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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3 직접 가보니... 실수연발 인간미 넘치는 게임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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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즐기는 E3 2015 어떨까

지난 한 주간, 잠은 잘 주무셨나요? E3 기간에 이것저것 행복한 신규 타이틀 소식이 많아 밤잠 설치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E3는 더더군다나 대작들이 많았던지라 행사 기간 내내 그 열기가 식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원래 짧고 굵은 행사라지만, 이렇게 할 게 많은데 3일 만에 끝내버린다는 건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왜 가혹했냐고 물어보신다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은 행사장에 산적한 다채로운 게임들을 다 즐겨보지 못한 아쉬움이고… 두 번째는, 취재 목적으로 간지라 짧은 시간 내에 기사를 쳐내야 했기 때문이죠. 

각설하고, E3를 관심 있게 보신 분들이라면 굳이 어떤 타이틀이 나왔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시겠죠. 그래서 이번에는 기사로 다룰 수 없었던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혹시 내년에 E3를 방문할 계획이 있으신 분이나, ‘천조국’ 미국의 기상을 글로나마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기사가 닿기를 바라며…

다행히 입국금지는 당하지 않았다

E3가 열리는 곳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입니다. 로스엔젤레스, LA. 천사의 도시라고 일컫는 그곳! 햇빛의 축복을 받으며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곳이죠. 그리고 다량의 과일이 생산되는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도시라 과일도 몹시 쌉니다. 미국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죠.

그런데 그렇다고 입국심사까지 온화한 건 아니라서, 출발하기 전에 걱정이 좀 됐었습니다. 미국은 워낙 입국심사가 엄격한 나라로 유명하고, 심지어 기자가 출국하던 당시에는 메르스 문제가 자꾸 커져가고만 있었던 때라 더욱 그랬죠. 주변 사람들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LA 공항에서 입국 거부당하는 거 아니냐, 기침이라도 한번 하면 격리당할 것이다 등등의 말을 건넸었습니다.


▲ 무인 입국심사 키오스크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입국심사장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해 공식 사진을 첨부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월하게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입국심사 절차가 간단해졌더군요. 특히 심사장 한 가운데 설치된 키오스크를 활용하면 더욱 편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간단한 정보와 지문 입력만 하면 됐었죠. 미국 여행 전자비자(ESTA)를 한 번 이상 사용한 사람이어야 가능한 절차였습니다만, 절차 간소화 덕분인지 일반 입국심사 줄도 많이 줄었더랍니다.

사실 미국에 한번 방문하려면 다른 것보다 입국심사 때문에 힘이 많이 빠지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서 흡족했습니다. 그렇게 축적한 에너지를 숙소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 소모해서 결국 말짱 도루묵이긴 했습니다만… 가장 부담스러운 절차의 벽이 낮아졌다는 점에 의의를 두겠습니다.


▲ LAX 공항에서 지하철-버스-지하철 루트로 이동했습니다
면허가 있다면, 되도록 렌트카 빌리세요


▲ 운동화 신고 가기를 잘했지

낮에는 천사의 도시, 하지만 밤에는…

아무래도 기자는 혼자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미국 일정 동안에도 홀로 다녔는데요. 그렇다 보니 주변 분위기 변화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은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라, 출발하기 전부터 ‘혹시 말을 잘못해서 누가 총을 쏘면 어떡하지’라는 순진한 걱정을 가득 안고 다녔었죠.

그런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LA의 분위기를 설명하자면 ‘낮져밤이’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낮에는 한없이 따사롭고 한가로운 데다, 펜 하나만 떨어트려도 앞다투어 주워주려 하는 다정한 서양인들이 가득합니다. 심지어는 지하철로 향하는 기자에게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고, 문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불편하지 않은 적당한 친절을 베푼다고나 할까요.


▲ 하늘은 높고 기자는 살찐다


▲ 왜냐하면 체리를 수시로 먹어댔기 때문에

그런데 밤만 되면 180도 바뀝니다. 기본적으로 거리에 사람도 없을뿐더러,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죠. 게다가 한 구역마다 집 없는 분들이 서넛씩 자리 잡고 지나가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담배를 달라거나, 혹은 돈 얼마 있냐고 물어보곤 하죠. 

미국 일정 중 만났던 한인 택시기사는 최근엔 큰 건물들이 많이 생겨 나아진 거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밤에는 차를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위험했다고 하더군요. 네온사인이 마구 켜진 한국의 밤거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게임쇼답게 이벤트도 최첨단

E3는 마치 잘 정리된 놀이공원 같은 곳입니다. 2K게임즈나 유비소프트, EA처럼 게임 시연에 초점을 맞춘 부스가 있는가 하면 베데스다, 캡콤, 아틀라스처럼 체험형 이벤트에 주력한 곳도 종종 보였습니다. 밸런스가 아주 잘 맞더라고요.


▲ 아틀러스는 부스에서 춤추면 그 영상을 올려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티셔츠를 줍니다
기자도 췄습니다 (영상출처: 아틀러스USA 공식 유튜브 채널)

게다가 체험형 이벤트를 진행하는 부스들은 최첨단 기술을 다채롭게 사용했습니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는데요, 특별히 기억나는 부스를 꼽자면 캡콤과 베데스다입니다. 캡콤은 3D 촬영 카메라를 사용해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와 사진을 찍어주고, 전용 모니터에 그 사진을 띄워줬죠. 3D 카메라로 촬영해서 그런지 사진인데도 입체감이 느껴져서 꽤 흥미롭더라고요.


