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편집장 남박사(이하 남박사): 정기자, 일전에 말했던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나.
정기자: 네. 주제를 정했습니다.
남박사: 그래? 시대는 언제지?
정기자: 네, 때는 바야흐로 한국게임산업에 젖과 꿀이 흐르던 바로 2003년 1월!(타핫!)
남박사: 흠…주제는?
정기자: (머뭇머뭇, 우물쭈물)
남박사: 뭘 주저하고 있는건가! 빨리 말해보게.
정기자: 네, 주제는 바로…
남박사: 바로….
정기자: 2003년 한국 온라인게임 업계(라고 쓰고 ‘게임메카’라고 읽는다)의 깊은 슬픔 ‘바스티안 온라인’입니다.
남박사: (책상을 치면서 벌떡 일어나) 아니! 자, 자네, 제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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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게임메카 정지혜 기자입니다. ‘(10년 전 그때를)아시나요’로 처음 인사드립니다. ‘10년 전 그때를 아시나요’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 전 과거에 나온 게임 잡지를 살펴보고, 당시 최고 이슈를 통해 현재의 게임산업을 되짚어 보는 게임메카의 야심 찬 2013년 신상 코너입니다.
우리는 요즘 ‘위기’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한국게임산업 위기 경보가 울렸다”와 같이 2012년은 국내 게임업계의 위기이자, 대들보였던 온라인게임의 위기였던 해입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된 2013년, 우리는 꼭 경보를 해제하기 위한 타개책이 절실한 한해를 맞게 됐습니다.
사실 ‘온라인게임 위기 주의보’는 5년 전부터 계속됐던 사안이지만, 작년 들어 많은 외산 게임의 시장 진입이 있으면서, 결국 주의보는 ‘경보’로 바뀌었습니다. 한때는 걱정 없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일이 벌써 까마득한 옛날 같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태평성대를 누렸던 때라.. 그때가 언제냐고요? 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 전, 게임산업에 첫 번째 격동기였던 2003년 1월입니다. 당시 상황을 게임메카의 모회사 제우미디어가 발행한 ‘넷파워’(Net POWER) 1월 신년 특대호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죠.
▲ 제우미디어에서 발행한 '넷파워' 2003년 1월호 표지
네트파워인가 넷파워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2003년 온라인게임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바스티안’
2013년이 모바일 원년을 선언한 ‘격동기’라면, 2003년은 ‘온라인게임’ 원년의 해였습니다. PC패키지 시장이 무너지고 온라인게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미 시장에서는 ‘리니지’, ‘나이트 온라인’, ‘바람의 나라’, ‘뮤 온라인’, ‘프리스톤테일’ ‘포트리스’ 등 많은 국산 게임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었고, 여기에 더 많은 회사가 동참하게 되죠. 이러한 상황은 2003년 1월 뉴스에 많이 나타납니다. 넷파워는 1월 시사 기획 코너 ‘2003년 온라인게임 가이드’를 통해 당시 상황을 분석하고, 2003년 정식 서비스 혹은 테스트를 시행 중인 온라인게임을 총망라하기도 했습니다.
[시사기획] 2003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 가이드 (넷파워, 문학준 기자) 최근 상용화를 하거나 새롭게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의 수가 부쩍 늘고 있다. 지난 5월호의 ‘2002 온라인 게임의 현주소’에 등장한 게임의 수는 약 100여 개였으나 지금은 150여 개로 50%의 증가세를 보였다.….(중략)… 한 가지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 있다면, 적어도 온라인 게임에 관한 한 우리는 정말 쾌적한 온라인 게임들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본 기자가 플레이 했던 해외의 온라인 게임들은 게임의 내용으로나 게임 외적인 요소(서버 운영, 캐릭터 관리, 렉의 유발)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물론 훌륭한 해외 온라인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한국산 온라인 게임은 계속해서 등장할 예정이므로 더더욱 즐거운 것이다…(이하 생략) |
넷파워에 집계된 온라인게임 수 139개. 개발 단계인 것을 포함하면 숫자는 어마어마한 수준으로늘어납니다. 물론 이는 개발사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시장 기세에 힘입어 넷파워 기자들은 1월의 온라인게임 기대작 3종을 선택하여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바스티안 온라인’, ‘애쉬론즈 콜 2’, ‘오렌지레드’가 뽑혔네요.
슬프게도 다 지금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이름이네요. 잠깐, 눈물 좀 닦고.. 액토즈에서 개발한 ‘오렌지레드’는 슬프게도 공개 서비스 한달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터바인의 초기 온라인게임으로 화제를 모았던 ‘애쉬런즈 콜 2’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사격이 있었으나, 서비스를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2004년 10월에 문을 닫았죠. 이투소프트의 ‘바스티안’은 정식 서비스 1년 후인 2005년 3월에 서비스를 종료한 비운의 타이틀로 기억됩니다.
▲ '애쉬론즈 콜 2'의 잡지 광고 입니다. 영화보다 뛰어난 그래픽을 강조하는 이미지네요.
