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라인, 만년 2인자, 인텔(엔비디아)의 그림자. AMD(Advanced Micro Device)의 수식어들 중 하나다. 프로세서 시장에서는 인텔의 뒤를, 그래픽 프로세서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뒤를 쫓는 추격자 역할로 마니아 층을 두텁게 형성 중인 반도체 제조사다. 비록 지금은 1위와의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MD가 있음으로 해서 그나마 시장의 균형이 이어지고 있다.
2017년, 과거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기 위한 AMD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그 첫 걸음이 바로 새로운 마이크로아키텍처를 적용한 프로세서, 라이젠(RYZEN)이다. 약 5년 전, 젠 마이크로아키텍처 개발 발표로 주목 받았던 이 새로운 프로세서는 오랜 역경을 딛고 드디어 소비자에게 공개됐다. 그리고 제법 매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동안 AMD는 인텔과 함께 프로세서의 역사를 써왔다. 그 중에서는 인텔에게 굴욕을 안겨줄 정도로 기념비적인 순간도 있었고 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암흑기도 있었다. 라이젠 출시를 기념해 약 50여 년에 가까운 AMD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969년 - AMD의 시작
AMD의 역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리 샌더스와 에드 터니, 존 캐리, 잭 지포드 등 7명의 동료는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의 임시 거처에 둥지를 튼다. 이들은 모두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 출신으로 처음에는 페어차일드와 내셔널 반도체가 설계한 마이크로칩 2차 공급원으로 시작했다. 당시에는 논리 칩(Logic Chip) 생산이 주력 사업이었다.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서니베일에 있는 AMD 본사
(출처: Wikipedia, Coolcaesar)
그리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AMD는 거처를 캘리포니아 주 서니베일로 이전하게 된다. 이후에는 4비트 MSI 시프트 레지스터인 AM9300을 생산했는데, 그들의 첫 마이크로프로세서로 기록된다. 뒤를 이어 AM2501 논리 카운터, AM2505 등을 개발하고 생산했다.
1971년에는 64비트 양극 램(RAM), AM3101을 선보이며 급성장했다. 기업이 공개 상장한 것은 서니베일로 이전하고 3년 뒤인 1972년 9월이다. 1974년에는 인텔의 8080A도 생산하는 2차 공급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 이후 - 인텔과의 인연(?)
여러 칩과 램을 생산하던 AMD는 1975년 AM9080을 통해 복제 칩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인텔 8080을 기반으로 만들었던 것이 시초다. 이후 인텔이 프로세서를 선보일 때마다 AMD는 그 기반의 복제 칩을 생산했다. 유명한 80286(286이라 부르던 그것)도 AMD가 클론 형태로 제작해 출시하기도 했다. 당시 칩 이름은 AM286이었다. 본격적으로 x86 기반 프로세서 생산에 발을 들인 시기다.
▲ C8080A 기반의 AMD 9080 프로세서. AMD의 역사는 인텔과 함께 했다
(출처: Wikipedia, Konstantin Lanzet)
당시 AMD가 인텔의 칩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 AMD가 생산했던 EPROM이 원인이었다. 당시 인텔은 AMD가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제소했다. 당시 인텔은 AMD와 EPROM 특허권 침해에 대한 보상을 일부 받는 것과 함께 8085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라이선스 생산을 하는 것에 합의했는데 이는 안정적인 칩 공급을 위해서였다. 이후 꾸준히 8085를 찍어내던 AMD는 고민이 커졌다. 인텔은 이미 8086을 내놨는데, 라이선스 계약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인텔의 손을 다시 잡은 것은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시대에 와서다.
AMD를 다시 인텔과 이어준 것은 기가 막히게도 IBM이었다. 16비트 기반 PC를 개발하던 IBM은 인텔에게 2차 공급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원활한 공급이 이뤄지려면 인텔만으로 역부족이라는 판단도 있었지만 당시 독보적인 존재였던 IBM의 요구를 뿌리치기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인텔은 여러 고민 끝에 AMD를 2차 생산 기업으로 선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AMD는 인텔에게 단기간이 아닌 오랜 기간 쓸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다.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2차 생산 기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IBM에 칩을 빨리 공급할 필요성을 느낀 인텔은 1982년, AMD의 조건을 수용하고 5년 기한(파기 1년 전 통보)에 계약하게 된다.
