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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픽 사건 솔직 대담 “터져야 할 문제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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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팝픽 관련 신조어들


지방 대도시에 있는 한 만화학원에서 그림을 배우던 수강생은 상업 만화 원고 약 200페이지의 펜선을 칠하고 오천 원을 받았다. 수고비 조로 밥값을 받은 것이란다. 어디서 많이 들은 소리다. 아, 맞다. 50만 원에 밤샘근무는 필수. 바로 팝픽이다.


한국사회의 병적인 ‘갑질’ 문화, 문화산업 분야에서 사람의 자존심을 바닥까지 긁게 만든 열정 노동이 일러스트 업계에도 ‘팝픽 사건’이라는 추문으로 퍼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인터넷 신조어까지 등장해서 1팝픽= 334원 이라는 단위도 나타났으며, 혹사당했다는 뜻으로 ‘팝픽당했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처럼 사건이 공론화된 상황에서도 피해 작가와 팝픽의 대립은 끝날 기미가 없다. 문제는 꼬이고 꼬여 법적 소송까지 앞두고 있다. 대체 어쩌다 이러한 상황까지 왔을까. 기자도 답답할 지경이다. 게임메카는 게임사이자 외주제작 및 외주 관련 자문도 제공하는 자칭타칭 게임-동인업계 종합 봉사 중인 마기소프트 김환민 대표를 만나 패기로 뭉친 대담의 시간을 가져봤다.


팝픽, 마땅히 터져야 할 문제가 터졌다



▲ 가족같은 분위기로 기자를 맞아준 김환민 대표


게임메카(이하 메카):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마기소프트니, 자기소개를 좀 부탁한다.


김환민 대표(이하 김): 오타쿠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덕업일치를 해낸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면서 살고 있다. ‘섬마을 이야기’라는 게임을 개발 중이었는데, 팀원의 사정으로 지연되고 있다. 그 틈에 다른 게임 개발을 도와주고 있는데, 하다 보니 수석이 되어 있다. 일러스트 외주 일도 하고 있고, 원화가나 작가들에게 조언도 많이 해준다. 


메카: 그 정도면 됐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팝픽 문제가 한 달 사이에 일이 엄청나게 커졌다. 작가들도 맞대응에 나섰고, 상당히 강하게 부딪히고 있는데.


김: 마땅히 터져야 할 문제였다. 작가 개개인의 고충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맞은 사람이 많으니까. 공론화가 된 것 같다. 단순히 작가뿐 아니라, 다른 외주 업체, 게임 개발자, 학생, 학교, 만화가, 일본 에이전시, 게임 개발사, 그냥 싹 끌려 나왔으니까.


메카: 그래도 국내 유일한 일러스트 잡지로 상당한 영역까지 발전했던 것 같은데. 지금 그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김: 아마 업계에 팝픽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 있다. 지금까지 공론화가 안 되어 있었을 뿐이다. 도화선만 당겼다고 일이 터지는 것 봤나. 이미 여론 조성이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불이 붙은 거다. 숨어 있던 게 끌려 나오는 거지, 없던 문제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 팝픽 테마북 '앨리스 인 원더랜드' (사진출처: 팝픽 공식 홈페이지)


메카: 지금까지 팝픽 정도의 규모에서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됐나.


김: 지금까지 그정도 규모의 회사가 없었기에 일도 없었다. 팝픽은 굉장히 큰 회사다. 상근 직원도 있는 데다가 아카데미에 팝픽 소프트까지 하면 정말 거대한 규모다. 터져 나오는 문제 거리가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일러스트 업계, 잘나가는 줄 알았는데…


메카: 카드배틀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일러스트 업계도 외주 문의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터져서 더 놀라기도 했다.


김: 어쩔 수 없다. 수익이 남는 일은 일본 의뢰 일이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일은 글쎄, 정말 한국에서 일러스트 외주를 줄 정도의 회사가 돈이 있는 회사가 있을까 싶다. 시세로 보자면 한국에서 나름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만한 회사가 일본 최소가격 정도를 준다. 어쩔 수 없다. 다들 사정이 그러니까.



▲ 팝픽 전 직원이 공개한 월급 지급 내역 


메카: 그렇게 계산해서 중계 수수료를 뗀다고 가정하면, 1453팝픽 (약 50만 원)도 가격이 나쁜 게 아니지 않나. 공급가가 낮으니까.


김: 아니다. 팝픽의 경우 국외 업체와의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팝픽은 개인이 아니라 중계 업체라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국내 업체가 아무리 돈을 적게 준다고 해도, 팝픽 같은 외주 중계 업체와 계약을 하면 또 다르다. 어느 정도 품질이 보증된다는 전제로 가져가기 때문에 업체도 네고시에이션(가격 협상, 이하 네고)에 들어간다. 품질 보증을 약속하고 얼마 이하 선의 가격은 외주를 받지 않는 식이다. 물론 주문량이 떨어질 수는 있다. 그래도 나쁜 수준은 아닐 것이다.