장소는 고등학교 컴퓨터룸 컨셉은 쥬라기공원 같네요, 최근의 TV광고와 비슷한 느낌이죠
▲ 이달의 뉴스에 실린 '바스티안'과 '오렌지레드' 게임 소식
여기서 우리는 ‘바스티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투소프트라는 지금은 다소 생경한 개발사가 만든 ‘바스티안’은 2003년 공개 서비스를 실시한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으로, P2M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착안해 화제가 된 게임입니다. 이후 '바스티안'은 약 1년간의 공개 서비스를 마무리한 후, 정식 서비스에 돌입했지만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바스티안’의 특징적인 콘텐츠인 P2M 시스템이란 플레이어가 몬스터에게 죽으면, 해당 몬스터로 변신하는 시스템으로 Player to Monster의 줄임말입니다. 몬스터가 된 사용자에게는 현상금과 경험치가 걸리며, 다른 사용자들이 몬스터 유저를 사냥하게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 '바스티안'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하고 잊은 사람은 잊었다는 바로 그 게임
[게임특집] 예전의 내가 아니다! ‘바스티안’ (넷파워 이영섭 기자) 몬스터들이 게이머들을 학살하고 그로 인해 현상범이 되는 시스템, 사실적인 몬스터 파괴, 운영진의 유연한 게임운영 등으로 클로즈 베타 테스트 기간 내내 게이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바스티안’이 지난 12월 2일 드디어 오픈 베타 테스트에 돌입했다. 클로즈 기간 동안에는 단지 설정으로만 존재하던 다양한 시스템들로 무장한 채 게이머들을 유혹했던 바스티안의 변화된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이하 생략) |
이투소프트는 원래 PC게임을 제작하던 소규모 개발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추세가 PC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 변화하면서, 당대 최대(?) 게임 전문 출판사이자 현재 게임메카의 모기업이기도 한 제우미디어가 개발팀을 인수하고 제작 중이던 ‘프로젝트 바스티온’(가제)를 온라인게임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개발팀은 ‘이투소프트’라는 사명을 가지게 되죠. 제우미디어의 지원에 힘입은 이투소프트는 70여 명의 회사로 급성장했습니다. 그리고 7년 가까운 시간과 60억 원이라는 엄청난 노력을 ‘바스티안’에 투자했습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죠? ‘바스티안’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의 개발비용이 100억인 것을 감안하면 ‘바스티안’의 개발비용 60억도 만만치 않은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일개 중소 출판사에서 이런 엄청난 금액을 게임 개발에 투자했으니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요.
이제는 말한다 1. 게임메카 사실은 게임 개발할 정도로 알부자인가??
▲ 게임메카의 모회사인 제우미디어는 게임잡지를 발간하던 출판사입니다
사진은 게임메카 '지식의 서고'에서 보관 중인 PC챔프
▲ 온라인 게임 정보를 다뤘던 '넷파워'
게임메카가 게임 좋아하는 군인들의 피땀 어린 용돈과 어린이들의 코 묻은 돈을 모아 부를 축적했나? 물론, 아닙니다. 절대 아니죠.
제우미디어는 청소년 및 군인들에게 최고의 인기 아이템이었던 게임 월간지 ‘게임 챔프’, ‘PC챔프’, ‘넷파워’, ‘플레이스테이션 페미통’과 각종 게임 가이드북(공략집), 판타지소설 등을 출판하던 명망 있는 출판사였습니다. 특히 90년대 후반 전국을 강타한 PC게임 열풍과 함께 게임 잡지들의 인기가 덩달아 상승했습니다. 이와 연계돼, 월간지나 가이드북의 판매량이 워낙 뛰어났던 것이죠.
뭐, 사실 빙산의 일각이기는 합니다만, 이게 다는 아닙니다. 당시 제우미디어는 음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중소 개발사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대기업에 밀려 유통 업체를 찾지 못한 회사는 제우미디어가 보유하고 있던 전국 출판 총판과 연결해 새로운 유통 창구를 열어 주려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개발사와 총판을 직접 연결해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게임을 공급하는 식입니다.
이같이 게임산업에 대한 전투적인 지원과 힘입어 일부 투자 자금 유치를 통해 제우미디어는 60억 ‘총알’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제는 말한다 2. 게임메카 왜 그 많은 돈을 ‘바스티안 온라인’에 투자했나?
▲ 다 같이 불러요 세상은 바스띠옹~
60억. 지금이야 300억은 물론 400억, 500억 등 게임 개발 비용 100억 정도는 당연한 금액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로선 정말 획기적이고 위험한 도전이었습니다.
‘바스티안’의 개발 비용은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제우미디어가 온라인게임 산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굳은 확신이랄까요.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PC게임 산업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에 온라인게임 시장을 먼저 개척해야 한다는 ‘중소기업’만의 절심함이 들어간 것이죠.
