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멀고도 먼 옛날, 대충 삼엽충과 고사리가 손 잡고 뛰어놀던 시절 쯤.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오락실에 처음 등장했다. 많은 오락실 키드들은 방향스틱을 좌우로 뱅글뱅글 돌리고, 앞뒤로 우다다다 움직여 가며 공격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스트리트 파이터 2는 나름 판정이 유했기에 그렇게 해도 각종 기술들이 대충이나마 나갔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대부분의 기술은 파동계(↓↘→), 승룡계(↘↓→), 모으기계(←→) 같은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커맨드였다.
그러나 대전격투게임이 전성기를 지나 빙하기에 접어들고 다시 싹트기를 반복하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면서, 이러한 커맨드도 다양한 진화 트리를 걸어왔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이렇게 하면 게이머들이 얼마나 괴로워할까 케헤헤헷' 같은 생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이른바 '변태 커맨드'다. 입력하기도 어렵거니와, 실패하면 사람 머리를 쥐어뜯게 만드는 그런 기술들 말이다. 물론 아래 언급한 커맨드보다 더 어렵고 긴 경우도 많지만, 이번에는 제작진의 변태성에 치중해 순위를 매겨 보았다.
TOP 5. 이 분야의 선구자, 모탈 컴뱃 시리즈
서양 태생 대전격투게임의 대표격으로 불리는 모탈 컴뱃은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나온 게임들과는 조작궤를 다소 달리 한다. 방어 버튼이 따로 존재하거나, 기술 사용 시 대각선 입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특징들이다. 여기에 뒤로 점프하는 도중 레버를 360도 돌린다거나, 몇 초 이상 버튼을 눌렀다 떼기 같은 기발한 조작도 많다.
이러한 조작이 극에 달한 부분이 바로 '페이탈리티'로 널리 알려진 마무리 기술이다. 페이탈리티를 넘어 애니멀리티, 베이발리티, 프랜드쉽, 브루탈리티 등으로 향하면 규칙성도 없이 10개가 넘어가는 방향키와 버튼을 빠르고 정확하게 입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 도중에 버튼을 누르고 있다가 타이밍 맞춰 떼기, 방향키를 입력하는 와중에도 적과의 거리를 미묘하게 조절하기, 제한 시간 등도 신경써야 한다. 물론 모탈 컴뱃에서 초기에 선보여진 변태 커맨드들은 훗날 다른 게임들에 비하면 순한 맛이긴 하지만, 이쪽 방면의 문을 연 선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TOP 4. 블레이 블루, 레버 7바퀴 빙글빙글 해보시겠습니까?
아크시스템웍스 역시 길티기어 때부터 입력이 어려운 기술이 꽤 많기로 유명했는데, 블레이 블루에 이르러서는 그 괴랄함이 한층 더해졌다. 물론 블레이 블루가 출시될 땐 비슷한 변태 커맨드를 장착한 게임들이 꽤 많아지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ABC 버튼을 누른 채로 D버튼 연타하기'나 '나와 상대가 모두 공중에 떠서 같은 높이에 위치했을 때 레버 반회전x2+D' 같은 독특하면서도 악의가 넘치는 기술들로 시선을 모았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례를 하나 들자면, 발렛의 디스토션 드라이브 기술이다. 이 기술은 3단 연계기인데, 1단부터 레버 2회전+A인데다, 이 기술이 발동 중에 다시 레버 2회전+D를 입력하고, 다음 기술이 발동하는 도중에 다시 레버 3회전+D를 입력한다는 총 7바퀴 빙글빙글을 구현했다. 물론 실제로 입력해 보면 레버 빙글빙글 돌리다 타이밍 맞춰 A나 D를 눌러주면 되긴 하지만, 이쯤 되면 내가 격투게임을 하는 건지 미니게임을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힐 지경.
TOP 3.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RPG인데 저 커맨드는 뭐야?
기사 제목처럼 격투게임 위주로 모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이것만큼은 소개해야 할 것 같아서 가지고 나온 RPG가 하나 있다. 바로 테일즈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한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다. 당시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는 대전격투에서 영감을 받은 LMB(Linear Motion Battle) 배틀 시스템을 선보였는데, 전투가 시작되면 횡스크롤 식으로 이루어진 전용 필드에서 직접 캐릭터를 조작하며 각종 기술을 사용하며 실시간 전투를 벌이는 방식이었다.
