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부터 진행된 국내 주요 게임사 주주총회에서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것은 P2E 게임이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게임 내 NFT를 적용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 밝혔고, 넷마블 권영식 대표는 블록체인, 메타버스 신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을 강조했다. 크래프톤은 블록체인 관련 사업 및 연구개발업을 경영 목적에 추가하는 안건이 승인됐고, 카카오게임즈는 자사 P2E 게임 사업에 대해 자체 IP를 중심으로 회사 가치를 제고하리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선데이토즈는 위메이드플레이로 회사명을 확정하며 블록체인 게임 사업으로 본격화했다.
아울러 4월부터 국내 게임사 다수가 그간 준비해온 P2E 게임을 선보인다. 넷마블은 4월 중 넷마블에프앤씨가 개발한 블록체인 신작 ‘골든 브로스’를 글로벌에 출시하며, 컴투스 역시 4월 중 서머너즈 워: 백년전쟁 글로벌 버전에 자사 블록체인 플랫폼 C2X와 연동되는 P2E 요소를 추가한다. 네오위즈는 4월 중 자사 모바일게임 브라운더스트 글로벌 버전에 P2E 플레이가 가능한 신규 서버를 연다.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P2E 게임에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분위기다.
다만 현재는 마냥 핑크빛 미래를 꿈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큰 부분은 P2E 게임을 받아들이는 업계와 시장 사이에 온도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P2E 게임 기반에는 블록체인, 암호화폐, NFT와 같은 신기술이 있다. 기존에는 업계가 주목하는 신기술에 시장이 반감을 갖는 경우는 없었으나, 블록체인은 다르다. 최근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암호화폐, NFT 등에 대한 우려가 점점 넓은 범위로 확장되고 있고, 이는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중화에 실패했으나 업계와 시장에서 모두 색다른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던 VR, AR과는 사뭇 다르다.
끊이지 않는 해킹과 무단 도용에 커지는 시장 반감
최근 국내에도 큰 충격을 준 큰 사건은 P2E 게임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엑시 인피니티에서 발생했다. 엑시 인피니티를 개발한 베트남 개발사 스카이 마비스(Sky Mavis)는 지난 3월 29일(현지 기준) 게임이 걸려 있던 6억 1,500만 달러(한화 약 7,489억 원) 상당의 가상자산이 해킹으로 도난당했다고 밝혔다. 도난된 자산 규모도 상당히 크지만, 해킹 사실을 발견한 계기가 발표 1주 전에 이더리움을 인출할 수 없다고 알린 유저 신고였다는 점은 가상자산 보안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켰다.
콘텐츠를 무단으로 도용해 발행되는 NFT도 장기간 해소되지 않는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국내에서 문제시된 대표 사례는 지난 3월 30일에 알려진 라스트 오리진 일러스트 무단 도용이다. 게임 개발사 스마트조이는 2020년에 문을 닫은 전 해외 퍼블리셔 소속 직원이 라스트 오리진 일러스트를 자사 승인 없이 무단으로 도용해 NFT로 판매했다고 밝혔다. 저작권 문제는 소송으로 번질 수 있고, 저작권이 확실하지 않은 NFT 콘텐츠가 초기부터 난립한다면 한창 커야 할 시장이 도리어 혼탁해질 수 있다.
이처럼 자산 가치에 영향을 미칠만한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자 P2E 게임에 대한 시장 인식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최근 스팀 유저 평점이 급락한 카드 게임 ‘스토리북 브롤(Storybook Brawl)’이다. 이 게임은 앞서 해보기 단계에서 ‘매우 긍정적’을 기록 중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22일(현지 기준) 게임 개발사인 굿 럭 게임스(Good Luck Games)가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FTX에 인수됐고, 게임에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직후인 22일과 23일에 부정적인 리뷰 다수가 게시되며 게임의 스팀 최근 평가는 ‘압도적으로 부정적’으로 낮아졌고, 이 기간에 작성된 ‘비추천’ 의견 대다수는 암호화폐, NFT 도입에 큰 반감을 드러냈다.
서양보다는 P2E 게임에 호의적이었던 아시아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1년 이상 서비스하는 게임이 많아지며 시장에 풀린 물량이 늘어날수록 같은 시간에 벌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는 한계점이 지목됐다. 아울러 제대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 유료 아이템 구매가 필수조건처럼 통한다. 이를 토대로 일각에서는 P2E가 게이머가 아니라 아이템 판매에 거래 수수료까지 받으며 게임사가 돈을 버는 새로운 BM에 그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돈을 버는’ 것이 ‘재미’보다 우선시된다면 과연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가도 화두에 올랐다. 특히 초기에 등장한 게임 다수가 차별화된 게임성보다는 ‘돈을 벌 수 있다’를 특징으로 앞세웠거나 기존에 서비스 중인 게임에 P2E 요소를 붙여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자는 재미가 우선이 아니며, 후자는 P2E를 제외한 콘텐츠가 이전 버전과 동일하기에 새로운 재미가 창출된다고 보기 어렵다.
동남아에 한정된 시장은 급속도로 포화될 우려가 높다
앞서 밝혔듯이 국내에서는 게임사가 유저에게 환전을 제공하는 것이 게임법 상 불법이기에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P2E 게임을 서비스할 수 없다. 가장 큰 게임시장으로 손꼽히는 중국은 일단 판호가 발급되지 않아서 국내 게임을 수출할 수 없고, 판호가 풀린다고 해도 당국에서 암호화폐 사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P2E 게임을 출시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 게임을 서비스해야 한다. 그러나 북미와 유럽은 P2E 게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일본에서도 P2E 게임이 두각을 드러낸 사례가 없다. 결국 단기적으로 뚜렷한 성공사례가 도출된 동남아시아를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는데,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은 성장세는 높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서, 단기간에 게임 다수가 입점하면 급속도로 포화 상태에 접어들 수 있다.
국내의 경우 향후에는 법이 개정되며 P2E 게임이 합법화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다만 국내에도 게임을 선보일 수 있는 시점이 됐을 때 P2E 게임이 정체기에 돌입했거나 글로벌에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며 시장 경쟁력이 낮다는 인식이 지배적일 경우 탄력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글로벌을 대상으로 P2E 게임 출시를 준비 중이라면 초기부터 관련 잡음을 줄이고, 반감을 최소화해 최대한 여러 지역으로 저변을 넓혀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P2E 게임에 대해 좀 더 안정적으로 밝은 미래를 도모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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