는 근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을 앓으면서도 최고의 기량을 펼친 위대한 프로게이머였다.
▲ 인간승리의 표본, 팬들이 제작한 스페셜 영상 (출처: 유튜브 PhiLi Lyn)
박승현 선수가 활약한 AWL 2007 당시 언데드는 ‘야언X(야 언데드 X같아)’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한 약체였다. 프로 리그에 언데드가 나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될 지경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8강 상대는 ‘언데드의 재앙’이라 불리던 박준. 반면 단축키를 누르기조차 힘겨워 하는 박승현에게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경기장에 섰으며 화려한 영웅 킬을 올리며 모두의 편경을 박살냈다. 비록 박승현 선수는 몇 년 후 병세 악화로 세상을 등졌지만, 그의 열정과 투혼은 오늘날까지도 e스포츠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일정
2024년
12월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인기게임순위
- 1 리그 오브 레전드
- 2 발로란트
- 3 FC 온라인
- 41 로스트아크
- 51 메이플스토리
- 62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 7 서든어택
- 87 패스 오브 엑자일 2
- 9 메이플스토리 월드
- 102 오버워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