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2018) 컴퓨텍스에서 키보드가 점차 고급화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드렸었는데요, (2018 키보드 트렌드 분석, 카일의 새 스위치도 공개!) 1년 사이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지, 부푼 기대감을 안고 다시 컴퓨텍스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OEM 업체 중 샛별은 RK더라
제가 며칠간 컴퓨텍스 전시장들을 둘러보고 느낀점으로는 우선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지 않은 OEM 업체의 부스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체감됐습니다. 지난해에는 전시장 구석구석 작은 부스들이 게이밍기어, 키보드로 가득했는데요. 올해에는 이런 OEM 업체가 줄어든 것이 느껴졌습니다. 키보드 OEM도 점차 규모가 큰 업체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OEM 위주의 브랜드였다가 점차 중화권에서 자체 브랜드로 판매량과 인지도를 늘려가고 있는 RK(Royal Kludge)가 키보드 OEM 시장의 대표적인 샛별입니다. RK는 해를 거듭할수록 부스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참신한 제품도 많이 가지고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달에 제가 홍콩 전자전에서 봤던 바로 그 키보드가 이번 컴퓨텍스에서도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키보드 중간에 구멍이 뚫려서 다양한 용도(?)로 쓸수있는 변태배열 키보드입니다. 홍콩에서는 이 제품이 아직 완성이 안 된 상태였다고 해서 컴퓨텍스를 기약했었는데요. 아쉽게도 아직 완성도를 더 높이기 위해 시장에는 판매하지 않고 테스트 중이라고 합니다.
변형된 75%를 베이스로 좌우를 분리할 수 있는 어고노믹 키보드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키보드는 평소에는 손에 편한 상태로 좌우의 거리를 조절해서 타이핑하고, 게이밍 용도로는 왼쪽 키보드만 사용하여 책상 공간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이 제품들은 아예 게이밍 전용으로 나온 왼손 게이밍용 키보드입니다. FPS나 AOS 장르를 할때 특히 유용할 것 같네요. 게임하다 열받아도 타자를 못 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입니다.
OEM에 저렴한 제품만 만들던 RK가 아닙니다. 이제 RK도 풀알루미늄 키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RK602는 풀알루미늄 텐키리스 제품입니다. 체리 스위치를 사용했고 알루미늄 하우징의 아노다이징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다만 알루미늄임에도 무게가 가벼운 것은 다소 아쉽습니다.
RK601과 RK603도 있습니다. 둘다 알루미늄이며, RK601은 602와 거의 비슷하며 배열만 풀배열인 제품입니다. RK603은 풀알루미늄 제품이지만 다른 제품과는 약간 다른 하우징을 사용했고 크기 대비 무게는 이 제품이 되려 좀더 무겁습니다. 요즘 기성품 시장에서 핫해지려고 하는 71 배열을 쓰고있습니다.
주요 게이밍 브랜드의 게이밍 키보드는 '대표제품 한두개'
▲ 써멀테이크의 LEVEL 20 GT 키보드
게이밍 기어 브랜드에서 몇년 전부터 자체 브랜드의 키보드를 내는 것이 유행했엇는데요. 커세어가 키보드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자 너도나도 따라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에서 호평 받으며 자리잡은 키보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게이밍 기어 브랜드가 '키보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엿보였는데요.
아무래도 답이 나오지 않았는지, 올해는 게이밍 기어 브랜드에서 내놓은 자체 키보드의 수가 대폭 줄었습니다. 써멀테이크는 LEVEL 20 키보드와 멤브레인 RGB 키보드 단 두개만 내놓았고, 심지어 MSI와 에이수스도 부스에 키보드가 1~2 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에이수스는 PBT키캡과 메탈릭(스러운 플라스틱으로 추정) 키캡으로 체면은 차렸는데요. ROG 스트릭스 브랜드의 팬이라면 한 번쯤 노려봐도 될 것 같습니다.
▶ 쿨러마스터는 '게이밍키보드'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한다
그나마 제가 흥미롭게 돌아본 게이밍 기어 브랜드는 쿨러마스터였습니다. 쿨러마스터는 예전부터 나름 키보드로 일가를 이뤄온 곳이죠. 이번에 쿨러마스터에서 아주 끝내주는 제품이 나왔습니다.
쿨러마스터는 SK621, 631, 641이라는 라인업이 있는데, 각각 60%, 텐키리스, 풀배열 사이즈입니다. 별도의 상판은 없고 하판겸 보강판 역할을 하는 메탈릭 바디로 이뤄져 있는 제품이며, 키캡이 아주 촉감이 좋은 직사각형 큐브형 키캡입니다. 적당히 도톰하고 모서리가 라운딩 처리가 되어 있어서 보기에도 예쁩니다.
진짜 끝내주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번에 쿨러마스터가 공개한 제품 가운데 가장 핫한 제품. '컨트롤 패드' 라는 이름의 매크로패드입니다.
