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비스 종료 후 애셋 무료 공개를 발표한 '파라곤' (사진출처: 언리얼 엔진 공식 홈페이지)
최근 에픽게임즈가 공들여 만들고 있던 ‘파라곤’의 개발 및 서비스를 종료했다. 게임업체가 긴 기간 큰 예산을 들여 만든 게임을 이처럼 빨리 서비스 종료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것도 에픽게임즈라는 명가가 127억 원이나 투자해 제작한 수준 높은 작품을 고작 1년 남짓한 테스트 만에 접은 것이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이번 GDC 2018에서는 ‘파라곤’ 그래픽 애셋을 무료 공개하겠다고 선언했으니 그 충격은 더욱 크다.
그렇다면 에픽게임즈는 왜 ‘파라곤’을 이처럼 쉽게 포기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애셋까지 무료로 공개한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에픽게임즈 대표이자 언리얼 엔진 개발자인 팀 스위니가 나섰다. 인터뷰에서 그가 말해준 ‘파라곤’ 서비스 종료 및 애셋 공개 이유는 명확하다. 포트나이트 집중과 언리얼 엔진 지원 증대다. 팀 스위니와 인터뷰는 GDC 행사장 사우스홀에 위치한 에픽게임즈 부스에서 진행됐다.
▲ 인터뷰에 응해준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 (사진: 게임메카 촬영)
게임메카: 반갑다. 'GDC 2018'도 벌써 4일째인데 감상이 어떤가?
팀 스위니: 늘 그렇지만 게임업계 트렌드 변화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자리다. 특히 올해는 모바일게임 시장의 하드코어화가 눈에 띄었다. 북미 모바일게임 시장은 최근까지도 가벼운 작품이 대세였다. 그런데 이번 GDC에는 꽤 하드코어한 게임들이 주목 받고 있다. 우리 ‘포트나이트’나 ‘아크’가 그렇다. 한국에서 시작된 하드코어 모바일게임 트렌드가 미국에서도 슬슬 보이기 시작한 듯하다.
게임메카: 그렇다면 앞으로의 개발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팀 스위니: 모바일게임이 캐주얼에서 하드코어로 넘어가는 것은 개발자에게 좋은 변화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많은 모바일게임 개발자가 시장 수요에 따라 가벼운 게임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바일로 게임을 시작한 세대들도 수준 있는 게임을 좋아하게 됐다. 수요가 다양해짐에 따라 앞으로 훨씬 폭넓은 장르의 깊이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진짜 게임’ 말이다.
게임메카: 올해는 VR 열기가 조금 식은 듯하다. 지난 해 VR 시장을 평가한다면?
팀 스위니: AR과 VR 시장은 변동이 심한 분야라 10년 이상을 봐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하드웨어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세계를 바꿀 정도의 물건은 없었다. 최근 주시하고 있는 AR 글래스 ‘매직 리프’는 상당히 창조적인 진보를 이룬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AR/VR 시장에서 괄목할 성과가 나올 때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엄청난 잠재성이 있음이 분명하다.
게임메카: AR/VR이 일상에 정착할 때까지는 어떤 과제들이 남았다고 보는가?
팀 스위니: 우선 트래킹 기술이 많이 발전해야 한다. 동작 트래킹, 위치 트래킹, 미세한 손동작을 잡아내는 트래킹 등. 그리고 디스플레이도 더 높은 해상도와 넓은 시야를 지원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유저 인터페이스 표준이 대대적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기능 개선, 대중성, 비게임 분야 진출을 선언한 언리얼 엔진 (사진제공: 에픽게임즈)
게임메카: 다음으로 언리얼 엔진에 대해 묻고 싶다. 최근 언리얼 엔진이 비게임 분야로 진출 중인데, 이는 유니티 엔진도 마찬가지다. 엔리얼 엔진이 비게임 분야에서 유니티 엔진에 비해서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팀 스위니: 언리얼 엔진 최고 장점은 사진 같은 사실적 그래픽이다. 비게임 분야에서는 사실적 씬 렌더링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이 아니라 실생활에 쓰이는 것이므로, 정말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진짜 같아야 한다. 그 외에는 비게임 분야에서 기존에 쓰던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을 갖춘 데이터 툴 제공이나, 다양한 기능을 지닌 물리 시뮬레이션 엔진, 네트워크 툴 등을 들 수 있다. 클라우드와 모바일을 비롯해 어떤 플랫폼, 어떤 소프트웨어에도 맞게 사용할 수 있다.
