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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zip] 엔씨vs웹젠 1심 판결 '나무가 아닌 숲을 베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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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니지M과 R2M BI (사진제공: 엔씨소프트/웹젠)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엔씨소프트가 웹젠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청구를 인정했습니다. 요지는 “웹젠은 엔씨소프트에 10억 원을 지급하고, R2M 서비스를 중지하라”로, 법원이 엔씨소프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리니지M을 필두로 비슷한 콘셉트를 앞세운 모바일 MMORPG가 시장에 늘어났고, 엔씨소프트는 웹젠 외에도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아키에이지 워’ 관련으로 비슷한 소송을 걸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소위 ‘리니지 라이크’ 게임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주목도 높은 사건인만큼 법원이 무엇을 근거로 판단을 내렸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엔씨소프트의 첫 번째 주장 ‘저작권 침해’ 여부와 관련하여

먼저, 엔씨소프트의 첫 번째 주장은 웹젠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리니지M 구성요소를 ① 아인하사드 ② 가방 무게 ③ 장비 강화 ④ 아이템 컬렉션 ⑤ 변신 및 마법인형 ⑥ 메인 UI ⑦ 각 구성요소의 선택과 배열 및 조합 등으로 세분화하여 각자가 모두 창작성이 있으므로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이 주장에서 대해 단 한 가지, 아인하사드 잔여량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여 표현한 방식에 대해서만 창작성을 인정해 저작물로 보았습니다. 이 외에 엔씨소프트가 제시한 구성요소에 대해서는 모두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죠.

그럼에도, 법원이 이번 소송에서 엔씨소프트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이어서 살펴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때문입니다.

▲ 법원에서 저작권을 인정한 부분은 아인하사드 잔여량에 따라 색상을 다르게 표시하는 것 뿐이다 (자료출처: 리니지M 공식 홈페이지)

엔씨소프트의 두 번째 주장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관련하여

먼저,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법 조문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부정경쟁방지법)’ 중 제2조 제1호 파목입니다.

파. 그 밖에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
이렇게 조문을 써 놓으면 굉장히 어려워 보이지만, 내용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쉽게 말하면, ‘타인이 상당한 투자나 노력을 기울여 만든 성과를 무단으로 사용해 다른 사람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 조문이 적용된 대표 판례 중 하나가 2016년에 대법원까지 간 '단팥빵 전쟁'입니다. 단팥빵 매장을 운영하는 '서울연인 단팥빵’이 경쟁업체인 ‘누이애 단팥빵’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자사 매장 및 영업 콘셉트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서울연인 단팥빵의 손을 들어줬고, 피고 측에 기존 인테리어 사용 금지와 손해배상 지급을 결정했습니다.

리니지M 이야기를 하다가 단팥빵으로 빠져서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두 사건에서 법원 판단 구조는 매우 비슷합니다. 단팥빵 사건에서도 법원은 건물 형태, 외관, 내부 인테리어, 장식, 표지판 등 매장과 영업을 이루는 개별요소는 디자인보호법, 상표법 등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로는 보호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로 모아 왼성한 ‘특정한 콘셉트’는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보호할 수 있는 ‘성과물’이라 인정했습니다.

이 논리는 엔씨소프트와 웹젠 간 이번 소송에도 그대로 옮겨올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법원은 ① 아인하사드 ② 가방 무게 ③ 장비 강화 ④ 아이템 컬렉션 ⑤ 변신 및 마법인형 ⑥ 메인 UI ⑦ 각 구성요소 선택과 배열 및 조합은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로는 보호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각 요소들의 전체 혹은 결합된 이미지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에 의해 보호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리니지M의 개별 시스템은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지만,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전반적인 콘셉트는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보호될 수 있다’로 봐도 무방합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 법원은 리니지M과 R2M의 총합적인 이미지, 즉 콘셉트의 유사성을 근거로 부정경쟁행위를 인정한 것인데요. 기존 프랜차이즈 영업점 인테리어 등에 적용되던 부정경쟁행위 관련 법리가 게임에도 도입됐다는 점에서 이번 판례는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각각은 저작권이 없더라도 하나로 모아 특정한 콘셉트를 완성한다면 부정경쟁방지법이 보호하는 성과물로 인정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콘셉트의 유사성, 양날의 검

이번 판결문은 ‘리니지 라이크’ 게임 범람에 경종을 울리고, 엔씨소프트가 게임으로 구현한 시스템들이 모여 만든 경제적 가치를 법원이 인정했습니다. 게임사 지식재산권 보호 측면에서는 분명히 진일보한 판결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식재산권 보호 대상이 아닌 부분은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이용이 허용되는 부분이므로, 이 행위를 법률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납득할 만한 기준과 근거 제시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번 판결문에서는 블라인드 게시글과 사건 관련 기사 댓글에서 “오마주 모티브 아닙니다. 그냥 아예 카피해라가 지시였던 게임”이라는 내용이 확인되는 점, 피고인 웹젠 직원이 수사기관 조사 시 리니지M에서 카드 뽑기 아이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등급별 획득률을 참고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웹젠이 엔씨소프트가 쌓은 명성과 고객흡인력에 편승하려 했다고 판단한 근거 중 일부로 삼았습니다. 이 근거가 누구나 납득할만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판례는 게임을 저작권법상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미술저작물, 영상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 저작물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저작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이처럼 복잡한 요소를 가진 게임 간 ‘콘셉트의 유사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면 좀 더 좋은 판결문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1심 판결을 두고 엔씨소프트는 최초 청구하였던 10억 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받기 위해, 웹젠 측은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 각각 항소한 상황입니다. 과연 항소심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답을 낼지, 저도 게이머 중 한 명으로서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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