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부터 포괄임금 오·남용 사업장에 대한 기획감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포괄임금제란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수당을 기본 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 지급 계약입니다. 원래 근로계약에서는 기본 임금을 먼저 정한 뒤 이를 기초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제 수당(임금 중 기본급을 제외한 모든 수당)을 가산해 지급하는 것이 원칙인데요,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사업장에서는 편의상 제 수당을 미리 산정한 일명 포괄임금제를 실시해왔습니다. 이러한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에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법원 판례에 의해서 인정되고 있습니다.
게임업계에서는 포괄임금제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2021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소프트웨어 산업 근로환경 개선방안 연구에 의하면 게임SW 기업에서 포괄임금제를 채택한 기업은 53.6%에 달했습니다. 포괄임금제를 채택하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포괄임금 약정을 한 경우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별도 수당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포괄임금으로 지급받은 월 급여에 이미 수당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일부 게임업체에서 포괄임금제를 악용해 근로자에게 공짜 야근을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괄임금제를 핑계로 과도하게 장시간 근무를 시키는 문제가 있고, 유효한 포괄임금제가 아니어서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해야 함에도 수당 없이 야근을 시키는 문제도 있습니다. 다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포괄임금제가 다 유효한 것은 아니며, 포괄임금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1. 포괄임금제의 요건
포괄임금제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① 업무의 성질상 근로시간이 불규칙하거나 근로형태의 특수성 등으로 인해 실제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이 곤란해야 하고, ② 근로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③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여러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 요건을 모두 갖춰야 포괄임금제가 유효합니다.
①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이 곤란할 것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이 곤란한 사업장이어야 포괄임금제가 유효합니다. 그렇다면 게임사는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것이 어려운 사업장일까요? 우선 하급심에서 게임사는 근로시간 산정이 곤란하므로 포괄임금제가 가능하다고 해석한 판례가 있습니다. 법원은 모바일·PC 게임 기획, 게임 서버 개발은 근로자 전문성과 창의성이 요구되어 근로시간 산정이 용이하지 않으므로 포괄임금 형태로 급여를 정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게임 개발 직종이라고 하여 포괄임금제가 항상 유효하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되며, 아래 요건까지 갖춰야 합니다.
② 포괄임금제에 대한 근로자의 동의가 있을 것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려면 근로계약서에 포괄임금에 대한 취지가 있고, 근로자도 그 내용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판례는 근로계약서에 '월급여는 기본급과 시간외 수당(연장, 휴일, 야간수당), 기타수당 등 법정 제 수당이 포함된 포괄금액'이라고 기재되어 있다면, 근로자 입장에서도 그 내용을 알 수 있으므로 유효한 포괄임금 계약이라고 보았습니다.
반면 업무 성격상 연장·야간·휴일근로가 당연히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기본급과 별도로 수당을 세부항목으로 명백히 나눠 지급하도록 단체협약, 취업규칙에 정하고 있다면 포괄임금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판례도 있습니다. 결국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려면, 정액의 월급여 외에 추가로 어떠한 수당도 지급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③ 포괄임금제로 인하여 근로자의 불이익이 없고 여러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될 것
마지막으로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려면 이로 인한 근로자 불이익이 없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포괄임금에 포함된 수당이 근로기준법에 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한 법정수당보다 낮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무효라는 판례가 있습니다. 아울러 포괄임금제를 적용한 결과 지급되는 임금이 최저임금법에서 정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면 이 역시 무효입니다. 이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미달되는 법정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한 게임업체에서 근로자 A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일 8시간(1주 40시간)을 근무하고 매월 연장근무 10시간을 하며 매월 210만 원의 포괄임금을 받는다고 가정해봅시다. A는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고 있는 것일까요?
2023년 최저임금은 1시간에 9,620원인데, A가 매월 받는 210만 원을 224시간(월 소정근로시간 209시간 + 연장근로시간 10시간 x 1.5배)으로 나누면 시간급으로 9,375원입니다. 즉, A는 최저임금보다 적은 금액을 받고 있기에, 이 경우 사용자는 포괄임금이 유효하다는 것을 주장할 수 없고 미달되는 임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참고로,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서는 연장근로 수당은 1.5배를 하여 계산하기 때문에, 앞선 사례에서도 연장근로시간에 1.5배를 곱했습니다.
2. 포괄임금제의 무효, 유효에 따라 주의할 점
지금까지 포괄임금제가 성립되는 요건을 알아봤는데요, 이번에는 포괄임금제가 무효인 경우와 유효한 경우를 나누어 주의할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포괄임금제가 무효인 경우
앞서 이야기한 포괄임금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포괄임금 약정은 무효이므로, 근로자는 실제로 근무한 시간을 증명해 근로기준법에 따른 법정수당을 사용자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용자가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월 급여 외에 추가 수당은 지급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면, 근로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로자는 사업장이 있는 관할 지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재직 중인 근로자가 신분 노출 우려로 직접 법적조치를 하는 것이 어렵다면 제보자 신분을 보호해주는 사업장 근로감독 청원제도를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 청원제도는 고용노동부 공식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용자가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수당 등을 지급하는 것을 거절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요? 우선 사용자가 근로자 퇴직일로부터 14일 내에 법정 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집니다.
