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합병돼 ‘스퀘어에닉스’로 단일회사가 됐지만 합병 이전 스퀘어와 에닉스의 개발시스템은 개발자들에게 있어 흥미로운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스퀘어는 동영상을 비롯해 3D 그래픽, 프로그래밍 등 게임개발에 관한 모든분야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면서 기술노하우를 축적한 반면 에닉스는 대부분 게임개발을 총괄할 프로듀서만 내부에서 관리하고 프로젝트별로 각 요소 개발자나 스튜디오는 외부에 세팅해 게임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스퀘어의 개발시스템은 이미 익숙한 방식이었지만 외부 스튜디오를 주로 활용하는 에닉스의 개발시스템에 대해서는 필자도 처음에는 ‘팀을 쉽게 꾸릴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에닉스의 개발시스템에 대한 필자의 의문은 ‘일본에는 수십만 명의 게임개발관련 전문인력들이 있고 이 중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손꼽히는 개발자와 개발사들이 풍부한 풀(pool)로서 존재한다’는 비교적 간단한 답변으로 이내 우문이 돼버렸다. 최근 한국 게임산업이 앞서 예로 설명한 일본 게임산업만큼이나 제법 규모 있게 성장하면서 전과 달리 공중파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이 게임분야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실제로 게임분야와 관련된 사항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
그리고 게임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수한 인력이라는 것을 아는지 하나같이 국내 스타개발자 혹은 장인(匠人)을 소개하는 내용들을 특집으로 구성해 너나 할 것 없이 방송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빛도 보지 못한 게임산업을 이끌어가던 사람들이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각종 매체나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것은 필자로서도 반길 일이지만 소개되는 개발자들이 항상 손꼽히는 몇 명으로 한정되는 점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해당 개발자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절대 아니다. 지금 장인으로 손꼽히는 몇몇 개발자들은 이미 게임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고 전혀 시장성이 없었을 당시부터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열악한 여건에도 게임개발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꿋꿋이 개발에 매진해 다수의 명작게임을 배출해왔기에 당연히 그럴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개발자 중 대다수가 이미 패키지게임 시절부터 높은 인지도를 가졌다는 사실은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작 국내게임시장 구도가 패키지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 재편된 이후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에 접어든 1998년 이후 배출된 개발자 중에는 아직까지 이런 반열에 오른 인물이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 앞으로 10년 후, 현재 주목 받고 있지 못한 이들 가운데 과연 스타 개발자 또는 장인이 다수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게임업계의 현실은 이를 자신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과거처럼 대여섯 명의 소수 개발자가 개발하기에 게임은 규모면에서 너무 커져 버렸다. 이제는 소수의 천재개발자에 의해 명작이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개발팀 전체의 능력이 뛰어나야 ‘명작’이라 불릴 수 있는 제품이 나오는 시대가 됐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게임회사들이 이제 개발 마인드보다는 관리 마인드로 개발팀을 대하곤 한다. 이는 개발사 입장에서는 정해진 스케줄에 정해진 분량의 개발을 성취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는 점에서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양날의 검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개발자 개개인의 창의성과 능동성 보다는 팀 전체의 통일성과 유기성을 강조해야 하니 개발자의 의욕을 꺾는 제약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발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데에는 개발자들이 어느 정도 원인제공을 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IT산업과는 달리 유독 게임산업에는 개성이 강한 인력들이 많다 포진해 있으며 그중 일부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개발자들은 팀에 쉽게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해 결국엔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지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개발자와 개발자간에, 경영진과 개발자간에 개발자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에 의해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조직자체가 와해되어 버리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사는 개발자의 의욕을 자중시키는 선에서 통일성과 유기성을 강조해야만 한다. 게임업계의 높은 이직률이 개인적으로 꼭 개발사들만의 문제라고는 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덕분에 1998년 게임시장 구도가 재편된 이후 게임업계는 스타개발자를 많이 배출해낼 수 없는 여건이 돼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스타개발자들에게 의존하기에 게임업계는 너무 커져버렸다. 게임산업의 가장 큰 구성요소가 재능 있는 인력이기 때문에 스타 개발자, 장인들은 꾸준히 배출돼야 한다. 그것이 모든 개발자와 개발사의 궁극적 비전이며 국내 게임산업의 내실을 튼튼히 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국내 게임산업 역사의 일천함 때문인지 명료하지 않다.
단지 개발자 개인이 인맥을 넓히고 대외활동을 활발히 한다고 해서 스타개발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업적인 성공만을 목표로 하는 게임개발사의 경영방침으로도 스타개발자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스타개발자 만들기는 필자와 같이 게임개발사를 경영하는 경영진을 비롯한 국내 게임산업 종사자 모두에게 안겨진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한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머지않아 국내 게임산업에서도 일본처럼 풍부한 개발자 풀과 인지도 있는 게임장인들을 다수 배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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