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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산 게임 가운데 액션성으로 손꼽을만한 명작이 무엇이 있을까? 액션명가 KOG ‘그랜드체이스’나 네오플 ‘던전앤파이터’, 혹은 펄어비스 ‘검은사막’ 등을 떠올려 봄직한데, 기자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게임보다도 넥슨 ‘마비노기 영웅전’을 높이 평가한다.
소스 엔진을 통한 현실적인 물리 효과와 호쾌한 연출, 긴장감 넘치는 보스전과 영리하게 짜여진 레벨 디자인, 일본의 헌팅 액션에서 적절히 차용한 사냥 도구 및 부위 파괴 시스템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글레이 스튜디오 정병근 개발자는 ‘마비노기 영웅전’ 최고 전성기인 시즌 1을 함께한 테크니컬 애니메이터다. 당시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한 박진감 넘치는 컷신이 모두 그의 손에 탄생했다. 이후로도 각종 프로젝트에서 활약하며 쌓은 경력만 10년. 그야말로 업계 베테랑으로 입지를 굳힌 그가 지난해 돌연 독립하여 1인 개발에 몰두한 까닭은 무엇일까?
▲ 거친 메카닉 액션 '에일리언 클리너' 선보인 정병근 개발자 (사진제공: 이글레이 스튜디오)
言 ‘마영전’ 개발자로 알려졌다. 1인 개발에 나서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정병근: 업계에 들어온 계기는 작은 게임사의 마케팅을 담당하면서다. 다만 사람 상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이라 업무가 잘 맞지 않았고. 대신 사내 개발자 분들의 영향을 받아 CG 공부를 시작하여 9년 전 개발자로서 삶을 시작했다. 이후 ‘마영전’ 초기 멤버로 합류했고 시즌 1까지 마무리한 후 넥슨을 떠났다.
그리고는 몇몇 개발사를 전전하며 여러 프로젝트에 몸 담았는데 대부분 도중에 엎어졌다. 그럴 때면 항상 여러 동료가 회사를 떠나야만 하더라. 개발자는 정직원임에도 마치 소모품처럼 취급됐다. 그래서 조직 생활에 염증을 느껴 퇴사를 결심했다. 애니메이터였기에 일단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플래시 스크립트를 익히다 유니티를 접하게 됐다.
言 독립 개발사 이름에는 다들 사연이 있더라. 어째서 ‘이글레이’인가
정병근: …대단한 사연은 없다(웃음). 매가오리를 영어로 ‘이글레이’라고 한다. 바다를 좋아해서 스쿠버나 프리다이빙을 즐기는데, 어느 날 물 속에서 매가오리들이 새처럼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독립 개발을 하게 된 취지와도 어울리고 어감도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다.
言 첫 독립 개발작 ‘에일리언 클리너’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정병근: 먼 미래에 인류가 우주를 개척하며 여러 행성의 생명체가 이리저리 뒤섞인다. 본래는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마구잡이로 변태하여 거주지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이에 외계 괴생명체를 전문적으로 청소해주는 업체가 생겨났으며, 플레이어는 이곳에 소속된 신입 용병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장르는 메카닉 슈팅 액션으로 각 스테이지에서 밀려오는 웨이브로부터 생존하는 것이 목표다. 경우에 따라 구조물을 지키거나 거대 보스와 싸우는 등 다양한 임무가 주어진다. 쓰러트린 괴생명체에게 광물을 수집해 메카닉의 여러 부위를 개조할 수 있는데, 파츠 조합의 재미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상하체와 팔, 연료탱크, 무기 등 총 일곱 부위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 현실적인 액션과 커스터마이징의 재미를 살리는데 집중했다 (영상제공: 이글레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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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 비슷한 장르의 게임과 비교하여 차별화되는 강점이 있다면
정병근: 나름 오랫동안 애니메이터로 일했기에 캐릭터 움직임에는 자신이 있다. 디오라마를 보면 박스 안에 배치된 장난감일 뿐이지만 세밀한 면면은 현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에일리언 클리너’ 또한 그러한 콘셉트로 현실적인 메카닉 기동에 힘을 많이 줬다. 여덟 가지 방향과 속도에 따라 몸체 움직임이 모두 달라지며 저마다 멋진 자세가 연출된다.
