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특정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래픽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플레이타임이 길어 소위 가성비가 좋은 게임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배경음악이 매력적이거나 스토리가 참신한 것도 몰입도를 높이는데 중요 요소로 작용한다. 이를 바꿔서 생각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이머를 100%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은 환상에 가깝다. 이에 많은 게임사는 주력 분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해당 장르를 선호하는 게이머를 공략하는 전략을 활용한다.
지난 11일에 출시된 국내 게임사 프로젝트 문의 신작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이하 라오루)’ 역시 좁지만 깊은 매니아층을 겨냥한 게임이다. 개발사가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통해서도 보여준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극대화시킨 타이틀이며, 라오루를 포함한 프로젝트 문의 세계관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 완성도 높은 배경음악이 더해지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개발사 입장에서 스스로의 강점과 유저들의 니즈를 완벽히 파악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얼마나 유효하게 작용하는가를 라오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라오루의 시작점이자 보금자리, 도서관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후속작, 라오루의 세계는 매우 어두운 디스토피아를 표방한다. 꿈을 꾸는 사람도 없고,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도 없다. 이곳에서 인간의 존재는 기계를 돌리기 위한 톱니바퀴에 불과하며,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가 무관심하게 방치되는 사회이기에 인간의 가치는 바닥을 치게 된다. 도시 주민들은 세상에 부조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
반면, 작품 주 무대가 되는 도서관은 모든 것을 잊은 듯 평화롭고 고요하다. 라오루의 주인공, 롤랑과 앤젤라는 이곳에서 손님을 접대(라오루의 전투)할 준비를 한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다. 평화로운 성역과도 같은 곳에 사회의 무법자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라오루는 바깥과 단절된 신비스러운 공간인 도서관, 이와 관련된 각종 용어와 기능을 통해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책’을 부각시킨다. 책은 작품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는 매개체인 동시에,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누군가의 재산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도서관에서 사망하면 책으로 변하고, 책에는 인물의 기억과 세부 스토리가 담긴다.
책이 쌓일수록 도서관이 확장되고, 이에 따라 다양한 사서들이 등장한다. 사서라 하면 조신할 것 같지만 이들도 결국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죽이는 일을 한다. 이는 주인공 앤젤라와 롤랑도 마찬가지다. 라오루는 도서관을 소재로 디스토피아와 성역, 도시와 도서관 사이의 대립과 서로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복잡해지는 인간관계를 스토리를 통해 점차 드러낸다.
전체적으로는 도서관이라는 소재와 게임을 진행하면서 하나 둘 등장하는 사서들과 앤젤라 간 싸늘한 기싸움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앤젤라는 도서관장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사서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 층별로 배정돼 있는 사서들과 앤젤라의 대화는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가 게임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게임을 어느 정도 진행한 후였다. 따라서 초반에는 사소해 보이더라도 대화를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라오루의 스토리텔링은 입체적이고 꼼꼼하다
스토리가 매력적이더라도 이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다. 특히 라오루는 전작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만큼 관련 요소들도 많이 등장하기에 전작을 해보지 않은 사람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스토리를 돕는 것이 중요하다. 전작보다 세부 설정을 언급하고, 설명하는 빈도를 늘린 점은 스토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시도인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자칫 복잡할 수 있는 스토리를 점진적으로 풀며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도서관애 등장하는 모든 손님은 고유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전투를 통해 책장을 얻으면, 해당 책장 주인공에 대한 스토리를 볼 수 있다. 특정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세계관에 대한 상세 설명도 포함되어 있어 배경지식도 천천히 쌓아나갈 수 있다.
여기에 모든 텍스트가 음성 지원을 넣어 읽는 부담을 줄이고, 듣는 재미를 더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엑스트라까지 모든 텍스트를 녹음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더 눈길을 끌었다. 이 부분은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진이 스토리텔랑과 이해도 높이기,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말했듯이 라오루는 도서관에 손님을 초대하고, 손님의 이야기를 엿보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달한다. 자연스럽게 각 인물의 속사정을 살펴볼 수 있고,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안타까운 사연도 많다. 게임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점진적으로, 음성과 텍스트로 전달하며 스토리와 인물의 입체적인 면을 강조하고 게임에 현실감을 더한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독특한 전투 시스템
마지막으로 살펴볼 부분은 전투다. 전투는 턴제에, 카드 대전을 더한 방식인데 단순히 치고 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가며 싸워야 한다. 접대를 앞두고도, 진행 중에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이는 후술하겠지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우선 각 캐릭터마다 부여된 속성을 활용한 약점 공략이나 각 책장(카드)별 코스트를 계산해가며 스킬을 사용하는 것 등은 타 게임에도 등장하는 일반적인 요소다. 그러나 라오루에는 매 라운드마다 굴리는 주사위와 감정 고조가 있다. 초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지만, 스토리를 진행할수록 두 가지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기에 전투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요구된다.
특히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 주사위를 굴려 공격 순서 및 책장의 공격/방어 수치를 랜덤으로 결정하는 주사위 시스템은 독특하지만, 전투에 운적인 요소를 더해진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또한, 공격 및 피격에 따라 생성되는 특수 게이지인 감정은 특정 단계에 도달할 때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환상체 카드’라는 특수 카드를 제공하고, 감정이 고조될수록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며 분명한 이득을 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감정을 최대한 끌어올릴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책장 파밍이 다소 늘어지는 경햐을 보인다.
전투를 구성하는 시스템 자체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두 가지 요소가 긴장감과 재미를 더한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주사위 시스템은 정해진대로 카드를 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따라 다음 행동을 생각하고 어떻게 대응할 지를 궁리하는 재미가 있고, 감정은 또 다른 스토리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준다. 캐릭터 대사가 전투 양상, 성격,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게임 속 책이나 스토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사를 알아가는 맛이 있다.
라오루는 게이머를 몰입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라오루는 호불호가 갈리는 전투 요소가 있으나 매력적인 스토리와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고유한 매력을 전한다. 아울러 이 부분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전작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기자는 프로젝트 문 게임을 이번에 처음 즐겨봤으나 라오루를 플레이하며 궁금해지는 내용을 발견하면 전작 내용이나 설정을 확인해보거나 비슷한 시기를 다룬 소설 ‘뒤틀림 탐정’을 정독하며 등 프로젝트 문의 다른 작품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만큼 스토리에 몰입감이 있었고, 라오루는 그 장점을 극대화하며 많은 유저에게 프로젝트 문이라는 개발사를 알리는 창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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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지금까지 게임이 제 손을 떠났던 적이 없었습니다. 늘 옆에서 즐거운 게임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가 되고자 합니다.kdyoung1028@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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