1990년 이후 - 악연의 시작
인텔과의 계약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인텔이 80386을 개발한 이후부터다. 당시 20286 라이선스를 줬던 2차 생산 기업을 배제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엔 AMD도 포함됐다. 심지어 부동소수점 처리가 가능한 프로세서 80287의 라이선스도 주지 않으려 했는데, 초기 계약(20286 생산)이 포괄적인 라이선스라고 인지한 AMD는 이를 생산했다가 인텔이 이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 분란의 단초가 되었던 80286. 이 때부터 AMD와 인텔의 긴 악연(?)이 시작된다
(출처: Wikipedia, Konstantin Lanzet)
인텔은 1982년에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려고 했다. 이에 AMD는 1987년부터 미국 법원에 중재를 요청했으나 빨리 끝날 것 같았던 중재는 끝이 보일 기미가 없었다. 이 때부터 반도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소송(중재)전이 시작된다. 중재안은 1992년에 나왔고, 소송은 1994년에 막을 내렸다. 두 기업은 기업의 존폐(인텔은 아닐지도)를 걸고 싸웠다.
그 과정에서 AMD는 80386과 호환하는 롱혼 프로젝트를 가동해 1990년 시제품을 완성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1988년, 제리 샌더스의 지휘 하에 초미세 개발 센터(SDC – Submicron Development Center)를 설립하고 자체 기술개발에 돌입했다. 심지어 1993년에는 80486과 호환하는 AM486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프로세서는 이후 DX / DX2 / SX2 등으로 출시됐다.
▲ 인텔 80486 기반의 호환칩, Am486. 이 때부터 AMD는 인텔보다 '저렴함' 으로 승부했다
(이미지 - Wikipedia, Henry Muhlpfordt)
그 사이 중재안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영구적 반독점적으로 특허권 사용료(로열티) 없는 라이선스를 주라는 것이었다. 인텔은 이에 항의했지만 1994년 주 고등법원에서 이를 지지하는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한편 80287을 호환 생산한 부분에 대해서는 1992년,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했다가 1994년에는 판결이 뒤집어졌다. 중재안에 지적재산권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1994년 이후 – 본격적인 x86 프로세서의 등장
오랜 기간 이어진 소송전에서 두 기업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 때문에 서로 소모전을 펼치는 것보다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마침 PC 시장은 윈도 95 출시를 전후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텔도 AMD에게도 이 상황은 기회였다.
▲ 인텔 펜티엄 CPU를 못 사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Am586
(출처: Wikipedia, Konstantin Lanzet)
AMD는 인텔을 압도할 수 없었지만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대안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자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AM586은 그런 전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 프로세서는 AM486의 작동 속도를 더 끌어올린 형태였다. 어쩔 수 없이 펜티엄과 비교해 성능은 떨어져도 가격은 저렴했다.
출시됐던 프로세서는 AM5x86 – P75(AMD-X5-133ADW)인데, 작동속도는 133MHz였다. 하지만 당시 성능이 펜티엄 75MHz와 비슷했다고. 그래서 제품명을 그렇게 지은 듯 하다.
▲ K5를 통해 인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AMD
(이미지 - Denniss)
본격적으로 인텔과 경쟁하기 시작한 AMD는 1996년에 K5를 내놓게 된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의 힘으로 개발한 프로세서라 하겠다. 그러나 성능으로 인텔을 누를 수 없었다. 430만 개 트랜지스터로 펜티엄보다 많은 수치였지만 부동 소수점 연산 실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때에도 AMD는 작동 속도와 기대 성능을 알리는 PR Rating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었다. K5 프로세서도 그랬는데, PR120(90MHz)부터 PR200(133MHz)까지 총 5가지 라인업이 존재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성능이 동급 펜티엄 대비 낮은 AMD 프로세서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발열 문제도 지적된 바 있다.
