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잇 노동균]
영화 속에서 거대한 괴물이 도심을 활보하는 장면들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다양한
영화 촬영 기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딱 잘라 하나의 기술만을 얘기하기는 물론 힘들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컴퓨터 그래픽이다. 아울러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래픽 프로세싱 유닛(GPU)이다.
▲영화 <허큘리스>의 한 장면(사진= Double Negative)
PC 사용자에게 GPU는 게임을 위한 주변기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GPU 컴퓨팅의 역사가 그래픽 칩 고정 기능 프로세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GPU는 응용과학 분야에서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이후 광범위한 병렬 컴퓨팅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면서 적용 분야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분야가 제조 산업에서의 설계 애플리케이션이다. 여기서 제조 산업이란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의 최첨단 산업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작은 소품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특히 최근에는 제조에서 물류에 이르는 모든 프로세스에 있어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시되면서 GPU 컴퓨팅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GPU를 활용한 비주얼 컴퓨팅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예다. 이 시장의 대명사는 단연 헐리우드다. 대규모 물량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는 물론,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들도 이제는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얼굴 없는 명배우’로 불리는 앤디 서키스와 같은 모션 캡쳐 전문 배우가 등장하게 된 배경도 결국은 비주얼 컴퓨팅의 발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산업에서 GPU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컴퓨터 그래픽이 날로 화려해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분야는 시각과 관련한 최첨단 기술들이 가장 먼저 도입되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풀 HD의 4배에 달하는 해상도인 4K가 대두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헐리우드는 이미 6K를 향한 도전을 펼치고 있을 정도다.
조만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신작 <나를 찾아줘(Gone Girl)>는 6K로 모든 장면을 촬영한 영화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도 GPU의 역할은 빠지지 않는다. 영상의 화질이 높아질수록, 여기에 특수효과를 입히거나 후보정하는 과정에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그만큼 많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 <나를 찾아줘>의 한 장면(사진= gonegirlmovie.com)
이러한 작업에는 일반적인 PC보다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갖춘 워크스테이션급 컴퓨터가 사용된다. GPU 또한 일반 소비자용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몇 배 웃도는 집약적인 부품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전문가용 GPU로는 엔비디아의 ‘쿼드로(Quadro)’나 AMD의 ‘파이어프로’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개별 워크스테이션 수준으로 처리 불가능한 대규모 렌더링과 같은 작업 시에는 고성능 GPU를 수십 노드로 구성한 렌더 팜이 활용되기도 한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이 영화의 후작업에는 어도비의 프리미어 프로 CC와 애프터이펙트 CC가 사용됐다. 또한 6K로 촬영된 영상을 디지털로 비주얼 효과를 입히기 위한 DPX(Digital Picture Exchange) 포맷으로 파일을 변환하는데 엔비디아의 차세대 쿼드로 GPU가 탑재된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를 통해 DPX 파일 변환에만 기존 CPU 기반 시스템 대비 최대 50배 빠른 속도로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사진= Framestore)
영화 <그래비티>와 <에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시각효과 기술을 담당했던 업체인 프레임스토어 또한 광활한 우주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하는데 GPU 기술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 업체는 엔비디아의 GPU 솔루션을 기반으로 프레임쉬프트(Frameshift)와 마리(MARI), 오토데스크 마야 등 다양한 비주얼 애플리케이션에서 큰 성능 개선 효과를 거뒀고, 그 결과물인 그래비티는 오스카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나아가 최근 GPU 업계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전 세계 어디서나 비주얼 컴퓨팅 작업이 가능한 시대를 열고 있다. 한국에서 한 대의 워크스테이션으로 미국 산타바바라에 위치한 렌더링 팜의 GPU 파워를 네트워크로 끌어와 신속하게 작업하는 식이다. 협업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시대를 맞아 GPU 컴퓨팅의 진화도 모바일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균 기자 yesno@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