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임 마그나카르타
평작과 대작을 가르는 기준은 다양하다. 전작의 명성을 업고 출시 때부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입소문을 타고 착실히 게임성을 인정받는 종류까지 게임의 성공 가능성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시일이 지날 때까지는 예측하기가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프트맥스가 야심찬 각오로 만들어낸 신작 마그나카르타는 전자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일까?
창세기전의 신화를 이룩한 멤버의 새로운 도전. ‘소프트맥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제작 발표 때부터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인 마그나카르타. 일단 부수적인 문제는 접어두고 그들의 다짐이 과연 마그나카르타를 어떠한 수준의 반열에 올려놓게 될지 게임 자체에 대해 초점을 맞춰 살펴보기로 한다.
마그나카르타는?
마그나카르타는 전형적인 일본형 롤플레잉 게임의 직선형 구도를 따르고 있다. 즉 스토리를 중시하고 별다른 분기 없이 이벤트를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간다는 말이다. 화보집에서도 볼 수 있듯 마치 거대한 세계관을 확립한 듯한 게임의 배경. 꽤 복잡한 구성을 보여줄 듯 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너무나도 간단한 진행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장르의 성격이 불분명해지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게임은 지라트 근위대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구가하던 칼린츠가 자신의 고향인 슈델미르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생모를 잃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유년시절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던 ‘에스텔’에 대한 추억의 끈을 잡고 살아가는 칼린츠. 그는 슈델미르에서 에스텔과 너무나도 흡사하게 보이는 소녀인 ‘아도라’를 만나면서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게임의 핵심을 가로지르는 내용은 칼린츠와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상과 상상으로 반복되는 시나리오의 구도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치밀한 구성으로 게이머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게임은 이처럼 드라마의 각본과 같은 시나리오와 맞물려 천편일률적인 일방통행형 진행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롤플레잉 게임이 추구해야할 기본적인 재료인 ‘자유도’, ‘아이템’, ‘레벨업’에 대한 개념을 배제함으로써 장르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때문에 마그나카르타는 게임 자체를 즐기는 플레이성을 추구한 게임이라기보다는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시나리오에서 의미를 찾는, 즉 인터랙티브한 영상소설(?)의 형태를 가져오게 되었다.
게임 진행방식을 살펴보자
마그나카르타의 세계는 ‘슈델미르’로 불리우는 수도를 중심으로 약 23여개에 달하는 작은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지역은 6~12 칸 정도의 경로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게임 자체의 이동지역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템의 구입과 판매의 개념이 없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을’로 통하는 슈델미르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몬스터가 등장하는 숲과 던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지도 자체가 협소하기 때문에 전투의 빈도수가 높은 편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게임은 이벤트&이벤트, 대화&대화의 소설읽기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동지역 자체에 그다지 큰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과거에 유행하던 페이지북의 형식을 띄고 있다고나 할까? ‘1페이지로 가시오, 36페이지로 가시오(-_-;)’라고 페이지북에서 설명하듯 모든 퀘스트는 일방적인 길버트(주인공이 포함되어 있는 슈발츠 슈트름 부대의 총대장)에 명령에 따라 부여된다.
부여된 퀘스트는 화면 우측 상단에 표시되어 있는 녹색 불빛을 따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해결 할 수 있다. 다만 임무의 내용을 대화에서 얻어야하기 때문에 약간의 집중력을 요한다는 점이 어려울 뿐, 마그나카르타에선 결코 복잡한 미로도 도전이 불가능한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는 하나. 너무나도 궁금한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무한의 단순 이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영상소설이라고 불릴 만큼 단조로운 마그나카르타의 게임방식이 모양새를 갖춘 까닭은 바로 치밀한 스토리와 배경음악, 그리고 감정이 충실하게 이입된 성우가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후반의 기막힌 반전과 어울린 연출만큼은 마치 유주얼 서스펙트의 라스트씬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항상 그렇듯 뻔한 결말을 기대하던 게이머의 뒤통수를 치는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간 셈이다.
모양새는 어떨까?
