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게임을 자주 즐기는 이들에게 키보드는 중요한 관심사다. 빠르고 정확한 키 입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게임의 세계에서, 이용자의 날랜 손놀림을 놓침 없이 받아낼 키보드란 곧 승리와 직결되는 일이니 말이다. 유명 프로게이머가 들고나온 키보드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일단 장비는 동등하게 맞추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좋은 키보드를 원하는 것은 게이머뿐만이 아니다. PC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는 요즘, 고급 키보드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꼭 좋은 키보드가 업무능률 향상에 이바지한다고 단정짓긴 어렵겠지만, 온종일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 일상에서 손가락의 아픔은 덜해지지 않겠는가. 타자 실력까지 보정 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만족이다.
하지만 처음 자신만의 키보드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에게 키보드의 세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조금 깊숙이 들어가면 멤브레인, 기계식, 팬터그래프 등 종류부터 한둘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 끝에 좋다는 키보드를 찾아보면 또 가격은 왜 이리 비싼지. 근처 마트만 가도 1만 원이면 충분히 구매하던 키보드가 여느 PC 부품 못지않게 몸값이 뛴다.
과연 어떤 키보드를 구매해야 우리 손에 착 달라붙을까? 이번 시간에는 마우스와 더불어 우리 삶에 가장 스킨십을 많이 하는 하드웨어, 키보드의 종류에 관해 살펴보고 사용유형별 추천 키보드를 정리해봤다. 아직 어떤 키보드가 자신의 ‘손맛’을 충족할지 모르는 소비자라면 앞으로 이어지는 기사를 통해 자신만의 키보드를 찾아보자.
◆ 멤브레인부터 기계식까지… 키보드의 종류
사용유형별 추천 키보드를 소개하려면 먼저 키보드의 종류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보통 키보드는 크게 멤브레인과 기계식, 팬터그래프 형식으로 정리된다. 전류를 흘리는 방식이나 스위치의 형태 등을 세세하기 따지면 좀 더 복잡해지지만, 현재 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키보드의 종류를 아주 단순하게 나눴을 때다.
이 밖에 고무로 되어 둘둘 말아 쓰는 플렉시블 키보드나 자판 영상을 레이저빔으로 쏘는 프로젝션 키보드 등이 있지만 흔히 접하는 제품은 아니다. 멤브레인 형식의 개량형이라 할 수 있는 플런저 키보드가 최근 한 축을 이루는 정도다. 우선 멤브레인과 기계식, 팬터그래프, 플런저 키보드의 개념과 구별법을 간략히 정리했다.
1. 멤브레인 키보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멤브레인(Membrane) 키보드는 탄력성 있는 얇은 막이 겹겹으로 구성된 형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키를 누르면 바로 밑 고무판이 눌리고, 눌린 고무판이 멤브레인 회로막이 맞닿게 해 전기 신호를 발생하게 하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쉽다. 아예 고무판에 접점을 새겨 키를 누르자마자 회로와 맞닿는 구조도 멤브레인 방식이다.
참고할 부분은 멤브레인 키보드가 채용하는 고무판 가운데 러버 돔(rubber dome)에 대한 이해다. 러버 돔은 스프링 대신 이용하는 키 구동장치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멤브레인 키보드의 고무판을 일체형 러버 돔 형태로 깔아놓는 형태가 흔해, 멤브레인 키보드는 곧 고무판(러버 돔)이 있는 키보드로 뭉뚱그려 표현되는 일이 많다. 정확히 따졌을 때 꼭 러버 돔이 있는 키보드가 멤브레인 키보드는 아니다.
2. 기계식 키보드
기계식 키보드는 ‘스프링’을 이용해 키를 누르는 방식의 키보드라고 이해하면 된다. 키를 누르면 키의 금속판이 기판에 닿으며 전기 신호를 발생하는 구조다. 여기서 키의 복구는 스프링의 힘으로 이뤄지며, 모든 키 하나하나에 스위치(슬라이더)가 필요하다 보니 몸값이 비싸다. 키캡을 벗겨 스위치의 형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손쉽게 기계식 키보드를 판별할 수 있다.
