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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간다] 나의 블리자드 개발문화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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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여러 개발사들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기자들은 홍보 담당자들을 통해, 또 홍보담당자들은 기자들을 통해 새로운 정보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곤 합니다. 저 역시 그러합니다. 그런데 가끔 게임 개발사의 홍보담당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블리자드는 어떻게 그토록 성공한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알고 싶습니다. 블리자드가 어떻게 그토록 성공한 게임들을 연거푸 개발할 수 있는지 말이죠. 저도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유명 개발자나 게임 전문가들을 만나면 저 역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대부분 두리뭉실하고 단편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이거다!’라고 느낄만한 만족스러운 대답은 들은 기억이 없군요. 한때 유행했던 TV CF 멘트가 생각나네요. ‘비법은 며느리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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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

이러한 의문이 깊어가던 중 운 좋게 블리자드 본사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미국 블리자드 본사 출장 취재’라는 거창한 명목까지 붙어서 말이죠. 옛말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라는 말이 있듯, 블리자드의 노하우를 잡으려면 블리자드로 가야겠죠. 이번 블리자드 본사 방문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묵혀두었던 저의 궁금증을 반드시 풀어보리라 다짐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1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L.A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블리자드(Blizzard 심한 눈보라)는 회사명과 어울리지 않게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L.A 국제 공항 직원들이 조금씩이나마 한국말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공항직원은 ‘요리와~ 요리와~’라고 하며 한국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더군요. L.A에 거주중인 한국 사람이 많아서라고 합니다.

L,A 국제공항을 나와 남쪽 프리웨이(Freeway)를 타고 1시간 남짓 이동해 블리자드 본사가 위치한 얼바인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에선 연방정부가 건설한 고속도로를 하이웨이(고속도로)라고 부르지 않고 보통 프리웨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통행료가 없기 때문이라는군요. 이 프리웨이는 미국 전역으로 뻗어 있어 미국인들에겐 대동맥과 같은 도로라고 합니다.

얼바인은 깔끔한 도시였습니다. L.A의 위성도시인 얼바인은 계획도시인데다 I.T관련 회사들이 밀집해 있어서 더욱 그러한 느낌을 풍겼습니다. 도로는 바둑판처럼 잘 정비되어 있었고 거리는 깨끗했습니다. 얼바인은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꼽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지가이드는 그래도 가급적 저녁시간엔 외출을 삼가하라고 하더군요. 특히 걸어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특히 L.A에선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인접해 있는 얼바인도 결코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는 군요. 호텔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마치고 장시간 비행에 지친 몸을 침대에 뉘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대화를 나눴던 미국인들 거의 모두가 ‘오렌지’라고 말해도 알아듣더군요. 예전에 어떤 분이 말했던 ‘미국가서 오렌지를 어린쥐라고 하지 않으면 못 알아먹는다’는 말은 뻥인가봅니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블리자드 본사로 향했습니다. 블리자드는 숙소인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블리자드의 근무시간은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입니다. 저희 역시 블리자드 직원들 출근시간에 맞추어 블리자드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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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 직원들은 이곳을 '블리자드 캠퍼스'라고 불렀습니다

블리자드로 들어가는 차량 진입로는 멋들어진 철골구조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 두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더군요. 나중에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가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개발자들에게 앙심을 품고 블리자드로 돌격(?)하는 열혈 게이머들이 있다고 합니다(아마도 흑마법사 이외의 직업 플레이어들이겠죠?). 만약 여러분이 블리자드 본사 돌격을 계획중이시라면 준비 품목에 방탄복도 넣으시기 바랍니다.

입구를 지나 블리자드 부지 내부로 들어섰습니다. 부지는 왠만한 초등학교 운동장 정도 크기로 상당히 넓었습니다. 부지 내에는 넓게 펴진 형태의 직사각형 3층 건물 세 개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세 개 건물은 신작게임 개발건물과 본관(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개발실, 접견실 등), QA 및 편의시설 건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내 내 곳곳에는 파라솔과 벤치로 이루어진 쉴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건물들이 모두 흰색이어서 인지 켈리포니아의 투명한 햇살과 잘 어울렸습니다.

자신감,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스팀팩

로비입구는 블리자드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군침을 흘릴만한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사진기를 누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필자 역시 블리자드 게임을 재미있게 즐겼던 터라 ‘혹시 이거 구입할 수 있나요?’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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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를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물건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팬 아트북과 팬 메일북입니다. 팬 아트북은 미국 각지의 블리자드 팬들이 직접 그려서 보내온 것들을 묶어놓은 책입니다. 상당히 멋진 그림들이 많더군요. 와우메카 갤러리의 그림들도 이곳에 올려지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팬 메일북은 블리자드 팬들이 보내온 편지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한 12살 아이는 블리자드 게임을 통해서 친구들과 친해져서 개발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보냈다고 써 놓았더군요. 팬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또 지칠 때 마다 팬들의 편지를 읽으며 원기를 충전하기 위해 비치해 뒀다고 합니다. 악플을 철근처럼 씹어 먹고 사는 저와는 참으로 비교되는 이야기였습니다(아~ 눈물 난다).

