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MSX용 게임으로 출시된 이스(YS)는 당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그래픽과 부드러운 캐릭터 에니메이션 그리고 음악으로 큰 호평을 받아 제작사인 팔콤을 일본 최고의 RPG 메이커로 부상시켰다(팔콤이라는 RPG 매이커를 알린 작품은 1984년에 등장한 드래곤 슬레이어로 이후 1988년에 영웅전설 시리즈로 바뀌게 된다. 팔콤이라는 RPG 메이커를 널리 알리게 된 작품은 1985년에 드래곤슬레이어의 후속작으로 제작된 자나두다).
▲ 이스의 메인타이틀 |
▲ 87년 당시 많은 게이머들의 밤잠을 설치게한 문제의 화면 |
이후 팔콤이 선보인 드래곤 슬레이어의 6번째 작품이자 새로운 시리즈인 영웅전설은 액션RPG였던 이스와 달리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정통 RPG 시리즈였다. 이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팔콤은 MSX 시절부터 꾸준히 국내 게이머들에게 사랑 받는 게임개발사로 거듭난다(설명에는 빠져있지만 같은해 팔콤의 3대 대표작중에 하나인 브랜디쉬도 출시된다. 이스, 영웅전설, 프랜디쉬 이 3작품을 팔콤 3대 RPG라고 부른다).
매년 영웅전설과 이스 시리즈를 선보였던 팔콤은 가가브 트릴로지로 좋은 반응을 얻은 영웅전설과 달리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이스 마리오’ 등의 평가절하된 간판타이틀 이스 시리즈의 부진을 털어내기 위해 2002년 새로운 액션 RPG 작품을 내놓는다.
▲ 그 작품의 이름은 바로 쯔바이 |
그 당시 팔콤이 갖고 있던 전통적인 이미지를 깨버리는 귀여운 캐릭터들과 가벼운 이야기 구조, 플레이어의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던전식 액션 RPG인 쯔바이의 성공으로 인해 팔콤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 시대의 흐름을 맞춘 변화된 팔콤의 시발점 ‘쯔바이’ |
▲ 쯔바이 효과는 고전시리즈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등장한 이스와 영웅전설은 최신 트랜드와 전통성이 융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
이후 발매된 이스 6와 영웅전설 6 역시 전통성은 유지하되 애니메이션이나 시트콤에서 볼수 있는 가벼운 분위기의 이야기 전개와 미소녀 캐릭터들의 대거등장 등 최근 게이머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들을 최대한 반영한 모습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이스 6의 경우 3D로 재탄생 최근 게이머들이 선호하는 화려한 액션과 타격감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팔콤이 단순히 2D만이 아닌 3D 게임도 잘 만든다는 인식을 게이머들에게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한다.
▲ 다양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최대한 많은 게이머들을 수용하려고 애쓴듯한 모습을 보여준 이스 6. 덕분에 역대 시리즈 중 가장 히로인의 존재감이 없었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 오죽하면 이 남정네가 진정한 히로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랴...-_-; |
이스 6 이후 약 1년만에 찾아온 팔콤의 ‘구루민’은 쯔바이의 귀여운 캐릭터와 게이머의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던전식 액션 RPG 구조를 기반으로 이스 6에서 선보인 화려한 그래픽과 콘솔기반의 조작감과 타격감이 절묘하게 융합된 팔콤식 액션 RPG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이스 6나 영웅전설 6편 때까지만 해도 그냥 봐줄만한 정도라고 생각했던 팔콤의 3D랜더링 기술에 대한 인식을 확바꿔버리는 구루민은 쉘 세이딩을 이용한 게임화면으로 처음 보는 순간 진짜 ‘억~’ 소리 날 정도의 진보를 보여준다.
▲ 2002년 12월에 처음 공개된 구루민의 모습 |
▲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
만화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의 움직임과 표정,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그림자처리(쉘세이딩 기법을 사용할 경우 인물의 그림자. 특히 얼굴의 자연스러운 그림자처리가 매우 힘들다)는 분명 지금까지의 팔콤의 3D 그래픽 개발능력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는 계기를 마련한다.
