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3에 공개되기 무섭게 구설수에 오른 ‘커맨드 앤 컨커: 라이벌즈’ (사진출처: EA 공식 블로그)
올해 ‘E3 2018’에는 소문만 무성했던 대작들이 실체를 드러내며 많은 게이머를 기대감으로 두근거리게 했다. 그런데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EA가 선보인 모바일게임 ‘커맨드 앤 컨커: 라이벌즈’다. 솔직히 말해 이 게임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크게 주목 받을 작품이 아니다. 좋게 말해도 좋다고는 못할 그래픽, 단순한 조작, 제한된 전장 등, 그리 깊게 즐길 만한 요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게임은 대작들 사이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바로 ‘커맨드 앤 컨커’ 이름을 달고 나왔다는 이유 단 하나로 말이다.
90년대 중반을 게임과 함께 보낸 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이 작품은 ‘스타크래프트’ 이전 RTS 장르 패자로 군림했고, 상대적으로 스토리의 중요성이 덜 부각됐던 RTS 장르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게임이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게이머라면 ‘커맨드 앤 컨커’의 위용이 어느 정도였는지 설명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커맨드 앤 컨커’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로는 실패한 마케팅, 지나친 개발 지연에 따른 프로젝트 표류, 점점 진부해진 게임성 등 여러 가지가 꼽힌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점이 바로 ‘싱글 캠페인의 퇴보’다. ‘커맨드 앤 컨커’는 독특한 세계관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싱글 캠페인이 백미였는데, 바로 그 싱글 캠페인이 퇴보함에 따라 시리즈 전체가 몰락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커맨드 앤 컨커’는 본래 어떤 게임이었으며, 대체 어떤 사연으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퇴보했길래 시리즈 명맥이 끊기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이번 [세계기행]은 스토리 좋은 RTS로 유명했던 ‘커맨드 앤 컨커’의 비참한 추락에 대해 알아보았다.
‘커맨드 앤 컨커’의 요람,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로고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커맨드 앤 컨커’가 어떤 게임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시리즈를 만든 웨스트우드 스튜디오와 이들이 만든 ‘듄 2’라는 또다른 게임에 대해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초창기 ‘커맨드 앤 컨커’는 ‘듄 2’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고,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소재인 ‘타이베리움’도 바로 이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1985년 설립된 웨스트우드는 본래 다른 회사가 개발한 8비트 게임을 16비트로 이식하는 작업을 하는 업체였다. 그러던 1988년 이식 작업을 통해 틈틈이 게임 개발 노하우를 배운 웨스트우드는 EA 하청으로 게임 개발 업계에 뛰어들었고, 2년 후인 1990년 ‘던전 앤 드래곤’ 바탕의 RPG ‘주시자의 눈’을 발매하며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 자원 채취, 유닛 생산, 전투라는 RTS 기본 바탕을 성립한 ‘듄 2’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렇게 주가를 올리던 웨스트우드는 1992년 규모 있는 게임 유통 개발업체 버진 인터랙티브에 인수됐다. 마침 버진 인터랙티브는 유명 SF소설 ‘듄’ 게임화 라이선스를 확보한 참이었고, 웨스트우드 공동 설립자 브렛 스페리 역시 ‘듄’의 열성 팬이었다. 스페리 입장에서는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는 ‘듄’을 게임으로 만들 절호의 기회가 우연히 굴러든 셈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이 바로 RTS 틀을 정립했다고 평가되는 ‘듄 2’였다. 이 게임이 1을 건너뛰고 2라는 넘버링을 붙인 이유는 모회사 버진 인터랙티브가 앞서 ‘듄’이라는 이름의 어드벤처 게임을 출시했기 때문이었다. ‘듄 2’는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훗날 RTS 기본이 되는 자원 채취, 유닛 생산, 전투라는 구성을 처음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 맵에 진한 갈색으로 표시된 것이 자원 ‘스파이스’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듄 2’는 원작 소설 팬이 만든 게임답게 원작 설정을 충실히 반영한 작품이었다. 원작 ‘듄’은 먼 미래 어느 황량한 사막 행성을 무대로 하는 SF다. 이 행성은 식수를 비롯 모든 자원이 부족하지만,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스파이스’라는 물질이 채취되는 곳이다. ‘스파이스’는 섭취할 시 인간은 노화가 지연되고 수명이 연장되는 등의 신비한 효과를 제공하지만, 너무 많이 섭취하면 중독되고 변이를 일으킨다. 이 ‘스파이스’ 가치 때문에 행성은 늘 전쟁의 무대가 된다.
