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서양 RPG’라 하면 많은 이들이 1980년대 스타일의 뿔투구를 쓴 과도한 근육질과 전사나 바이킹, 혹은 묘하게 판타지와 SF가 뒤섞인 커버 아트를 떠올린다. 실제로 ‘서양 3대 RPG’ 로 불리는 마이트 앤 매직과 울티마 역시 이러한 콘셉트다. 그런데 그 중에는 유독 일탈적인(?) 커버 아트를 자랑하는 게임이 있다. 바로 위저드리다.
포털에 위저드리를 검색하면 나오는 커버 아트 대부분이 일본 애니메이션 풍이다. 보고 있자면 정말 이게 서양 3대 RPG 중 하나인지 고정관념이 흔들릴 정도다. 냉장고 같은 체구의 근육질 아저씨는 간 데 없고, 눈 크고 입 작은 호리호리한 미소녀들이 나온다. 조금 당황스럽겠지만, 아래 일러스트가 ‘드워프’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거 팬아트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검색하면 나오는 이런 이미지는 거의 다 정식 커버 아트다. 서양 고전 RPG인 위저드리가 오늘날 이러한 일본 애니메이션 풍 아트가 된 데는 여러 사연과 소문이 있다. 이번 주에는 서양 3대 RPG인 위저드리에 얽힌 사연과 트리비아를 알아보자.
사무라이가 여기서 왜 나와? 너무 일본을 사랑했던 위저드리 개발자
미리 얘기하지만, 사실 위저드리가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풍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 2000년대 초반 이전에 위저드리를 접한 고전 미국 소드 앤 소서리(Sword & Sorcery) 풍 아트를 기억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알게 모르게 위저드리는 뿌리부터 일본 문화와 연이 있었다. 실제로 위저드리는 1981년 발매된 첫 게임부터 은근슬쩍 사무라이나 닌자 같은 일본적 요소를 넣어 왔다.
디지털 기기로 플레이 하는 오늘날 게임과 달리, 초기 RPG는 펜과 종이를 놓고 하는 보드게임 방식이었다. 그렇던 RPG를 리차드 개리엇이 1977년 던전 앤 드래곤을 컴퓨터로 플레이 할 수 있는 버전으로 만들기 시작해, 1979년 이를 바탕으로 개량을 거친 ‘아칼라베스’를 상용화하면서 본격적인 RPG PC게임화가 시작됐다. 1981년 출시된 위저드리도 바로 이러한 물결을 타고 만들어진 컴퓨터 게임 중 하나였다.
1993년 발간된 위저드리 잡지 ‘위즈뉴스’에 따르면, 위저드리는 1978년 코넬 대학에 재학 중이던 앤드류 그린버그가 친구로부터 던전 앤 드래곤을 컴퓨터로 할 수 있게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듣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대학에서 다른 학생인 로버트 우드헤드를 만나 위저드리를 함께 제작하게 됐고, 1981년에는 서-테크라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체에 함께 입사해 이 게임을 정식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위저드리 시리즈의 첫 번째 게임인 ‘위저드리: 미친 왕의 시험장(Wizardry: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seer)’은 사뭇 단순한 내용의 던전 크롤 게임이었다. 어느 날 미친 왕 ‘트레버’의 왕국에 사악한 마법사 ‘워드나’가 나타나 마법 장신구를 빼앗아 던전으로 달아나고, 왕은 몇몇 모험가를 고용해 그 뒤를 쫓도록 지시한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이 모험가 집단을 움직여 던전을 탐사하고 ‘워드나’를 찾아 왕의 마법 장신구를 되찾아야 한다.
