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시뮬레이터는 특정 상황이나 역할을 사실에 가깝게 체험하는 장르였다. 하지만 ‘염소 시뮬레이터’와 ‘서전 시뮬레이터’의 등장으로 ‘병맛 시뮬레이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다. 덕분에 이제는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을 들으면 웃음부터 나온다. 이제 시뮬레이터 장르 신작이 나왔다면 이번엔 어떤 ‘병맛’ 소재 게임인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락스타 라이프 시뮬레이터를 처음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락 밴드를 소재로 한 게임은 이전부터 많았지만, 굳이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플레이 해본 결과 역시 시뮬레이터다운 병맛스러움이 느껴졌지만, 은근히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혼란스러운 첫 인상, 시뮬레이터 장르가 맞구나
게임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캐릭터 생성이다. 평소 커스터마이징에 큰 관심이 없지만, 미래의 락스타가 될 캐릭터니까 이번만큼은 그래도 신경을 썼다. 아니, 신경을 쓰려 했다. 설정할 수 있는 수치는 다양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특유의 우스꽝스럽게 생긴 캐릭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적당히 타협을 보고 커스터마이징을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캐릭터를 만든 후에는 튜토리얼이 시작됐다. 우선 악기, 집, 차량 등 전반적인 자산과 밴드 멤버, 캐릭터 스탯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초반이라 밴드 멤버도 없고 스탯과 자산도 볼품없지만, 나중에는 꽉 차 있을 자산과 밴드를 상상하며 희망찬 미래를 그렸다. 그렇게 튜토리얼을 마치니, 갑자기 소변을 누란다. 네? 뭘 하라고요?
나름 다양한 게임을 해봤다고 자부하지만, 소변을 누라는 처음 보는 튜토리얼에 잠시 동안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지어 오랫동안 소변을 처리하지 않으면 화면이 어두워지는 페널티가 있으며, 소변과 관련된 도전과제까지 있다. 왜 이렇게 소변에 진심인 건가 싶었지만, 이 게임 장르가 시뮬레이터라는 것을 깨닫자 수긍할 수 있었다. 그래, 여기는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구나.
본격적인 밴드 생활을 시작하다
혼란스러운 첫 인상에 어지러워질 무렵, 그제서야 작곡을 해보라는 제대로 된 튜토리얼이 등장했다. 그래! 락스타가 되려면 작곡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호기롭게 악보가 펼쳐져 있는 책상 앞에 앉았다.
작곡은 각 방향에서 날아오는 W,A,S,D 버튼을 타이밍을 맞춰서 입력하면 되는 단순한 구조였다. 난이도는 시시할 정도로 너무 쉬웠지만, 이 게임은 리듬게임이 아니라 시뮬레이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리듬게임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구성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곡도 썼겠다, 유일한 멤버 리키를 불러 공연을 해보기로 했다. 마침 리키도 같은 생각을 한 듯, 나보다 먼저 공연 장소에 가 있을 테니 알려주는 장소로 오라고 했다. 어디서 공연하는 거지? 대학 축제? 대형 콘서트?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표시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얼마 안가 산산히 깨졌다. 도착한 장소는 인근 공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맞은 편에서 핫도그를 팔고 있는 아저씨뿐이었다.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내 마음을 비우고 기타를 잡았다.