‘듄 2’는 이러한 원작 설정에 딱 들어맞는 게임으로 제작됐다. 자원 ‘스파이스’를 채취하고,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유닛을 구매해 적과 싸워 더 많은 ‘스파이스’를 안정적으로 채취하는 게 이 게임의 주된 흐름이었다. 최종적으로는 행성을 독점하기 위해 다른 두 진영을 전멸시켜야 했다. 오늘날 RTS 기본으로 인식되는 자원 채취, 유닛 생산, 전투라는 구성이 이 게임에서 처음으로 성립된 것이었다.
▲ 그래픽은 진일보했지만 기본 구성은 ‘듄 2’와 비슷한 ‘커맨드 앤 컨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듄 2’의 어마어마한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웨스트우드는 몇 해 뒤인 1995년 또다른 RTS를 내놓았는데, 이 작품이 바로 ‘커맨드 앤 컨커’였다. 게임 자체만 놓고 볼 때 ‘커맨드 앤 컨커’는 ‘듄 2’를 개량한 작품으로, 맵 곳곳에 매장된 자원을 채취해 유닛을 생산하고 전투를 벌이는 기본 구성은 ‘듄 2’와 거의 같았다.
그런데 ‘커맨드 앤 컨커’에는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원작 소설이 있던 ‘듄 2’와 달리 ‘커맨드 앤 컨커’는 웨스트우드의 독자적 작품이었고, 어떤 진영이 왜 싸우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다만 ‘커맨드 앤 컨커’가 구성상 ‘듄 2’와 비슷한 게임이었던 만큼 특별한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쟁탈전이라는 구도는 어느 정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웨스트우드는 ‘커맨드 앤 컨커’ 핵심 소재가 될 특별한 자원을 자체 제작했다. 이 자원은 ‘스파이스’처럼 위험하지만 높은 가치가 있고, 그 탓에 전쟁의 원인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훗날 ‘커맨드 앤 컨커’의 정체성이 되는 광물 ‘타이베리움’이었다.
‘듄’에서 영감 받은 현대 밀리터리 RTS,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
▲ ‘커맨드 앤 컨커’ 세계관의 중심이 되는 자원 ‘타이베리움’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1995년 발매된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은 ‘듄’의 ‘스파이스’ 설정에 20세기 말 유행하던 ‘종말론’을 덧붙인 듯한 내용이었다. 줄거리는 우주에서 온 운석이 지표면에 부딪치고 얼마 후 정체불명의 광물이 지표면을 뒤덮어가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인류는 이 광물을 놓고 제거할 것인지, 적극 이용하고 숭상할 것인지를 두고 상반된 입장을 보이며 분열되기 시작했고, 게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급기야 두 파벌로 나뉘어 내전에 돌입하는 상황이 됐다.
이처럼 인류가 두 파벌로 나뉘어 버린 이유는 외계 광물이 지닌 상반된 두 속성 때문이었다. 이 광물은 이탈리아 티베르(Tiber) 강에서 확산이 시작됐기에 ‘타이베리움(Tiberium)’으로 명명됐는데, 곧 유기생물체에 극도로 유해한 위험 물질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타이베리움’에 접촉한 생물은 극심한 통증과 함께 녹색 빛을 발하는 각질에 뒤덮이다 ‘타이베리움’으로 변이해버리는 것이었다. 이토록 유해한 ‘타이베리움’이 확산되는 것은 인류 생존에 있어 무척 심각한 문제였다.