게임기자로서 여러 개발사들을 방문해 봤지만 이처럼 팬들이 보내온 선물들을 로비에 비치해 둔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팬 아트북과 팬 메일북을 보면서 블리자드 개발자들이 얼마나 감개무량해 할지 생각해 봤습니다.

자신감은 사람을 긍정적이고 활동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느껴보셨을 겁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여러분이 만든 무언가를 인정받았을 때의 기분 말입니다. 기자들 역시 자신이 작성한 기사에 칭찬 리플이 달리면 뛸 듯이 기뻐한답니다. 정말 고생한 보람을 느끼죠.

블리자드 근속자들에게 수여되는 ‘워크래프트’ 검과 방패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물건이지만 자신이 블리자드로부터 받은 검과 방패를 보면서 뿌듯해 하겠죠. 저 역시 게임쇼에서 받아온 기념품을 보면서 실실 웃곤 합니다. ‘나는 거기 존재했었다.’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블리자드는 이런 식으로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그것으로 게임을 보다 열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그 게임으로 팬들에게 인정받고, 그 팬들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다시 게임을 개발한다. 정말 바람직한 선순환(善循環) 구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신문에서 봤던 조사 결과가 생각나는군요. 직원들이 자신의 회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생산 효율이 높아지고, 조직을 관리하는 비용이 절감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야 말로 일석이조! 블리자드 임원진들이 이런 형상을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 결과는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는 듯 합니다.

아! 그리고 여담 한 가지. 본래 근속자들에게 검과 방패를 수여하는 의식은 현 플래그십 스튜디오 대표인 빌로퍼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블리자드가 설립된 지 5년이 되던 해에 임원진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이러한 이벤트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게임에 있어선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블리자드이지만, 이 부분에선 그들의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후덕한 빌로퍼 아저씨라면 플래그십 스튜디오에서도 이런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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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표 스팀팩, 팬 아트북과 팬 메일북. 그리고 '워크래프트' 검과 방패

팬 메일을 보며 껄껄 웃기를 몇 분, 조금 후 로비 옆에 마련된 시어터(상영실)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리치왕의 분노(이하 리치왕의 분노)’ 프리젠테이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핵심 개발자 세 명이 진행한 프리젠테이션에선 ‘리치왕의 분노’에서 등장할 지역에 대한 설명과 새롭게 추가되는 직업인 ‘죽음의 기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리치왕의 분노’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와우메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프리젠테이션 후 본관 3층으로 이동했습니다. 3층에는 ‘리치왕의 분노’를 플레이해 볼 수 있는 시연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죽음의 기사’는 플레이해 볼 수 없었지만, 기존에 존재했던 직업들로 ‘리치왕의 분노’의 주무대인 노스렌드를 직접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시연 후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블리자드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투어는 블리자드 본사 직원이 직접 회사 곳곳을 안내해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목적지는 블리자드 박물관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블리자드가 수상한 상패과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관련 상품들, 지금까지 개발했던 게임들의 포스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몇몇 특별한 물건을 소개하자면 우주 비행사 유저가 기증한 ‘우주에 다녀온 스타크래프트 패키지’와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사가 기증한 미국국기와 이라크 전 참전뱃지, ‘사우스파크(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를 통해 블리자드가 수상한 에미상(미국의 텔레비전 우수 프로, 우수 연기자, 기술자 등에게 수여되는 상) 관련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미국의 사회적인 이슈 반열에 들어섰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편의시설과 QA팀이 위치해 있는 건물로 이동했습니다. 건물에 들어서자 마자 눈에 보인 곳은 바로 직원식당이었습니다. 직원식당은 미국의 일반적인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에게 시중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과자와 음료수, 식사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원전용 휘트니스 센터를 둘러본 후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개발실이 위치해 있는 본관으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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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 박물관. 이외에도 다양한 블리자드 게임 관련 물품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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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식당입니다. 많은 직원들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맛이 괜찮나봅니다