메카: 팝픽 사건이 발생하고, 유명 개발사에서 직접 나서 팝픽의 납품 품질에 대해 언급을 하기도 했다. 품질이 좋지 않아서 거래가 취소되기도 했다던데.


김: 솔직히 말해 인쇄 품질이나 디자인 수준이 안 좋았다. 리터칭을 하고 컨펌을 안 한 듯한 느낌이랄까. 제대로 했다면 그런 그림들을 완성이라고 인쇄소에 넘겼을 리가 없다. 리터칭을 했는데 나아진 느낌이 없다. 자기 방식으로 바꿨을 뿐이지.


메카: 취재하면서 실제 담당자와 피해자들에게 제보가 오기도 해서 놀랐다. 원래 개발사들은 논란이 생기면 피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먼저 자료를 주더라.



▲ 취재를 시작하자 관련 제보가 너무 많아 메일함을 따로 분리했을 정도


김: 팝픽이 그만큼 문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팝픽북스를 낼 정도의 회사라고 추천을 받아서 외주를 주었다. 그런데 결과물이 이상한 거다. 납기도 늦고 품질도 좋지 않고, 그러니 업체들도 쌓인 것들이 있었겠지.


메카: 속된 말로 ‘찍어 냈다’는 이야기인가?


김: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팝픽 책이 일러스트 자료로 쓰이기에 큰 가치가 없다. 표지만 유명 작가가 그렸지, 안에는 동인지 수준이다. 작업 과정을 보여줘도 배울 게 없다. 그림을 이렇게 그렸다고 증명하는 과정밖에 없으니 말 다 했다. 무엇보다 편집 자체가 너무 안 좋았지만.


열정노동. 그리고 반페이


메카: 팝픽 주장은 편집 디자인을 하는 데 많은 투자를 했다고 하던데.


김: 그러니까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억대연봉인 사람을 영입해서, 게임 완성도를 엄청나게 높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다른 직원 월급을 삭감한다는 게 합리적인가? 만약 그 사람을 1억에 데려오느라 회사에 손해가 막심하다면, 직원들과의 합의 하에 다른 가치라도 제공해야 한다. 돈을 주지 않을 거라면 제대로 된 실력 상승의 기회를 주던지. 대신 복지를 제공해야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직원에게 회사와 함께 고통을 분담하기를 요구한다면, 이건 그냥 상실이다. 방법이 틀렸다.


메카: 하지만 회사가 돈을 못 벌고 힘들다 보면 직원들의 협조를 구할 경우도 있지 않나. ‘반페이’처럼 말이다.


김: 나라면 감히 할 수도 없는 말이다. 정말 작가가 재주가 없다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으니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게 쉽다. 물론, 정말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러닝 개런티 방식을 제의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합의를 해야지. 합의가 없이 일을 많이 주고, 정해진 기간 안에 일을 원하는 품질로 내놓지 못했다고 월급을 삭감한다면 그게 징벌적 급여 삭감이지 뭐냐. 법적으로 말이 안 된다. 동반자 관계라는 느낌이 아예 없다. 적어도 최저 시급은 줘야지. 나도 15팝픽(1팝픽이 344원이다) 이상은 준다. 하다못해 동인게임 회사도 이러는데.

 

메카: 처음에는 교육생이나 직원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그랬다고 하던데.


김: 만일 그림을 가르쳐달라고 오는 경우에는 시쳇말로 팝픽 말처럼 최저임금 이하로 줄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면 “제가 그림을 가르쳐 드릴게요 대신 잘 그리게 되시면 나중에 저희도 좀 도와주세요” 이러고 서로 동의하고 넘어간다. 그림을 쓸 데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팝픽은 그 그림을 썼다지 않나.



▲ 팝픽 스튜디오 모습


김: 두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 그렇게 수준이 낮은 그림을 왜 자기 이름으로 썼나. 상식적으로 작가가 그림을 완성하는데, 선생님이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면 작가가 고맙다고 선생님한테 밥을 사면 되는 거다. 두 번째,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은 점이다. 그리고 써놓고 이행하지 않은 점이다. 물론 계약서가 필수는 아니다. 이쪽 업계가 그렇다. 구질구질하게 계약서 같은 거 쓰지 말고 서로 잘해주면 된다. 이게 불문율이다. 하지만 책임회피를 위한 계약서를 썼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메카: 사실 가장 궁금한 건 이거다. 그렇게 해서 팝픽이 돈을 많이 벌었나.


김: 톡 까놓고 말해, 우리가 얻는 수익과 비교해 보면 많이 벌었을 것이다. 외주 제작하면서 확정까지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면 20% 수수료를 받는다. 구도를 바꾸고, 색도는 어떻게 내리고 올리고 직접 그림에 관여해서 다 뜯어고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받는 게 20%다. 여기에 기자재 지원을 하면 조금 더 추가된다. 이것저것 최대로 끌어 올리면 35%까지 수수료가 오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되면 컨펌한다기 보다 동업자에 가깝다.