▲ ‘타이베리움’에 노출돼 변이한 사람의 최후 (사진출처: C&C 위키)
그러나 ‘타이베리움’이 마냥 유해한 것은 아니었다. ‘타이베리움’은 접촉하는 모든 물질을 흡수해 자기 입자에 가두는 기묘한 성질을 지니는데, 덕분에 적절한 정제를 거치면 고효율 에너지원이자 공산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적지 않은 기업들이 심각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타이베리움’을 채취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처럼 ‘타이베리움’ 기반 산업에 투신한 기업들은 반대 목소리에 맞서 파벌을 이루어 훗날 ‘노드(Nod)’라는 조직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사실 ‘노드’는 막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정체불명의 지도자인 ‘케인’이 이끄는 광신도 집단이었다. 그런데 ‘타이베리움’ 등장과 함께 이들은 ‘타이베리움’이야말로 인류를 한 단계 진화시킬 물질이며, 오직 ‘타이베리움’을 통해서만 휴거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말이었던 당시 이 주장은 종말론적 예언들과 맞아떨어지며 큰 여파를 낳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케인’의 말에 동조해 ‘노드’ 신앙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에 등장한 ‘케인’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노드’는 세가 강해질수록 ‘타이베리움’ 확산을 가속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에 나섰다. 동조한 ‘타이베리움’ 산업 기반 기업들을 통해 UN에 압박을 가하거나, 일반 신자를 이용한 공작을 벌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케인’은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내 ‘타이베리움’ 확산 억제를 담당하는 UN 산하 군사기구 ‘GDI’가 실은 ‘타이베리움’을 독점하는 부패한 무리라고 맹비난하여, 대중이 ‘GDI’에 등돌리고 ‘노드’에 혹하게 만들기도 했다.
‘노드’ 때문에 ‘타이베리움’ 확산 저지 활동이 계속 위축되자 UN은 군사기구 ‘GDI’를 동원해 ‘노드’ 진압을 개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노드’는 ‘GDI’ 몰래 동유럽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상당히 큰 세를 키운 군벌 조직이 되어 있었고, 두 진영 사이의 전쟁은 생각 외로 팽팽하게 진행됐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면전에 능한 다국적 정규군 ‘GDI’와 게릴라전에 탁월한 ‘타이베리움’ 광신도 집단 ‘노드’가 전쟁을 벌인다는 스토리를 다루었다.
▲ 케인이 ‘GDI' 위성 무기 포격으로 사망하는 정식 엔딩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사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은 RTS라는 장르 특성상 스토리 분량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심하게 짜인 세계관, 실제 배우를 캐스팅해서 풀 모션 비디오로 연출한 브리핑은 여러 플레이어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스토리가 부각되기 힘들다고 인식되던 당시 RTS 가운데 독보적인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 덕분에 개발업체인 웨스트우드는 1998년 거대 게임 배급사 EA 눈에 들어 인수되는, 당시로는 행운처럼 보였던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암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넘어간,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
▲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에 삽입된 후속작 예고 영상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웨스트우드는 ‘커맨드 앤 컨커’ 첫 작품이 발매된 시점에서 이미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게임을 완료하면 이족보행 로봇 3D 모델이 나오는 시연 트레일러가 재생됐는데, 여기에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이에 많은 플레이어가 21세기를 무대로 하는 새로운 ‘커맨드 앤 컨커’가 나오리라는 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전작으로부터 4년 만에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이 발매됐다. 그런데 막상 출시된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은 전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전작은 외계에서 온 미지의 광물 ‘타이베리움’만 제외하면 나름대로 사실적인 20세기 밀리터리 분위기를 표방했다. 반면에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은 SF 기반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위기로 전환,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느낌을 준 것이다.
▲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에서 지구는 ’타이베리움’에 뒤덮인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은 2040년 ‘타이베리움’에 반쯤 뒤덮여버린 지구를 무대로 삼았다. 스토리는 전작 ‘GDI’ 엔딩을 공식 설정으로 차용, 사라예보에 있던 ‘노드’ 사원이 파괴되고 지도자 ‘케인’은 사망한 데서 이어진다. 그러나 ‘노드’ 패망에도 불구하고 ‘GDI’는 그사이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는 ‘타이베리움’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40년 사이 ‘타이베리움’은 지표면 대부분을 잠식했고, 해수면마저 ‘타이베리움 슬러지’에 뒤덮이는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이 시기에 ‘GDI’는 ‘타이베리움’ 확산을 억제하는 특수한 음파 공명 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타이베리움’ 분자 구조에 공명하는 음파를 방출해 확산을 막는 이 기계 덕분에 인류는 최소한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미 지구 전역에 퍼진 ‘타이베리움’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인류는 음파 공명 장치에 의해 보호되는 제한된 영역에서만 살 수 있게 됐고, 그 외 지표면 대부분은 ‘타이베리움’에 의해 서서히 외계행성처럼 변모하기 시작했다.
