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아직은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점심 식사 후 느껴지는 묵지근한 졸음을 떠올리면 정말 봄이 왔다는 것이 체감된다. 곧 꽃도 가득 피고, 따스한 바람도 불고, 하늘을 채운 탁한 먼지와 꽃가루들도 등장해, 마스크를 벗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날씨가 찾아올 테다.
인디게임 ‘메트로 블로썸’에는 한국의 이런 봄에 꼭 어울리는 좀비가 나온다. ‘시체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좀비들은 갈라진 머리에서 피어난 꽃을 달고 걸어다니며 보라색 꽃가루를 내뿜는다. 가끔 양분이 부족하면 사람을 먹어치우기도 하고 말이다. 이들이 내뿜는 꽃가루를 마시면 어떻게 되냐고? 두통과 고열에 시달리다 탈모가(!!) 오고, 결국엔 두개골에 금이 가고 두피가 벗겨지며 그 위로 꽃이 핀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머리에 꽃이 피기 전까지는 자신이 감염되었는지 알아채기도 힘들 듯한, 이런 한국적인 좀비가 등장하는 ‘메트로 블로썸’은 과연 어떤 게임일까? 게임메카는 K-좀비 아포칼립스 게임 ‘메트로 블로썸’을 개발한 ‘제정신 스튜디오’의 정재현 디렉터와 대화를 나눠봤다.
익숙한 공간이 가져다 주는 괴리감
개발사 ‘제정신 스튜디오’가 만든 인디게임 메트로 블로썸은 지하철 노선을 따라 이동하며 생존해나가는 어드벤처 텍스트 RPG다. 텍스트 RPG라는 낯선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묘사를 통해 상상의 폭을 넓히고, 스토리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래서인지 메트로 블로썸은 세로로 텍스트를 전개하며 웹소설을 읽는 듯한 감각을 주면서도, 선택지가 등장할 때마다 적절한 효과음이나 일러스트 등으로 이목을 끌며 스토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물론 지하철에서 생존하는 아포칼립스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메트로 블로썸만이 가진 차별점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맞닥트리게 될 ‘시체꽃’이다. 시체꽃은 꽃처럼 광합성을 하고 꽃가루를 뿌리며, 피어난 꽃의 특성에 맞춘 개성을 가진다. 그래서 여타 게임들과는 달리 같은 ‘좀비’더라도 이 게임에서는 낮이 아닌 밤에 좀비를 상대해야만 한다. 제정신 스튜디오는 생존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TRPG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주사위 굴림으로 랜덤성을 더했고 덱 빌딩 시스템으로 전략성을 잡았다.
게임의 무대도 서울 지하철 1, 2, 5호선을 배경으로 해 실제로 존재하는 배경 위에 스토리를 덧씌워 현실감을 높이고, 상상의 기틀을 더욱 편하게 다질 수 있게 했다. 그래서인지 출퇴근 시간에 매일같이 접하는 2호선 순환선의 스토리를 보는 동안에는 절로 기분이 미묘해졌다. 이미 아는 공간에 낯선 상황이 덧씌워 더욱 상상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지나간 ‘제정신 스튜디오’의 여정
제정신 스튜디오는 스토리 중심의 롤플레잉 게임을 제작하는 6인 인디 개발팀이다. 모두 지인과 지인의 지인으로 (다단계처럼) 구성된 멤버들은 각각 기획, 스토리, 개발, 일러스트, UI를 담당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3년 가량을 메트로 블로썸 개발에 힘썼다.
이들은 서로의 힘만으로 중요한 뼈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게임에 중요한 요소인 사운드와 이펙트 등의 요소를 담당할 인력이 없었다. 게임을 등록하고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일에도 돈이 들어갔다. 고민하던 제정신 스튜디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투자도 없고, 수익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골랐고, 도움을 준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성과는 대단했다. 스팀으로 따지면 앞서 해보기 단계에 불과했지만 지난 해 구글 인디페에서 Top 10에 선정되었으며, 한국게임대상 인디부문과 BIC 베스트 내러티브 부문에도 후보로 선정되는 등 잠재력을 뽐냈다. 그러면서도 게임의 엔딩을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 결과 곧 최종 엔딩을 업데이트 할 예정이지만, 이들은 아직 메트로 블로썸의 세계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래서 업데이트 이후로도 몇 개의 메인 스토리와 서브 스토리를 더 추가할 계획이다.
선로 공사, 그래서 언제 끝나나요?
메트로 블로썸은 오는 4월 ‘최종 엔딩’과 한 개의 히든 엔딩을 추가할 예정이다. 빠른 반복 클리어를 위해 ‘지름길’ 요소도 추가한다. 이와 함께, 무료버전을 출시하고 유료 재화를 추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할 생각이다. 원래는 2월쯤 업데이트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것들이 많아 정해뒀던 방향을 뒤엎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예상 이상으로 일정이 소요됐다고 한다. 정 디렉터는 “백 프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플레이어들이 "그래, 괜찮은 마무리였어"라고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는 여름, 메트로 블로썸은 영문 번역판으로 글로벌 출시도 목표에 두고 있다. “데모도 없이 아이디어만 믿고 게임에 후원해주신 분들, 열정적으로 플레이 해주시고 피드백 주신 분들께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정 디렉터와 제정신 스튜디오가 더욱 꽃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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