제우미디어 게임메카의 사업 총괄 손대현 상무는 이를 “외형을 키워놓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게임 산업의 일선에서 정보나 아이디어, 지식으로 무장된 기자들이 많았기에 이런 의식이 더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말한다 3. 그러면 ‘바스티안’ 왜 실패했나
취지도 좋았고 여건도 충분했지만, ‘바스티안’은 실패작이됐습니다. 이후 ‘바스티안’이라는 이름은 게임메카의 치명적인 상처로 자리잡았죠. 본 기사에서 ‘바스티안’을 주제로 꺼낸다는 것 자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장난처럼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내부에서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꺼낸 주제였으니까요.
‘바스티안’ 개발 전까지 제우미디어는 게임 시장 선도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회사였습니다. 대기업으로 장악된 시장에서 개발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개발력이 좋음에도 대기업에게 외면받는 중소 기업을 발굴하는 일, 거기에 게임 꿈나무 양성을 위한 행사 지원 등 정말 많은 일을 했습니다.
▲ '바스티안'의 중국 진출 소식을 전하기도 했었는데..
크고 작은 개발팀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아이디어로 진짜 멋진 게임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원대한 목표가 자리 잡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시대 흐름이 바뀌고 인터넷게임 전문 매체인 게임메카를 차리게 되자, 과감하게 ‘바스티안’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입니다.
내-외부적으로 ‘바스티안 온라인’, 그리고 후속작 ‘바스티안: 이뎀의 유산’의 패인을 분석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의외로 게이머들에게 ‘바스티안’은 재미있는 게임으로 기억합니다. 많은 유저들은 ‘바스티안’의 패인을 “너무 유저의 마음으로 서비스를 해 초기 콘텐츠가 고갈됐다”고 지적합니다.
개발에 참여한 멤버들은 ‘버그’를 이유로 대기도 합니다. 공개 서비스(OBT) 때 발생했던 치명적인 버그를 잡는데 너무 오래 걸렸고, 이것이 결국 향후 정식 서비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내부적으로 보는 시각은 좀 더 철학적입니다. ‘바스티안’ 개발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제우미디어 사업 총괄 손대현 상무님을 인터뷰하는 중 들었던 한마디는 “게임 개발 정말 어렵더라.”는 개념적인 답변이었습니다. 도전과 의욕만으로 넘기에 산이 너무 높았다고. 과감하게 자본을 투자하고 개발인원을 늘린다고 해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무엇인가 있다고 말이죠.
가장 신빙성있는 의견은 대형 외산게임의 대표작인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의 엄청난 돌풍과 맞물려 사그라들었다는 평가입니다. ‘바스티안’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시기에 맞춰 ‘WOW’가 공개 서비스를 실시해 전국 약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게임을 찾게 됩니다. 국내에서만 100만장 이상 팔리며 e스포츠의 초석까지 다져 놓았던 ‘스타크래프트’ 제작사의 새로운 온라인게임에 많은 기대가 쏠렸을 것은 당연한 지사였죠.
▲ 당시 방한했던 폴 샘즈 부사장은 '리니지'를 꼭 꺾겠다고 했지만, 꺾인 것은 '바스티안'이었죠
마치 지금의 국내 시장과 형편이 같지요. 평행이론 같기도 하고 말이죠. 지금 ‘리그오브레전드’가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며, 많은 MMORPG들이 PC방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하듯이 말입니다.
맺으며…
‘바스티안’의 실패로 제우미디어와 게임메카는 한동안 앓았습니다. 하지만 교훈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게임메카(이라 쓰고 일당백이라 읽는다)를 만들었으니까요. 사실 ‘10년 전 그때를 아시나요’의 첫 번째 주인공은 온라인게임 산업도 아니고 ‘바스티안’이 아닌 바로 저희 게임메카입니다. ‘바스티안’이라는 이름이 바로 국내 게임 산업의 초기부터 함께 걸어왔던 게임메카의 업적이니까요.
1992년 제우미디어가 처음 ‘게임챔프’(게임메카의 모태)를 발간하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게임 전문 매체로서 시도했던 과감하고 멋진 도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바스티안'은 제우미디어가 게임· 뉴스· 출판까지 아우르는 종합 미디어로 발돋음하고자 했던 가장 멋진 시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잊혀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곪은 상처는 쓰라리지만 어느새 상처는 아물고, 새 살이 돋아 더욱 단단해지기 마련입니다. 2003년 1월에는 온라인게임이라는 블루오션을 위해 수많은 제작사가 등장했고, 많은 PC게임사는 온라인게임으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하지만 빛이 있었던 반면에 어떤 회사들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계는 돌고 돌아 벌써 2013년 1월이 됐습니다.
오는 2013년 우리 게임 산업은 또 한 번의 격동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슬픈 일, 암울한 상황도 결국 미래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CEO같은 덕담을 올리면서 1월을 마무리해보는 건 어떨까요. 2월에도 재미있는 추억을 들고 찾아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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