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는 게임사를 향한 게이머 민심이 제대로 들끓었다. 수년째 합의점을 찾지 못한 확률형 아이템은 게이머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십자포화를 맞았고, 게이머는 무대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옮겨 트럭시위에 나섰다. 한편, 해외에서도 많은 기대를 모았던 대작들이 조악한 완성도로 혹평을 면치 못하며 게이머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여러모로 게이머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던 한 해였다.
1. 확률형 아이템 십자포화
확률형 아이템은 올해 사회 각층에서 제대로 두들겨 맞았다. 과도한 과금 유도라며 비판해온 게이머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문제를 지적했고, 수많은 규제법안이 쏟아졌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게임법 전부개정안에 포함된 ‘확률 공개 의무화’부터 컴플리트 가챠 금지법, 확률조작 감시법 등이 등장했다. 국정감사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이재명, 안철수 등 대선후보도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공약으로 앞세웠다.
현재 게임업계에서는 자율규제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존 방향을 고수하고 있고, 게이머와 정치권에서는 자율규제가 아닌 법적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임업계가 스스로 말한 ‘자율규제로 문제 해결’이라는 논리로 시장과 정치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확률 공개 이상의 전향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 소비자로서 권리 찾겠다, 게이머 트럭시위 릴레이
그간 게이머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게임사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으나 올해는 트럭시위를 통해 오프라인으로 무대를 확장했다. 올해 게이머들이 불만을 토로한 부분은 앞서 이야기한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트럭시위를 관통하는 주제는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며 게임을 즐기고 있음에도, 다른 업종과 비교했을 때 비용에 준하는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흐름을 이제는 끊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3. 리니지 독주 체제가 깨졌다
국내 모바일시장 메인으로 손꼽히는 구글플레이 매출 1, 2위를 4년간 독차지해온 리니지의 독주 체제가 무너졌다. 그 시작은 6월에 출시된 제2의 나라였고, 6월 말에 출시된 오딘: 발할라 라이징이 구글 매출 1위를 장기간 유지하며 모바일 시장에 완연한 지각변동 시대가 찾아왔음을 알렸다. 이후 11월에 문을 연 리니지W가 다시 1위를 탈환했으나 철옹성처럼 느껴졌던 리니지 독주 체제가 흔들렸다는 점은 이후 시장 경쟁에 긴장감을 더해줄 전망이다.
4. 3N 주춤한 사이 치고 올라온 크래프톤과 카카오게임즈
올해 업계에는 ‘3N이 지고 2K(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가 뜬다’는 말이 돌 정도로 언더독의 반란이 이슈로 떠올랐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은 모두 작년과 비슷하거나 저조한 실적을 거두며 주춤한 가운데, 크래프톤과 카카오게임즈는 호실적을 거두며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아울러 올해 8월에 상장한 크래프톤은 엔씨소프트보다 높은 시가총액을 기록 중이며, 카카오게임즈는 오딘 출시 직후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 2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아울러 데브시스터즈와 위메이드 역시 신작 쿠키런: 킹덤, 미르4 흥행을 바탕으로 실적개선과 기업가치 상승을 동시에 이뤘다.
5. 마법의 단어로 떠오른 NFT와 메타버스
앞서 이야기한 미르4 흥행 배경에는 NFT를 기반으로 한 P2E(플레이 투 언)이 있다. 국내에서는 미르4, 해외에서는 엑시 인피니티가 성공하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러 게임사가 뛰어들었고, 국내에서는 한계와 반발에 부딪힌 확률형 아이템을 대체할 수단으로 주목됐다. 주식 시장에서는 NFT 게임을 준비한다는 말만 꺼내도 주가가 치솟았고, NFT가 주요한 경제적 수단으로 활용되리라 전망되는 메타버스도 비슷한 효과를 냈다. 다만 국내에서는 게임 아이템 등에 대한 환전을 금하는 게임법으로 인해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암호화폐와 연계된 NFT 게임을 서비스할 수 없다.