마그나카르타의 전체적인 화면구성은 완전한 3D 그래픽으로 이루어져 있다. 캐릭터나 필드 그래픽에 있어선 나름대로 깔끔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표정의 변화가 없고 기타 배경화면과의 상호작용이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보물상자를 연다던가 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필드에서의
이동거리가 너무 짧은 것이 단점! 특히 아쉬운 부분으로 여겨지는 것은 필드와 필드사이의 이동경로가 매우 짧다는 점이다. 게이머가 하나의 필드에서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은 길게 잡아야 10~15초에 불과하다. 다음 필드로 넘어가기 위해 기다려야할 로딩시간은 약 5~10초. 주옥같은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다가도 필드가 전환되면 다시 처음부터 음악이 연주되는 것이다. 이래서야 소프트맥스가 그렇게도 공을 쓴 배경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게임의 흐름을 끊는 짧은 필드 이동경로와 로딩시간이 ‘감정이입’을 막는 가장 큰 단점으로 생각된다.
모델링과 텍스처만큼은 훌륭한 편이지만 아직 노하우가 부족한 상태에서 8등신 캐릭터를 채용한 점 때문인지 움직임에 있어선 약간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엿볼 수 있었다. 모든 그래픽에 3D를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캐릭터의 움직임에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약간은 어지럽게 느껴지는 카메라 워킹이 이러한 단점을 적절하게 보완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조작감이 불편해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닐까?
캐릭터의 성장 그리고 아이템
마그나카르타에서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장은 ‘카르타 축적’과 ‘정화 이벤트’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몬스터를 제거할 때마다 축적되는 카르타는 경험치와 같은 의미로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기본 능력치에 할당해주는 방법으로 공격력이나 방어, 이동력 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전투에서 얻게 되는 카르타는 상당히 적은 양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캐릭터의 성장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데 이러한 성장과정마저도 생략한 시스템이 게임에 포함되어 있으니 이를 ‘정화 이벤트’라고 한다. 모두 5차례의 이벤트로 구성되어 있는 정화작업을 통해 게이머는 새로운 필살기와 능력치의 상승을 순식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마그나카르타가 게임의 여러 가지 요소(레벨 노가다 등)를 최대한 제외하고 시나리오를 부각시킨 점이 이러한 부분에서 증명된다고 할 수 있겠다.
정화
이벤트를 통해 캐릭터와 무기가 성장한다 아이템 역시 게임에 있어 별다른 의미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부분. 마그나카르타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장소는 필드에서 간혹 발견할 수 있는 보물상자와 마을사람과의 대화 외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착용 전 아이템의 능력치 증감 수치가 표기되지 않는 부분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사실성을 높여준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점에 별다른 이견을 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게임에서만큼은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해주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손맛이 느껴지는 전투. 그러나…
마그나카르타의 전투는 필드에서 무작위로 몬스터와 만나는 인카운트 배틀과 특정 이벤트에서 보스전을 치루는 이벤트 배틀로 이루어져 있다. 게이머는 턴포인트(TP)에 따라 주어진 범위 내에서 이동, 적에게 일반공격이나 특수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독특한 점은 일반 공격시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스페이스바를 연타, 연속콤보를 구사하는 아케이드적인 요소가 전투에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전투에 손맛을 첨가했다고나 할까? 신선하고 전투의 재미를 배가시킨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마그나카르타의 이러한 장점은 무조건적으로 스토리를 중시하는 게임이 범할 수 있는 오류를 답습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이른바 ‘전투기피현상’. 마그나카르타에서 필요한 레벨업은 ‘정화 이벤트’를 통해 모두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 중반 이후로 넘어가게 되면 무조건적으로 전투를 기피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이 많은 게임
솔직히 게임을 중반정도까지 진행하며 느꼈던 마그나카르타에 대한 감정은 ‘냉담’ 그 자체였다. 해외 게임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 필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느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게임을 진행하고 있던 몇 시간 동안은 끊임없는 버그와의 싸움에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가 후반부로 치닫게 될수록 고통(?)으로 가득 채워졌던 감정은 ‘아드레날린 분비의 최고조’라는 전형적인 게임 중독증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늘 즐기던 주말드라마의 결말을 빨리 보고 싶어서 방송사의 테잎을 서둘러 포워딩하고 싶은 느낌이랄까?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게임의 가치를 이 정도로 높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마그나카르타는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게임일 수밖에 없었다. 소프트맥스가 약속했었던 시스템이 모두 구현되기만 했더라도 분명 창세기전의 신화를 이어나갈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 재료를 눈앞에 두고도 조미료를 빠뜨려 왠지 모를 밍밍한 뒷끝을 남긴 게임 마그나카르타. 비록 시작이 잘못된 요리였지만 양념을 더할 수 있는 계기가 지속적으로 마련된다면 게이머들은 더 이상 요리사의 실수를 질책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윤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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