게임메카: 유니티는 2013년에 유니티 엔진으로 도면을 제작한 인공수족을 공개했었다. 혹시 언리얼도 이처럼 특이한 용례가 있는가?
팀 스위니: 굉장히 많다. 우선 나사 우주비행사 훈련용 시뮬레이터가 떠오른다. 우주에 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훈련하기 위한 시뮬레이터로, 언리얼 엔진의 뛰어난 물리성과 VR 기능이 활용됐다.
자율주행자동차 Zoox 인공지능 머신러닝에도 쓰인다. 언리얼 엔진으로 제작된 가상세계를 주행하는 식이다. 덕분에 Zoox는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실제 도로에 나가지 않고도 얻을 수 있었다.
석유 및 가스 회사 어비설도 언리얼 엔진을 사용한다. 이들은 자사 시추선이 지구 어디서든 바다 속 송유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실시간 원유지대 모니터링 솔루션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언리얼 엔진으로 제작했다.
건축 설계, 자동자 디자인, 영화에 사용된 예도 다양하다. 다 꼽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자동차 중 가장 유명한 예는 맥라렌 650S다. 기본 설계는 물론이고 공기역학 테스트도 모두 언리얼 VR 기능을 활용했다. 영화 중에서는 ‘혹성탈출: 종의 전쟁’과 ‘스타워즈: 로그원’이 유명하다. 언리얼 엔진의 선 시각화(pre-visualization) 기능으로 감독 머릿속에 있는 심상을 오차 없이 스탭들에게 보여주면서 제작했다.
게임메카: 작년 키노트에서 보여준 ‘휴먼 레이스’ 데모도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그 다음 보여줄 기술혁신은 무엇인가?
팀 스위니: 5년 내로 영화와 TV 프로그램은 모두 ‘휴먼 레이스’에서 선보인 실시간 제작방식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워낙 생산성 높고 빠르기에 방송제작업계 전체에 변동이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물론 AR/VR이다. AR/VR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현실세계에서 보이는 것과 쉽게 구분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이 모호한 것을 이용하여 새로운 종류의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가상현실을 투영해 현실에 덧씌운다거나 말이다.
▲ 지난 해 큰 충격을 준 영상 '휴먼 레이스' (사진출처: 언리얼 엔진 공식 홈페이지)
게임메카: ‘포트나이트’에 대해서도 질문하겠다. 최근에 모바일 버전 ‘포트나이트’가 공개됐다. 모바일에서 조작하자면 손도 많이 가고 쉽지 않을 듯한데, 조작상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팀 스위니: ‘포트나이트’는 독특한 시스템 덕분에 여타 총 싸움 게임에 비해 빠른 조작이 덜 중요하다. 공격을 받으면 바로 맞서 싸우기보다는, 건축물을 만들어 공격을 차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모바일의 불편함이 게임 자체 특징 덕에 희석된 셈이다. 대신 건설 인터페이스를 매우 쉽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게임메카: 경쟁작이라고 할 만한 ‘배틀그라운드’는 2018년 업데이트 일정을 발표했다. 혹시 ‘포트나이트’는 콘텐츠 업데이트 로드맵 발표 계획이 있는가?
팀 스위니: ‘포트나이트’는 기획 콘텐츠를 2~3주 안에 바로 적용한다. 그래서 1년 업데이트 일정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다. 앞으로도 신규 콘텐츠가 기획되는 대로 바로 발표하고 적용할 계획이다. 한국지사에서는 한국어화 속도가 콘텐츠 업데이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거의 매주 콘텐츠가 추가되는 만큼, 업데이트 속도는 다른 어떤 게임보다 빠르다고 본다.
게임메카: 한국에서는 북미와 유럽에 비해 ‘포트나이트’ 점유율이 낮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시 사실인가?
