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얼마전 주말에 집 근처 쇼핑몰에 갔다가 VR 테마파크를 잠시 들른 적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붐이 조금 꺼졌다고는 하지만,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사람들이 VR게임을 체험하기 위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아직까지 신기한 기술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VR방이나 VR 테마파크는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바이브’가 보급되기 시작한 2016년 말부터 시작돼 2017년에야 본격화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전부터 VR방이라는 개념은 존재했습니다. 대체 그 옛날 어떤 VR이 있었을까, 1996년 VR방의 시조를 만나러 떠나 보시죠!
일단 광고를 보겠습니다. CD게임방과 버츄얼파크를 전문으로 하는 체인형 게임센터 ‘아마게돈 21’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오른쪽의 ‘버츄얼파크’인데요, ‘VR(가상체험) 게임기 입체적 도입’ 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사진을 조금 더 확대해 보겠습니다. 뭔가 커다란 기기들이 곳곳에 서 있고, 무대(?) 위에 커다란 HMD를 뒤집어 쓴 남성이 컨트롤러를 잡고 있습니다. 얼핏 봐서는 현세대 VR 기술을 연상시킵니다. 지금 봐도 꽤나 흥미롭게 생겼는데, 1996년 당시에는 그야말로 미래 기술 같았겠죠. ‘고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특유의 구성’, ‘선진국형 도심형 테마파크’ 같은 홍보 문구들은 이런 기대를 북돋습니다. 아, 왼쪽 밑 이현세 원작 ‘아마게돈’ 애니메이션 이미지는… 정식 라이선스를 받았…으려나요?
사진에 나온 HMD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대략적인 형태와 시기를 미루어 짐작해 볼 때 미국에서 나온 ‘스턴트 마스터(1993)’나 ‘사이버맥스(1994)’가 아닐까 합니다. 본체만 750g에 달하는 닌텐도 버추얼 보이는 확실히 아닐 것 같네요. 당시 VR HMD는 저해상도 화면과 좁은 시야각으로 진정한 가상현실을 선보여주기엔 무리가 있었고, 게임 3D 그래픽 역시 생생함을 주기에 부족했습니다. 이밖에 헤드 트레킹 기술 등도 불완전했기에 입체감이 겨우 느껴질락말락 하거나 아예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었죠.
결국 90년대 SF 붐을 타고 잠시 반짝했던 VR HMD는 위 광고에 나온 일부 아케이드 게임장이나 볼링장 등에서 잠깐 선보여졌다가 금새 가라앉았습니다. 이후 VR 게임은 거의 20여 년 동안 빛을 받지 못하다, 럭키 팔머가 킥스타터를 통해 선보인 ‘오큘러스 리프트’를 시작으로 마침내 주무대에 올라섰습니다.
그러고 보니 광고 왼쪽에 나온 CD게임방이라는 것도 궁금하네요. 1996년은 PC게임방도 활성화되지 않았고, 플스방도 없던 시절인데, 과연 CD게임방이라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광고 내 사진을 보면, 오락실 기기처럼 보이는 박스 앞에 앉아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32비트 게임기 전기종의 모든 게임을 각방에서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고 쓰여 있네요.
32비트 게임기라면 1994년 발매된 PS1과 세가 새턴이죠. 둘 다 CD드라이브를 채택한 콘솔입니다. 한 마디로, CD게임방은 CD를 사용하는 게임기 PS1이나 세가 새턴을 아케이드 머신 형태로 개조해 즐길 수 있게 만든 오락실과 플스방의 중간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과거 오락실에 PS2나 PS3를 개조한 기기가 놓여 있던 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이러한 CD방의 형태를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광고도 가져와 봤습니다. ‘플코스 게임방’이라는 이름의 멀티방 시설 설치 전문업체 광고인데, 앞서 광고에 나온 CD게임방 기기와 거의 비슷한 형태의 기기입니다. 33인치 브라운관 모니터와 조이스틱을 삽입한 기판을 통해, PS1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장치로 보입니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아케이드 게임기는 아닌지라 동전 넣는 투입구는 없군요.
CD 게임기를 이용한 게임방 사업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꽤나 선도적이고 좋았습니다. 다만, 이당시만 해도 훗날 플스방의 ‘위닝 일레븐’이나 PC방의 ‘스타크래프트’ 같은 국민적 콘텐츠가 없었죠. ‘철권’ 정도가 있긴 했지만 이마저도 오락실에서 하는 것이 나았고요. 그래서인지 이 사업은 전국적인 붐을 일으키진 못하고 사그라들었습니다. 나름 콘솔 게임기를 이용한 ~~방 사업모델의 초기 형태긴 했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간 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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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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