던전 앤 드래곤을 컴퓨터로 플레이하는 게 초기 기획 방향이었던 만큼, 실제로 위저드리는 많은 부분에서 던전 앤 드래곤을 반영했다. 예를 들어 위저드리 기본 클래스 전사, 사제, 마법사, 도둑은 1977년 출시된 ‘던전 앤 드래곤 베이직 세트’의 클래스 구성을 이름만 바꿔서 그대로 갖고 온 것이며, 상위 클래스 시스템은 ‘어드밴스드 던전 앤 드래곤 1st’에서 갖고 온 것이다. 그러니 세계관도 던전 앤 드래곤 풍 서양 판타지 기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위저드리에는 뜬금없이 사무라이와 닌자가 등장한다. 마법도 조금 사용할 수 있는 전사 상위 클래스로 사무라이가, 은신과 암살에 특화된 도둑 상위 클래스로 닌자가 나온 것이다. 더 재미있는 부분은 사무라이 일러스트다. 공식 매뉴얼 속 사무라이 일러스트는 서양식 투구와 갑옷을 착용하고 콧수염을 기른, 실제 사무라이와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이는 생김새였다.
그 외에도 위저드리는 게임 최강 무기가 일본도 ‘무라사마’거나, 던지는 무기로 ‘슈리켄’이 나오는 등 영문을 알 수 없게 튀어나오는 어설픈 자포네스크가 상당수 존재했다. 하지만 서양 중세 풍 판타지에 사무라이나 무라사마 같은 일본 요소가 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사실상 전무했다. 그렇기에 위저드리에 일본적 요소가 등장하는 이유는 게임이 출시된 1980년대 당시는 물론 지금에도 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사실 그 이유는 조금 황당하게도, 개발자 로버트 우드헤드가 단순히 일본 문화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해외 RPG 커뮤니티 RPG Codex와의 인터뷰 중 “위저드리에 왜 사무라이, 닌자, 슈리켄 등이 나오나?” 라는 질문에 대해 “‘쇼군’이라는 소설을 보고 멋있어서 넣었다”는 대답을 한 바 있다. 즉 본인이 보기에 폼 나서 넣었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다.
여담이지만 로버트 우드헤드는 젊은 시절부터 사무라이 영화와 소설을 좋아했으며, 이후 게임업계를 떠나 아예 일본에 눌러앉았다. 서테크를 떠난 그는 일본 기업과 손잡고 MMORPG를 개발하러 일본에 갔는데, 프로젝트는 자금 부족으로 취소됐으나 그는 일본 여성을 만나 결혼해 일본에 정착했다. 이후 우드헤드는 1989년부터 일본 사무라이 영화와 만화를 미국으로 유통하는 기업을 운영 중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사무라이와 닌자를 다루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니 잘된 일 아닐까?
일본에도 없던 사무라이 클래스, 그리고 일본에서의 폭발적 반응
물론 위저드리가 사무라이나 닌자를 클래스로 등장시킨 최초의 게임은 아니었다. 1977년에 나온 ‘오블리에트(Oubliette)’가 이미 사무라이와 닌자를 캐릭터 클래스로 활용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위저드리가 이러한 일본적 요소를 도입한 초창기 RPG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원조 RPG 던전 앤 드래곤조차 1985년 ‘오리엔탈 어드벤처’가 출시 되고서야 사무라이 클래스가 등장했으니 위저드리가 4년이나 빨랐던 셈이다.
더욱 특기할 만한 사실은, 당시만 해도 사무라이의 본고장 일본에는 사무라이 클래스가 나오는 RPG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에 사무라이가 나오는 일본 게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세가는 1980년 사무라이라는 이름의 단순한 아케이드 게임을 낸 바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 게임업계는 RPG 장르에서 약세를 보였고, 그나마도 대부분 던전 앤 드래곤 식 서양 중세풍 판타지를 모방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였을까? 일본에서는 서양 판타지에 뜬금없이 튀어나온 일본적 요소가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덕분에 일본에서 위저드리는 아주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일본에 울티마와 위저드리가 수입되며 일본 게임시장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위저드리의 존재감은 단연 으뜸이었다. 오죽하면 당시에는 게임 뿐 아니라 만화에서도 위저드리를 언급하는 일이 잦았다. 물론 사무라이와 닌자도 함께 말이다.
