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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곧잘 만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감기나 비염 등으로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약을 먹어도 왜 낫지 않지?’라는 생각과 함께 ‘감기는 약 먹으면 사흘만에 낫고 약을 안 먹으면 3일만에 낫는다’ 같은 어른들의 농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농담은 대부분 약은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줄 뿐, 호전 여부는 면역체계에 달려있기 때문에 나오는 일이라 볼 수 있다.
감염으로 인해 면역체계가 활성화되면 각자의 역할을 가진 세포들은 바이러스 등 항원을 제거하기 위해 피를 타고 온 몸을 돌며 인체의 정상화를 위해 힘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말로만 들으면 다소 난해하고 졸리지만, 이런 과정을 게임으로 단순화해 소코반류 액션 퍼즐로 만들어낸 게임이 있다. 백혈구, 그 중 킬러 T 세포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세포들과 면역체계의 이야기를 그린 흰피톨(HYNPYTOL)이 그 주인공이다. 이름부터 주제까지, 모든 것이 독특한 이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을까? 베이스제로의 민지산 디렉터를 만나 게임 ‘흰피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흰피톨 킬러 T, 임무를 시작한다”
게임의 제목인 ‘흰피톨’은 백혈구의 순우리말이다. 하얀 피톨이라는 뜻인데, 게임의 제목답게 플레이어는 이 흰피톨 ‘킬러T’를 조작해 스토리를 진행하게 된다. 백혈구라는 익숙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게임은 면역 체계를 기반으로 구성됐으며, 과학시간에 배웠나 싶은 ‘수지상세포’에 의해 일어나 바이러스와 병원체들을 무찌르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액션 퍼즐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은 하이파이브다. 게임의 이동이나 바이러스 제거, 대화, 환경 등 모든 상호작용은 모두 하이파이브만으로 해결된다. 이는 킬러 T 세포(세포독성 T 세포) 백혈구가 주변 세포와 상호작용할 때 손처럼 몸을 뻗는 모습을 게임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게임은 이처럼 실제 면역 체계에 게임적인 해석을 더한 다양한 요소가 존재한다. 대식세포를 이용한 이동 기믹이 그 예시다. 민 디렉터는 “실제 상호작용을 어느 정도 가져오되 이걸 어떻게 이식할 수 있는가를 많이 고민했다. 내가 과학을 좋아하기도 했고, 그래서 개발 과정에서 논문을 많이 읽었다”고 밝혔다.
더해 게임보이 컬러와 유사한 시청각적 효과를 주기 위해 비주얼 등 다양한 곳에서 노력했다. 시각적으로는 동글동글한 세포 특유의 쫀득한 움직임이나 최근 게임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보더’ 등을 구현했으며, 사운드도 한층 당시의 분위기를 낼 수 있게끔 했다. 또, 맵이 실제 인체와 유사한 느낌이면 거부감을 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해 아케이드 스테이지처럼 단순화했다. 대신 감염이 퍼지는 느낌은 색감과 분위기로 조성해 진행도를 체감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소코반류 게임이 가지고 있는 난이도 조절은 ‘경우의 수’를 따지는 방향으로 조절했다. 초기 스테이지는 의도한 매커니즘에서 최단 행동 및 최소 경로를 미리 설정해 유저가 마구 플레이해도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으로 난이도를 낮추고, 게임이 진행될수록 경우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이 과정에서 여러 매커니즘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유저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난 해 9월 출시 후 약 1년 만에는 자신만의 스테이지를 만들 수 있는 ‘레벨 에디터’도 선보였다. 레벨 에디터는 개발팀이 출시와 함께 공개하고 싶었지만, 경우의 수에 비례해 버그가 함께 증가하며 폴리싱이 다소 늦게 끝난 콘텐츠다. 기존에는 DLC를 구상했지만, 개발팀 특성 상 DLC 개발 여건이 되지 않아 레벨 에디터만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 ‘자신만의 면역체계’를 만들 수 있는 레벨 에디터는 스팀 창작마당 공유도 지원해, 많은 유저들이 생물학 특유의 비주얼을 가진 스테이지를 시작으로 여러 창의적인 스테이지를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비슷한 환경과 템포가 안정화 이끈 ‘베이스제로’