액션성을 살리기 위해 물리 효과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괴생명체가 죽을 때 그냥 시체가 남는 것이 아니라 폭발 방향에 따라 날아가고 벽에 부딪친다. 사격 시 탄피가 배출되는 연출도 총기 액션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가벼움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모바일 게임은 거의 시도하지 않는 것들이다.
言 메카닉이 상당히 투박하고 배경도 어둡다. ‘건담’ 같은 미려한 디자인과 미소녀 파일럿이 각광 받는 최근 시류와 동떨어진 면이 있는데
정병근: 일단 미소녀 콘셉트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상업적인 이유로 미소녀가 나와서 잔인하게 싸우고 옷이 벗겨지는 것은 ‘에일리언 클리너’ 기획과도 동떨어졌고. 처음부터 투박한 메카닉이 등장하는 무거운 미래상을 그리고 싶었다. 주위에서 ‘이렇게 하면 더 팔리지 않겠나’하는 조언을 받긴 했지만 애초부터 내가 하고픈 게임을 만들려고 독립 개발에 나선 것 아닌가.
言 과거 투박한 메카닉으로는 ‘맥 워리어’가 유명하다. ‘에일리언 클리너’ 기획 당시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소개해달라
정병근: 사실 게임보다는 영화 ‘디스트릭트 9’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후반부에 주인공이 외계인 병기에 탑승해 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토록 현실적인 메카닉 액션을 처음이었다. 그 묵직하면서도 거칠게 질주하는 느낌을 내 작품에서 재현하고 싶었다. 게임을 해보면 사망 시 메카닉 뚜껑이 열리며 파일럿이 쏟아지는데 이건 영화에 대한 오마주다. 그걸 위해 메카닉 내부와 파일럿 모델링까지 만들었다(웃음).
言 ‘마영전’부터 ‘에일리언 클리너’까지 전부 액션성을 강조했다. 특별한 개발 철학인가
정병근: 무슨 특별한 철학이라기보단 그저 노하우가 많은 분야라 그렇다. 테크니컬 애니메이터를 10년간 했으니 모션 제작과 물리 효과에 남들보다 특화돼있다. 첫 독립 개발인 만큼 가장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 안정적인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다. 앞으로는 꼭 액션이 아니라도 스스로 좋아하고 재미있어할 게임이라면 뭐든지 만들어볼 생각이다.
言 게임 출시 후 보름 가까이 지났다. 어떤 피드백이 있었으며 해결 방안은
정병근: 다행히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한편으로 조작이 어렵고 난이도가 높다는 피드백이 많다. 나머지는 자질구레한 편의성 문제이고. 난이도는 계속 테스트하며 조정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당초 의도한 수준에서 너무 낮아지면 아예 재미가 없어질 우려가 있다.
‘에일리언 클리너’는 모든 스테이지를 단번에 깨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파츠 조합을 찾아내 공략하는 재미를 주고자 했다. 사실 메카닉만 개조해도 쉽게 돌파할 수 있는데 초기 버전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제대로 소개하고 시도해보도록 유도하는데 실패했다.
言 줄곧 조직에 있다가 독립 개발을 해보니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정병근: 개발 도중 무언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 방법을 찾기 힘들다. 솔직히 내 프로그래밍 실력은 실무자에 비하면 완전 초보 수준인데, 당장 몰라도 물어볼 곳이 마땅히 없다. 출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채워야 할 요소가 없을 때는 식은땀이 나더라. 한 가지 사안을 가지고 1~2주 동안 온갖 해외 사이트를 뒤져 힘겹게 헤쳐나갔다. 원래 1년 반씩 걸릴 프로젝트가 아니었는데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니 개발 일정이 늘어졌다.
막상 출시를 한 후에는 역시 홍보가 제일 어렵다. 당연히 대기업마냥 돈을 부어 마케팅을 할 수도 없고. 이런 부분은 개발하면서 조금씩 준비했어야 하는데 나중에 하면 되겠거니 미룬 것이 화근이었다. 독립 개발에 도전하고픈 분이 있다면 부디 홍보 계획은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시길.
