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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스모컵, 마사회·스모협회·캡콤이 단체로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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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화면만 봐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재팬 스모컵'

마와시(まわし, 샅바)를 두른 거구의 스모선수가 ‘아도겐’을 날리는 류와 함께 말을 달린다고 상상해보라. 기자가 무슨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었냐고? 그런 것이 아니라, 최근 출시된 일본 웹게임 신작 ‘재팬 스모컵’에서 실제로 펼쳐지는 참상이다.

이 게임은 일본 마사회와 스모협회, 액션명가 캡콤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탄생했다. 대체 누구 머리 속에서 이런 발상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결과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료 웹게임이므로 관심이 있다면 청심환을 한 알 먹고 공식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즐겨보기 바란다.

기자가 된 후 리뷰하는데 이만큼 용기가 필요한 게임은 처음이었다. 메인화면부터 정신이 아득해지며 ‘당장 여기를 빠져나가야겠어’라고 본능이 소리친다. 마와시 하나 달랑 걸친 스모선수가 ‘스트리트 파이터’의 주역들과 함께 역동적으로 말을 모는 광경이라니. 어제까지만 해도 어디 가서 이런 소릴 했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 아무리봐도 실존인물로 보이는 스모선수들, 어쩌다 이런

게임에 돌입하면 육중한 스모선수 셋 가운데 한 명을 고를 수 있다. 사진이 올라있는 것으로 보아 실존인물인 듯 한데, 솔직히 그냥 스모선수 A, B, C로 보인다. 누구를 골라도 게임 내 캐릭터는 다 똑 같은 삼각형 헤어스타일에 스모선수다. 심지어 타고 있는 말도 갈기를 삼각형으로 말아 올렸다. 알아보니 이는 오오이죠(大銀杏)라고, 권위 있는 선수만이 할 수 있는 귀한 헤어스타일이란다.

다음으로 대전 상대를 골라야 한다. 1회전에선 ‘류’, ‘달심’, ‘블랑카’가 나오며, 2회전에선 ‘춘리’, ‘베가’, ‘혼다’, 3회전에선 ‘베가 장군’, 끝으로 숨겨진 보스 ‘권의 극에 달한 자, 고우키’가 있다. 물론 이들도 정상은 아니라, 가령 ‘류’는 말도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나오며, ‘혼다’의 말은 가부키 화장을 했다. 따뜻한 인도남자 ‘달심’은 아예 코끼리를 탔다. 저기, 이거 일단은 경마인데…


▲ 셋 중 누구를 골라도 똑같다, 플레이어가 스모에 조예가 깊다면 모를까 


▲ 점수를 올리다보면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가 해금되긴 한다


▲ 저기, 일단은 경마인데 최소한 말은 타고 나와야지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본격적인 게임을 즐겨보자. ‘재팬 스모컵’은 스모선수와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들이 펼치는 경마를 간단한 리듬게임으로 풀어냈다. 선수들이 말을 달리는 광경 아래로 2개 라인이 놓여있는데, 각각 키보드 상(↑)과 하(↓) 키에 대응한다. 배경음악 박자에 맞춰 오른쪽에서부터 밀려오는 원형 노트를 판정구간에 다다랐을 때 눌러주면 된다. 롱노트도 나오는데, 보기에는 꾸욱- 눌러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연타를 해야 한다.

배경음악은 대전 상대의 ‘스트리트 파이터’ 속 테마곡이다. 차분히 듣다 보면 어릴 적 오락실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날 법도 한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워낙 충격적이라 거의 귀에 안 들어온다. 노트를 성공적으로 공략하면 신이 난 스모선수가 갑자기 말 위에서 양쪽으로 다리를 들어올리질 않나, 경기장 뒤편에 거대한 불상이 요염하게 누워있는 등 도저히 게임에 집중할 수가 없다.


▲ 코끼리만 무시할 수 있다면 의외로 멀쩡한 경마, 아니 리듬게임이다


▲ 롱노트는 누르기가 아닌 연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말자


▲ 저 요염한 불상은 아무래도 '사가트' 스테이지에서 본 것 같다

경주가 중반에 접어들면 위기에 몰린 상대가 온갖 기술을 쓰기 시작한다. 등 뒤로 ‘아도겐’을 날려 가속하는 것은 기본이고 베가는 ‘사이코 크러셔’로 말과 함께 날아가질 않나, ‘블랑카’는 아예 굴러간다. 후방으로 파동을 쏘아 추진력을 얻는 것까진 이해가 되는데, 말 위에서 백열장을 쓴다고 빨라지는 이유는… 기자도 모르겠다. ‘고우키’는 아예 말 위에서 선풍각을 돌아버리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들이야 원작에서도 초인으로 등장하니 다소 과장된 연출도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실존인물인 스모선수도 각종 비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거구의 스모선수가 손에서 빔을 마구 난사하며 말을 모는 광경을 떠올려보라. 기술 중에는 말에서 내려서 직접 몸으로 밀며 엄청난 속력을 내는 것도 있다. 아니 그럴 거면 대체 말은 왜 타는 거야…


▲ 저, 저기요? 말과 함께 날아오르는 '베가'의 '사이코 크러셔'


▲ 말 위에서 선풍각을 도는데 가속이 붙는다, 역시 권의 극에 달한 자


▲ 이 순간 그는 정말로 빨랐다, 애초에 말은 왜 타는걸까

끝으로 경기 내내 쉬지 않고 상황을 중계하는 해설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충격적인 게임에 쓰이기엔 해설이 쓸데없을 정도로 훌륭한데, 각 캐릭터가 기술을 쓸 때마다 “아아~ 분명히 사용하려 한다아아아아! 저것이이! 그 이름 높은~ 베가 장군의 사이코오오~ 크러셔인가아아!”라는 식으로 맛깔스러운 중계를 해준다. 설령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해설자가 무언가 엄청나게 달아올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단순히 엽기 코드에 집중한 게임 같지만, 나름대로 적절한 난이도까지 갖추고 있다. 그간 여러 리듬게임으로 단련된 기자도 수많은 노트가 화면을 가득 메우는 ‘고우키’와의 일전에선 수차례 패배했다. 참고로 ‘고우키’가 필살기 ‘순옥살’을 쓸 때 등에 천(天)이 아닌 마(馬)가 나타나니 유심히 살펴보자. 게임을 모두 클리어하면 ‘울트라 스트리트 파이터 4’에서 쓸 수 있는 칭호 코드를 준다.


▲ 단순한 괴작이라고 얕보지 마시라, '고우키'와의 최종 결전이 상당히 어렵다


▲ 어이, 트레이드마크인 등짝에 천(天)을 마(馬)로 갈아버렸어

‘재팬 스모컵’은 어떻게 이런 기획이 통과됐을까 싶은 괴작이다. 그러나 하는 이의 심기가 불편하기는커녕, 너무나 유쾌하고 즐겁다. 분명 본능은 ‘이건 아니야’라고 외치지만, 환각에 취한 듯 그저 웃고 즐기면 그만이다. 만약 기자가 결과물을 접하지 못하고, 그저 마사회와 스모협회, 캡콤이 협업을 했다고 들었다면 지루한 홍보성 게임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게임은 모든 이의 생각을 아득히 초월했다.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문화가 몹시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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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기사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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