위저드리는 특히 다양한 일본 플랫폼 및 패밀리 컴퓨터에 맞춘 이식을 지원했다. 그리고 우드헤드는 이를 돕기 위해 본인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서 이식 작업에 참여했다. 덕분에 서테크와 함께 이식 및 유통 작업을 한 일본기업들은 위저드리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고, 심지어 이를 바탕으로 자기들 나름의 위저드리 외전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위저드리 외전이 나오게 된 데는 다른 사연도 있다. 1988년, 원작자인 앤드류 그린버그와 로버트 우드헤드가 ‘위저드리 5: 마엘스트롬의 심장(Wizardry V: Heart of the Maelstrom)’을 마지막으로 둘 다 서테크를 퇴사한 것이다. 원작자가 떠난 후로도 서테크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위저드리를 계속 만들었지만, 두 사람이 떠나고 출시된 ‘위저드리 6: 코스믹 포지의 파멸(Wizardry VI: Bane of the Cosmic Forge)’ 이후부터는 그들에게 로열티 지급을 거부했다.
그러나 1981년 체결된 원계약에 따르면 서테크는 앤드류 그린버그와 로버트 우드헤드에게 위저드리 관계 상품은 물론 후속 발매되는 버전들에 대해서도 권리를 인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에 두 개발자는 서테크를 고소했고, 서테크는 위저드리 라이선스를 캐나다 자회사인 서테크 캐나다로 이전하는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2005년까지 시간을 끌며 버티다 결국 승소했다. 하지만 이 긴 법적공방으로 인해 위저드리 개발은 난항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소송 중에도 서테크는 계속 위저드리 신작 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소송 중 주요 개발진 이탈이 계속되고 프로젝트 운용 자금까지 부족해진 탓에, 서테크는 1992년에 출시된 ‘위저드리 7: 다크 사번트 군단’ 이후 자체 개발이 곤란한 상황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서테크는 ‘위저드리 8: 아른헴의 돌(Wizardry VIII: Stones of Arnhem)’ 개발을 호주 다이렉트소프트에게 하청 주었지만 이조차 중도 취소됐다.
이에 서테크는 아예 위저드리 라이선스를 대여하는 방침을 세웠다. 자기들이 직접 위저드리를 만들 상황이 아니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위저드리 외전을 만들게 하고 로열티나 받자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 바로 일본의 개발업체들이었다. 마침 당시 일본 게임업계는 위저드리에 영향을 받은 RPG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는데, 정통 위저드리 IP를 대여한다는 얘기를 듣고 수많은 희망자가 모여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나온 일본 위저드리 외전 시리즈가 순식간에 늘어 본가 위저드리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일본발 위저드리는 1991년 아스키가 제작한 ‘위저드리 외전 1: 여왕의 수난’을 필두로 계속 출시됐으며, 게임만이 아니라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됐다. 게다가 1998년에 원작 위저드리 1편부터 3편까지를 모아서 일본판으로 리메이크한 ‘릴가민 사가’는 아예 일본 내에서 자체 아트워크까지 새로 작업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본가 서테크가 휘청거리고 있는 사이 위저드리 라이선스를 빌린 일본 기업들은 조금씩 자기들 입맛에 맞춰 위저드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서테크가 문을 닫으면서 일본에서 쌓아 올린 내수용 위저드리가 시리즈 명맥을 이어받을 줄은 말이다.
서테크 문 닫고 갈 곳 잃은 ‘위저드리 IP’, 결국 일본 품으로…
2000년대 초반은 많은 고전 서양 RPG 브랜드가 쇠락한 시기였다. 앞서 말한 3대 서양 RPG들은 모두 이 시기를 넘기지 못했다. 울티마는 이미 1999년 출시된 울티마 9: 승천(Ultima IX: Ascension)을 마지막으로 맥이 끊겼고, 마이트 앤 매직은 각각 2000년과 2002년에 나온 마이트 앤 매직 8: 파괴자의 날(Might & Magic VIII: Day of the Destroyer), 마이트 앤 매직 9(Might & Magic IX)를 끝으로 개발업체 3DO가 문을 닫아야 했다.