▲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1~2주간 고민하고 연구하며 헤쳐나갔다 (사진제공: 이글레이 스튜디오)
言 독립 개발/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업계와 정부 지원 사업은 고려해봤나
정병근: 진짜 영세한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투자나 도움은 생각하지 않았다. 몇몇 곳에서 퍼블리싱 제안도 했지만 전부 거절했다. 투자라는 것은 적선이 아니라 몇 배로 되돌려줘야 할 돈이다. 그만큼 거대한 게임을 만들려는 것도 아닌데 그 자체가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간섭 없이 홀로 묵묵하게 해보고 싶었다. 망해도 내가 망한다는 각오로.
言 그런 힘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개발하게 되는 매력은 무엇인가
정병근: 나는 게임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그런 코어 게이머로서 자신의 게임을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독립 개발자는 프로그래밍부터 그래픽, 사운드까지 전 분야를 홀로 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최고의 전문직이라 생각한다. 물론 각각의 숙련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言 독립 개발을 꿈꾸는 동료 개발자 혹은 지망생에게 전하고픈 경험담이 있나
정병근: 지망생과 실무 개발자를 나눠서 얘기하겠다. 먼저 학생이라면 다만 1~2년이라도 회사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보길 추천한다. 독립 개발만 해서는 알기 힘든 실무에서 얻는 개발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나도 10년간 업계에서 익힌 체계적인 작업 시스템과 기술적인 노하우가 있었기에 이만큼 해낼 수 있었다. 만약 회사가 체질에 맞고 인정받으면 그대로 눌러앉아도 좋고.
실무 개발자의 경우, 나처럼 아트 직군이라면 프로그래밍이 굉장한 장벽이 될 것이다. 개발 과정을 되돌아보니 프로그래밍에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보통 처음 프로그래밍을 공부할 때 책 한 권 사서 무작정 읽어 내려가는데 그러면 오래 걸릴뿐더러 무언가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용이 이해가 안 가더라도 몇 번 정도 속독해두고 일단 가장 쉽게 만들 수 있을만한 프로젝트를 정해서 시작하라. 개발 과정에서 ‘이건 어떻게 하지?’ 싶은 순간이 오면 그때 다시 책으로 돌아가 원하는 정보를 찾으면 된다. 요즘은 책이 아니라 구글이나 유튜브를 통해서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게 직접 적용해보며 익히는 것이 기술 향상에 훨씬 도움이 된다.
▲ "학생이라면 1~2년이라도 회사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보길 추천한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言 이글레이 스튜디오 향후 계획을 알려달라
정병근: 개발은 하고픈 데로 했지만 이제 생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 가장 먼저 할 일은 ‘에일리언 클리너’ iOS 버전을 론칭하는 것. 아직 차기작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없지만 개발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와 경험을 살려 조금 더 캐주얼한 버전을 내놓으면 어떨까? ‘길건너 친구들’처럼 아담하고 귀여운 디자인에 액션성을 더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또한 한 번 만들어보니 모바일에서 격한 조작은 아무래도 힘들어서, 터치와 스와이프 중심의 액션을 고민 중이다.
言 이글레이 스튜디오가 생각하는 독립 개발(인디)란
정병근: 최우선 기준은 경제적인 독립 아닐까. 자기 자본만으로 개발할 수 없다면 결국 누군가의 간섭을 받기 마련이다. 거금을 투자 받아 그들이 요구하는 방향대로 게임을 만든다면 그것은 독립 개발보다는 하청업에 가깝다. 그럴 바에야 회사에서 주는 월급 받으며 일하는 게 낫다.
言 끝으로 뭇 게임메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병근: ‘에일리언 클리너’는 십여 년 실무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땀한땀’ 정성 들여 만들었다. 고집과 장인정신으로 만들었기에 접근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이대로 시장에서 묻히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결말 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모바일 게임으로선 드물게 엔딩을 삽입했다. 더 많은 분들이 ‘에일리어 클리너’를 즐겨주시고 엔딩의 여운을 느꼈으면 좋겠다.
▲ 어렵지만 재미있는 '에일리언 클리너' iOS 버전도 곧 출시 예정이다 (사진제공: 이글레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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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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