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산업

[NDC] 넥슨 이승찬 개발 본부장 ‘평생 게임 만들고 살기’

/ 1

"게임이라는 형태의 오락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것입니다."

넥슨의 이승찬 개발 본부장은 오늘(24일)부터 닷새 동안 진행되는 ‘NDC2010(넥슨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평생 게임 만들고 살기’라는 주제의 키노트를 발표하며 위와 같이 언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과거 자신이 게임을 개발하며 겪은 일들을 사내 젊은 개발자들에게 들려주며 ‘한국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것’, ‘게임 개발자로써 살아가는 법’ 등 자신의 개발 철학과 가치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과거 이승찬 개발 본부장이 만든 게임은 신기할 정도로 대박을 일궈냈다. ‘퀴즈퀴즈’, ‘크레이지 아케이드’, ‘메이플 스토리’ 등 그의 손을 거쳐 간 게임은 이름만 들어도 ‘아하’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게임들이다. 그는 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게임을 만들고 싶다며 앞으로 ‘성공’에 무조건 얽매이지 않겠다고 했다.

▲ 넥슨 신규 개발실의 이승찬 본부장


게임 나부랭이나 만들겠다고?

“제가 개발을 시작했던 90년대에는 게임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어요. 사회적 인식도 좋지 못했고 부도덕하다는 말까지 나왔죠. 게임 나부랭이나 만들 거냐는 말이 듣기 싫어 지인들에게 핸드폰 회사 다닌다고 거짓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게임이 산업화되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늘어나자 인식도 많이 변화한 것 같아요.”

본론에 앞서 이승찬 개발 본부장은 게임 업계의 발자취를 먼저 언급했다.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면 굶어도 좋아’란 마인드가 반드시 필요했던 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고 취미가 산업으로 발전된 00년대 초반, 경쟁 심화로 산업이 재편된 00년 후반까지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며 국내 게임 업계의 과거와 현재를 명확히 꿰뚫어봤다.

그는 90년대 후반에서 00년대 초반까지를 ‘대박 신화가 탄생한 시기’라고 표현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IMF 이후 벤처열풍이 불면서 게임이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산업으로 발전해 ‘게임 만들기가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졌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시기에 많은 게임 회사가 설립됐습니다. 대박이 터지고 직원 수가 몇 백이나 되는 거대 회사로 거듭난 곳도 많죠. 그만큼 상장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병역특례제도까지 도입되면서 이공계 고급 인력들이 유입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현재의 게임 산업이 예전과 달리 사회적 인식도 좋아지고 개발자 처우 현실화로 인해 기성세대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회사간 경쟁이 심화되자 개발자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직업 안정성을 추구해 도전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고급 인력 수급의 한계가 있음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 이승찬 본부장의 대표 작품 `메이플 스토리`


과거 이야기 - 취미삼아 만든 게임이 대박을 쳤네

이승찬 개발 본부장은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다 연승을 하는 바람에 의자로 맞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게임광이었다. 이런 그가 처음 게임을 개발한 것은 놀랍게도 초교 3년 시절이었다. 당시 게임이 너무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선물해준 Basic PC에서 게임이 돌아가지 않자 할 수없이 본인이 연구해 직접 만들어보게 됐다는 것. 그는 그때부터 게임 만드는 데 취미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대학시절에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에 1년 반 동안 원룸에 틀어박혀 2개의 게임을 만들었다. 이 노력 끝에 돌아온 건 겨우 200만원. 좌절한 그는 게임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공부를 위해 유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진 못했다. IMF가 터지는 바람에 유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 그는 할 수없이 군대부터 해결하자란 생각에 병역특례를 알아보다 우연히 넥슨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넥슨 사장님과 면담을 했는데 10분 만에 특례를 권유하시더라고요. 2개의 게임을 만들었던 전적 때문이었죠. 일을 하며 회사에서 시킨 것은 아니고 취미 삼아 1개의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게 기술이 발전하다보니 생각보다 물건이 되더라고요. 결국 그 게임은 외부에 공개됐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큼 흥행했습니다. 바로 퀴즈퀴즈였죠.”

말 그대로 ‘퀴즈퀴즈’는 그가 취미삼아 만들어본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퀴즈퀴즈’를 보며 ‘게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써 확립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그만큼 ‘퀴즈퀴즈’의 성공은 그에게 큰 충격이자, 값진 선물이었다.