기계식 키보드의 핵심은 스위치다. 스위치의 구조와 장착한 스프링의 강도에 따라 기계식 키보드의 종류를 나눈다. 청축, 갈축, 흑축, 적축 등의 스위치 방식이 있으며 보통 클릭, 넌클릭, 리니어 등으로 구분하는데, 스위치의 복원력에 대한 표현이다. 예컨대 키압이 높고 클릭했을 때 ‘찰칵’ 소리가 나는 청축은 클릭, 부드럽게 쑥 눌리는 흑축/적축은 ‘리니어’다. 청축보다 소음이 적은 갈축은 ‘넌클릭’으로 불린다.
흥미로운 점은 기계식 키보드가 최근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기계식은 1970년대부터 만들어진 오래된 방식이나, 90년대 등장한 ‘최신식’ 멤브레인 키보드의 폭발적인 보급으로 오히려 기계식을 낯설게 느끼는 소비자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우수한 키감이 조명받고, 중저가형 제품이 늘어나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3. 팬터그래프 키보드
노트북 이용자에게는 팬터그래프 키보드가 익숙할 것이다. 얇은 키캡이 눈에 띄는 키보드로 멤브레인 키보드와 기본적인 방식은 비슷하나 키캡 아래 X자 모양의 지지대를 갖춘 점이 다르다. 이 X자 모양의 지지대가 접었다 펴지며 키를 눌렀을 때의 압력을 바로 밑 러버돔에 전달, 기판과 접촉하게 해 전기 신호를 발생하는 구조다.
팬터그래프 키보드는 무엇보다 외형에 초점을 맞춘 키보드라고 보면 된다. 스위치의 강력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기계식 키보드에 비하면 X자 지지대의 내구성이 약할뿐더러, 키를 누르는 느낌이 가벼워 키감에서 썩 좋은 평가를 듣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날씬한 외형을 뽐내고 예쁘게 꾸민 제품이 많아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로부터 반응이 좋다. 맥북 이용자에게 익숙한 아이솔레이션 키보드도 큰 범위에서 팬터그래프 키보드의 개량형에 속한다.
4. 플런저 키보드
플런저(Plunger) 키보드는 최근 주목받는 키보드 중 하나다. 기존 멤브레인 방식을 개량했다고 설명할 수 있는데, 멤브레인이 키캡과 고무판, 멤브레인 스위치의 조합이라면 플런저 키보드는 여기에 ‘플런저’라는 특수한 구조물과 하우징 프레임을 추가하고 플런저 구조물에 맞게끔 설계된 러버돔을 채용했다. 기본바탕은 멤브레인이나 구조가 복잡해진 셈이다.
플런저 키보드는 마치 기계식 키보드와 같은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플런저 구조물과 하우징 프레임이 키감은 물론 반발력을 보강한 덕이다. 스프링과 걸쇠에서 나오는 기계식 특유의 소음마저 비슷하다니 기계식 키보드를 써본 적 없는 이용자라면 플런저 키보드와 구별하기 어려울 일이다.
◆ 손맛에 따라 환경에 따라, 사용유형별 키보드 추천
무난한 것이 제일? 부담 없는 키보드를 원한다면 - 멤브레인 키보드
멤브레인 키보드의 장점은 가격 대 성능 비다. 멤브레인 키보드의 출생성분 자체가 값비싼 기계식 키보드의 대용이다 보니, 단가가 저렴하고 제조 방식이 간단해 다른 키보드보다 값싸다. 저렴한 제품은 단 돈 3천 원이면 충분히 구매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기능이나 완성도 면에서 고급화된 제품은 10만 원대까지 있는 등 가격대가 다양하다.
단점은 역시 ‘키감’이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일이지만, 고무판의 탄성을 활용하는 구조적인 한계상 기계식 키보드의 키감은 흉내 내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또 고무의 품질이 제품 수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저가 제품을 구매하면 1년 만에 키감이 뻣뻣해지거나 잘 눌리지 않는 일이 흔하다. 키보드가 소모품으로 인식되는 이유 중의 하나기도 하다.
