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픈베타테스트를 시작한 소환대전 큐이(이하 큐이)가 지난 26일을 기점으로 동시접속자수 1만명을 돌파했다. 개발사 열림 커뮤니케이션의 방갑용 사장에게 큐이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 88년 광고회사'에드방'으로부터 시작해 2006년 큐이를 내놓기까지,방 사장은 게임계의 희로애락을 모두 맛본 장본인이다.
▲ 언제나 즐거운 열림 커뮤니케이션 직원들(더 큰 사진을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
★ 첫번째 시련: 별이, 그 아련한 이름
열림 커뮤니케이션은 처음부터 게임 개발사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97년 당시 열림은 ‘별이 열한살’이라는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을 개발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유저가 대사를 입력하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대답을 해주었던 별이는 공개 당시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으로 각종 매체에 알려졌다.
별이는 그 후 초등학교 컴퓨터 수업시간에 과학대탐험, 글짓기 등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개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98년 IMF를 맞이함에 따라 찬란했던 별이의 꿈도 함께 접어야 했다.
갑작스런 IMF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말단 직원 중 한명이 “우리도 게임 한번 만들어보자”며 깜짝 제안을 했다(이 사람이 바로 지금의 개발이사). 당시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 온라인 게임 열풍이 막 불기 시작할 무렵. 그렇게 게임개발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열림 직원들은 겁도 없이(?) 게임 개발에 뛰어들게 되었다.
▲ 97년 당시 한국경제에 소개되었던 별이의 기사 |
▲ 게임개발의 ‘ㄱ’자도 모르고 만들었던 연애시뮬레이션게임'네버엔딩러브' |
★ 두번째 시련: 네버엔딩 러브의 짧은 러브스토리
그렇게 처음 만든 게임이 바로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네버엔딩 러브’. 이 게임은 여학생 5명이 멋진 남자와 연애를 하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벌이는 전형적인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별이 기능을 함께 넣어 낯뜨거운(?) 대화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불법복제의 마수는 네버엔딩 러브도 피할 수 없었다.
“게임잡지 번들로 어느 정도 매출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역시 불법복제를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한번의 실패를 하게 되고 그 후엔 돈을 빌리러 다니기에 바빴죠. 하지만 한번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정말 한번 좋은 게임을 만들어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었죠.”
★ 세번째 시련: 큐이가 ‘개나 소나 만드는 탱크게임’이라고?
그렇게 계속된 실패에도 열림 직원들의 게임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2번째 나온 게임이 온라인 액션 RPG ‘얍카’.
당시 제대로 된 게임엔진을 사기 위해서는 2~3천만원은 족히 들었기에, 열림 직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게임엔진을 만들었다. 방 사장은 참 오랜 시간 사막에서 지도 없이 걸어왔다며 옛날을 회상했다. “지금 업체들은 초원에서 양분을 먹으며 곱게 자라고 있죠. 네버엔딩러브나 얍카를 개발할 당시만해도 개발자라는 직업이 지금처럼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자를 뽑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그 시절엔 그냥 무조건 맨땅에 헤딩한 거죠.” 얍카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열림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얼마 되지 않은 자금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 3년의 기간 동안 열림 내에서는 수도 없는 게임이 기획됐다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직원들은 갈수록 힘이 빠져갔다. |
또 한번의 고비에 선 시점에서 희망의 불을 밝혀준 게임이 바로 ‘소환대전 큐이’.당시 큐이의 처음 컨셉은 포트리스의 3D버전인 탱크게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큐이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절정은 온라인게임 테스트베트 심사 때였다.
“테스트베드 심사를 받고 온 개발자들이 모두 혼이 빠져나갔더라구요. 글쎄 심사위원들이 큐이를 보더니 ‘개나 소나 다 만드는 탱크게임을 왜 또 만들어서 가지고 왔냐’며 악평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지금의 소환수가 그때의 충격으로 만들어진 거죠”
★ 네번째 도전: 큐이,열림의 꿈을 담고 세계로 나가다
심사위원들의 가차없는 질책에 실의에 빠진 것도 잠시, 개발자들은 탱크가 있던 자리에 소환수를 새롭게 배치했다. 소환수는 역시 희망을 주는 동물일까, 지지부진하던 개발은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뻗어나갔다. 소환수로 바꾼 후부터 막혀있던 창의력이 물밀듯이 쏟아져나왔고, 개발자들의 눈에선 빛이 나기 시작했다. 큐이의 개발이 이토록 빠르게 진행된 이유에 대해 방 사장은 무엇보다 ‘팀워크’을 강조했다. “팀워크를 위해 회사 내부의 칸막이를 모두 없앴고, 경력자나 신입에 관계없이 두루 어울릴 수 있게 자리를 배치했습니다. 지금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초창기 멤버이기 때문에 신입 개발자를 뽑을 때도 가장 먼저 팀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뽑으려고 합니다.” |
그렇게 큐이의 신선한 게임성이 여러 곳을 통해 입소문을 타게되면서, 많은 서비스사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특히 윈디소프트(현 서비스사)의 경우 큐이 퍼블리싱 계약 당시 처음으로 전원 만장일치로 찬성해 13일만에 급속도로 계약이 완료되었다. ‘열림’의 인생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방갑용 사장은 `큐이의 동시접속자수가 딱 3만명만 됐으면 좋겠다`며 겸손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욕심은 한국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도 그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큐이가 되기 위해 세계각국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소환수를 타고 꿈을 키울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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