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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PC 시장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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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일본의 PC 시장은 우리보다 앞선 것으로 여겨진다. 1억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내수 시장과 외부 문화에 개방적인 성향 덕에 신문물을 빠르게 도입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도 그럴까? 일본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시아팩홀딩스 일본사업개발부 샘 리(Sam Lee)를 만나 일본 PC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싱가포르인이지만 일본에서 10년 이상 PC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 시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도 지닌 것. 물론 만난 곳은 일본 전자상가 밀집지역인 도쿄 아키하바라다.

 


▲ 일본 PC 시장에 대해 설명하는 아시아팩홀딩스 일본사업개발부 샘 리

 

집에 PC가 없다
PC 시장만 놓고 보면 일본 역시 우리와 비슷하다. 게이밍 산업이 커지면서 하이엔드 PC 쪽으로 기울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와의 간극이 거의 좁혀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문제는 인구나 시장 규모를 따졌을 때. 샘은 “PC 시장의 비중이 급격히 줄었다”고 단언한다.

 

물론 여전히 회사에서는 PC를 사용한다. 업무에 따라 다르지만 큰 화면과 빠른 데이터 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덩치 큰 데스크톱PC가 아니라 노트북으로 바뀌는 추세다. 5만 엔(약 53만 원)짜리 델 노트북을 지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일반 가정은 아예 돌아섰다. 샘은 딱 잘라 말한다. “이제 (일본인) 집에는 PC가 없다”고.

 


▲ 거대한 상가 건물과 화려한 간판은 여전하지만 한산하다

 

이런 분위기는 아키하바라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자제품에 관한 것은 없는 게 없을 정도라 내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물론 여전히 거대한 상가 건물이 밀집해 있고 크고 화려한 간판이 행인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뿐. 대체로 한산하다.

 

 

대표적인 매장 몇 군데를 둘러 봤다. 우선 지튠(G-tune) 안테나샵. 지튠은 일본의 조립PC 제조사 마우스컴퓨터(MouseComputer)가 생산하는 하이엔드PC 브랜드다. 안테나샵답게 매장 인테리어와 조명에 각별히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내부에는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시리즈 기반의 하이엔드 PC를 세팅해 직접 만질 수 있도록 했다. 레이싱 휠과 게이밍 체어를 통해 실감 나는 레이싱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섹션도 있다. 알고 보니 게임대회나 PC 관련 행사를 열기도 한다고.

 

 

벽에는 각종 PC 사양과 가격을 붙여 놨다. 용산전자상가처럼 A4 용지에 프린트한 것이 아니라 컬러와 디자인을 고려해 깔끔하고 강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매장을 둘러 보는 동안 방문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잔칫집에 차린 건 많은데 먹을 사람이 없다.

 

 

이번엔 게이밍 센터 레벨(Level)에 들렀다. 다양한 게이밍PC와 노트북, 게이밍 기어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대부분이 인텔 코어i7 CPU와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시리즈 그래픽카드 기반. 그런데 여기에도 방문객이 없다. 매장을 둘러보는 동안 오가는 건 직원뿐. 이 정도면 용산전자상가보다도 심하다.

 

 

그나마 중고 매장인 소프맙(sofmap)에서는 방문객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PC 주요부품과 스마트폰, 태블릿, 카메라 등을 판매하고 있다. 물론 모두 중고. 여기서도 PC보다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쪽을 서성이는 방문객이 더 많았다. 요즘에는 차라리 애니메이션이나 피규어 관련 매장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타쿠’를 겨냥한 아이템 말이다.

 


▲ 피규어 하비관. PC 매장 대신 애니메이션이나 피규어 관련 매장이 늘어나는 추세다

 

모바일 시장이 대세다
요즘 일본인은 PC 대신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산다. 집집마다 사람 수만큼의 모바일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샘의 설명. 이를 이용해 정보를 검색하고 웹 서핑을 한다. 쇼핑이나 식당 예약도 마찬가지. 심지어 게임도 모바일 시장이 더 커지는 추세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대부분의 업계도 모바일 분야에 비중을 두는 분위기다.

 

샘은 그 이유에 대해 첫째로 공간 문제를 꼽았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일본은 개인 공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PC 본체와 모니터를 위한 공간조차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성능이 PC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 굳이 PC를 이용할 필요가 없는 것. 대신 그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물론 PC가 필요할 때가 있다. 복잡한 문서 작업을 할 때나 여러 창을 열고 작업할 때 말이다. 그럴 때는 회사나 넷카페를 이용한다. 넷카페는 PC를 사용할 수 있는 곳. 우리로 치면 PC방과 비슷하다.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 중고매장 소프맙에서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쪽을 서성이는 방문객이 많았다

 

또 한가지. 일본의 아이들은 PC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접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마다 컴퓨터실을 보유하는 건 물론 PC를 이용해 수업하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오는 2018년부터는 프로그램 코딩 교육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어렸을 때부터 PC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 있는 것.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칠판에 판서한다. 물론 컴퓨터실도 없다. 우리와 달리 PC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 반면 모바일 기기는 접하기 쉬운 편이다. 주변에 많이 있을 뿐 아니라 모바일 기기를 소유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기 때문. 어쩌면 PC보다 모바일 기기에 익숙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민족성도 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팀으로 하는 MMORPG나 FPS 게임이 인기다. 온라인 커뮤니티도 많이 발달했다. 이런 문화를 즐기려면 당연히 PC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은 사교적인 측면에서 다소 조심스럽다. 쉽게 말해서 혼자 노는 걸 더 선호한다는 얘기다. 성향이 그렇다 보니 게임을 할 때도 다른 사람과 엮이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모바일 게임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즐길 수 있는 것.

 

 

사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일본 PC 시장을 통해 국내 PC 산업을 전망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일본 PC 시장을 직접 살펴보니 오산이었다. 이미 한국과 일본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일본은 PC 대신 모바일을 택했고 우리는 PC와 모바일 시장이 나름대로 영역을 확보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물론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서로의 상황이 다른 만큼 주어진 길도 다를 뿐.

 

5년 후에는 또 어떤 상황일지 사뭇 기대가 된다. 혹시 아는가.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을지.

한만혁 기자 mhan@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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