▲ AMD의 명품 중 하나인 K6 프로세서
(출처: Wikipedia, Morkork)
K5 프로세서가 실패한 AMD는 빠르게 다음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띈 곳은 넥스젠(NexGen)이었다.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를 설계한 비노드 담(Vinod Dham)이 설립한 기업으로 AMD는 이곳을 인수해 K6 프로세서를 개발하게 된다.
K6 프로세서는 350nm 공정으로 166/200/233MHz 라인업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한 번 공정을 250nm로 미세화해 266MHz까지 끌어 올렸다. 소켓은 인텔과 마찬가지로 소켓 6, 소켓 7 규격에 대응했다. 당시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펜티엄과 비슷한 성능을 구현해 저가 PC를 꾸미려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제법 인기를 얻었다. 이후 AMD는 이를 잘 다듬어 K6-2 프로세서와 K6-3 프로세서까지 만들었는데, 당시 인텔이 위 사진과 같은 소켓형태의 CPU를 버리고 카트리지 형태의 CPU로 전환했던 시기여서, 메인보드를 바꿀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인텔 CPU 대신 호환 가능한 AMD의 CPU로 업그레이드하며 어부지리를 얻었다.
1999년 이후 – 영광의 시대
AMD가 대박을 터트린 시기는 바로 K7 프로세서, 애슬론(Athlon)의 등장부터다. 이전에는 그저 인텔 프로세서보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그럭저럭 쓸만했던 정도에 불과했다면, 애슬론은 AMD가 인텔의 유일한 경쟁자로 인식되게 한 전환점이었다. 물론, 반도체 업계의 공룡으로 손꼽히는 인텔을 점유율로 앞서지는 못했지만 인텔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 AMD의 K7. 인텔 펜티엄3를 가격/성능 모든 면에서 압도했다
(출처: Wikipedia, Maddmaxstar)
당시 AMD는 인텔과의 계약으로 같은 소켓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형태가 조금 다른 슬롯A(Slot A) 규격을 썼다. CPU의 형태는 당시 펜티엄 2와 펜티엄 3가 썼던 카트리지 형태. 500MHz의 작동속도로 시작했던 이 프로세서는 훗날 CPU 역사상 처음으로 동작주파수 1GHz를 돌파하는 기록도 함께 작성했다.
이 프로세서의 등장은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더 저렴한 가격에 인텔 펜티엄3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반면, 인텔은 비슷한 시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CPU는 인텔'이라는 생각에 점유율은 여전히 1위였지만 위기감은 상당했으리라. 당시 도입을 시도한 180nm 공정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초기 펜티엄 3는 애슬론에게 사실상 침몰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속도를 아무리 높여도 애슬론은 이보다 더 높은 속도로 출시됐기 때문이다.
▲ 2세대 애슬론 프로세서. 코드명 썬더버드. 이 때도 나름 좋았다
(출처: Wikipedia, Konstantin Lanzet)
1GHz의 벽을 돌파한 AMD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 여세를 몰아 빠르게 차기 프로세서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슬롯 A는 구조적으로나 성능적으로나 한계가 분명했다. 때문에 새로운 프로세서는 다시 소켓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인텔이 애슬론에게 대패한 슬롯형 펜티엄 3(카트마이)를 폐기하고 빠르게 소켓 규격인 소켓 370을 도입한 새 펜티엄 3 프로세서(코퍼마인)를 선보이게 된 것도 AMD를 움직이게 한 이유다.
2000년, AMD는 코드명 썬더버드(Thunderbird)라는 이름의 애슬론을 선보이게 된다. 소켓 462, 흔히 소켓 A로 부르는 규격의 메인보드도 함께 제안했다. 당시 썬더버드는 FSB(Front Side Bus, CPU와 주변기기 사이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로) 100/200MHz 기반의 B 모델과 FSB 133/266MHz 기반의 C 모델이 존재했다. 각각 작동속도는 0.6~1.6GHz, 1.0~1.4GHz.
