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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게임중독법 속내보기④ "컴퓨터 없이 잘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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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게임을 술과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4대중독법에 대한 논란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이 왜 나왔으며, 어디를 뿌리로 두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자세히 거론된 적이 없습니다. 이에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와 4대중독법의 정체를 집중적으로 파헤쳐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4편에 걸쳐 진행된 '게임중독법 속내보기' 마지막 편은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계층이 하나로 뭉치게 된 이유를 짚어보는 내용입니다. 학부모와 종교계, 정치권......따로 보면,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들이 '게임 규제'라는 한 가지 주제로 뭉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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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게임의 부작용에 대해 명확한 근거 없이 ‘공격하는’ 사람들, 단체들에 대해서 조사를 하다가 깨달은 것이라면 그 계층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학부모계가 있습니다. 온라인이 아닌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 노는 어린 시절을 보낸 부모들은 아이가 게임 안에서 학교 친구들과 대화하고,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 방영된 EBS의 다큐멘터리, ‘초등성장 보고서’에서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다룬 편은 부모들은 자신들이 성장한 2, 30년 전의 놀이문화를 아이들이 그대로 물려받길 기대하거나, 그 시간도 아깝다며 공부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미시적으로 들어보면, 학부모계는 교육 관련 단체들과 학부모 단체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육 관련 단체들은 소위 진보적인 단체로 손꼽히는 전교조부터, 보수적이라는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을 아우르고 있으며, 이들은 본인이 학교에서 보는 다양한 실례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되어 있다’는 주장에 모두 공감합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종교계입니다. 기독교의 일부 종파가 바라보는 대중문화는 타락한 것이며, 사탄의 도구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청소년은 분별력이 떨어지므로 대중문화를 접하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시작합니다. 따라서 청소년 보호라는 논리에 맞춰 음란성 폭력성을 조장하는 것으로 판단된, 헤비메탈, 뉴에이지, TV, 만화, 게임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미디어들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입니다.


정치권에서는 각계각층의 확고한 목소리를 ‘표(vote)’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정치권은 이들의 주장에 동조해, 학부모계와 종교계에서 만들어낸 논리들을 그대로 활용해 입법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임을 놀이도구이자 친교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청소년 문화에 몰이해한 학부모계와 청소년 보호를 앞세워 게임을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를 전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계, 그리고 그들의 표가 필요한 정치계의 삼각구도가 완성되는 것이죠.


이렇게 완성된 구도에 각 단체가 이권을 노리고 참여합니다. 우선 개신교계 인터넷중독치유센터로는, 권장희 소장의 놀이미디어교육센터와 서울시가 흥사단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 아이윌센터가 대표적인 기관입니다. 여기서 흥사단은 2004년에 YMCA, YWCA와 함께 처음 셧다운제를 제도적으로 추진한 단체들 중의 하나죠. 이 치유센터들에 대해서는 게임중독법을 발의한 신의진 의원도 ‘엉망이다’라고 평가를 한 바 있습니다.


개신교계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치유센터를 설립한 것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불교계에서도 인터넷중독 예방이나 치유 관련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전국에 설치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불교계의 치유센터는 전국에 186개나 있는 것으로 집계됩니다.


종교계가 중심이 된 치유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인터넷과 게임으로부터 아이들을 격리합니다. 말하자면 ‘인터넷 밖에도 놀 것이 많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우리 때는 컴퓨터 없이도 잘만 컸다’랄까요. 하지만 아이들이 인터넷과 게임을 하는 이유는 ‘인터넷 안에도 세상(친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서로의 접근 방법이 완전히 정반대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인터넷중독, 게임중독이라고 표현하는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각계로 난립되어 있는 예방과 치유 단체를 올바르게 운영하는 방법과, 게임이 일상화된 현재의 청소년에게 맞는 적절한 예방 치유 프로그램 마련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게임을 비롯한 4대 물질에 중독되는 행위를 통합치료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뭔가 수상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청소년들이 왜 인터넷과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지, 그들의 놀이문화나 환경은 어떠한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일단 중독이 되어 있으니 치유를 해야 한다는 대증요법만을 강조하는 것은 애초에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게임 및 문화 관련 단체들도 게임을 규제하려는 단체에 맞서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업계와 문화연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뿐만 아니라, 만화계, 법조계, 연예계, 영화계, 학계 등도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게임중독법 공동대책위원회가 그 출발점입니다.


즉, 게임업계의 대응도 지난 셧다운제 때와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좀 더 조직적이고 논리적인 대응을 하기 시작했으며, 게임을 넘어 콘텐츠업계 전반에 걸쳐 ‘게임규제’는 단지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계의 마지막 보루로써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이 퍼져있는 상황입니다. 음악, TV, 영화, 만화들이 겪었던 그 탄압의 시기를 게임이 똑같이 겪고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다양한 계층을 한데 뭉치게 하는 응집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지금까지 4회에 걸쳐 신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중독법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이 글을 통해 지금 게임업계를 위협하는 상황과 배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셨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게임개발자 및 종사자들의 권익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모인 게임개발자연대에도 많은 지지와 후원을 부탁 드립니다. 밥벌이 대상인 게임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게이머이고, 우리의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1994년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게제동)’ 활동
 1996년 아마추어 개발
 1999년 MMORPG <아타나시아>를 시작으로 전업 개발자
 2000년 KGDA(한국게임개발자협회) 설립 발기인
 2004~2012년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컴퓨터게임과 외래교수

 이메일: zondug.kim@gamedevguild.kr, 트위터: @gdguildof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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