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뼈아픈 역사 한국전쟁(6.25 전쟁).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험난하고 사상자 수도 많이 났던 참혹한 전쟁이었지만, 베트남전과의 비교와 휴전으로 끝난 결말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해외에서는 주목도가 다소 떨어지는 것이 실정입니다. 이 때문에 문화적 콘텐츠(영화, 도서, 게임 등)로 한국전쟁이 다루어지는 경우가 매우 적은데, 신기하게도 프랑스의 한 게임회사에서 이 시대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게임 SGS 코리안 워
SGS 코리안 워는 보드게임 룰을 기반으로 한 전략게임으로, 서론에서 말씀드렸듯이 한국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프랑스 게임 개발사 스트래티지 게임 스튜디오(Strategy Game Studio)에서 제작했으며, 턴 방식으로 AI와 대전하는 식의 게임입니다.
게임은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한 캠페인을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양한 캠페인들을 선택해 한국전쟁의 굵직한 사건들을 부분적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고, 아예 전쟁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할 수도 있죠. 진영 또한 유엔 or 공산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해 플레이할 수 있어, 양측의 입장에서 전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게임 시작 전에는 플레이에 도움을 주는 카드를 뽑고, 이를 활용하여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다만, 한국인이 볼 때는 이러한 과정에서 전략적 깊이 같은 게임성보다는 역사적 재현도가 더 눈에 띕니다. 이 게임은 일반적인 카드 대전 게임과는 달리, 실제 역사의 흐름에 따라 나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한 카드들이 고정적으로 나옵니다. 즉, 고정된 굵직한 역사 안에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상황을 헤쳐 나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역사적 재현을 위해 덱 빌딩에 중요한 요소인 '랜덤성'은 어느정도 배제되므로 게임의 재미가 다소 줄어든다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한국전쟁의 주요 순간들을 내 손으로 재현하는 재미가 강조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쟁 전반을 다루는 캠페인을 진행할 때, 초반부에는 북의 남침으로 인해 UN군 입장에서 디버프로 작용하는 카드가 고정으로 등장하는 것이 그렇죠. 대신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외국에서 군사적 지원을 받거나, 인천상륙작전을 진행할 수 있는 카드가 고정으로 등장하여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끔 합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사실적인 게임 진행은 플레이어가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제작사가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게임을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턴 시작 전에 현 상황을 간단하게 알려주는 신문과 한국의 세세한 지역, 그리고 그 지역 내 군사적 시설들까지 잘 구현해냈습니다.
각각의 유닛들도 인상적이었는데, 사단의 구체적인 구분과 더불어 학도병까지 구현해 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역 특성상 이동할 수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구분이 매우 중요한데, 그런 부분들까지 잘 살려서 지형을 활용한 전략을 짜는 맛이 있었습니다. 지형을 이용해 상대를 끌어들여 사방을 포위하는 식의 플레이도 가능했어요.
게임의 핵심인 전투는 상대 기물과 내 기물이 만나면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태킹’이라는 시스템인데, 말 그대로 정해진 코스트 내에서 병력을 ‘쌓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내 병력의 규모를 쉽게 숨길 수 있고, 강력한 군단을 한 번에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스태킹을 풀어 다양한 지역에 대한 방어를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병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지나칠 수 있는 지역도 줄어들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플레이어의 판단에 따라 스태킹을 풀고, 거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겠네요.
상대 기물과 마주할 경우 전투 시퀀스로 넘어갑니다. 전투에서는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유닛과의 상성뿐만 아니라 날씨, 카드 효과, 사기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므로 100% 승리를 예측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략적인 승리 확률이 전투 시퀀스 아래쪽에 표시됩니다. 위 사진에서는 고작 2% 확률로 승리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이런 상황에서는 적당히 전투를 진행하다 후퇴하는 것이 좋겠죠. 여담으로 유닛들은 각 진영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중공군은 상대적으로 지상군이 강하고, 유엔군은 공군이 강한 식이죠. 이런 부분까지 잘 신경 쓰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불친절한 진행과 외부와 연동된 튜토리얼이 아쉽다
SGS 코리안 워를 플레이하며 아쉬웠던 점들은 ‘불편함’이라는 키워드로 설명 가능합니다. 우선 게임이 너무 불친절합니다. 직접적으로 설명해주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플레이어가 직접 유추해가며 플레이하는 것이 강제됩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동이나 공격이 불가능한 경우, 왜 그것이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 없이 그냥 불가하다는 것만 알려줘 그 이유를 스스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필자는 비행기를 이동하려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동이 되지 않아 수십분간 그 자리에 정체돼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지역에 공항이 없었기 때문이더군요. 또한 전략 폭격기로 상대를 공격하려 하는데, 공격이 불가능했습니다. 이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전략 폭격기는 유닛이 아닌 구조물 대상으로만 공격이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정보 전달에 있어 매우 불친절하다 보니 게임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게임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튜토리얼이 유튜브 영상으로 존재하긴 합니다. 게임 시작 전에 무조건 정독하고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보드게임 베이스인 만큼, 룰을 알고 플레이하는 것과 모르고 플레이하는 것은 천지 차이니 말입니다. 다만, 한국전쟁 게임임에도 영상에 한글 자막이 없는 것은 국내 유저들에겐 명백한 마이너스 요인이죠. 안 그래도 이해가 어려운데 언어까지 가로막으니 말입니다.
사실 사전 공부가 필수적이라는 점은 보드게임 기반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요인이긴 합니다. 하지만 튜토리얼을 보며 공부하기 보다는 직접 몸을 부딪쳐가며 익히는 저 같은 스타일의 게이머라면, 이러한 특성은 아쉬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한국전쟁을 다룬 게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드뭅니다. 그런 관점에서 SGS 코리안 워는 소재와 재현도 측면만 보더라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게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역사를 다룬 게임이 대부분 그렇듯, 게이머 개개인의 역사에 대한 관심도 차이가 게임에 대한 평을 결정지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 게임처럼 사실적 재현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게임에는 말이죠.
한국인으로서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높다고 하더라도, 불친절한 시스템이 주는 난해함은 심히 당황스럽습니다. 물론 취향에 맞고,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다 보면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스팀 리뷰를 잠깐 살펴보니 제작자가 한국 유저들의 목소리에 굉장히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피드백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던데,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더 좋은 게임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또 그렇게 된다면 또 다른 한국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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