단순한 매크로패드처럼 보이는 이 제품에는 사실 엄청난 기능이 녹아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키보드 누르는 깊이를 센서로 인식해서 입력신호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키보드를 조금만 누르면 신호가 천천히 들어가고, 키보드를 깊이 누르면 신호가 빠르게 들어가는 식입니다.
키보드로 레이싱 게임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키보드로는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정교하게 조작할 수 없습니다. '톡톡톡' 신공으로 하면 약간 커버는 되지만 태생적으로 키보드는 살살 누르건 세게 누르건 입력 지점을 지나면 신호를 늘 최대치로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 컨트롤 패드는 키보드를 살짝 누르면 액셀레이터를 살짝 밟은 것처럼 속도가 자연스럽게 서서히 올라가게 됩니다. 강하게 누르면 '풀악셀'을 한것처럼 속도가 확 올라가겠죠. 이 제품이 있다면 키보드로도 레이싱 게임을 조금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쿨러마스터는 게이밍 키보드를 그저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연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이크로닉스에서도 신제품 소식을 알려왔는데요, 부스에 전시된 마닉 X70은 대형 엣지 LED 디퓨저가 외부로 노출된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전체적인 디자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과감히 돌출시킨 디퓨저가 RGB로 빛나기 때문에 상당히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왼쪽 위에 볼륨조절용으로 추정되는 다이얼도 있으며, F1~F4위에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커스텀 키도 디자인적으로 전혀 이질감이 없어서 좋습니다. 스위치는 마닉에서 특별주문한 커스텀 스위치인 'MANIC' 스위치가 들어가는데 순정임에도 스프링 소리가 꽤 잡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키보드 전문 브랜드는 풀알루, 무선, 한정판에 푹 빠졌어~
▶ 덕키, 바밀로, 레오폴드, 보어텍스
▲ 보어텍스기어(볼텍스기어)의 Tab75, 75% 배열에 블루투스 지원 제품이다
게이밍 기어 브랜드가 아닌 전통적인 키보드 전문 브랜드는 무선 제품을 너도나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덕키(Ducky)의 Year of the pig 리미티드 에디션
덕키는 매년 그해의 동물(띠)을 주제로 Year of the *** 에디션을 공개하고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용이었는데 이번에는 돼지로 나왔습니다. 지난해보다 퀄리티가 훨씬 올라간 것이 특징입니다. 배열은 약간 변형된 65% 배열입니다.
하우징은 CNC가공한 풀알루미늄 하우징에 나노 코팅처리를 했습니다. 무게도 꽤 묵직했습니다. 키보드 후면에는 구리 또는 황동으로 보이는 황금색 금속재질로 돼지와 동물들이 새겨져 있는데요, 더키에서 이 키보드를 만들기 위해 대만의 금속예술가를 초청했다고 하니 공을 꽤 많이 들인 키보드입니다. 작년에는 거의 키캡만으로 생색냈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발전이죠.
후면의 네임태그와 측면에는 한정판임을 알 수 있는 넘버링이 새겨져 있습니다. 높낮이 조절용 다리도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고, 자석을 사용했는지 접고 펴는 것이 상당히 경쾌하고 시원스럽습니다.
한정판이 아닌 일반모델도 있습니다. 덕키 원 SF 2라는 이름으로 출시하며 65%배열로 레이아웃은 한정판인 '돼지의 해 에디션'과 동일합니다. 그대신 하우징이 플라스틱이며, 키보드 바닥면의 높낮이 조절 다리도 플라스틱이고 퀄리티가 한정판과는 다릅니다. 다만 키감에서는 스테빌라이저까지꽤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키 원 미니와 비슷하지만 단단한 메탈재질로 만들어진 메카 미니(Mecha mini)도 등장했습니다. RGB를 지원하며 USB C타입 인터페이스를 사용했습니다. 치는 느낌이 아주 정숙하고 잘 잡힌 키보드인데요, 아마 가격만 착하다면 기성품 비키스타일 미니배열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모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사진은 레오폴드 팬 분들께 상당히 기분 좋은 소식이 될 것 같습니다. 레오폴드의 주력제품들이 일제히 블루투스 버전을 공개했습니다. 제품명 뒤에 BT가 별도로 붙어있는데요, 베이스는 기존 레오폴드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이며 블루투스 기능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스테빌라이저도 아주 정숙하게 잡혀있습니다.
덕키 부스에 함께 들어와있는 바밀로도 살펴봤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것인데요. 바밀로가 힙합비둘기 데프콘 아저씨에게 선물했던 에반게리온 아스카 커스텀 키보드의 하판입니다. 양산용으로 만들지 않아서 세상에서 한대 뿐인 기성품이기도 하죠. 컴퓨텍스 부스에 공개한 것은 아마 제품을 만들때 남은 것이거나, AS용(?)으로 보유중인 것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판만 존재하고 상판과 기판, 스위치는 없는 전시용 제품입니다.