공연은 내려오는 노트를 타이밍에 맞춰서 누르면 되는 일반적인 리듬게임 방식이었다. 시뮬레이터 장르 특유의 조잡한 느낌은 여전했지만, 의외로 노래는 좋았다. 이에 더해 텅 비어 있던 공원에 어느새 관중들이 모여 환호를 보내는 모습은 가슴을 벅차 오르게 했다. 소변으로 씌워진 병맛 이미지가 조금이나마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락스타의 삶은 쉽지 않았다
공연도 끝냈으니 이제 제대로 락스타 라이프를 즐길 차례다. 그래도 명색이 락스타가 될 남자인데, 폼 나는 라이프가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을 품었지만, 하지만 게임은 이번에도 그런 내 생각을 가차없이 박살냈다. 화면에 떠오른 튜토리얼 문구는 이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란다. 미래의 락스타가 될 남자인데 자존심 상하게 무슨 아르바이트야! 투정을 부려봤지만, 텅텅 빈 잔고를 확인하고 군말 없이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는 잠겨 있는 딜러를 제외하면 전단지 배포, 택배 배달, 기타 수리까지 총 3가지였다. ‘그래도 명색이 기타리스트인데, 기왕 하는 거 기타랑 관련된 걸 해야겠다’라는 생각에 기타 수리를 선택했다. 아르바이트도 간단한 미니게임 몇 개만 하면 되는 쉬운 난이도였다. 다만 오히려 너무 쉽다 보니 얼마 안 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귀찮아졌다. 이런 것까지 현실적으로 구현 할 필요는 없는데.
우여곡절 끝에 아르바이트를 마무리 짓자, 리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리키가 알려준 장소에 도착하니 경쟁 밴드 멤버들에게 둘러싸인 리키가 보였다. 감히 내 유일한 멤버를 건드리다니! 뒤돌아보지도 않고 리키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던 격투게임이 시작됐다.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는 펀치 밖에 없지만, 상대가 그리 세 보이지 않으니 적당한 거리조절만 한다면 승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내 주먹을 맞은 상대가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는데?
잠시 뒤, 눈을 뜬 곳은 집에 있는 침대 위였다. 핸드폰에는 ‘비록 졌지만 도와주러 와서 고맙다’는 리키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약해 보였던 상대보다 더 약한 건 나였던 모양이다. ‘락스타가 되려면 싸움도 잘해야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이게 락스타 시뮬레이터야, 아니면 연애 시뮬레이터야?
이후에는 기분이나 풀 겸 근처 바에 갔다. 캐릭터를 남성으로 설정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에는 여성 NPC들로 가득했다. 이 중에서 맘에 드는 NPC와 대화하여 호감도를 쌓고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매력도가 바닥인 내 캐릭터가 말을 걸 수 있는 상대는 단 한 명뿐이었다.
대화 중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원하는 대로 적을 수 있었다. 어차피 어떤 말을 적던 정해진 문구가 출력될 것이라는 생각에 대충 아무 말이나 적어봤다. 어라? 그런데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플레이어가 적는 말에 따라 AI가 그에 맞게 답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것도 되나?’ 싶은 말도 곧잘 대답해준다.
게임 외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보니, 말투가 가끔 어색해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다 보니 게임을 할수록 공연보다 NPC와 대화하는 것에 더 열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게 락스타 라이프 시뮬레이터인지, 아니면 연애 시뮬레이터인지 헷갈릴 정도다.
콘텐츠는 부족했지만, 독창성은 확실하다
사실 게임 콘텐츠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맵 상에 있는 월드 투어라던가, 여러 가게들도 그래픽만 구현되어 있을 뿐 입장이 불가하다. 그나마 구현된 아르바이트나 공연, 카지노 도박 등도 폭이 좁거나 단순 반복이 심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연보다 NPC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크다.
다행스러운 점은 게임이 아직 앞서 해보기 단계라는 점이다. 개발자가 공개한 로드맵에 따르면 개인 스튜디오, 집 커스터마이징, VS 모드, 월드 투어 등 다양한 콘텐츠가 추가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현재 준비된 콘텐츠 볼륨이 작은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업데이트가 시급하다.
그래도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 외에는 시뮬레이터 장르 게임 중에서 꽤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노래와 AI 기술을 활용한 대화 시스템은 충분히 락스타 라이프 시뮬레이터만의 매력 포인트로 느껴졌다. 빠른 콘텐츠 추가만 이루어진다면 시뮬레이터 장르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표 작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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