▲ 파린의 다양한 표정변화에 주목~! |
구루민의 그래픽 품질에 관해서 말하자면 높은 퀄리티의 셀세이딩 기법을 보여준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 바람의 지휘봉’ 정도까지는 못하瑁嗤 레벨 파이브의 ‘다크 크로니클’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 PC게임들이 콘솔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그래픽 품질을 보여준 것을 감안하면 비교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발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전체적인 분위기와 그래픽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
▲ 모자란 배경묘사는 다양한 그래픽 효과들로 커버하고 있다. 멀리 있는 지형을 흐리게 표현한 뒤에 점차 선명해진다거나 다양한 광원효과를 이용해 주의를 분산하는 등의 연출 등 시각적인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
배경 역시 기존의 팔콤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안개효과(멀리 떨어져 있는 배경을 화면의 백그라운드 텍스처 맵과 단일한 색으로 혼합해 서서히 보이지 않거나 나타내도록 하는 기법)와 알파 블랜딩 기법(투영 효과를 주는 블렌딩 기법. 물이나 유리와 같은 투명한 매질의 속성을 주기 위한 경우에 사용된다), 고라우드 쉐이딩(빛효과를 줌으로써 물체의 형상이나 원근감을 강조하는 실시간 렌더링 기법. 고라우드 쉐이딩을 사용할 경우 물체는 각이 지지않고 부드럽게 표현된다)등 다양한 그래픽 기술을 도입해 모든 그래픽 옵션을 사용할 경우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작지만 속이 꽉 찬 게임
구루민은 여러가지 면에서 쯔바이를 닮았다. 월드맵의 형태로 필드를 이동하고 던전형태의 일부지역을 선택해 진행하는 것이나 하나의 마을만이 등장한다는 점은 쯔바이와 완전히 동일하다.
▲ 쯔바이의 월드맵 화면 |
▲ 구루민의 월드맵 화면을 비교해보면 유사한 점이 많다 |
진행방식은 동일하지만 그렇다고 게임방식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우선 캐릭터의 레벨업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첫번째 차이점이다.
구루민에는 사실상 RPG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레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종의 파워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드릴의 레벨업이나 방어구의 레벨업을 RPG의 레벨업 개념과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 드릴을 사용 주변의 사물을 파괴하거나 적을 물리치면 DP(드릴포인트)가 쌓여 드릴의 레벨이 오른다. 반대로 적에게 데미지를 받게 되면 레벨이 DP가 깍여 레벨이 낮아지는 시스템 |
▲ 방어구를 강화함에 따라 새로운 옵션이 추가된다 |
구루민의 캐릭터 성장은 오히려 액션게임인 귀무자나 데빌 메이 크라이의 장비강화에 가깝다. 캐릭터 자체의 성장은 일절 존재하지 않으며 구입하거나 게임의 진행과정에서 얻는 장비를 몬스터를 잡으면 얻을 수 있는 고철조각을 투자해서 강화해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킬의 발동방식이 액션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커맨드 입력방식이기 문에 신기술을 익혔다고 해도 발동을 위한 커맨드를 익히지 못하면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RPG가 아닌 액션게임에 가까운 점이다.
▲ 커맨드 입력 방식이라고 하지만 기술의 발동은 매우 쉽다. 그냥 돌리면 된다. 하지만 이런 구루구루(빙글빙글)한 커맨드들 덕분에 쾌적한 게임진행을 위해서는 아날로그 스틱이 있는 게임패드를 요구한다는 것이 흠 |
두번째 차이점은 2D 캐릭터로는 구현이 어려운 다양한 복장의 변화다.
풀 3D화 되면서 가장 반가운 변화(?)는 캐릭터성이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요소로 구루민의 가장 큰 장점인 숨겨진 요소들을 찾는 재미를 만들어냈다.
2D는 캐릭터가 복장을 바꾸게 될 경우 많은 손이 가게 되지만 3D의 경우에는 오브젝트를 변경해주는 것만으로 쉽게 복장의 변화를 줄 수가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게임진행과정 중 얻는 개성 넘치는 디자인의 모자들은 각각의 개성에 따른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게임의 진행에 도움을 준다. 던전 곳곳에 등장하는 난관을 어떤 능력을 지닌 모자를 사용해서 통과할 것인가도 게임의 즐거움이지만 귀여운 주인공 파린의 모습을 자신이 직접 코디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게임의 재미는 배가 된다.
게임의 진행과정에서 얻게 되는 모자는 약 6종류지만 숨겨진 모자와 복장들은 능력치도 좋지만 굉장히 이쁘기 때문에 숨겨진 요소를 찾는 재미뿐만 아니라 찾아낸 뒤에 성취감도 매우 크다. 최근 공개된 1.2 패치를 통해 숨겨진 복장이 2개 추가된 것을 감안하면 오랫동안 즐길만한 타이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팔콤의 액션 RPG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구루민 역시 엔딩을 보기 위한 플레이타임은 그리 긴 편에 속하지는 않는다(짧지는 않고 적당한 편).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숨겨진 요소들을 찾는 재미를 배치해놓아 엔딩을 본 이후에도 아기자기한 재미는 계속된다.
팔콤의 내공이 가득 담긴 대작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구루민은 2004년을 마감하는 가장 확실한 게임임을 확신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대작이었다.
게임의 분위기상 스토리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래픽, 애니메이션, 사운드, 게임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탄탄한 구성은 팔콤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이스와 영웅전설과 같은 간판시리즈에 안주하지 않고 쯔바이와 구루민과 같은 멋진 신작타이틀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팔콤이 게이머들에게 가장 오래 사랑받은 게임개발사가 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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