특례 말기 그는 넥슨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1개의 게임을 더 만들었는데 바로 ‘크레이지 아케이드’다. 이 또한 기대 이상으로 큰 성과를 거두자 그는 다급해졌다.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게임 만드는 일’을 충분히 업으로 삼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느리게 돌아가는 국방부 시계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그는 하루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지금도 인기, `퀴즈퀴즈`는 `큐플레이`로 서비스되고 있다


과거 이야기 - ‘메이플 스토리’ 만들고 회사를 매각하게 된 이유

특례가 끝나자 그는 바로 2명의 동료를 모아 회사를 설립했다. 바로 위젯이다. 자본금 마련을 위해 외부 용역을 했지만 턱없이 부족해 결국 차입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기술보증기금에서 빌리고 집을 담보로 빌리고 친구 및 지인에게 손을 벌렸다. 나이 스물여섯. 그는 어느새 4억의 빚을 진 대한민국 청년이 됐다. 모두가 그를 걱정했다.

하지만 ‘메이플 스토리’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이 모든 것은 해결됐다. 시작부터 큰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인기 게임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서비스 두 달 만에 빚을 모두 청산했다.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스물여섯 청년에게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너무 뜻밖의 성공이라 그것이 오히려 불안했던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의 성공은 솔직하게 충격이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거든요. 오히려 게임 만드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의 구덩이만 더 깊게 하더라고요. 당시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결국 그는 ‘메이플 스토리’가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이 채 안됐을 때 회사를 넥슨에 매각했다. 게임 만드는 일, 즉 직업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로 유학을 갔지만 공허함이 몰려와 마음을 잡지 못했다. 어쩔 수없이 일본의 넥슨 지사에 입사하며 다시 게임계로 돌아왔다.

하지만, 매일 밤 찾아오는 박탈감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생각해보면 억울했다. 본인이 만든 게임이 시간이 지날수록 몇 배씩 더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회사를 나와 시메트릭 스페이스를 설립했다. 그리고 ‘텐비(Tenvi)’를 만들었다.

“텐비는 목표설정을 잘못한 게임이었어요. 게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보다 메이플 스토리의 성공에 눈에 뒤집혀 엉뚱하게 설계를 했던 것입니다. 내 집을 파니 집값이 올라, 옆집을 사는 식이었죠. 정신 차리고 보니 게임은 메이플 스토리와 흡사하더라고요. 결과는 쫄딱 망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부끄러웠습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방황했죠.”

‘텐비’로 충격을 받은 그는 구조조정을 하고 다시 회사를 넥슨에 넘겼다. 이후 시골에서 조용히 지냈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만큼 힘든 시기였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아쉬움 하나가 그를 자극했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게임을 만드는 일이었다. 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게임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는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모든 자존심을 다 버리고 다시 한번 넥슨에 입사한다. ‘평생 게임 만들고 살기’란 각오와 함께였다.

▲ `텐비`는 피망을 통해 지금도 서비스되고 있다


30/5/5/20의 개발 철학, 평생 게임 만들고 살기!

그는 현재 신규 개발실의 본부장이다. 작년 입사 당시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수도 없이 물었다고 한다. 왜 다시 넥슨으로 돌아온 거냐고. 그것도 직원 신분으로. 이럴 때마가 그는 “평생 게임 만들고 살아보려고 들어왔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망하다 보면 언젠가 성공도 나올 것 같아서. 그래서 돌아왔다는 거다.

그는 개발자로써 인생 목표를 ‘30/5/5/20’이라고 말했다. 의미는 간단하다. 평생 30개의 게임을 만들고 그 중 5개는 대박, 5개는 본전, 그리고 나머지 20개는 쫄딱 망한다는 거다.

“자본이 축적되고 기술이 보급되면서 게임 만들기가 쉬워졌습니다. 여러 게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확률적으로 봐도 대부분의 게임은 망하는 것이 맞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인 거 같습니다. 10개 만들면 하나도 안 되는데, 20개 만들면 2개 된다는 말도 있죠.”

결국 도전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XL 게임즈의 송재경 대표를 존경한다고 했다. 한국 게임 업계의 역사가 짧다 보니 ‘평생 게임 만들기’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 때문이다.

“송재경 대표님은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을뿐더러 국내에 온라인 게임을 정착시킨 분이죠. 앞으로 10년만 더 하시면 평생 게임 만들며 살기를 실현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승찬 개발 본부장은 후배 개발자들에게 ‘계속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리스크와 리턴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순수하게 접근하라는 것. 게임 만들기를 직업으로 ‘재정립’하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라는 것.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좌절하지 말라는 것.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라는 것. 조금 더 긴 안목으로 내다보라는 것. 그리고 ‘30/5/5/20’과 같은 개발자로써 인생 목표를 세우라는 것까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메이플스토리 2003년 4월 29일
플랫폼
온라인
장르
MMORPG
제작사
위젯스튜디오
게임소개
'메이플스토리'는 귀여운 2D 그래픽을 기반으로 개발된 횡스크롤 MMORPG이다. '메이플스토리'는 판타지 뿐 아니라 현대, SF 등 다양한 세계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세계관을 채택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게임에서 만... 자세히
게임잡지
2005년 3월호
2005년 2월호
2004년 12월호
2004년 11월호
2004년 10월호
게임일정
2024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