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출시된 다잉 라이트 2는 7년만에 돌아온 다잉 라이트의 후속작으로, 전작의 특징이기도 했던 좀비와 파쿠르 액션의 절묘한 조화를 이어받은 게임이다. 전작보다 일신한 그래픽과 더욱 높아진 자유도로 돌아온다는 트레일러로 일찍이 AAA급 오픈월드 기대작으로 자리매김 했다. 당초 2020년 봄에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몇 번의 연기로 제대로 얼굴을 비추지 못했던 다잉 라이트 2의 결과물에 대한 게이머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사실, 출시 전에는 다잉 라이트 2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많았다. 앞서 기대작들의 배신이 꾸준히 이어졌고, 선공개 당시엔 버그 문제가 사이버펑크 2077에 버금갈 수준이라는 얘기까지 있었다. 그러나 출시 당일 효과적인 버그 픽스 패치로 우려를 종식시켰으며, 게임성 면에서도 전작의 맛을 살리면서도 더욱 자유도 높은 액션이 가능하다는 입소문이 더해져 출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스팀에서만 동시 접속자 27만명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과연 다잉 라이트 2의 어떤 점이 이렇게나 많은 게이머들을 이끈 것일까?
짚고 넘어가야 할 ‘스토리’의 문제
게임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기 전, 우선 다잉 라이트 2의 최대 단점부터 짚고 넘어가보고자 한다. 바로 트레일러에서도 지속적으로 내세웠던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메인 스토리'는 거의 전무하다. 실제 게임 내에서는 자유도, 개연성, 연출 중 무엇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제공되는 선택지는 추가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것에 그치고, 안전지대를 확보하며 대립되는 집단 중 한 곳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단순히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 더 생길 뿐 특별한 루트와 같은 변화는 전혀 없었다.
대화를 진행하며 답변을 선택하는 요소가 존재하지만, 이 또한 흐름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정보량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선택지에 상관 없이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보고 있자면, 주체적으로 선택해가는 역동적인 스토리를 묘사하던 트레일러가 거짓말이었구나 하는 배신감마저 든다. NPC들의 행동이나 선택에 대한 개연성도 뚜렷하게 묘사되지 않아 경우에 따라 납득하지 못 할 면들이 산재해있어 몰입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우스를 놓을 수 없는 이유
하지만 스토리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다잉 라이트 2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개선된 액션과 더욱 넓어진 상호작용에 있다. 창틀이나 벽면의 장식에 그치는 곳도 손으로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대부분 파쿠르를 사용할 수 있다. 장비의 움직임과 기능도 현실적으로 변화를 줬다. 그래서 전작에서는 오버 밸런스라는 평가를 받던 그래플링 훅은 성능이 하향된 대신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이동에만 사용되지 않고 적을 붙잡아 당겨온 뒤에 타격하고, 주변의 물건을 낚아채는 일도 가능하다.
적대 대상의 AI와 기능이 개선된 것도 플레이의 재미를 더한다. 좀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바이럴의 경우 개선된 AI에 플레이어와 엇비슷한 수준의 파쿠르까지 구사해 밤 시간의 추격전에 재미와 긴장을 동시에 더한다. 또, 적대 세력의 인간 NPC는 이제 어정쩡하게 공격을 피하지 않고 확실한 회피와 상황에 맞는 방어로 대치 구도를 취한다. 이들은 플레이어를 마주할 경우 주변에 위험 신호를 보내 다른 적대세력을 부르기도 하기 때문에 신속한 처치를 필요로 한다. 근거리와 원거리를 담당하는 NPC들이 각각 다른 역할을 하며 플레이어를 위협하기 때문에 이들의 처치 순서도 주요 공략 요소가 된다.
전작에 비해 캐릭터의 상태가 게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도 늘었다. 특히 본작에서 추가된 ‘자외선에 노출되지 않으면 좀비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요소’인 면역력 게이지로 더욱 스릴 있는 모험이 가능해졌다. 이 면역력 게이지는 자외선이 없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전부 떨어지면 점차 좀비로 변한다. 그래서 밤이나 빛이 들지 않는 건물 내부에서는 게임을 진행하며 게이지를 관리해야만 하기에 플레이어가 이동 동선을 더욱 계획적으로 짜고 면역력을 회복하는 부스터 자원의 관리를 더욱 신경 쓰도록 만든다.