▲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이보그를 쓰게 된 ‘노드’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그러한 와중에 ‘GDI’를 피해 생존한 ‘노드’ 잔당도 착실히 조직을 재건하고 있었다. ‘케인’ 심복들로 구성된 하부 조직 ‘블랙 핸드’는 거대한 드릴 장비로 지하에 땅굴을 파고 끊임 없이 이동하면서 곳곳에 테러를 일삼았다. 게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세르비아 지부 수장 ‘안톤 슬라빅’이 다른 지역 간부들을 규합해 ‘노드’를 부활시키기고, 죽은 줄 알았던 ‘케인’까지 돌아와 조직을 완전히 부활시키기에 이른다. 물론 재건된 ‘노드’가 처음 한 일은 다시 ‘GDI’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은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두 진영의 전쟁을 다루었다. 여기에 더해, 미처 안전지역으로 대피하지 못해 ‘타이베리움’ 지대에 남았으나 약소한 변이만 겪은 채 살아남은 생존자 집단 ‘포가튼’이 중립 진영으로 추가됐다. 다만 ‘포가튼’의 비중은 싱글 캠페인에만 잠시 등장하는 정도로 크지 않았다.
▲ 외계인의 진보한 지식을 담은 유물이라는 ‘태시터스’ (사진출처: C&C 위키)
그리고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 싱글 캠페인 중반에는 급기야 UFO가 등장한다. 이미 ‘타이베리움’이 외계에서 왔다는 데서 등장이 예상되긴 했지만, 이 모든 사태가 외계인들의 어떤 계획 하에 벌어진 일임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 후반부는 불시착한 UFO에서 외계인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저장된 유물을 찾아내고, 이 유물 ‘태시터스(Tacitus)’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이야기로 흐른다. 결국 ‘케인’은 다시한번 사망하고 ‘노드’는 패망하는 SF 풍 줄거리가 됐다.
이처럼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에 많은 팬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미래 전쟁에 나름 만족했지만, 이런 변화를 싫어한 이들도 많았다. 결국 이 작품은 다소 미흡했던 게임성에 갑자기 너무 달라진 세계관으로 인해 기대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외계 침략자 압도하는 전투 종족 인간의 위상,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
▲ 웨스트우드 폐쇄 이후 EALA가 제작한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 (사진출처: C&C 위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이 기대 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하자 배급사 EA는 웨스트우드에 크게 실망했다. 여기에 브랜드 확장을 위해 2002년 발매된 FPS ‘커맨드 앤 컨커: 레니게이드’까지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EA는 2003년 아예 웨스트우드를 폐쇄하고 ‘커맨드 앤 컨커’ 프로젝트를 또 다른 EA 산하 스튜디오인 EALA로 이관시켰다. 그 과정에서 웨스트우드 개발진은 대부분이 해고 당했고, 자연히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도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그렇게 ‘커맨드 앤 컨커’는 한동안 동결된 채 남아있었다. 중간에 발매된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같은 외전들이 몇 개 나오긴 했지만, 세계관은 기존 시리즈와 무관한 사실상 별개의 작품이었다. 시리즈 정통 후계자인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는 2007년에서야 간신히 나올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발매 초기부터 팬들로부터 큰 걱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 스크린샷 (사진출처: C&C 위키)
그러나, 파란만장한 과정 끝에 출시된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는 다행스럽게도 그럭저럭 무난한 게임성과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특히 세계관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복선으로만 나오던 외계인이 세 번째 진영으로 추가됐고, 정체불명의 광물로만 언급되던 ‘타이베리움’도 그 기원이 확실히 설명됐다는 점에서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는 전작보다 먼 미래인 2047년을 배경으로 했다. 이 시기 ‘GDI’는 ‘노드’를 진압하고 ‘태시터스’를 손에 넣은 후로, 외계인 유물에 들어있던 정보 중 일부를 해독해 ‘타이베리움’ 제거 장치를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일은 지구를 뒤덮은 ‘타이베리움’을 없애고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 뿐인 줄 알았으나… 여기서 다시 한 번 ‘노드’가 돌아온다.
