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이란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가.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이 합해져 새로운 하나가 됨을 뜻한다. 이를테면, 서양의 치즈와 한국의 가래떡이 만나 조화를 이룬 ‘치즈가래떡’이나 무협과 판타지를 동시에 다룬 소설 ‘묵향’과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오천크스나 베지트도 퓨전 하면 떠오르는 가장 훈훈한 녀석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언젠가부터 불어온 퓨전 열풍은 각종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한 가지 맛이 아닌 여러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늘 새롭고, 늘 변화를 바라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같은 장르, 비슷한 느낌에 싫증을 느끼자 제작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 퓨전화를 시도한 것이다. 장르를 섞어 낸 ‘헉슬리’나, 세계관을 독특하게 구성한 ‘수 온라인’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본 리뷰의 주인공인 ‘트리니티 온라인(이하 트리니티)’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는 3D 횡스크롤 액션 방식을 지향하고 있지만, 독특한 세계관을 짜내 과거, 현재, 미래의 분위기를 모두 취합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고자 했다.
단, 퓨전이라는 것도 서로 죽이 맞아야 섞여도 어울리는 거다. 크리스찬 베일과 장동건이 합쳐지면 뭔가 엄청난 것이 튀어나올 것 같지만, 여기에 최양락이 합쳐진다고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과연 ‘트리니티’는 퓨전을 통해 ‘엉성하지 않은 신선함’은 물론, 게임 본연의 목적인 ‘재미’까지 모두 잡아낼 수 있을까?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정확히 50% 아쉬운 첫 느낌. 의도인가, 실수인가? 솔직하게, 아주 솔직하게 ‘왜 이렇게 했지?’라는 생각이 뇌를 휘감았다. 첫 느낌이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횡스크롤 액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와 너무나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 ‘트리니티’만의 고유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픽을 비롯한 비주얼적인 요소는 볼만했다. 퀄리티의 문제를 떠나 일단 깔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라 적어도 ‘좋은 그래픽’이란 인상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해 보였다는 말이다. 다만, 문제는 기본적인 마을의 구조나 캐릭터의 움직임, 심지어 단축키까지 흡사해 ‘새롭다’라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똑같네’라는 느낌이 앞선다는 부분이었다.
사실 난 ‘던파’를 아주 잠깐 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들었으니, 오래 해본 사람들이라면 오죽할까. 공식 홈페이지 포럼이나 각종 포털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조금만 살펴봐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핵심 요소인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퀘스트의 흐름에 따라 던전 전투를 단계적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는데, 아쉽게도 ‘코볼트 전초기지’라는 첫 던전의 명칭부터가 거슬린다. 쪼렙이면 허수아비나 토끼, 고블린이나 사냥하는 것이 판타지의 정석(?) 이라지만, 세계관을 활용한 퓨전을 강점으로 내세운 게임에서 지겨운 코볼트를 처음부터 굳이 넣을 필요가 있나 싶다. 덕분에 ‘3D 던파’라는 오해의 구덩이만 더 깊어지게 됐다.
물론 이러한 익숙함 덕분에 게임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퓨전이라는 세계관이 생소해 ‘익숙한 것부터 시작’하려는 의도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다’라는 느낌은 어쩔 수 없을 듯싶다.
첫 느낌을 형성하는 요소 중 또 하나 크게 영향을 끼치는 인터페이스는 기본적인 것들이 모두 완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급하게 만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비주얼. 화면을 구성하는 각종 상태 창들이 게임 그래픽에 비해 퀄리티가 다소 떨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스킬창의 경우, 덜렁 아이콘 하나에 간략한 설명뿐이라 당혹스럽게 했고, 트리 구성도 직관적이지 못해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새것이 아닌 옛것을 가져다 붙인 느낌이랄까?
그리고 기능성. 대부분의 기능들은 다 섭렵하고 있었지만, 세심한 부분에서는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캐릭터 창과 인벤토리 창을 동시에 열고 아이템을 착용할 때 해당 슬롯에 '드래그해 끌어다 놓아야 한다는 점'이나(오른쪽 버튼 더블 클릭으로 가능하긴 했으나 설명도구 없음), 파티찾기 창에서 ‘해당 파티의 목적지가 표시되지 않고' 수동으로 입력해야 한다는 점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편함을 주고 있다.
요컨대, 훌륭한 인터페이스란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편의성이나 기능성, 그리고 독창성까지 골고루 갖추어야만 한다. 유저를 위한 ‘유저 중심’ 게임이 최근 트랜드인 것을 감안해보면 이 부분들은 다시 한번 세심하게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종합해보면 ‘트리니티’의 첫인상은 만족 50%, 아쉬움 50%였다는 것.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3D 던파’라는 가제를 등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 ‘트리니티’의 숙명인 듯싶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게임의 속내를 파보고 그만의 매력을 찾는 것뿐.
서서히 드러나는 ‘트리니티’만의 전투 액션의 힘 ‘트리니티’는 퀘스트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전투를 진행하게 된다. 퀘스트의 수는 해당 레벨에 맞게 충분하게 구현되어 있었기에, 퀘스트만 해도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어 진행은 매끄러운 편이다. 퀘스트 종류도 단순한 사냥뿐 아니라 채집이나 인질 구출 등으로 다양해 완료해 나가는 맛을 더했다. 하지만, 몇몇 퀘스트에 구현된 스토리 관련 연출은 살짝 어설퍼 아쉽기는 하더라.