앞서 말한 스토리 또한 메인 퀘스트의 볼륨과 연출은 빈약하지만, 추가된 사이드 퀘스트나 캠프파이어는 다잉 라이트 2의 세상에 잘 이입하도록 도와준다. 주변을 탐험하다 보면 몇몇 장소에서 불을 피우고 캠프파이어 중인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원래 이 캠프파이어는 근처에 앉을 경우 체력을 회복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렇게 체력을 회복하는 동안 NPC들이 이 재난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피로를 잊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들의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기분이 든다.
진입 장벽을 낮춘 RPG 요소와 맵을 탐험하게 만드는 수집형 콘텐츠
본작으로 다잉 라이트 시리즈에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RPG적 편의성도 추가되었다. 이들은 플레이를 조금 더 쉽게 해주는데 플레이어 본인이 사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우선 적대 대상의 머리 위에 레벨과 체력 바를 보여주는 기능이 생겼다. 이 기능은 온 오프 전환이 자유로워 전작과 같은 플레이를 원하는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설정을 변경해 플레이 할 수 있다.
상의, 하의, 장갑과 같은 부위별 방어구도 추가됐다. 여기에 특성이 적용되어 각각 양손 무기를 사용하고 방어를 우선하는 탱커, 파쿠르 전투와 회복에 특화된 메딕, 원거리 장비를 주로 사용하는 레인저, 한손 무기로 빠른 공격에 특화된 브롤러 등으로 분류된다. 이 장비들도 기존의 장비와 같이 각각 일반부터 전설까지 등급이 각각 적용됐다. 장비를 착용하면 특성과 등급에 맞추어 추가적인 효과를 받을 수 있는데, 이 효과는 모두 생존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분류가 다양화되어 파밍이 어려울 것 같지만, 특수 구역 수색, 적대 세력 처치, 장비 상점 등 여러 방향으로 습득할 수 있게 해두어 실질적인 파밍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수집형 콘텐츠도 이전에 비해 확장되었다. 단순히 트로피를 모으는 것에서 그치던 수집형 요소들에도 이야기가 들어가 또 다른 동기를 부여한다. 맵 곳곳에 배치된 테이프나 뉴스 기사를 통해서는 NPC의 배경 지식이나 전작의 이야기도 알 수 있어 세계관에 깊이를 더한다. 개중에는 전작을 플레이한 팬들을 위한 요소도 다양해 전작의 배경이었던 하란에 대한 이야기나 그 이후로 이어지는 재난의 근원 GRE에 대한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해볼만한 게임이냐 묻는다면, 그렇다
게임 외적으로 보자면 기대작으로 언급되던 오픈월드 게임들이 그러했듯, 다잉 라이트 2 역시 저사양 환경에서 버그가 많거나 프레임 드랍으로 플레이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최저사양으로 안내된 AMD Radeon RX 560 그래픽카드 환경에서도 초반 로딩이 조금 느렸을 뿐, 생각보다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게임을 하는 동안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큰 버그 없이 순탄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 그래픽에서도 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출시 첫 날 이후엔 버그도 빠르게 수정되는 중이며, 버그 픽스 로드맵도 확실하게 제시했기에 우려는 더욱 줄어들 예정이다. 개발사 테크랜드는 사후 지원과 피드백이 매우 좋은 편이라 더더욱 그렇다. 7년 전 게임인 전작도 다잉 라이트 2 출시 직전까지 새로운 무기와 장비를 DLC로 출시하고 이벤트를 개최할 정도로 활발한 사후 지원을 보여줬으니, 이번에도 추가 DLC와 다양한 게임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다만, 한국어 번역이 전작과 비슷하게 군데군데 엉성한 것은 매우 아쉽다. 드물게 번역 자체가 되지 않은 곳도 있어 몇몇 배경에서 들을 수 있는 NPC들의 대화는 영어를 해석해가며 플레이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사이드 퀘스트와 수집형 요소로 볼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배경지식으로 삼아, 내가 가는 길이 이 게임의 스토리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다잉 라이트 2가 해볼만한 게임이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다. 전작에 비해 참신함이 덜한 것이 아쉬울 뿐, 전작의 매력을 계승하며 일신한 그래픽과 액션으로 돌아온 다잉 라이트 2만의 속도감과 재미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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