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법은 먼 것처럼 느껴지지만, 게임을 하거나 만들다 보면 자연스레 여러 법적 이슈에 부딪히게 됩니다. 과연 게임과 관련된 사건들은 어떤 식으로 판결이 났는지 궁금하실텐데요, 이에 게임메카는 개발자이자 IT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인 유관우 변호사와 함께 게임 관련 사건 판례를 폭넓게 살펴보는 '판례.zip'을 연재합니다.
온라인게임에서 불법으로 사용되는 '게임 해킹 프로그램(줄여서 게임핵)'은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특히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슈팅 장르에서는 핵 문제가 심각한데요, 핵 유저로부터 비정상적으로 빠른 공격을 당하거나 날아올 리 없는 곳에서 가해진 공격에 맞고 패배한 경험이 있는 유저도 많을 것입니다.
핵이란 게임 보안 프로그램을 우회해 게임 데이터를 변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그 중 에임핵은 상대를 자동으로 조준해 타격하도록 제작된 게임핵입니다. 에임봇, 오토에임, 자동조준 프로그램으로도 불리죠. 에임핵 외에도 보이지 않아야 할 상대 위치, 체력, 아이템 정보 등을 표시해주는 ESP(Extra Sensory Perception), 총구 방향과 상관없이 적을 맞추는 유도탄, 총알이 벽을 뚫고 적을 맞추는 월핵, 총을 쏠 때 반동을 없애주는 무반동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게임핵 유저가 늘어나면 선량한 게이머 다수가 흥미를 잃고 게임을 떠나게 되는데요, 따라서 게임사들은 게임핵 대응팀과 같은 전담 조직을 만들거나, 보안업체와 계약해 핵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럼, 게임핵을 만들고 판매하는 제작·판매자와 게임핵을 이용한 게이머로 나누어 각각 어떤 처벌을 받는지,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게임핵 제작∙판매자
먼저 살펴볼 부분은 게임핵 제작 및 판매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게임사는 이들을 형사고소할 수 있는데요, 우선, ‘게임사가 승인하지 않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작 또는 배포한 행위’이므로 기본적으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 위반입니다. 아울러, 에임핵이 게임 데이터를 변경하는 종류일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에서 금지하는 악성프로그램에도 해당합니다.
이미지핵(게임 화면 이미지를 보고 에임을 보정해주는 핵)처럼 게임 데이터를 변경하지 않는 핵은 정보통신망법에서 말하는 악성프로그램이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지만(대법원 2020. 10. 15. 선고 2019도2862 판결), 메모리핵처럼 게임 메모리의 데이터를 변조하는 게임핵은 악성프로그램이므로 실무에서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죄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적발된 제작자나 판매자가 초범이고 판매횟수와 수익이 많지 않으면 집행유예로 끝날 수 있지만, 재범이거나 판매횟수와 수익이 많으면 징역 8월, 징역 1년 등 실형이 선고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운이 좋아 집행유예로 끝나더라도 80시간,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하는 판결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하는 판결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게임핵 판매수익은 추징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핵을 1만 원에 1,000번 판매해 총 1,000만 원의 수익을 얻었다면, 1,000만 원을 추징금으로 납부하라는 판결이 선고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게임핵을 직접 만들지 않았더라도 익명의 판매자로부터 핵을 구입해 다른 사람에게 재판매한 경우도 형사처벌 대상이며, 핵을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주소를 연결해주는 것도 ‘배포’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됩니다.
2. 게임핵 사용자
이번에는 게임핵 제작자, 판매자가 아니라 게임핵을 단순히 이용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게임핵을 이용한 사람을 형사고소한 경우는 많지 않고, 보통 계정정지 처분을 받습니다. 이는 게임 이용자가 게임을 실행하기 전에 동의한 이용약관 및 운영정책에 따른 제재입니다. 게임핵을 불법 프로그램이라 표현한 게임사도 있고, 제3자 외부 프로그램, 비인가 프로그램이라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실제로 드래곤플라이 '스페셜포스' 운영정책에는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그 계정을 영구정지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게임핵 사용으로 계정이 영구 정지된 이용자가 ‘1회 적발만으로 계정을 영구정지하는 약관은 불공정하여 무효'라고 주장하며, 게임사에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해킹툴 프로그램 실행은 약관이나 운영정책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행위이고,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로 인해 다른 이용자가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 이에 따른 유저 이탈, 계속되는 민원제기로 인한 업무량 증가, 불법 프로그램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 개발비용 등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불공정한 약관이 아니다’라며 게임사의 계정 영구정지는 정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결국 원고는 패소했죠.
그런데 핵을 쓴 것이 아니라 게임 실력이 좋았을 뿐인데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며 무고밴(무고하게 계정이용정지 등 제재를 당하는 경우)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는 우선 이용약관에 따라 게임사에 이의신청을 해보고, 계정 이용정지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으면 게임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고밴을 당한 게임 이용자가 본인의 무고함을 스스로 증명할 증거를 찾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 게임 플레이 화면을 항상 녹화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이머가 게임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게임사가 제출하는 증거(보안프로그램에 의한 게임핵 탐지 내역, 비정상 전투 이력, 신고 내역 등)을 바탕으로 게임사의 계정 이용정지 조치가 정당했는지 판단하게 됩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계정 이용 정지를 당했다며 게임사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 중 유저 PC에서 게임핵 사용 내역이 확인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원고는 ‘게임핵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우연히 게임핵이 실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우연히 실행시켰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습니다.
이와 유사한 다른 사건에서는 게임사 자동감지 시스템의 오류 발생 가능성이 쟁점이었는데, 법원은 ‘게임사의 자동감지 시스템은 신뢰도가 높다’는 해킹 전문가 소견을 받아들여 게임사 손을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게임핵으로 분류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가 게임사 보안프로그램에 의해 적발되어 그 사용 흔적이 기록된 경우에는 구제받기 어렵습니다.
무고밴을 당한 유저가 게임사를 상대로 승소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관련 민사소송 15건 모두 게임사 승소였고, 유저 입장에서는 스스로 무고밴이라 생각해서 소송까지 간 것이었겠지만 모두 패소했습니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PC에 정체를 알 수 없거나 수상한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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