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잇 최용석] 메인보드(마더보드)는 CPU와 메모리, 그래픽카드 등 핵심 부품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PC로서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필수 부품이다. 특히 PC의 용도에 따라 메인보드가 결정되고, 메인보드에 맞춰 전체적인 구성이 결정되기 때문에 처음 선택이 상당히 중요한 부품이기도 하다.
PC의 ‘기본’인 만큼 메인보드 시장 경쟁은 상당히 치열하다. 과거에는 브랜드와 가격에 따라 품질과 성능 등이 천차만별이어서 제품간 차별화가 쉬웠지만, 기술이 발달한 최근에는 그 격차도 많이 줄어들었다. 10만원대 이하 보급형 제품들도 안정적인 성능에 관리만 잘하면 3년 이상을 무난하게 쓸 수 있을 정도로 상향 평준화됐다.
요즘 메인보드는 단순히 성능과 호환성, 안정성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욱 세분화된 오버클럭 기능을 제공하거나, 게임에 관련된 부가기능을 제공하는 식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차별화를 꾀한 제품들이 크게 늘었다. 그 중에서도 요즘 메인보드들이 공통적으로 신경을 쓰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음질’이다.
PC용 사운드카드 시장을 바꾼 내장사운드
과거 메인보드의 기능이 단순할 때만 하더라도 ‘사운드’ 기능은 옵션이었다. PC 사운드의 시초였던 ‘애드립’을 시작으로 ‘사운드 블래스터’ ‘옥소리’ ‘프로디지’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무렵까지 PC에서 각종 사운드를 들으려면 사운드카드 장착은 필수였다.
▲ 사운드카드는 PC에서 사운드를 듣기 위한 필수 장치였지만 내장사운드의 도입으로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됐다. (사진=다나와)
하지만 ‘AC97’로 대표되는 내장사운드 규격이 도입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내장사운드만으로도 PC의 각종 사운드를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따로 사서 달아야 하는 사운드카드를 반드시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사운드카드 시장은 음질을 중요하게 따지는 소수의 마니아나 전문가들을 위한 시장으로 크게 축소됐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내장 사운드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음질’이다. 구조적으로 온갖 전기 부품과 칩셋이 뒤엉킨 메인보드의 한 켠에 자리잡다 보니, 음향기기에 치명적인 각종 전기 노이즈가 그대로 유입되어 실제 들리는 음질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 내장사운드는 공짜로 PC에서 사운드를 들을 수 있게 해줬지만 노이즈로 인해 '음질'은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물론 초창기 내장사운드가 최소한의 기능만 제공하고, 대부분의 사용자들도 음질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소수의 마니아들을 제외하고는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전문 오디오기기와 CD 등을 이용해 음악을 감상하는 것 보다 PC에서 다운받은 MP3 또는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또 고화질/고품질을 추구하는 HD(High Definition) 시대가 도래하면서 고화질에 어울리는 고음질 또한 요구되기 시작했다.
물론 내장사운드 칩셋 제조사들도 음질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내장사운드 칩셋의 스펙만 보면 과거의 어지간한 고급 사운드카드를 뛰어넘는 신호 대 잡음비(SN비)를 자랑하며, 5.1채널 출력은 기본에 최대 8.1채널 출력까지 기본으로 제공한다.
▲ 최근 내장 그래픽의 '스펙'만큼은 별도의 사운드카드가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노이즈 문제는 여전히 메인보드 제조사들의 커다란 숙제다. 아무리 좋은 칩셋을 써서 출력 음질을 향상시켜도 노이즈가 유입되면 싸구려 칩셋 수준의 음질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음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오디오 마니아들이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별도의 사운드카드나 외장 DAC 등을 사용해 이런 문제를 피해왔지만, 별 생각 없이 내장사운드를 써오던 대다수의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나오는 대로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질적인 음질 개선을 위한 제조사들의 노력
하지만 최근 출시되는 메인보드들을 보면 그 어느 때 보다 제조사들이 ‘음질 개선’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노이즈 유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운드 칩셋을 금속 쉴드(차폐재)로 덮는 것부터, 아예 메인보드 기판 설계단계에서 오디오 부분과 그 외 부분이 물리적으로 분리되도록 만드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 PCB 기판 차원에서 내장사운드 부분이 물리적으로 구분되도록 만드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그런가 하면 오디오 전용 캐패시터같이 고급 부품을 대거 사용하거나, 음색에 영향을 끼치는 OPAMP를 사용자 임의로 교체해 튜닝할 수 있게 만드는 등 구성과 구조 자체를 별도의 사운드카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헤드폰/헤드셋 사용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외장형 DAC 등이 주로 제공하던 ‘헤드폰 앰프’ 기능까지 갖춘 메인보드도 나오고 있다. 사운드카드 전문 제조사와 협력해 각종 이펙트나 음장효과 등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 전문 오디오용 부품을 대거 적용하거나 헤드폰 전용 앰프를 내장하는 등 내장사운드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애즈락, 기가바이트 홈페이지)
이같이 메인보드 제조사들이 ‘음질 향상’에 그 어느 때 보다 집중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음질’이 메인보드의 경쟁력 향상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기존의 차별화 요소였던 오버클럭 기능이나 확장성, 호환성, 안정성, 내구성 등의 요소는 갈수록 하드웨어 전문 지식이 부족한 요즘 소비자 기준으로는 거의 뜬구름 같은 얘기에 불과하다. 반면 직접 귀로 들리는 ‘음질’은 전문 지식소비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요소다.
요즘 고급 TV들이 ‘UDH 해상도’나 ‘120Hz 주사율’같은 전문 지식이 필요한 요소보다 ‘커브드 디스플레이’ ‘초대형 화면’ ‘화질 및 색감’ 등 직접 눈에 보이고 이해하기 쉬운 요소를 중심으로 마케팅에 나서는 것과 같은 원리다.
▲ 치열한 메인보드 시장에서 '음질'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진=다나와)
PC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등장 이전부터 가장 널리 쓰이던 멀티미디어 콘텐츠 소비 기기였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그 역할을 많이 빼앗겼지만, 여전히 전체 멀티미디어 시장에서 PC는 ‘생산’과 ‘소비’ 양쪽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사운드가 중요한 게임 시장에서 PC의 존재감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PC의 가전제품화는 지금도 현재 진행중인 셈이다.
따라서 하드웨어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메인보드 시장에서 제조사들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는 ‘음질’과 같은 보편적인 것이다. 앞으로 메인보드 마케팅에 ‘음질’이 중요시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용석 기자 rpch@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