VA104m의 커스텀 버전으로 추정되는 제품도 있었습니다. 우선 대리석을 연상하게 만드는 키캡이 상당히 예뻤는데, 바밀로가 기존에 자사에서 만들던 재질이나 두께는 아닌듯 했습니다. 실제 대리석은 아니고 ABS에 코팅을 입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제품은 우측 상단 인디케이터 옆에 센서가 있는데요. 센서 앞에 손을 갖다대면 LED 모드가 변하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요즘 꽤 인기있는 제품이죠. 바밀로와 덕키가 함께 제작한 '미야 프로'입니다. 바밀로의 이름이 들어간 제품들은 어떤 키보드이건 스테빌라이저만큼은 정말 잘 잡았음을 이 키보드에서도 느꼈습니다.
▶ 드루갓은 알루미늄에 도전 중
드루갓 부스에서는 핑크색 TAURUS 코로나가 눈에 띄고,
한국에 K520 nebula라는 이름으로 최근 출시한 제미니 네뷸라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드루갓에서 새로 개발한 풀알루미늄 제품인데요, 배열이 71키 배열로 요즘 기성품 업체들 사이에서 71키 배열이 핫하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판을 같은 것을 사용하는지 궁금해지는데, 추후에 리뷰할 수 있다면 뜯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형제 모델로 추정되는 드루갓의 60% 풀알루미늄 키보드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직 제품명이나 세부 스펙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카운터 구석에 숨겨진 것을 발견해서 연출샷을 찍어봤습니다.
▶ AZIO(아지오)도 왔다! 더 명품스러워진 아지오
이번에는 아지오도 참가했는데요, 아지오 부스도 관람객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레트로 클래식 풀배열만 있는줄 알았던 아지오는 이제 75% 배열에 블루투스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무선 제품 콤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팜레스트까지 세트로 제공하는 것인데요. 특히 나무 컨셉의 제품은 팜레스트도 원목이며 퀄리티가 아주 높습니다. 아지오는 브랜드 컨셉을 정말 '명품'으로 확실히 잡은 듯합니다.
이 제품은 아지오 아이리스입니다. 출시된 제품은 아니고 프로토타입 제품인데요, 상판은 cnc 가공한 제법 두툼한 통알루미늄이며, 하판 바닥도 알루미늄, 상판과 하판 중간에는 가죽으로 마감처리한 정체불명의 재질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키감이 기성품 치고는 상당히 단단하고 알이 꽉차있습니다. 배열은 이 제품도 변형된 75%이며, 무선연결을 지원합니다. 미디어키로 활용할 수 있는 우측상단 다이얼겸 버튼도 인상적입니다.
▶ 2년째 공개만 하고있는 카일 썬 스위치, 왜 안나오나 했더니
지난해에 카일 부스에서 저에게 썬 스위치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었는데요, 스위치 정중앙에 LED가 들어간 클릭계열 스위치였습니다. 그런데 기껏 컴퓨텍스의 메인으로 공개했는데 제품이 계속 출시되지 않아 궁금했는데요. 이번에 가서 보니 썬 스위치 구형은 전시는 되어있으나 시장에는 내보내지 않고, 신버전으로 리뉴얼한 상태였습니다.
이 사진은 구버전 썬스위치입니다. 스위치 중간이 뭔가 동글동글하고, 중간에서 빛이 뿜어져서 스위치 전체가 고르게 밝아지는 스위치입니다. 그래서 SUN 스위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리뉴얼한 신형 썬스위치입니다. 중간에 동글동글한 느낌은 없어지고 대신 박스 스위치 비슷하게 테두리에 벽이 생겼는데요, 일반 박스스위치보다는 벽이 훨씬 큽니다. 일반적인 체리 MX 스위치에 끼우는 키캡은 일부 호환이 안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스위치를 사용한 기성품 키보드가 세계에 딱 한대 있는데요, 헥스기어에서 썬스위치 2세대를 사용한 키보드가 있습니다.
거대키보드에 사용되었던 카일x노벨키의 빅스위치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 찬란하게 빛나는 테스터는 썬스위치 테스터기입니다.
무선, 알루미늄, 커스텀화, 점점 고급스러워지는 키보드 시장
이번 컴퓨텍스 전시 기간동안 살펴본 키보드들은 제조업체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기계식 키보드 시장은 이제 포화상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레드오션이 되고 있는 키보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부 게이밍 기어 브랜드는 게이밍 기능에 더 집중하고 있으며, 일부는 제품 라인업을 줄이면서 대표 제품 1~2개로 다른 부품들과 컨셉을 통일시키고 있습니다.
키보드 전문 브랜드에서는 알루미늄, 무선을 기본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키캡과 하우징의 특성, 스위치 등으로 커스텀화를 꾀하고 있었습니다. 커스텀 키보드를 노리지 않는 일반 사용자들도 커스텀 키보드에 준하는 퀄리티의 기성품을 만날 날이 그리 머지 않았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발전이 있을지 벌써부터 1년 뒤가 기대됩니다.
글, 사진 / 송기윤 (iamsong@dana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