이 시기부터 듀얼코어 초반까지가 AMD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펜티엄과 달리 코어가 직접 노출되어 있어 조립 시 위험도가 있었고, 발열이 높다는 점을 빼면 흠잡을 곳이 거의 없었다. 가격 또한 동급 인텔 프로세서 대비 낮아 최적의 PC 솔루션으로 인기를 누렸다.
이후 AMD는 보급형 시장에서 셀러론과 경쟁하기 위해 듀론(Duron)을 투입한다. 애슬론과 구조적으로 동일하지만 L2 캐시를 64KB로 줄였다. 셀러론도 펜티엄 3 시절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었다.
▲ 3세대 애슬론 XP 프로세서. 코드명 팔로미노
(출처: Wikipedia, Konstantin Lanzet)
애슬론 프로세서의 인기를 몰아 AMD는 2001년, 3세대로 업그레이드를 실시한다. 이 때부터 애슬론XP라는 이름이 되었다. 코드명 팔로미노(Palomino)로 초기 펜티엄 4 프로세서에 대응하기 위한 제품군이다. 프로세서에 XP라 붙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윈도 XP의 등장도 한 몫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당시 펜티엄 4는 문제가 존재했다. 이 프로세서에는 넷버스트(NetBurst) 아키텍처를 도입했는데, 동작주파수(클럭)는 어마어마하게 높아졌지만, 클럭 대비 성능이 매우 낮았다. 이는 데이터를 거쳐가는 파이프라인의 수를 크게 늘렸기 때문. 기존 P6 마이크로아키텍처가 10단계였다면 펜티엄4는 이를 20단계가 되었다. 작동속도는 크게 높일 수 있었지만 동시에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AMD는 이 부분에 존재하는 허수를 노려 K5와 K6 등에 도입했던 PR Rating을 다시 가져오게 된다. 초기 애슬론 XP는 1500+부터 2100+까지 존재했는데, 실제 속도는 1333MHz부터 1733MHz까지였다. 실제 동작주파수는 1333MHz지만 펜티엄4 1.5GHz보다 더 좋다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 4세대 애슬론 XP(써러브레드)는 펜티엄4(노스우드)에 고전한다
(출처: Wikipedia, Konstantin Lanzet)
2002년에는 4세대 애슬론 XP가 출시된다. 코드명 써러브레드(Thoroughbred)로 130nm 공정이 도입되고 속도는 더 높였다. PR Rating으로는 1600+부터 3100+까지, 속도는 1.4GHz~2.25GHz까지였다. 사실 2800+와 3100+는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2800+는 시장에 소량 풀려 소수만 구입 가능했고, 3100+는 HP의 PC 라인업에 제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애슬론 XP라는 이름으로 프로세서가 출시됐지만 CPU-ID에 따라 제품은 A/B로 나뉘어졌다. 하지만 역대 애슬론 프로세서들이 대박을 친것과 달리 4세대 이후에는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윌라멧(Willamette) 아키텍처 기반의 초기 펜티엄4에서 쓴 맛을 봤던 인텔이 재빠르게 노스우드(Notrhwood) 아키텍처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특히 후반에 들어 도입된 노스우드C 라인업은 논리적으로 쓰레드를 처리하는 하이퍼쓰레딩(Hyper-Threading) 기술을 도입해 성능을 개선하기도 했다.
▲ 5세대 애슬론 XP, 유명한 '바톤'도 여기에 포함된다
(출처: Wikipedia, Konstantin Lanzet)
펜티엄4 노스우드에 밀리던 AMD가 재반격에 성공한 것은. 바로 PC 좀 했다는 사람이라면 기억할 바톤(Barton)과 소톤(Thorton) 덕분이었다. 이와 함께 AMD는 '애슬론 64' 신제품에 대한 떡밥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이 바톤과 소톤이다.
5세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4세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기존 FSB가 266MHz(일부 333/400)에서 제품에 따라 조금 더 세분화되고 작동 속도가 높아진 것 정도가 다르다. 또한 L2 캐시를 모두 512KB를 탑재하게 되었다. 쏘톤은 L2 캐시가 256KB로 절반 수준이었다. 사실 소톤은 100% 써러브레드 애슬론 XP라고 봐도 좋다.