작지만 큰 커뮤니케이션의 힘

드디어 대망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개발실에 들어섰습니다. 개발실 내부를 둘러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곳이 개발실인지 전시장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포스터, 피규어, 깃발 등 각종 ‘워크래프트’ 관련 물품들이 통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문득 머리 속에 ‘이 사람들 참 워크래프트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발자중에는 술집에서 바텐더 일을 하다가 ‘워크래프트’에 대한 지식, 게임에 대한 열정, 게임에 대한 안목을 인정받아 개발자로 발탁된 인물도 있다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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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개발실입니다. 아쉽게도 사무실 내부는 엄격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개발실의 형태는 국내 개발사들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통로를 따라 작은 사무실이 나열되어 있고 작은 사무실에는 2명~3명의 개발자가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점은 사무실 내부를 일하는 개발자들이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는 점! 정말 각양각색이더군요. 건담 프라모델이 가득한 개발자 사무실에서부터 우산으로 장식한 사무실, 각종 일본 전통 물건들로 치장되어 있는 사무실, ‘워크래프트’ 포스터가 가득한 사무실까지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개발자들이 내부를 마음껏 치장할 수 있게 한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무실 분위기를 만들어 마치 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점은 편안한 분위기에선 보다 유연한 커뮤니케이션과 사고가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알고 계실 겁니다. 친구들 앞에선 청산유수처럼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도 대중 앞에선 뻣뻣하게 굳거나 회사 면접 등에서 자신이 생각한 내용의 반도 꺼내지 못하는 경우를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블리자드는 사무실 분위기를 각 개발자에게 알맞게 꾸미도록 해서 그들의 머리 속에 있는 아이디어들을 끄집어 보다 효과적으로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개발자들이 사무실 내에서 편안한 자세로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도 그들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검색엔진 회사 구글 역시 ‘편안한 분위기와 환경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라는 개발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그곳에선 개발자들이 누워서 과일을 먹으며 회의하더군요). 저 역시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길 때 보다는 팀장님과 담배 한 대 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 오르곤 했습니다. 블리자드는 이러한 점을 파악하고 개발문화로 정착시킨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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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한국인 개발자 제이미 창 씨. 블리자드 본사에는 꽤 많은 한국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랍 팔도 게임디자인부문 부사장도 이런 말을 했었죠. “우리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시스템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각 팀의 리더들이 팀원들이 서로 모여서 고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준다. 서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게임에 적용해 보며 더 재미있는 것을 찾아낸다. 즉, 활발한 커뮤니티 문화가 회사 전반에 깔려있는 것이다.”

솔직히 인터뷰 당시 저는 그가 했던 말에 대해 ‘그냥 임원이 흔히 하는 말’ 정도로 흘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개발실에 와 보니 정말 그러한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다 쾌적한 개발환경을 구축해 나가기 위한 블리자드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매우 시시해 보이는 이 문화가 타 개발사들과 블리자드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요?

성숙한 인간은 이상을 위해 비굴한 삶은 선택한다

블리자드 투어가 끝나고 밖을 보니 새파랬던 켈리포니아의 하늘이 붉은 색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더군요. 슬슬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는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자문해 보았습니다. ‘내가 원했던 질문의 답을 얻었는가?’

그들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두 가지 이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죠.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캘리포니아의 쾌적한 기후와 정말 맛있는 오렌지 주스(너무너무 맛있었습니다)도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게임 개발자들의 능력만으로 이러한 성과를 얻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게임 개발은 물론 외부적인 요인, 쉽게 말해 임원진들의 블리자드 경영철학 역시 게임 개발 못지 않게 지금처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블리자드를 보고 ‘돈이 많으니 느긋하게 개발할 수 있고 그래서 좋은 게임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에 공감할 수 없습니다. 현재 상태를 놓고 말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블리자드의 과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블리자드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로 성공하기 이전에는 자금난으로 여러 업체에게 인수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해 보십시오. 블리자드는 98년 ‘스타크래프트’ 출시 이후에도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개발을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자했고 그로 인해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꼴이었습니다.

약 6년간 덩치 큰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개발팀을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됐습니다.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시리즈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 못지않게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투자되는 비용이 컸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미국에선 ‘인수’라는 것에 대해 한국에서처럼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블리자드 역시 ‘월드오브워크래프트’로 큰 성공을 거두기 이전에는 국내의 여느 개발사들처럼 ‘자금난’을 겪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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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 성공신화의 주역 삼인방. 마이크 모하임 대표(위), 폴 샘즈 수석 부사장(하단 좌), 랍 팔도  개발부분 부사장(하단 우). 저는 마이크 모하임 대표님을 볼 때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노움 종족이 떠 오르곤 합니다. 저만 그런가요?

인터뷰에서 마이크 모하임 대표가 밝힌 것처럼 블리자드는 ‘브랜드 파워’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약 6년이란 개발 기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독일의 한 저명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숙한 인간은 이상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지만, 성숙한 인간은 이상을 위해 비굴한 삶은 선택한다.’고 말이죠. 블리자드는 ‘인수’라는, 어찌 보면 치욕스러운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블리자드가 지금처럼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임원진들이 추구하는 ‘브랜드 파워’ 즉, ‘블리자드의 게임은 유저들에게 확실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이어야 한다.’는 경영철학이 밑받침 됐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회사가 휘청거릴 수도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6년 동안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개발하지는 않았겠죠. 블리자드의 이런 경영철학이야 말로 ‘천만제국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만들어 질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문난 맛집에는 분명 다른 음식점이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푸짐한 양이든, 싼 가격이든,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맛이든 간에 말이죠. 그것이 바로 현대사회에선 경쟁력입니다. 분명히 블리자드에는 다른 개발사들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고 배우고 실행할 수 있다면 국내에도 분명 멋진 개발사가 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국내 개발사들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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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온라인
장르
MMORPG
제작사
블리자드
게임소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두 번째 확장팩 '리치왕의 분노'에는 첫 번째 영웅 클래스 '죽음의 기사'가 등장한다. 춥고 접근이 어려운 노스렌드 대륙이 등장하며 새로운 기술과 능력, 공성 차량과 파괴 가능한 건물을...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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