팀 스위니: 보면 알지 않나? 실제 그렇다. 그렇다고 슬퍼하지는 않는다. ‘포트나이트’는 미국에서도 몇 개월에 걸쳐 성장했다. 한국에는 정식 출시 시기도 얼마 되지 않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예상된 결과고 앞으로 천천히 계속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플레이어들이 자국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너무 좋아하는 것도 더딘 성장세에 한몫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괜찮다. ‘배틀그라운드’도 언리얼 엔진으로 만들었으니까 잘 되면 기쁘기는 마찬가지다.
▲ 최근 모바일 버전이 공개된 '포트나이트' (사진제공: 에픽게임즈)
게임메카: ‘배틀그라운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최근 ‘배틀그라운드’는 e스포츠를 의식해서 다양한 관전 및 리플레이 기능들을 추가했다. 혹시 에픽게임즈는 e스포츠에 뛰어들 생각 없나?
팀 스위니: 물론 e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 이끌 만한 사업은 구상하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비공식 토너먼트를 지원하는 데 집중 중이다. 최근에는 실시간으로 시네마틱 수준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리플레이 시스템을 추가로 적용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관전자가 실시간으로 카메라 각도를 바꿔 캐릭터 무기를 확인하고, 자동으로 벽이 투명하게 처리되어 게임 진행상황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등, 편리한 점이 많다.
아, 언리얼 4 엔진에 탑재시킨 기능이라 다른 게임 제작자도 활용 수 있다. e스포츠를 염두에 둔 게임 개발자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게임메카: 그러고 보니 이번 GDC 중 이야기 나온 ‘파라곤’ 애셋 공개는 어떻게 나온 결단인가?
팀 스위니: ‘파라곤’은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게임이었다. AOS 장르, 빠른 속도의 액션, 그리고 사실적인 그래픽. 기획은 나쁘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특히 AOS 장르와 빠른 액션의 결합을 많은 플레이어가 힘들어 했다. 그렇다 보니 소수의 팬 층이 있기는 해도 다수 대중을 사로잡기는 힘들었다. 업데이트로 방향성을 바꾸려고 해도 어떻게 할지 감이 잘 서지 않았다. 결국 대중화를 위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반면 ‘포트나이트’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정도로 인기 있는 게임을 서비스 할 기회를 잡는 회사는 전세계 게임업계를 통틀어 얼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포트나이트’ 서비스를 제대로 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파라곤’은 정리하고, ‘포트나이트’에 총력을 담기로 한 것이다.
‘파라곤’ 정리 결정이 되고 바로 다음 날, 언리얼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애셋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우리는 ‘파라곤’을 흥행시킬 수 없었지만, 누군가 우리가 찾지 못한 방법을 찾아 좋은 게임을 만들어주면 감사하겠다.
▲ '파라곤' 애셋이 더 나은 게임으로 부활하길 바란다고 (사진제공: 에픽게임즈)
게임메카: 파라곤 말고도 새 기술을 도입해 만든 혁신적 게임이 있나?
팀 스위니: 물론이다.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만든 에픽게임즈 자회사 체어 엔터테인먼트가 스파이징크스(Spyjinx)라는 게임을 개발 중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라는 점을 감안해줬으면 한다. 당분간 주된 역량은 ‘포트나이트’에 집중할 계획이다.
게임메카: 2018년 에픽게임즈 로드맵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팀 스위니: 우선 ‘포트나이트’ 크로스플레이다. 매킨토시, 안드로이드, 아이폰, Xbox, PS, PC 등 모든 플랫폼에 걸친 크로스플레이가 가능하게 하겠다. 그리고 ‘포트나이트’ 소셜 네트워크 연동 또한 고려 중이다. 실생활을 함께 하는 ‘진짜 친구들’과의 플레이는 더욱 강렬한 체험을 선사한다. 이에 전화번호 연동 등을 통해, 보다 쉽게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신규 기능과 개선으로 ‘포트나이트’를 보다 뛰어난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2018년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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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 기자 이새벽입니다. 게임 배경에 깔린 스토리와 설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단지 잠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dawnlee12@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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