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광풍’을 일으키며 논란의 주인공으로 부상한 가상화폐(암호화폐)가 컴퓨터 그래픽 시장에까지 파장을 몰고 왔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를 얻으려면 채굴(mining), 즉 사용자가 광부가 되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가상화폐를 캐야 한다. 암호를 풀어내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가상화폐가 발행되는데,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채굴 전문의 고성능 컴퓨터로 한 달에서 두 달,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온전한 한 개를 캐낼 정도로 난이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여기서 두각을 드러낸 것이 컴퓨터 그래픽카드다. 그래픽카드는 가상화폐 채굴의 핵심인 부동소수점 연산을 CPU보다 빨리 처리해주기 때문에 전문 채굴 컴퓨터의 경우 그래픽카드 여러 개를 병렬 연결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덕분에 그래픽카드가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그래픽카드가 일약 가상화폐 채굴의 스타로 부상한 셈이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서 제공하는 소비형태통계시스템 다나와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엔비디아와 AMD 양사의 그래픽카드(VGA)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특히 지난해 12월은 유독 판매량이 많았는데, 비트코인이 개당 2,000만 원을 넘으며 최고가를 경신하던 시기라는 점에서 비트코인 열기가 달아오를수록 그래픽카드 수요가 맞물려 판매가 증가했음을 보여줬다. 올해 1월 들어 정부 규제가 시작되면서 빗썸거래소 기준 비트코인 거래가격이 크게 떨어지자 그래픽카드 판매량도 전월 대비 15% 감소, 가상화폐 가격 변동과 유사한 추이를 그렸다.
지난 1년간 PC 그래픽카드의 평균 판매가격도 크게 상승했다. 작년 2월 그래픽카드 시장의 개당평균판매가격은 25만 원이었으나 가상화폐 거래가격이 정점을 찍은 12월에는 35만 원을 기록, 40%나 개당 가격이 올랐다. 올해 1월에도 그래픽카드 개당 평균가격은 기세가 꺾이지 않아 36만9700원을 기록했다.
개당 평균판매가격이 엔비디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AMD도 지난해 2월 19만 원 하던 가격이 5월에는 25만 원 돌파에 이어, 10월에는 30만 원을 넘으며 고공비행했다. 엔비디아는 더 올랐다. 25만 원(2월)에서 10개월 만에 35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이 같은 가격 상승은 가상화폐 채굴용으로 그래픽카드 수요가 폭등한 데 비해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고가 그래픽카드 판매 비중도 확대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래픽카드 시장은 가상화폐 채굴꾼들이 PC 그래픽카드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바람에 지난해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품귀현상을 빚었다. 엔비디아는 ‘지포스 GTX1050Ti’ 이상 모든 그래픽카드가, AMD 라데온은 전 라인업에 수급 비상이 걸렸다. 엔비디아는 특히 5월과 8월에는 공급이 수요를 밑돌면서 제품 판매량이 각각 전월 대비 24%, 13% 줄어들었다. AMD 그래픽카드는 일부 가상화폐 채굴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주문이 쇄도했지만, 국내에는 워낙 유통 물량이 적어 시장에 제품이 나오는 대로 소진됐을 뿐, 판매량 증가 효과는 미미했다.
평균판매가격이 오른 것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고가 그래픽카드 비중이 꽤 커졌다. 엔비디아 지포스 제품군 중에서 ‘GTX1060’ 이상 고급사양은 가상화폐 채굴에 사용되면서 제품군 내에서 판매 비중이 증가했다. ‘GTX1060’은 원래부터 엔비디아의 주력 모델이기도 했지만, 지난해 2월 36% 점유에서 10월 들어서는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47%까지 비중이 늘었다.
특히 ‘GTX1070’은 70만 원, ‘GTX1080Ti’는 120만 원이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점유율은 각각 6~7%, 4~5% 비중을 꾸준히 유지했다. 반면 20만 원 전후인 중급형 모델 ‘GTX1050’은 상급 제품들과 다른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GTX1050’은 엔비디아 랭킹 2위의 인기모델로 작년 상반기 평균 33%의 높은 점유율을 보였으나 8월 이후 평균 19%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총 점유율에서도 비중이 줄고 있다.
▲ 그래픽카드 판매량 & 개당판매가격 그래프와 비슷한 양상이다
빗썸거래소 가격 기준, 비트코인은 지난해 2월 100만 원대에 거래된 이후 12월에 고점을 찍기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나갔다. 이후 1월에는 상승세가 꺾여 거래가격이 내려갔다. 지난해 1월 최고 거래가격은 12월(2,209만 원)보다 13% 올라 한때 2,500만 원 이상을 기록한 적도 있지만, 1월 중반 이후 시세가 크게 하락하면서 1월 최저가격은 1,107만 원으로 크게 하락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여전히 출렁이고 있지만, 상승세는 탄력을 잃었다. 지난 1년간 그래픽카드 상승장을 견인하던 원동력인 가상화폐 시세가 다소 약세인 상황을 고려하면 그래픽카드 가격도 점차 하락하면서 진정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국내외 호재로 인하여 재차 가상화폐 시세가 뛰어 오를 경우 그래픽카드의 높은 몸값이 당분간 계속 이어지며 일반 소비자들의 PC 구매에 어려움을 줄 것이다.
편집 송기윤 iamsong@danawa.com
글 정은아 news@danawa.com
(c)가격비교를 넘어 가치쇼핑으로, 다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