개발사 베이스제로는 지난 2022년 8월 결성된 인디게임 팀이다. 현재 7인으로, 흰피톨 닌텐도 스위치판 발매를 위해 힘쓰고 있다. 닌텐도 스위치판은 스팀과 달리 업적 시스템이 제공되지 않아 이를 스위치에서 즐길 수 있게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더해 세포와 면역이라는 주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도감 기능도 함께 추가하며 신작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베이스제로가 결성된 계기는 타 인디게임 팀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대개 학교 동아리나 과제, 학과 특성, 업종 전향 등의 이유와는 달리,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민 디렉터의 판단 하에 비슷한 패턴을 가진 민 디렉터 주변의 지인과 동기, 친구, 동료 등이 모여 결성됐다. 민 디렉터가 설정한 핵심 키워드는 만들고 싶은 게임 취향이 맞으면서도, 본인의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현재 흰피톨의 시스템은 ‘팀이 할 수 있는 걸 만들자’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기획 및 개발자는 많지만 아트는 1명뿐이기에 업무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퍼즐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고전 소코반류 게임은 기간 단축에 가장 유효한 장르라 판단했다. 여기에 민 디렉터의 취향인 훅샷 기믹이 생물학 일러스트 속 백혈구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 등이 더해지며 흰피톨 프로토타입이 구상됐다. 세포가 가진 특징과 훅샷이라는 기믹이 ‘하이파이브’라는 핵심 매커니즘이 된 것도 여기에 있다.
목적이 뚜렷했던 만큼 개발 과정도 비교적 매끄러웠다. 민 디렉터는 개발의 핵심 주제를 정한 후 팀원을 모으고 한 달짜리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3개의 프로젝트를 가져갔고, 팀원들이 동의한 주제를 선정해 한 달만에 1차 데모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QA를 진행하는 등 계획적인 진행이 이뤄졌다. 그 중 흰피톨은 주변 지인들에게 더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평을 받으며 1년짜리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됐다.
민 디렉터는 “인디게임 개발팀 최대 주적은 내분이라고 생각한다. 팀 내에서 어떤 사람은 게임이 본업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사이드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입장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어느 정도 사이드로 생각하고 비슷한 템포로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자는 이유였다”며 선정 기준에 대해 언급했다. 모집 목적이 뚜렷했기 때문에, 각 팀원의 본업은 게임 업계와 거의 관련이 없다는 말도 더했다.
민 디렉터 중심의 인력 구성과 다양한 영역에 걸친 구성원으로 인해 개발은 전체 비대면으로 이뤄졌지만 개발 연기와 같은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핵심 이유에는 외부 행사가 있었다. 민 디렉터는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이 기틀이 짜여 있으면 업무가 멀쩡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지스타나 공모전, 행사를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제출 데드라인이 있기에 모든 팀원들이 이 일자에 맞춰 쥐어 짜는 수준으로 집중하게 된다. 비대면 개발 단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이런 점을 잘 타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회상했다.
새로운 팀, 새로운 도전. 베이스제로의 다음 시도는?
베이스제로는 12월 중 흰피톨의 닌텐도 스위치판을 선보일 예정이다. 민 디렉터는 “게임보이 컬러 배경으로 만들어서 스위치 같은 휴대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며 “진동 효과 등도 함께 추가할 예정이라 재미가 더 배가될 것이니 스위치 판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닌텐도 스위치판에 도입될 도감, 업적, 진동 기능은 스팀판에도 함께 적용될 예정이다.
인터뷰 마무리에서 민 디렉터는 “흰피톨은 저희가 처음으로 낸 작품”이라는 말로 서두를 열며 “베이스제로(Basezero)라는 이름은 개발 경험이 1도 없는 사람인 제로 베이스의 팀원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유저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앞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힘내보겠다”고 전했다.
베이스제로는 닌텐도 스위치판을 마무리 지은 후 흰피톨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진 신작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큰 주제는 심해를 배경으로 한 호러 어드벤처의 게임으로, 팀 공식 SNS를 통해 개발 과정을 공유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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