이 시기에 최종제품들은 매우 세분화되었다. 심지어 동일한 제품이어도 FSB와 배수에 따라 속도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PR Rating의 폐해 중 하나라 하겠다. 달라진 것이 없으니 성능은 펜티엄 4(노스우드)에 여전히 밀렸다. 대신 AMD는 가격을 낮춰 승부했다. 특히 주력 라인업 중 하나인 2500+의 매력이 상당했다. 오버클럭이 기가 막혔다는 이유 때문이다.
2003년 이후 - 64비트 + 순수 듀얼코어
인텔의 펜티엄4(노스우드)에 고전하던 AMD는 그간 서버에나 도입되던 64비트 처리 구조를 소비자 시장에 녹인 애슬론 64를 2003년 공개해 주목 받는다. 8세대 마이크로아키텍처(K8)로 기존 K7 아키텍처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성능을 높였다. 그것은 프로세서와 메모리 사이의 데이터 통신을 노스브릿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처리하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 AMD를 다시 도약하게 만들어 준 대박. 애슬론 64 프로세서
(출처: Wikipedia, GeoffreyA)
애슬론 64는 노스브릿지에 있는 메모리 컨트롤러를 프로세서 내에 넣었고 FSB의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하이퍼 트랜스포트(Hyper Transport) 기술을 도입한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64비트 프로세서지만 32비트 호환성이 뛰어나 경쟁사 대비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부하 상태에 따라 작동속도를 조절해 발열과 소음을 억제하는 쿨앤콰이어트(Cool’n Quiet)와 NX bit 같은 보안 기능도 탑재됐다.
이후 AMD는 다양한 애슬론 64 프로세서를 선보인다. 특히 고성능을 표방한 애슬론 64 FX가 대표적이다. 인텔이 서둘러 익스트림 에디션을 내놓을 정도로 시장의 반응이 뜨거웠다. 초기 애슬론에 이어 애슬론 64도 인텔 대비 좋은 분위기로 출발했다. 이 시기의 인텔은 노스우드 이후 선보인 펜티엄4(프레스캇)가 참패했다. 프레스캇은 높은 발열과 클럭대비 낮은 성능으로 비난을 받았다. 오죽하면 프레스핫이라고 했을까.
▲ 듀얼코어 애슬론 64 X2. AMD의 최고 전성기였다
(출처: Wikipedia, Konstantin Lanzet)
AMD의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가 바로 애슬론 64 X2 출시 시기가 아닐까 싶다. 2005년 출시된 이 프로세서는 순수한 듀얼코어 프로세서로 주목 받았다. 인텔은 펜티엄 D를 통해 멀티코어 프로세서를 구현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듀얼코어가 아니라 펜티엄4 두개를 붙인 트윈코어 구조였다. 아키텍처는 K9으로 AMD-V라는 가상화 기술이 접목되기도 했다.
PR Rating은 계속 유지됐다. 당시 출시된 코드명 맨체스터(Manchester)와 톨레도(Toledo)는 90nm 공정으로 3600+와 4600+까지 출시됐다. 각기 작동속도는 2GHz부터 2.4GHz까지. 모두 듀얼코어에 512KB L2 캐시를 품었지만 유일하게 3600+가 256KB L2 캐시를 탑재했다. 톨레도는 캐시가 512KB와 1MB로 증가한 형태다. 3800+부터 4800+까지 출시되었다.
애슬론 64 X2는 윈저(Windsor), 브리즈번(Brisbane) 등으로 변경이 이뤄졌다. 윈저까지는 90nm 공정에서 만들어졌지만 브리즈번은 65nm 공정으로 미세화된 점이 다르다. 윈저는 256KB L2 캐시와 2GHz로 작동하는 3600+부터 1MB L2 캐시에 3.2GHz로 작동하는 6400+까지 존재했다. 브리즈번은 미세 공정이 적용됐지만 L2 캐시는 모두 512KB가 탑재됐다. PR Rating은 3600+부터 6000+까지 있었다.