반대로 멤브레인 키보드를 기계식보다 선호하는 소비자도 있다. 바로 키를 누르는 소음이 적기 때문인데, 오히려 여럿이 쓰는 사무실에서는 기계식 키보드보다 유용한 부분이다. 또 일부 멤브레인 키보드는 고무판을 기판까지 밀봉하는 구조를 통해 ‘방수’ 효과도 갖춰 PC방 등에서 주로 찾는다.
장비는 이미 프로게이머! 우수한 키감을 원한다면 - 기계식 키보드
경쾌한 타자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이용자에게 추천할 키보드는 단연코 기계식이다. 어떤 스위치를 쓰냐에 따라 조금씩 키감이 다르지만, 멤브레인 등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차이 나는 구분감, 반발력 등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고무가 아닌 스프링에서 오는 특유의 손맛은 기계식 키보드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이유다.
하지만 다른 키보드들보다 비싼 몸값이 기계식 키보드 구매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웬만한 보급형 제품도 5만 원 이상은 기본적으로 넘기며, 체리사 스위치를 채용하거나 부가기능이 다양한 고급 제품은 10~20만 원을 훌쩍 넘긴다. 키보드 입문자라면 부담이 느껴질 만한 값이다.
또 기계식 키보드는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넌클릭 스위치를 채택한 키보드가 소음이 적다지만 멤브레인 키보드 등보다 훨씬 소음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사무실 등에서 기계식 키보드로 타자한다면 눈총 좀 받을 터다. 물론 소음마저 매력으로 느낀다면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덧붙여 기계식 키보드는 스위치 내구성이나 교체 편의성도 우수하다.
“난 외모 지상주의” 보기 좋은 키보드가 쓰기도 좋다면 - 팬터그래프 키보드
팬터그래프 키보드는 노트북용으로 주로 쓰이지만 데스크탑 제품으로도 인기가 나쁜 편은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 팬터그래프 키보드가 내세우는 장점은 무엇보다 유려한 외모. 키캡이 얇은 구조적인 특징 덕에 몸체가 날씬하고 가볍다. 밖에 들고 나가기에는 팬터그래프 키보드가 묵직한 기계식 키보드보다 미관상으로나 무게로나 훨씬 적합할 것이다.
더불어 가벼운 키감은 키를 누르는 손가락의 부담도 덜하다는 얘기가 된다. 오히려 장시간 타자를 했을 때 여느 키보드보다 손에 무리가 없는 키보드가 팬터그래프 키보드일 수 있겠다. 대신 키를 누르는 느낌, 즉 손맛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말이다. 또 키를 누르는 구분력이 적다 보니 고속 타자 시 오타가 나는 일도 흔하다. 시장에 형성된 팬터그래프 키보드의 가격대는 2~3만 원 대가 많다.
저렴한 가격으로 기계식 키보드의 느낌을 맛보고 싶다면 - 플런저 키보드
멤브레인 키보드로는 영 손맛이 부족한데 기계식 키보드의 값이 부담스럽다면 플런저 키보드가 적당하다. 현재 2~3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으며 인기가 높아진 만큼 다양한 형태로 출시되고 있어 입맛대로 고르기도 좋다. 기계식 키보드를 구매하기 전 입문용으로 알맞은 키보드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플런저 키보드의 키감은 설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기계식 방식 중 적축이나 흑축에 가까운 느낌으로 묘사되고는 한다. 실제로 최근 등장하는 플런저 키보드는 적축, 흑축, 청축 등으로 구별되어 나올 정도다. 어느 정도 쫀득한 키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플런저 키보드 이용자들이 내놓는 평가. 하지만 기계식 이용자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키감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래도 멤브레인 방식보다 내구성, 동시입력 지원 등에서 우월하므로 주목할만해 보인다.
다나와 테크니컬라이터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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