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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열전] 리그 오브 레전드로 대변되는 신생 장르, 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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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장르 명칭은 게임의 특징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지만, AOS는 예외다. 풀어 읽으면 Aeon Of Strife(영원한 투쟁)인데, 장르명만 봐서는 대체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없다. 사실 AOS는 공식 장르명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AOS라는 단어를 주로 쓰지만, 해외 게임사들은 AOS 대신 MOBA(Multiplayers Online Battle Arena), ARTS(Action Real Time Strategy), Hero Brawler 등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수많은 명칭이 혼재하는 이유는 AOS가 신생 장르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에 장르성이 확립되었고,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지는 고작 10년 안팎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OS는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게임 장르 중 하나로 손꼽힌다. 순식간에 전세계 유저들의 마음을 훔친 AOS는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했을까?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태초에 스타크래프트가 있었다

AOS 탄생 배경을 말하자면,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 개발사 블리자드는 전작 ‘워크래프트 2’부터 맵 편집기인 캠페인 에디터 기능을 게임 내에 구현했는데, 이것이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에,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에 더욱 완성도 높은 캠페인 에디터를 탑재했다.

‘스타크래프트’에 탑재된 캠페인 에디터는 단순한 RTS 맵 에디터가 아니었다. 맵 트리거(특정 상황에서 작동하는 이벤트 기능)를 이용하면, RTS가 아닌 전혀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특정 유닛이 계속해서 생산되는 ‘블러드’, 끝없이 몰려오는 적을 막아내는 ‘디펜스’, 빠르고 섬세한 조작을 통해 더 강한 적을 물리치는 ‘컨트롤’ 등 수많은 비 RTS 게임(이하 유즈맵)이 ‘스타크래프트’ 캠페인 에디터를 통해 탄생했다.


▲ 유저 콘텐츠 장을 연 ‘스타크래프트’ 캠페인 에디터 (사진출처: archive.rpgclassics.com)

유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캠페인 에디터를 이용해 제작된 각종 커스텀 맵은 블리자드 온라인 매칭 시스템인 ‘배틀넷’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그 중 꽤나 독특한 유즈맵이 있었으니, 바로 2001년 말 Aoen64라는 유저가 만든 ‘Aeon of Strife’다.

초기 버전은 한 팀을 이룬 4명의 플레이어가 제각기 한 명의 영웅만을 조작해 건너편에 위치한 적 진영을 파괴하는 게임이었다. 적군 진영에서는 일정 주기로 병사들이 진격해오고, 플레이어 역시 영웅을 업그레이드 하고 아군 병사(조작 불가)를 생산해 가며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이 목표인, 일종의 디펜스 장르였다.

이듬해, Aeon64는 인공지능 적군 대신 2대 2로 팀을 나눠 상대방의 진영을 먼저 파괴하는 팀이 이기는 두 번째 버전을 내놓았다. 1인 영웅 캐릭터만을 조작하며 대전을 벌이는 ‘Aeon of Strife’ 2.0 버전은 ‘스타크래프트’ 유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실 Aeon64가 선보인 요소들은 완전히 독창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신전이나 넥서스 등 적의 핵심 시설을 파괴하면 승리하는 것은 2001년경 인기를 끈 유즈맵 ‘Nexus Destroyers(일명 넥서스 부수기)’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하나의 영웅만을 골라 끝까지 조작하는 방식은 2000년 전후에 나온 각종 RPG 유즈맵을 통해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Aeon of Strife’는 이러한 요소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새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적대하는 양 진영에 속해 한 명의 영웅을 조작하고, 업그레이드를 통해 능력을 올리고, 강해진 영웅으로 적의 본진을 부순다는 이른바 공성전 게임의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의 게임을 ‘Aeon of Strife’의 약자를 딴 AOS류 게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AOS 맵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당시 AOS 게임은 마니아층에서만 인기를 모으는 데 그쳤다. 이유는 ‘스타크래프트’ 캠페인 에디터 엔진의 기능적 한계 때문이다. 이로 인해 ‘Aeon of Strife’를 포함한 초기 ‘스타크래프트’ AOS 유즈맵은 캐릭터나 스킬을 마음대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없고, 아이템 구매 기능이 공식 지원되지 않는 등 현대 AOS와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였다.