▲ 게임 상에서 박살 난 잔해로 등장하는 ‘GDI’ 우주정거장 (사진출처: C&C 위키)
사실 ‘노드’는 죽은 줄 알았던 ‘케인’ 영도 하에 ‘타이베리움’ 지대에 숨어 조직을 재건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준비를 꽤 착실히 했는지, 매번 지기만 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등장과 함께 핵무기로 지구 궤도에 떠 있는 ‘GDI’ 우주정거장 겸 본부를 파괴해버리는 데 성공했다. 단번에 ‘GDI’ 수뇌부를 거의 몰살시킨 셈이었다.
▲ ‘액화 타이베리움’ 대폭발로 ‘타이베리움’에 뒤이는 지구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이에 당황한 ‘GDI’는 ‘타이베리움’ 지대에 숨겨진 ‘노드’ 비밀 기지를 찾아내 위성무기까지 쏘면서 보복에 나섰지만, 사실 이 또한 ‘케인’이 준비한 계략이었다. ‘타이베리움’은 응축을 거듭하다 보면 액화 상태에 도달한다. 이 ‘액화 타이베리움’은 매우 불안정하여 작은 자극에도 쉽게 폭발하는데, 폭발 시 주위의 ‘타이베리움’을 공명 시켜서 비정상적 확산을 야기한다. ‘케인’은 일부러 이러한 ‘액화 타이베리움’을 모아둔 비밀기지 위치를 노출시켜 위성 무기 포격을 유도한 것이었다.
‘노드’ 신전 지하에 저장된 대량의 ‘액화 타이베리움’은 위성 무기가 쏘아낸 고열로 자극을 받아 대폭발을 일으키며 증발해 대기 중에 퍼지고 말았으며, 이로 인해 이제 막 안정세에 접어들었던 ‘타이베리움’도 엄청난 기세로 다시 확산되기 시작됐다. 다시 한 번 지구 전체가 ‘타이베리움’에 뒤덮일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지도자까지 잃은 ‘GDI’는 절망했고, 드디어 ‘타이베리움’으로 세계를 뒤덮어 인류가 승천할 수 있게 됐다고 믿은 ‘노드’는 환호했다.
▲ 벌레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스크린’ 유닛 (사진출처: C&C 위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는 새 국면으로 접어든다. 명왕성에서 동면에 빠진 채 대기 중이던 외계인 ‘스크린’이 지구로 접근한 것이다. 사실 ‘타이베리움’은 이들 ‘스크린’이 보낸 것이었다. ‘스크린’은 먼 옛날부터 ‘타이베리움’이 확산되기에 적합한 조건의 행성에 찾으면 ‘타이베리움’을 쏘아 보내고, 시간이 흘러 이 광물이 충분히 확산되고 토착생물들이 멸종되면 직접 강림해 채굴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모아왔다. 일종의 ‘농부 외계인’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채굴할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가 바로 ‘액화 타이베리움’ 폭발이었다. ‘타이베리움’이 행성을 완전히 뒤덮으면 점차 응축되어 ‘액화 타이베리움’이 되고, 마지막에는 자연적인 폭발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다. 이에 명왕성에서 대기 중이던 ‘스크린’은 엄청난 규모의 ‘액화 타이베리움’ 폭발을 관측하고 드디어 채굴할 때가 됐다고 판단, 지구로 유유히 채굴 작업을 하러 온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지구 토착생물들이 모두 멸종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에는 아직도 다수의 토착생물들이 생존해 있었다. ‘스크린’은 예상 밖 상황에 다소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직접 인간 생존자를 멸종 시키고 채굴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인간들의 도시를 침공하고 보니 놀랄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당시 인류 문명은 아직 20세기 말에 머물러 있었고 이는 ‘스크린’ 기준으로 미개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류의 무기 기술만은 50년에 걸친 전쟁 덕에 비약적으로 발달한 상태였다.
