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헴!
이런 게임입니다
모처럼 기대를 걸어 볼만한 게임이 나와버렸습니다. ‘퀘이크워즈 온라인’이 그랬고 ‘배틀필드 온라인’이 그랬던 것처럼 원작 IP게임은 대체로 원작에 대한 고증(매니아들을 위한)과 대중성 확보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주장 속에 타협안을 찾기 위해 기나긴 줄다리기를 해왔습니다. 사실 타협안이라는 말은 거대한 말장난의 일부일 뿐이죠. 애당초 이 두 개의 그룹을 만족시키는 공통분모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조금이라도 욕을 덜 먹는 쪽을 찾는 것이 개발자의 공통된 고민이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솔저오브포춘 온라인’은 놀라울 정도도 그 교점을 영리하게 찾아낸 게임입니다. 일단, FPS게임 본연의 재미인 쏘고 던지며 찌르는 기본기가 훌륭합니다. 이 과정에서 몰입감을 방해하는 과장된 액션, 탱탱볼 버금가는 수류탄의 탄력, 반동 없는 무심한 총기류의 리액션은 분명 지적할만한 단점이지만 내 캐릭터가 눈앞에서 뼈와 살이 분리되고 피와 살점이 흩날리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불만과 불편함 보다 분노와 복수의 욕망이 먼저 솟구쳐 좀더 하고 싶은 욕구를 끓게 만드니까요. 요컨대 ‘솔저오브포춘 온라인’은 임무와 생존 사이에서 널뛰기하는 피 말리는 전투 체험장이 아니라 물감탄 대신 총알을 집어 넣은 서바이벌 ‘스포츠’ 느낌의 게임입니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는 플레이어가 조정하는 캐릭터가 상대방을 죽일 때마다 휘파람을 불거나 감탄사를 내뿜는 까닭에 죽음에 대한 비장함보다 행위의 카타르시스를 먼저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더군요.
물론, 이런 시각적인 즐거움이 ‘솔저오브포춘’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진 않습니다. 연출은 말 그대로 행위에 대한 보상일 뿐이죠. 진짜 차별점이라고 한다면 빠른 액션과 전투 커스터마이징의 자유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낌을 말씀 드리자면 ‘아이폰’의 첫 개봉기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이 영리한 게임은 미니사전 두께의 설명서를 던져주는 대신 몇 번 만지면 대충 감이 오는 직관적인 즐거움에 택했습니다. 일반FPS게임이 보여주는 의례 그래야만 하는 클리셰를 좇기보다는 이용자의 취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쪽을 선택한 것이죠. 그래서 돌격병, 저격변, 중화기병으로 대변되는 맞춤형 병과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총기와 방어구를 착용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원하는 병과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이런 특징 덕분에 주무기와 방어구를 던져버리고 오로지 스피드로 승부를 보는 이른바 ‘닌자’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적 베이스를 휘젓고 돌아다니며 짱 박힌 저격병의 뒷통수에 대검을 박아 넣는 암살 플레이는 그저 장난 삼아 한번쯤 해보는 변태 짓이 아니라 엄연히 킬 수를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병과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밸런스도 걱정을 좀 덜었습니다. 처음엔 저격총을 쏘면서 대미지가 지나치게 강한 게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캠핑 할 때마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대검에 불규칙하게 해체되는 캐릭터를 보고 있자니 ‘괜한 걱정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1차 CBT의 느낌을 압축해서 말씀 드리면 ‘쉽다’, ‘빠르다’, ‘잔인하다’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앞에 두 가지는 캐주얼 FPS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마지막 하나로 원작의 느낌을 살렸으니 어찌 보면 원작 IP 게임이 취해야 할 최적의 포지션을 잡은 셈입니다. 단, 지나치게 가벼운 전투 느낌이 진지한 FPS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취향’이라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오랜만에 기대를 걸어 볼만한 게임이 나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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