2007년 이후 – AMD의 암흑기
2006년 인텔이 야심차게 준비한 코어2 프로세서는 잘 나가던 AMD를 한방에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 우수한 성능은 기본이고 전력 소모나 발열도 낮았다. 이는 기존 펜티엄 아키텍처가 아닌 모바일 전용으로 쓰이던 펜티엄M을 데스크톱에 맞춰 새로 개량했기에 가능했다.
AMD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K10 아키텍처를 준비했다. 페넘(Phenom) 프로세서가 이 아키텍처에 기반한다. 코드명 아제나(Agena). 65nm 미세공정에서 생산된 이 프로세서는 4개의 코어를 품은 쿼드코어 프로세서로 다중 작업에 강하다는 면을 강조하고자 했으나, 성능이 저하되거나 시스템이 멈추는 문제점이 터졌다. 바이오스 수정으로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성능 하락은 피할 수 없었다(B3 스테핑에서 성능 저하 없이 오류 해결). 결국 이 일로 인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래도 같은 아키텍처로 코어를 3개 구성한 톨리만(Tolliman)과 듀얼코어 기반의 쿠마(Kuma)를 각각 선보여 선택의 폭을 넓히고자 노력했다.
▲ 페넘2 프로세서는 숨겨진 1코어를 찾는 짜릿한 맛에 일부 마니아들이 찾곤 했다
(출처: Wikipedia, Mike Babcock)
2008년, 기존 페넘의 발열과 전력 소모를 어느 정도 개선한 페넘2 프로세서가 출시되었다. 코드명 데네브(Deneb). 45nm 미세공정 도입으로 새로운 프로세서에는 쿨앤콰이어트 3.0, 스마트 페치(fetch), 쿨코어 전력 관리 기술 등이 도입됐다. 하지만 이 때의 인텔은 코어2 듀오와 쿼드 프로세서의 뒤를 이어 네할렘(Nehalem) 아키텍처가 도입되던 때였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코어 i 시리즈가 이 때 탄생했다. 페넘2는 꽤 괜찮은 것으로 평가 받았지만, 아쉽게도 인텔 CPU가 더 강했다.
하위 라인업 출시도 꾸준히 이어갔다. 숨겨진 1개의 코어를 찾을 수 있었던 트리플 코어 프로세서 페넘2 X3(헤카)와 듀얼코어 기반의 페넘2 X2(칼리스토)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페넘2 프로세서가 잠깐 주목 받기도 했다. 인텔 2세대 코어 프로세서(샌디브릿지)의 메인보드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 당시 페넘2 X4 955 프로세서의 판매량이 증가했으며, 다른 프로세서도 판매량이 상승하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곧 샌디브릿지 프로세서 라인업이 전개되면서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페넘2 프로세서는 나중에 헥사(6) 코어인 X6까지 출시되었다.
▲ 불도저는 오늘도 뜨거운 몸을 부여잡고 웁니다
한편, 페넘1~2 시절 가성비로 승부하며 버텨온 AMD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불도저 아키텍처가 그것이다. 큰 기대를 받으며 2011년 공개된 이 아키텍처는 하나의 모듈에 두 코어가 자리하는 방식이었다. 이 코어는 캐시를 공유하고 최종적으로 L3 캐시를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구조였다. 이를 적용한 프로세서가 바로 AMD FX 라인업이었다. 코드명 잠베지(Zambezi)로 32nm 미세공정과 다양한 명령어를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급 인텔 프로세서 대비 제법 큰 격차로 뒤처지는 모습이 공개되며 시장에 실망을 안겨줬다. 또한 전력 소모량이 95~125W 수준으로, 저전력 열풍에 역행했다. 자연스레 성능은 낮고 전력 소모가 큰 프로세서라는 이미지가 박혀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AMD는 이 제품을 8코어 프로세서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제 구조로 본다면 4코어 8스레드로 보는 것이 더 알맞을 정도였다.