6. 찝찝한 ‘선택적’이 남아버린 셧다운제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셧다운제 폐지’를 앞세웠으나 자세히 뜯어보면 셧다운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게임을 모두 차단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는 사라졌으나, 청소년 본인 혹은 그 부모가 게임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선택적 셧다운제는 남았다. 셧다운제 폐지 이슈가 떠오른 배경은 MS가 과거 버전 계정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국내 한정 성인 게임이 되어버린 ‘마인크래프트 사태’다. 선택적 셧다운제가 남아버리며 업계는 제도 준수를 위한 연령확인, 본인인증 시스템 등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청소년 계정 생성을 막는 방식으로 기존 셧다운제를 준수해온 해외 콘솔 플랫폼 업체에는 여전히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7.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돌아온 지스타
작년에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으로 열린 지스타가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돌아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를 위해 참가사 규모와 일일 입장객을 제한한 가운데 열렸으나 온라인에서는 불가능한 현장감을 맛볼 수 있었다. 아울러 카카오게임즈. 크래프톤, 엔젤게임즈 등이 오프라인 지스타에 볼거리를 더했고, 게임보다 사람 구경이 더 길었던 정도로 좋지 않았던 지스타 관람 환경이 입장객 제한으로 크게 개선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행사 흥행과 전시 완성도, 두 가지 과제를 두고 주최 측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8. 없어서 못 살 정도의 그래픽카드와 신형 콘솔
게이머 입장에서 코로나19 여파가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은 그래픽카드와 신형 콘솔 재고부족이다. 암호화폐 채굴 열풍이 불며 그래픽카드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집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하드웨어에 대한 수요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여기에 전세계적인 반도체 칩 부족이 그래픽카드와 콘솔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러 요인이 겹치며 수요가 공급을 아득히 초과하는 상황이 장기화됐고, 그래픽카드의 경우 회도 아닌데 ‘싯가’ 개념으로 시장 가격이 널뛰기도 했다. 인텔 등 주요 하드웨어 업체에서 2023년까지 칩 부족이 이어지리라 전망하고 있어 단기간에 공급난이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이머들이 괜히 엔비디아 RTX 30 시리즈를 정가에 구매할 기회를 준 ‘사이버펑크 2077’에 고마움을 표한 것이 아니다.
9. 사내 성범죄 이슈로 최저점을 찍은 블리자드
기존에도 삐걱대던 블리자드는 올해 최악의 한 해를 맞이했다. 가장 큰 부분은 지난 7월에 수면 위로 떠 오른 사내 성범죄 이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공정고용주택국이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사내 성희롱, 성범죄 혐의로 고소하고, 사건에 대한 주요 전황이 밝혀지며 그간 쌓아둔 기업 이미지가 와르르 무러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요 가담자로 지목된 전 직원의 이름을 딴 오버워치 ‘맥크리’는 콜 캐서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됐고, 액티비전, 블리자드, 킹에서 일하는 직원 다수는 파업을 감행하며 회사의 실질적인 개선책 마련을 요구했다.
10. 기존작 역주행과 기대작들의 연이은 배신
2021년 게임 이슈를 쭉 훑어보면 두 가지 방향이 보인다. 하나는 기존작 역주행이다. 먼저 로스트아크는 신규 군단장 레이드 4종으로 대표되는 충실한 업데이트를 바탕으로 올해 동시접속자 24만 명을 기록했고, 6월과 12월에 각각 열린 ‘로아온’에도 기존보다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어서 디아블로 2는 회사가 혼란한 와중에 출시된 리마스터 버전이 괄목할 성과를 거두며, 최근 리마스터를 넘어 11년 만의 밸런스 패치를 발표했을 정도로 활기를 되찾았다.
반면, 연말을 즐겁게 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게임 다수가 기대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혹평을 면치 못했다. 10월에 출시된 파 크라이 6를 시작으로, 11월에 연이어 등장한 콜 오브 듀티: 뱅가드, 배틀필드 2042가 바통을 이었고, 리마스터임에도 원작보다 퇴보했다는 평을 면치 못한 GTA: 더 트릴로지 – 데피니티브 에디션이 정점을 찍었다. 내년에도 대작 다수가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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