위저드리도 이 시기를 넘기지 못했다. 서테크는 개발진 이탈과 자금 부족, 법적 공방 속에서도 최후의 힘을 짜내 2001년 위저드리 8을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게임은 시리즈 최초로 완전 3D 그래픽을 도입했고 게임 시스템에서도 상당한 진보를 이루어 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출시됐을 때 이미 서테크는 파산 직전의 상태였고, 위저드리만으로 기업을 구하진 못했다. 결국 서테크는 그 길로 문을 닫게 됐다.
이후 서테크는 자산을 정리하며 위저드리 IP 상당 부분을 매각했다. 그 덕분인지 이 시기 일본에서는 수많은 위저드리 외전이 출시됐다. 서테크가 위저드리 IP를 넘기며 휘청이다 끝내 파산하여 IP를 최종 정리한 기간은 2000년부터 2006년 사이인데, 이 때만 총 16개의 일본 내수용 위저드리 외전이 나왔다. 이는 서테크가 20년 동안 제작한 정식 시리즈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다.
당시 위저드리 외전을 만든 개발업체는 매우 다양하다. 그 중 특기할 만한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여신전생과 페르소나로 유명한 아틀라스다. 2001년, 아틀라스는 ‘BUSIN 위저드리 얼터너티브’라는 외전을 제작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이 게임은 일본 위저드리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후속 작품까지 발매됐다. 그리고 훗날 아틀라스는 위저드리 기본 게임성을 귀여운 캐릭터와 조합한 자체 IP를 내놓았는데, 그게 바로 세계수의 미궁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일본 위저드리 외전은 내수용을 전제하고 제작됐다. 그렇다 보니 당시 나온 게임들은 아트 스타일도 일본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느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일본 게이머를 노린 게임이니 일본 시장 분위기에 맞게 분위기를 바꾼 셈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래 전부터 위저드리를 좋아해 온 서양 게이머들은 한동안 너무도 분위기가 달라진 일본발 위저드리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다.
일본 내수용 위저드리 외전이 계속 출시되던 2006년, 드디어 위저드리 IP는 최종적으로 한 기업에 매입되어 정착했다. 이 기업은 게임포트라는 일본 회사였다. IP를 인수한 게임포트는 다시 한 번 위저드리 프랜차이즈를 부흥시키겠다며 르네상스를 선언했다. 게임 뿐 아니라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을 여럿 출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출시된 작품들은 옛 위저드리에서 아트만 애니메이션 풍으로 바꾼 것이 대부분이었다.
게임포트가 위저드리 르네상스를 제창한 이래 도합 9개의 새로운 일본발 위저드리가 출시됐고, 세대를 거듭하며 위저드리는 차츰 일본 애니메이션 풍 아트 스타일로 정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동일까? 위저드리 본가가 위치했던 미국에서는 이러한 르네상스 작품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도 RPG Codex나 레딧 등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일본이 IP를 갖고 가 위저드리를 망치고 있다는 옛 팬의 분노 어린 글이 자주 올라오고 있으니 말이다.
위저드리 르네상스가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는지, 혹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있는지는 쉽게 확답하기 힘들다. 그러나 위저드리가 폭풍우 속에서 큰 변화를 겪어왔다는 점, 그리고 이제는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아트 스타일로 정착해 나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옛 모습이야 어쨌건 간에 지금 위저드리는 완연한 일본 게임이 됐다.
미국에서 난 게임이 일본 품에 정착하기까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위저드리가 38년 동안 나아간 발자취는 사뭇 독특하고 파란만장하다. 앞으로도 위저드리는 게임성은 1980년대 시절에 고정한 채, 아트 스타일은 일본 애니메이션 풍으로 바꿔서 시리즈를 이어 나갈 듯하다.
오는 2020년 1월에는 위저드리 르네상스의 일환인 ‘위저드리: 사로잡힌 혼의 미궁’이 스팀을 통해 출시된다. 이 역시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들 수도, 안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껏 위저드리를 접해 보지 않았거나 오랜 시간 동안 위저드리를 떠나 있었다면, 이 기회에 일본에서 달라진 위저드리 풍미를 직접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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