▲ AOS라는 단어의 원형이 된 ‘Aeon of Strife’ (사진출처: lanepushinggames.com)

AOS 기준을 마련한 ‘DotA’

‘스타크래프트’에 갇혀 있던 AOS류 게임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것은, 2002년 하반기 발매된 블리자드의 신작 RTS ‘워크래프트 3’부터다. ‘워크래프트 3’는 건물을 짓고 유닛을 생산하는 RTS를 기본으로, 영웅 캐릭터와 능력치 성장, 아이템 구매, 중립 시설 및 몬스터 등 RPG적 요소까지 고루 가지고 있는 게임이었다.

이 같은 ‘워크래프트 3’의 게임 특성은 캠페인 에디터에도 고스란히 이어졌고, 한 명의 영웅을 조작하는 AOS류 게임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2002년 말 Karukef라는 유저가 ‘워크래프트 3’ 영웅을 이용한 첫 AOS류 게임 ‘Valley of Dissent’를 선보인 이래, 수많은 AOS류 게임이 줄지어 등장했다.

이윽고 2003년, 미국 대학생 율(Eul)이 개발한 Defense of the Ancients, 일명 ‘DotA’가 등장했다. Eul은 ‘스타크래프트’ 시절 ‘Aeon of Strife’를 즐기던 AOS 마니아로, ‘Valley of Dissent’ 등에 자극을 받아 이제껏 없던 완벽한 AOS 게임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공개된 ‘DotA’는 아마추어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레벨 디자인, 독창적인 캐릭터&스킬, 진영별 차별화 요소 등 기존 유즈맵과 차별화되는 완성도를 자랑했다.

‘Aeon of Strife’가 AOS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DotA’는 장르적 기준을 마련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DotA’의 등장으로, 통일성 없이 뒤죽박죽 전개되던 AOS 장르는 비로소 정형화된 틀을 갖게 된다. 아이템 구매와 레벨업을 통한 영웅 육성, 타워를 뚫고 적진을 공략하는 체계적인 공성 루트 등 현대 AOS의 많은 시스템들은 바로 ‘DotA’에서 정립되었다. 이후에도 Eul은 유저 의견을 적극 반영한 패치를 거듭하며 AOS 붐을 이끌었다.

Eul이 만든 ‘DotA’의 시대는 2003년, ‘워크래프트 3’ 확장팩인 ‘프로즌 쓰론’을 기점으로 끝났다. ‘프로즌 쓰론’은 더욱 강력해진 캠페인 에디터를 내장하고 있었는데, 이를 악용한 한 유저에 의해 ‘DotA’의 잠금 기능이 뚫린 것이다. 모든 소스가 공개된 ‘DotA’는 더 이상 Eul만의 맵이 아니게 되었다. 당시 Eul은 ‘DotA’의 후속작 격인 ‘Thirst of Gamma’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고, 그 틈을 타 각종 아류작과 해킹 맵이 범람했다. 결국 Eul은 자신의 ‘DotA’ 소스를 풀고 잠적하기에 이르렀고, ‘DotA’ 유저들은 혼란 속에 갈 곳을 잃었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 AOS 기준을 정립한 ‘DotA’와 개발자 율(Eul) (사진출처: dota2.ingame.de)

‘워크래프트 3’ 인기 넘어선 ‘도타 올스타즈’와 ‘카오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DotA’류 맵이 자웅을 겨루던 난국은, 2004년 등장한 두 개의 유즈맵에 의해 평정된다. 바로 ‘도타 올스타즈’와 ‘카오스’다.