▲ 이렇게 순간포착!


▲ 핍보이와 사진 찍지 못한 아쉬움 달래봅니다


▲ 움직이면서 말까지 하던 로봇

베데스다는 스티커 사진 부스를 활용해서 핍보이와 다정한 한때를 연출할 수 있도록 해줬는데, ‘폴아웃’ 팬들이 많아서 그런지 줄도 길었습니다. 몸이 하나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빠서 손가락 빨며 바라보기만 했는데 부럽더라고요. 나도 핍보이랑 사진 찍고 싶다.

그리고 해외 게임쇼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기다림을 즐기는 관람객들, 그런 관람객들을 배려해 지루하지 않도록 깜짝 쇼를 준비하는 업체들끼리 박자가 참 잘 맞는 느낌입니다. 게이머들은 사진 찍고 캐릭터 만나서 즐겁고, 관계자들은 시연하라며 호객행위 안해도 되고… 그래서인지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시연한 게임이 두 종뿐이더라도, 흡족함이 만연한 얼굴로 돌아가는 관람객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죠. 아, 물론 어디든 놀러 가는 거라면 뭐든 재미없겠습니까만…


▲ 사진 찍어주느라 바빴던 트루퍼스 듀오


▲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시연장 가는 길
R2D2가 지켜보고 있다


▲ 동글동글한 애들은 왜이렇게 귀엽쿠마?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이동이 쾌적했다는 겁니다. E3 첫날 개장 2시간 전부터 길게 늘어선 입장 줄에 깜짝 놀랐었는데, 막상 입장하고 나니 교통체증(?)은 전혀 없더라고요. 게임쇼에서는 사람에 치여 밀려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세계 최대 게임쇼라는 E3가 되려 쾌적하다니.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 개장 전에는 무시무시하게 사람이 많았는데


▲ 그 시간이 지나니 되려 한산


▲ 전시장 내에서도 가장 붐빈 곳은 휴게공간


▲ 전반적으로 이동은 상당히 편했었죠

사람 당황시키는 기계들

여기까지만 보면 그야말로 인간미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게임쇼죠. 타이틀 많고 관람객도 점잖으며, 현장도 쾌적한 완전무결의 상태! 하지만 E3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고 그냥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사건이 몇 번 있었죠. 뭐 EA 컨퍼런스에 갑자기 펠레가 등장했는데 진짜 축구 이야기만 하고 갔다거나, 느닷없이 행사장 주변에서 종교인에게 전도 받은 것 등등.


▲ 결론은 '축구는 예술적으로 해야 한다'
'피파 16' 이야기는요?

E3 전야에 진행된 소니 사전 컨퍼런스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죠. ‘라스트 가디언’으로 띄운 분위기가 ‘파이널 판타지 7’에서 고조됐고, 마지막에 ‘언차티드 4’ 실기 시연까지 완벽한 흐름이었는데… 네이선이 움직이지 않더군요. 장내는 웅성웅성하고 무대에 선 시연자도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빌드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고, 컨트롤러가 먹히지 않았던 거죠. 아마 실시간 스트리밍을 보신 분들도 아실 겁니다.


▲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긴장됐을 텐데

잠깐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나오기 시작했죠. 당황한 시연자에게 관객들이 응원을 보내는 겁니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으니 괜찮다!’라는 무언의 신호와 함께 일순간 썰렁해진 분위기를 띄워주려는 배려 같았습니다. 정말 관대한 사람들이야!

비슷한 일이 ‘다크 소울 3’ 비공개 세션에서도 생겼었죠. 그 세션엔 미야자키 히데타카 디렉터가 직접 참여했는데, 게임에 대해 소개하고 실기 시연까지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까지는 잘 마쳤습니다만, 정작 게임을 보여주려고 하니 갑자기 실행이 안 되는 거죠. 워낙 조용한 분위기로 진행됐던지라 여기서는 함성을 지르진 못했지만... 덕분에 시연을 기다리는 동안, 예정에 없었던 질의응답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크 소울’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부터 ‘블러드본’과의 차이까지 히데타카 디렉터가 직접 설명해 주니 좋더군요.

물론 철저히 준비했는데도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게임업체들은 매우 당황스럽겠지만, 솔직히 보는 사람에게는 추억 삼을 만한 해프닝이었습니다. 오히려 자잘자잘해서 좀 임팩트가 크지는 않았달까요. E3 전시 부스에 대형 TV에 블루스크린이 뜨거나 하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던 E3 2015

보통 기자들은 게임쇼에 방문해도 그 열기를 진득하니 즐기기 어렵습니다. 현장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전해주는 것이 기자의 일이기 때문이죠. 하루는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효율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려면, 혼자 다니는 게 유리합니다. 그래서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쇼를 천천히 감상하는 건 힘들죠.

하지만 이번 E3는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쇼였다고 평하고 싶네요.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모두 즐거운 부스 이벤트가 상시 진행됐고, ‘스타워즈: 배틀프론트’와 ‘헤일로 5: 가디언즈’처럼 게임 콘셉에 맞게 대기실을 꾸며놓은 곳도 있었죠. 둘 이상이었다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혼자서도 좋았습니다. 보고 듣고 즐기느라 바쁜 시간이었거든요.

혹시 혼자서도 잘 노는 게이머라면, 언제든 E3를 방문해보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혼자일 때 오히려 현지 게이머들과 더 가까이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밤에만 혼자 나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중요한 건 안전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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