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최근 그라비티가 ‘라그나로크M’ 글로벌 흥행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문득 ‘잘 키운 IP 열 게임 안 부럽다’ 라는 게임업계 격언(?)이 떠오르네요. 이제는 ‘라그나로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전세계가 고개를 끄덕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라그나로크’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김정률 회장이 ‘악튜러스’를 개발 중이던 김학규 대표를 영입해 그라비티를 만들고, MMORPG ‘라그나로크’ 테스트를 막 시작하려 하던 2001년 초중반입니다. 당시엔 게이머들 사이에서 ‘라그나로크’라는 이름이 아직 낯설었기에, 다방면으로 기발한 광고를 진행하며 게임을 알렸는데요, 오늘 소개할 만화 광고도 그 일환입니다.
2001년 7월.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온라인’ 공개테스트 준비에 갖은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8월 중(결과적으로 11월 1일로 밀렸지만) 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었기에, 잡지나 웹진 기사 외에도 다양한 광고를 통해 게임 알리기에 한창이었죠. 그러나 당시까지 ‘라그나로크’에 대한 인지도는 이명진 작가의 동명 원작 만화가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라비티는 만화로서 ‘라그나로크’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기로 합니다. 잡지 광고면을 이용해 원작자 이명진 작가가 그린 ‘라그나로크’ 게임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전에도 짧막한 4컷 만화 등으로 재치있게 게임을 소개한 광고는 있었지만, 아예 풀 컷으로 잡지 몇 편에 걸쳐 만화를 연재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신작 게임이 나올 때 같은 IP 웹툰을 동시 연재하는 웹툰 마케팅의 원조격이라고나 할까요?
그림은 원작풍이 아닌 당시 유행하던 개그툰 느낌으로 그려졌는데요, 학생들(왠지 아래쪽에선 게임제작자, 게임기자 등으로 묘사되지만)이 학교가 끝나자 마자 PC방으로 달려가 테스터에 신청하고 ‘라그나로크’를 시작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라면 저녁 5시에 학교수업이 끝나는 것과, 테스터 신청을 위해 PC방으로 달려가는 모습 등입니다. 지금이라면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해결 가능한 것들인데요.
만화를 가만 보고 있자면 “끝났뜨아~!”, “텨텨!”, “5, 6, 7, 8!! 앗싸 좋구나!” 등 2000년대 초기 유행하던 말투가 다수 보여서 왠지 정겹습니다. 여기에 광고 옆면엔 당시 게임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유저들의 댓글 기대평이 적혀 있는데, 당시 통신감성이 물씬 묻어나는군요. 요즘은 저런 말투 쓰는 사람 찾기 힘들죠.
이 만화는 두 페이지에 걸쳐 연재됐습니다. 2장에서는 1장 마지막에 ‘먹자’ 행위를 한 친구를 물씬 혼내준 후, 여성 유저를 만나 환심을 얻으려는 파티원들의 코믹한 다툼(?)을 그렸습니다. 당시 ‘라그나로크’는 사용자 주민등록번호로 캐릭터 성별을 정했는데, 이로 인해 캐릭터만 봐도 플레이어의 성별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죠. 지금 같아선 왠지 논란이 될 것 같은 시스템이지만요.
참고로 이 만화를 그린 원작자 이명진 작가는 ‘라그나로크’ 게임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후 작품 활동을 거의 접고 게임 아트를 담당해 오다가, 지난 2016년 자신이 개발에 참여했던 모바일게임 ‘소울아크’를 원작으로 한 동명 웹툰을 연재하며 무려 15년 만에 만화가로 복귀했습니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때부터 팬이었던 터라 굉장히 반가웠는데요, 지난 1월 시즌 1을 완결지었습니다. 이명진 작가의 한껏 업그레이드 된 만화가 궁금하신 분은 이 기회에 한 번 보러 가심을 추천합니다.
아 참, 이명진 작가가 그린 ‘라그나로크’ 홍보 만화 다음편은 오는 19일(화) 오후 2시 오픈되는 PC파워진 2001년 8월호 분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덤으로 보는 B급 게임광고
오늘의 B급광고는 왠지 게임 제목만 봐도 B급 냄새가 풀풀 풍기는 ‘더 타이핑 오브 더 데드’ 입니다. 딱 봐도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패러디인데, 무려 원제작사인 세가에서 정식으로 내놓은 패러디 작품이라는 것이 더 충격적입니다.
광고를 보면, 당장이라도 사람 해치러 다가와야 할 것 같은 좀비가 키보드를 들고 “당신의 타이핑 공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부터 뭔가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냅니다. 실제 게임 내에서도 총 대신 키보드를 달고 좀비 사이를 헤치는 주인공들이 나오는데,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좀비들도 흉기 대신 대파나 뿅망치를 들고 달려오는데… 이쯤 되면 대놓고 패러디한 느낌이죠?
전체적인 게임 구성은 ‘베네치아’ 류의 타이핑 게임으로, 좀비가 다가와서 나를 물어뜯기 전에 단어나 문장을 완성해 좀비를 해치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콘텐츠 한국어화까지 이루어지지 않아서 영문 자판을 쳐야 한다는 것… 영문 타자 연습에는 제격이었겠지만, 막상 한국 유저들에게는 큰 진입장벽으로 다가왔던 것이 함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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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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