작가들의 강력 대응, 형사소송도 불허한다


메카: 어제 송현정 대표의 사과문이 발표됐는데. 여전히 작가들의 화는 식지 않았다. 

김: 사과문에서도 여전히 사과는 안 하고 있으니.



▲ 22일 팝픽은 출판권 포기 각서를 재중하여 참여 작가들에게 메일을 발신했다


메카: 생각해 보면 작가들의 대응방법도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 코믹스투데이 사건과 비교해 봐도,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작가들의 태도가 진취적이다. 생태계가 변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김: 아까도 말했듯이 팝픽 사건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러스트레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체의 문제가 됐으니까. 지금이야 맞은 사람이 많으니까 공론화가 됐고,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한두 명의 문제였으면 분명 묻혔을 것이다. 



▲ 하지만 곧 작가들 사이에서 각서의 부당함을 알리는 공지가 게제됐다 (출처: 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


메카: 사람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시스템이 바뀌기를 바라고 있던데.


김: 이 일이 해결된다고 외주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바뀐다거나 작가협회가 생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이번 일이 집단 지성으로 대응한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차피 이 바닥이 그렇다. 공급과잉이기 때문이다. 또, 만화나 애니메이션 업계가 문제는 더 심하고.


메카: 안타깝다. 그렇게 보면 지금 팝픽의 한결같은 태도도 납득이 간다. 이러다 넘어가겠거니 하는 건가.


김: 자신들 입장에서는 실제 진짜로 억울할지도 모른다. 본인은 확신에 차서 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든 간에, 성과가 있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지는 않았을 테니까. 본인은 틀렸다는 자각을 못 하니까 열심히 밀어 붙이는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 틀렸다. 그리고 틀렸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는데도, 자신은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합리화를 시키고 있으니까. 죽어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해서 개천이 좋은 곳인가? 


메카: 개천에서 용 나면, 결국 개천으로 끌려간다.


김: 맞다. 빈민층에 성공한 사람이 있으니 빈부격차 심해도 괜찮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간극이 줄어야 용이 나오는 숫자도 많아지고, 개천의 수심이 깊어진다. 


메카: 팝픽의 이미지가 그동안 좋았던 게 안타깝다.


김: 팝픽에서 정말 그림업계 발전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들도 자원봉사를 했을 것이다. 엄선된 강사진을 두고, 학생들이 배우고 연구하게 직접 몸으로 보여줬을 것이다. 작가가 어떻게 발전하고, 그림을 그리기 전에 어떤 고뇌를 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면 팝픽을 보는 사람들이 도움을 얻는다. 하지만 직원을 강사로 돌리고, 강사를 다시 작가로 돌리고 악순환이었다. 정말 좋은 회사였다면, 유능한 작가들이 왜 다 나가서 프리랜서를 뛰고 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된다.


메카: 팝픽이 처음 입장을 밝힌 것도 정준호라는 이름있는 아트디렉터가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부터다.


김: 다들 팝픽 사건에서 자신의 모습을 느꼈을 것이다. 부조리가 일러스트레이터 업계에만 있겠나. 갑을 잘못 만나면 을이 착취당한다. 울분이 터져 나오고, 거기에 공감하고,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느껴지는 거다. 요즘 이야기가 나오는 남양유업 갑을 관계와 똑같다. 


메카: 이번 일로 팝픽이 사라진다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국내 유일의 회사니까.


김: 만약 정말 제대로 네트워크 식으로 운영했으면, 훨씬 성공했을 것이다. 사실상 독점이었으니까. 국내에 작가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전문가들이 거의 없다 보니, 그림 그리는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서 공동체로 가자. 사후관리도 하는 조건 하에 얼마의 수수료를 가져가겠다. 이러면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팝픽이라는 존재가 긍정적이지 않았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신기루였다. 금송아지가 깨졌다는 느낌이다. 원래 그런 이상향은 없었다.


메카: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다. 앞으로 그림을 배우고 싶은 원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 꿈나무들은 어디에 가서 그림을 배워야 하나.


김: 시장이 좁은 걸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가르쳐줄 사람이 거의 없다. 지금 한국에 많은 대학교, 만화학원들 모두 실력을 저하시키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잘 그리는 사람들은 원래 잘나서 잘 그리는 거다. 교육을 잘 받아서 잘 그리는 게 아니다. 


메카: 조언을 해 달랬더니, 왜 더 우울하게 만드나.


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혼자 탐구해보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다. 기능적인 학습과 체득이 중요하다. 프로그래머가 버그를 경험하고 노하우를 쌓듯이 어떻게 해보니까 효과가 좋더라.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경험을 내 것으로 조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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