Meian과 Ragn0r라는 두 유저가 만든 ‘도타 올스타즈(DotA Allstars)’는 이제까지 나온 수많은 ‘도타’ 시리즈의 다양한 영웅과 아이템, 시스템을 한 곳에 모아 완성도를 높인 버전이다. ‘도타 올스타즈’는 기존 ‘DotA’의 정신적 후계자임을 내세우며 기존 팬들을 한 곳에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후 초창기 제작자들은 개발에서 손을 뗐지만, 구인수(Guinsoo)와 아이스프로그(IceFrog) 등의 유명 유저들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지속적으로 패치를 진행해 상당히 오랜 기간 인기를 끌었고, 아마추어 제작 맵으로서는 드물게 WCG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한국 유저인 ‘초고수’가 제작한 ‘도타 카오스’가 돌풍을 일으켰다. ‘도타 카오스’의 초기 버전은 오리지널 ‘DotA’의 각종 수치 및 보상을 전체적으로 조금 높게 조절해, 공격 템포를 조금 더 빠르게 만든 아류작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던 한글화와 한국 유저들 입맛에 맞춘 밸런스를 통해 국내에서는 ‘도타 올스타즈’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유저들의 성원을 등에 업은 ‘도타 카오스’는 이후 맵 구성을 대폭 바꾸고, 이름에서 ‘도타’를 뺸 ‘카오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독자적 노선을 걷는다.

‘도타 올스타즈’와 ‘카오스’는 ‘워크래프트 3’ 원작의 인기를 훌쩍 뛰어넘으며 AOS라는 장르를 널리 알렸다. ‘워크래프트 3’를 플레이하는 게이머 대부분이 공식 대전 대신 ‘도타 올스타즈’나 ‘카오스’를 즐겼고,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프리서버 접속자 수가 블리자드 공식 배틀넷보다 더 많아지는 등 웃지 못 할 상황도 벌어졌다.

그러나, ‘도타 올스타즈’와 ‘카오스’ 역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워크래프트 3’ 캠페인 에디터로 제작된, 유저 콘텐츠라는 점이었다. ‘워크래프트 3’ 배틀넷에는 개인 저작권에 대한 보호 시스템이 없었고, 모든 개발 작업은 비영리 취미활동일 수 밖에 없었다. 체계적인 패치나 유저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당연했고, ‘도타 올스타즈’와 ‘카오스’의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 ‘DotA’ 유저들을 재집결시킨 ‘도타 올스타즈’ (사진출처: galleryhip.com)


▲ 국내 유저들에게 많은 인기를 모은 ‘카오스’

독립형 AOS 게임의 등장

AOS 독립을 바라는 팬들의 바람은 곧 현실이 되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AOS 열기는 ‘워크래프트 3’를 넘어 독립형 온라인게임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에도 플래시 웹게임으로 출시된 ‘미니언즈(2007)’ 등 독립형 AOS 게임이 조금씩 등장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AOS 장르를 내걸고 상용화까지 진행한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공개된 국산 온라인게임 ‘아발론 온라인’이다. ‘카오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아발론 온라인’은 많은 국내 ‘카오스’ 유저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신입 유저가 느끼는 높은 진입장벽 및 각종 밸런스/운영 문제로 인해 4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독립형 AOS로 가장 큰 성과를 낸 게임은 2009년 말 미국에서 출시된 ‘리그 오브 레전드’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도타 올스타즈’ 개발을 맡았던 구인수(Guinsoo)가 라이엇게임즈에 입사해 만든 독립형 AOS 게임으로, 깔끔한 그래픽과 비교적 낮은 진입장벽으로 높은 인기를 모았다. 2011년에는 국내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게임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스타크래프트’ 리그 종료 이후 침체기에 빠져 있던 국내 e스포츠 활성화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 가장 성공한 독립형 AOS 중 하나인 ‘리그 오브 레전드’ (사진출처: leagueoflegends.co.kr)