얼핏 보면 횡스크롤 액션에 가까운데 대체 어디서 대전격투의 영향을 받았냐 하면, 바로 기술 커맨드다. 여느 대전격투게임에 버금가는 다양한 커맨드가 존재했는데, 그 중 '시공창파참'이라는 필살기에 다다르면 →↘↓↙←→↓↑→↘↓↙←→↑↓+B 라는 어마어마한 조작을 요구한다. 참고로 제작진도 너무 심하다 생각했는지 초기 버전인 슈퍼패미컴 버전 이후에는 커맨드를 조금 쉽게 입력할 수 있도록 하향시켰고, 이후 시리즈에서는 손 난이도를 낮추는 대신 머리를 써가며 전략적인 전투를 할 수 있게끔 전투 시스템을 안정화했기에 다행히도 변태적 커맨드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TOP 2. 이걸 쓰라고 만들었나요? 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2
더 킹 오브 파이터즈(KOF) 시리즈는 태생이 아랑전설 vs 용호의 권이었다. 위 두 게임의 커맨드 입력이 크게 복잡하지 않았던 까닭에, 약간 어려운 기술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쉽게 발동할 수 있는 커맨드로 구성됐다. 적어도 90년대까진 그랬다. 2000년대 들어 점차 복잡한 커맨드를 추가하더니, 2002에 다다라서는 괴악한 MAX2 필살기가 난무하는 게임이 되었다.
대표적인 것만 나열하자면, 공중에서 미친듯이 레버를 좌우로 흔드는 →←→←→←→←만으로 공격 버튼 없이도 발동하는 K9999의 초필살기, 공중에서 적과 근접해 ↙↓↘→↗↑↓+AC 커맨드를 순식간에 입력해야 하는 바이스의 공중 잡기형 필살기, ←↙↓↘→←↙↓↘→+BD, →↓↘+B or D, ←↙↓↘→+A or C, ←↙↓↘→+B or D, ↓↓+B or D, ↓↓+ABCD를 차례대로 타이밍과 방향 변화에 맞춰 입력해야 하는 클라크의 연속잡기(UM) 등이 있다. 화살표만 봐도 정신이 아득해진다고? 정상이다.
참고로 기술표만 보면 쉬워 보이는 료의 MAX 용호난무(↓↘→+C, A)도 있다. 얼핏 별거 아닌 파동계 커맨드 같지만, 문제는 ↓↘→+C가 장풍계 기술인 호황권(강)이라는 것. 즉, 호황권이 발동되기 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A를 연달아 눌러야만 하는데, 이 타이밍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이처럼 2002에서 성능은 좋지만 못 쓰는 기술 취급을 받는 기술들이 연달아 나와 비판을 받은 이후, KOF 시리즈의 커맨드 입력은 다소 안정화되어 가는 중이다.
TOP 1. 버추어 파이터, 아키라는 어려운 게 맞지만 이건 좀...
머릿속으로 프레임을 계산해 가며 플레이하는 3D 격투게임 버추어 파이터. 그 중에서도 주인공 캐릭터인 아키라 유키는 조작 난이도가 어렵기로 유명한 캐릭터인데, 그 중 하나인 '독보정슬'의 경우 입력 난이도가 가히 변태적이다. 조작법은 'K+G 후 G를 빠르게 떼기(2~4 기준)'인데, 저 '빠르게'의 기준이 1프레임이다. 참고로 버추어 파이터는 초당 60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기에, 킥과 가드 버튼을 동시에 누른 후 1/60초 만에 가드 버튼에서 손을 떼야만 저 기술이 발동된다.
인간의 인지 한계에 달하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두 개 버튼을 차례대로 입력해야 하는 것은 앞서 소개한 KOF 2002의 료 용호난무와도 동일하지만, 이 기술은 단순히 누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두 버튼을 눌렀다 하나만 1/60초 안에 떼기'를 해내야 하기에 더욱 난이도가 높다고 평가된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기술이 나가는 것은 아니고, 후딜이 조금 적은 니킥 정도다. 버리기엔 아깝고, 실전에서 시도하자니 성공률이 어마어마하게 낮은... 그야말로 제작진의 변태성이 300% 반영된 기술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세상 어딘가에는 이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괴수 게이머들이 있다는 게 더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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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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