2011년 이후 – AMD의 새로운 도전이던 APU
인텔과의 격차를 확인한 AMD는 차별화를 통해 새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그래픽 프로세서 제조사 ATI였다. 그리고 2006년, AMD는 라데온 그래픽 프로세서를 설계하는 ATI를 당시 54억 달러의 금액을 들여 인수했다. 그리고 ATI의 그래픽 프로세서와 자사의 프로세서를 하나에 융합한다는 계획을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퓨전(Fusion)이 그것. 고생 끝에 K10 아키텍처와 라데온 그래픽 프로세서가 결합한 1세대 APU를 2011년에 선보이게 된다. 코드명 라노(Llano).
▲ 반응은 뜨겁지 않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다
AMD는 이 제품을 가속 처리장치(Accelerated Processing Unit)라 이름 짓고 인텔 프로세서와 차별을 꾀하고자 했다. 탄탄한 그래픽 처리 능력을 앞세워 전체 성능은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인텔은 AMD보다 앞서 프로세서에 그래픽 프로세서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땅한 기술이 없었기에 성능은 기대 이하였다. AMD는 그 빈틈을 파고들 참이었다.
라노는 불도저가 아닌 페넘2 기반의 K10 아키텍처를 채용했다. 비록 시대에 뒤처지는 아키텍처라도 게임 성능에서는 동급 인텔 프로세서와 견줄 수 있는 수준이라 평가 받았다. 프로세서 본연의 성능은 뒤로 하더라도 탄탄한 그래픽 프로세서를 앞세운 결과였다. 실제 이 특성으로 인해 소형 플랫폼에서 제법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이후 AMD는 꾸준히 프로세서와 그래픽 처리 성능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6세대 APU인 카리조(Carrizo)와 엑스카베이터 아키텍처를 적용한 7세대 APU, 브리스톨 릿지(Bristol Ridge)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2017년 – 기대주 라이젠의 등장
AMD는 불도저 아키텍처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설계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이상 불도저 아키텍처에 도입된 클러스터 멀티스레드(CMT)로 성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AMD는 2012년부터 젠 마이크로아키텍처 설계를 시작한다. 여기에 완성도를 높이고자 과거 애슬론 64를 설계했던 짐 켈러(Jim Keller)도 다시 영입했다.
▲ AMD는 라이젠으로 딥다크한 10년을 뚫고 나와 영광을 되찾으려는 중이다
5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AMD는 차세대 데스크탑 프로세서, 라이젠(RYZEN)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불도저 아키텍처에서 시도하던 것들은 모두 포기하고 전통적인 프로세서 설계로 최적의 성능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여기에 인텔의 하이퍼스레딩과 같은 동시 멀티스레딩(SMT - Simultaneous Multi Threading) 기술이나 분기 예측 및 데이터 프리페치, 신경망 기반 분기예측(NNP), 확장형 속도조절(XFR) 등 새로운 기술이나 검증된 기술을 추가했다.
현재 라이젠은 8코어 16스레드 기반의 라이젠 7만 출시되어 있다. 1700/1700X/1800X가 그 주인공으로 3GHz/3.4GHz/3.6GHz로 작동한다. 특히 인텔의 플래그십 프로세서 중 하나로 꼽히는 i7 6900K 등과 비교해 아쉽지 않은 성능을 뽐내 주목 받고 있다.
향후 라이젠은 6코어와 4코어는 물론이고 기존에 선보이고 있는 APU 라인업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시기에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어렵게 되었다.
AMD,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 잘나간 시기는 하늘색으로 표시했다. K9은 개발 취소 된 세대
2000년대 초반, AMD는 인텔의 좋은 경쟁자로 시장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어 프로세서가 등장한 2006년 이후 AMD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고군분투해왔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이 시간은 잃어버린 10년과도 같을지 모르겠다. 이제 과거의 영광을 찾기 위해 라이젠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앞으로 두 반도체 기업이 벌일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며,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PC 시장을 즐길 일만 남았다.
기획, 편집 / 다나와 송기윤(iamsong@danawa.com)
글, 사진 / 테크니컬라이터 강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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