‘리그 오브 레전드’ 성공 이후, 수많은 AOS 신작이 ‘제 2의 리그 오브 레전드’를 꿈꾸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해외에서는 ‘도타 올스타즈’의 정신적 계승작임을 자처하는 ‘히어로즈 오브 뉴어스(HON)’가 출시되었고, 국내에서는 AOS에 3인칭 시점을 도입한 ‘로코 온라인’을 비롯하여 ‘카오스’ 개발자인 ‘초고수’와 ‘하늘섬’이 제작한 ‘카오스 온라인’ 등이 속속 등장했다.

당시 등장한 AOS들은 비록 ‘리그 오브 레전드’ 아성을 위협하진 못했지만, 훗날 AOS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로코 온라인’의 3인칭 AOS 콘셉은 ‘사이퍼즈’와 ‘킹덤 언더 파이어: 에이지 오브 스톰’ 등으로 전파됐으며, ‘카오스 온라인’ 역시 첫 테스트 이후 게임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초강수를 두며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AOS 원조들의 경쟁이 불붙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더해, ‘DotA’ 오리지널의 제작자 율(Eul)과 ‘도타 올스타즈’의 개발자인 IceFrog를 영입해 만든 밸브의 ‘도타 2’, 그리고 AOS의 탄생 무대인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3’ 개발사인 블리자드가 개발하는 ‘블리자드 도타’ 간의 삼파전이 시작된 것. 이 과정에서 밸브와 블리자드는 ‘도타’라는 상표권을 놓고 법적 분쟁까지 벌였다. 결국 ‘도타 2’의 상표권은 밸브가 가져갔고, ‘블리자드 도타’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으로 개명했다. 위 세 게임의 경쟁은 현재진행형이다.


▲ 율(Eul)과 IceFrog 등을 영입해 제작한 밸브의 ‘도타 2’ 
(사진출처: store.steampowered.com)


▲ 블리자드 캐릭터를 총집결시킨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사진출처: kr.battle.net/heroes)

신생 강자 AOS의 과제

AOS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인기 게임 중 하나가 됐지만, 여전히 장르적 발전 단계에 있다. 앞에서 ‘DotA’가 AOS 게임성을 정립했다고 언급했으나, 이 역시 2010년 이후 서서히 깨져가는 추세다. 중립 몬스터의 중요도를 대폭 키운 작품에서부터, 슈팅 게임의 조준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TPS나 횡스크롤 형태의 AOS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AOS의 발전 가능성이 아직도 무궁무진함을 증명한다.

그러나 활동 무대가 여전히 PC 온라인 분야에 한정되었다는 점은 AOS의 딜레마 중 하나다. RTS와 같은 이유로, AOS의 조작 시스템은 마우스와 키보드에 최적화 되었기에 타 플랫폼으로의 진출이 매우 어렵다. 그나마 TPS 인터페이스를 적용한 게임들은 제약이 적은 편이지만, 아직까지 콘솔이나 아케이드 등에서 AOS를 찾아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모바일 역시 AOS가 기세를 못 펴는 분야 중 하나다. 2012년을 전후로 모바일 환경에 맞춰 터치를 활용한 조작법과 짧고 빠른 플레이를 내세운 AOS 게임들이 연이어 등장하긴 했다. 징가의 ‘솔스티스 아레나’부터 ‘그리폰’, ‘가디언스 리그’, ‘히어로스 리그’ 등 수많은 게임이 모바일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중에는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그러나 하드코어 장르인 AOS를 강제로 캐주얼화 하려다 보니,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보다는 PC의 하위 호환 버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는 승승장구 중인 AOS에 남은 과제이기도 하다.


▲ 스마트폰으로 출시된 징가의 AOS ‘솔스티스 아레나’ (사진출처: solsticeare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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