전투에 대한 느낌은 좋은 편이다. 처음에는 모션이 단조로운 느낌이었는데, 레벨이 오르고 새로운 스킬을 배우니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어수룩하지도 않은 면이 참으로 괜찮았다.
‘트리니티’의 액션은 스킬 조합 콤보에서 그 매력을 발산한다. 습득한 모든 액티브 스킬은 다른 스킬과 조합하여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이를 활용하는 맛이 있었다. 물론 스킬 조합은 ‘던파’에 이미 구현되어 있는 것이지만, ‘트리니티’에서는 3D의 강점을 내세운 화려한 그래픽과 이펙트 효과가 합쳐져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맛을 더한다.
캐릭터와 몬스터가 화면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때리는 맛이 더 실감난다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덩치가 큰 보스 몬스터의 경우 살짝 오버해서 표현하면 화면의 반 이상을 가릴 정도였으니까. 내가 움직이고, 공격할 때마다 화면의 변화가 눈에 띄니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더란 말이다.
대각선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했다. 이는 일반 공격뿐 아니라 스킬에도 적용되는 부분이기에 적당히 활용하여 콤보를 만들어 내는 것도 매력 중 하나다.
하지만, 몬스터 패턴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보스의 경우 저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긴 했으나, 그것이 너무 단조로워 혼자서도 쉽게 공략이 가능하다. 파티로 플레이할 경우에는 여러 가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칼질에 주먹질, 마법질이면 그게 최고다.
이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액션 게임에서 보스 몬스터의 패턴은 핵심이다. 다시 말해,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계산인 셈.
한편,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는 저마다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전사의 경우 높은 체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무기 중에 원하는 것을 골라잡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었고, 격투가는 맨주먹으로 상대의 머리통을 후려 날리거나, 잡아서 던져버리는 등 날렵한 모습을 자랑한다. 마법사는 유일하게 원거리 공격이 가능했으며 강력한 공격은 물론 각종 상태이상 효과를 부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은 캐릭터의 특징은 몬스터를 사냥할 때에도 소소한 재미를 주지만, PvP에서 더욱 빛이 난다. 뭐 하나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돌진하는 전사, 잡히면 머리통이 뽀개질 것만 같은 격투가, 잡힐 듯 말 듯한 마법사까지. 서로 쫓고 쫓기는 전투가 생각보다 흥미롭다. 다양한 모드만 지원해준다면 PvP도 충분히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캐릭터마다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부분은 기분 좋은 일이다. 퓨전 세계관인만큼 앞으로 어떤 캐릭터가 등장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부분도 기대치를 자극한다.
트리니티의 진짜 힘? 그것은 바로 퓨전! ‘트리니티’의 배경은 독특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퓨전’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처음 발 딛게 되는 지역은 무협과 판타지 적인 요소가 적당히 버무려진 느낌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우주선과 같은 SF 적 오브젝트를 자연스레 비치함으로써 시각적으로 굉장히 산뜻한 느낌을 안겨준다. 두 번째 지역은 현대에 근 미래적인 느낌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첫 번째 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를 실감했다.
등장하는 몬스터는 더 흥미롭다. 고블린, 오크, 앤트, 오우거와 같은 판타지를 대표하는 생물들과 싸움을 벌이다 조금 지루해질 때가 되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 지역에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도깨비를 비롯한 여러 귀신이 기다리고 있다. 체험해볼 수는 없었지만, 다른 지역에는 중무장한 우주 전사나 흡혈귀와 같은 것들도 있다고 하니 벌써 기대된다.
이처럼 배경이 달라지고, 몬스터가 달라지니 눈이 즐겁고, 손이 즐겁다. 게다가 별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받아 넘기게 되니 이 부분은 확실하게 점수를 줄만 하다.
캐릭터가 착용하는 의상에서도 퓨전의 매력이 돋보인다. 기본적으로 착용하는 아이템 외에 ‘아바타’ 기능이라고 하여 전용 아이템들이 있었는데, 이를 착용하고 보이기 설정을 하면 착용한 방어구 대신 해당 아이템이 보이게 된다.
여고생 츄리닝부터 시작해 야구 모자, 점퍼 등 각종 의상들이 난무하는 것도 이러한 퓨전 세계관에서만 가져갈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모습들이 ‘트리니티’가 뿜어내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니 확실하게 눈은 즐겁다.
이처럼 퓨전 세계관을 통해 ‘트리니티’가 얻은 것은 많다. 이를 더 강화하여 완벽한 ‘트리니티’만의 색(色)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독창성을 갖추는 일만 남았다! 이틀 동안 ‘트리니티’를 플레이해본 결과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퓨전의 힘을 잘 살려내 산뜻한 느낌을 남겨주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눈이 즐겁고, 손이 즐거우니 게임하는 맛도 좋고, 접속을 끄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다시 하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다만, 문제는 인식이다. ‘3D 던파’라는 오명이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막상 게임을 해보기도 전에 거부감을 가지는 유저들이 많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나 영상만 보더라도 ‘트리니티’만의 장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다시 말해, ‘트리니티’는 독창성만이 남았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유저들에게 표현할 것인가, 바로 이 문제가 시급하다. 이 부분이 해결된다면 그들이 홍보 수단으로 내세운 “지겨운 던전앤파이터는 이제 그만!” 이라는 문구가 꼭 꿈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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