실제로 한 온라인게임 개발 회사의 사업경영담당자(실경영자) B는 근로자 21명에게 약 11억 원에 달하는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B는 뒤늦게 근로자를 위해 4,000만 원을 공탁했지만, 법원은 B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체불액에 비해 선고된 형이 상당히 낮은데요, 법원은 B가 거액을 투자했으나 중국 서비스가 실패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고, 많은 채무를 부담해 임금체불에 이르게 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② 포괄임금제가 유효한 경우
포괄임금 약정이 유효한 경우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근로자가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을 임금에 모두 포함해 포괄임금 약정을 체결했다면,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에 따른 수당을 별도로 청구할 수 없습니다. 포괄임금으로 지급받은 월 급여에 별도 수당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포괄임금 약정에서 미리 정한 시간보다 근로자가 실제로 근무한 시간이 적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에도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정한 임금을 모두 지급해야 하며, 예정된 시간보다 적게 근무했다는 이유로 임의로 감액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포괄임금 계약서에 있는 근로 시간보다 실제로 근무한 시간이 많다면 어떨까요?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 약정이 있는 경우에도 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시간보다 실제 근로시간이 많다면, 추가적으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송 실무에서는 약정한 근로시간보다 실제 근로시간이 많다는 점을 증명하기 까다롭고, 포괄임금 약정이 유효하다면 추가 수당을 별도로 청구할 수 없다며 추가 수당 청구를 기각한 하급심 판례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근무 여건이나 근무 형태에 비춰 포괄임금 약정에 명시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포괄임금 약정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포괄임금 약정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하급심에서도 실제 근로시간을 기초로 수당을 산정했을 때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면 포괄임금제 약정으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포괄임금 약정을 무효라고 본 판례가 다수 있습니다. 이처럼 포괄임금 약정이 무효가 되면 근로자는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법정 수당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3. 포괄임금제라도 연장근로는 1주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아울러 포괄임금제 약정이 유효하고, 기업과 근로자가 합의했더라도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연장근로 시간이 1주에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물론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서는 기존에 1주 12시간으로 제한되던 연장근로 시간을 월 52시간 총량 등으로 개편하겠다고 했으나, 이 개편안은 아직 입법되지 않았기에 현재는 1주 12시간 연장근로 시간 제한을 준수해야 합니다.
실제로 2016년 게임업체 직원 과로사 사건을 계기로 2017년에 고용노동부가 주요 게임업체 12개를 대상으로 기획근로감독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결과 3,250명 중 63.3%인 2,057명이 주 12시간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해 6시간을 더 일했고, 연장근로 수당 미지급 등 임금체불 액수가 44억 여원에 달했습니다. 2021년 4월 8일에도 고용노동부가 유명 게임업체를 근로감독한 결과 전체 근로자 1,135명 중 329명이 1주당 12시간을 초과했고, 연장근로 수당 등 임금 3억 8,000만 원을 주지 않았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아울러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1주에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시키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됩니다. 법정형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며, 사용자가 벌금 500만 원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4. 장시간 근로 신고 시 증거 수집 방법
1주에 1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로를 하거나, 그에 맞는 수당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면, 증거를 수집해 사업장 소재지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하거나 근로감독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증거는 출·퇴근 시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사업장에 출·퇴근 카드, 지문 터치 등 출·퇴근 확인 시스템이 없다면, 본인 업무용 PC에서 로그인·로그아웃한 시간 내역을 확보하거나, 출·퇴근에 이용한 교통카드 이용내역을 출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연장근로 사실을 완벽히 증명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근로시간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근로를 제공하는 실 근로시간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사용자 측이 "연장근로를 지시한 적이 없다", "근로자가 해야 할 업무량이 적기 때문에 연장근로를 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주장한다면,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실제로 일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업무 지시가 담긴 이메일, 메신저, 문자 내용을 날짜별로 캡처해놓거나, 사내 전산망, 업무용 클라우드 등에 접속한 기록을 확보하는 것도 회사에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 때, 접속기록에 로그인 시각만 있고 로그아웃 시간은 없을 경우 연장근로를 인정하지 않은 판례도 있으니 로그아웃까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업무일지에 근로시간을 기록한 뒤 중간결재자와 경영자 결재를 받은 경우, 이 업무일지를 근거로 연장근로 수당을 인정받은 판례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기한이 정해진 업무의 경우 기한이 임박할 즈음에 연장근로 필요성을 인정한 판례가 있습니다. 연장근로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근로자가 자진해서 연장근로를 한 경우에는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프로젝트 마감이 임박했다면 연장근로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기에, 법원에서 이를 인정할 경우 수당 지급에 대한 근거로 쓸 수 있죠. 이 경우 프로젝트 기한이 담긴 일정표도 연장근로 필요성을 입증할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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