▲ ‘타이베리움’ 벌판 위에 완공된 ‘트레숄드’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지구에 온 ‘스크린’은 ‘GDI’와 ‘노드’ 양쪽의 공세에 위기에 처하고 만다. 이에 ‘스크린’ 지휘관 ‘감독관 371’은 원래 채굴한 ‘타이베리움’을 모성으로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공간이동시설 ‘트레숄드(Threshold)’를 필사적으로 완공해 지구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지구에 계속 남아 있으면 인간에게 전멸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감독관 371’은 ‘스크린’ 진영 마지막 임무에서 상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트레숄드’로 지구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사실 ‘스크린’이 탈출할 수 있던 것은 ‘케인’의 의도였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트레숄드’를 손에 넣고자 했고, 이에 ‘스크린’의 ‘트레숄드’ 건설을 ‘GDI’가 방해할 수 없도록 군대를 보내 보호했던 것이다. ‘감독관 371’ 탈출 후 ‘케인’은 원했던 대로 ‘트레숄드’를 확보했으나, 이러한 혼란 속에서 ‘타이베리움’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돼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가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 속에 끝나자 팬들의 관심은 자연히 스토리가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에 집중됐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큰 실망과 분노 속에 끝나고 말았으니, 그 이유는 황당할 정도로 급히 시리즈를 마무리한 다음 작품 때문이었다.
팬들이 ‘차라리 안 나왔다면’ 하고 부르짖은,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
▲ 시리즈를 처참히 부숴 놓은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 (사진출처: C&C 위키)
사실 본래 웨스트우드가 기획한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총 삼부작이었다. 하지만 EA가 웨스트우드를 폐쇄하고 ‘커맨드 앤 컨커’ 프로젝트를 EALA에 넘김에 따라 스토리도 기존 기획에서 크게 달라지게 됐다. 그나마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까지만 해도 웨스트우드에서 준비해 둔 아이디어가 일부 남아있었고, 웨스트우드 출신 개발자들이 개발에 다수 참여했기에 나름 괜찮았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네 번째 작품이 나오게 되며 스토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이 문제에 대한 EA 해답은 간단했다. 싱글 캠페인 분량을 대폭 축소해 스토리를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전작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까지만 해도 싱글 캠페인 분량은 임무 34개에 달했다. 그러나 2010년 출시된 시리즈 마지막 작품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 싱글 캠페인 분량은 고작 임무 14개에 불과했다. 분량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 정체불명의 미치광이 악당에서 구세주로 전업한 ‘케인’ (사진출처: C&C 위키)
더 큰 문제는 스토리도 산으로 갔다는 것이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는 전작 엔딩에서 15년이 지난 2062년, 갑자기 ‘케인’이 ‘GDI’ 본부를 방문하며 시작된다. 여기서 ‘케인’은 뜬금 없이 인류 존속을 위해서는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며 화해의 손길을 건네는데, 놀랍게도 이 화해 제안은 진심이었다. 이러한 ‘케인’의 도움 덕에 ‘GDI’는 지표면을 뒤덮은 ‘타이베리움’을 상당량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케인’의 개과천선에 모두가 만족한 건 아니었다. ‘GDI’에서는 ‘노드’에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일부 간부가 ‘케인’에 대한 증오를 남몰래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노드’ 측에서도 ‘케인’이 변절했다 믿는 일부가 분리주의 움직임을 보이며 ‘케인’ 암살을 계획 중이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케인’은 ‘GDI’에게 ‘타이베리움’ 정화 작업을 도운 대가로 한 가지 도움을 요청한다. 바로 그토록 염원해왔던 ‘승천’ 작업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 원하던 대로 차원의 문을 넘어 ‘휴거’ 하는 ‘케인’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이제 와서 드러난 사건 전말은 이랬다. 사실 ‘케인’은 어떤 사고로 구석기 시대에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이었다. ‘케인’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간 문명이 발달해 차원이동기술을 확보해야 했고, 그는 인류 과학과 기술에 자극을 주기 위해 고대부터 수많은 전쟁을 일으켜 왔던 것이다. 그러다 운 좋게도 또다른 외계인 ‘스크린’이 나타나 ‘타이베리움’을 살포하자, 이들에 대해 알고 있던 ‘케인’은 ‘스크린’이 ‘트레숄더’를 건설할 상황을 조성하고 그 시설을 빼앗은 것이다.
다소 황당하고 작위적인 설정이지만, 어쨌거나 15년에 걸친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세계관은 이렇게 정리됐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 싱글 캠페인은 ‘케인’의 승천을 방해하는 ‘GDI’ 측 반군과 ‘노드’ 측 분리주의자를 진압하고, 알고 보니 불사신 외계인이었던 ‘케인’이 인간 추종자들과 함께 ‘트레숄더’ 너머의 세상으로 떠나 ‘승천’하는 것으로 끝났다. 심지어 ‘케인’은 작별 선물로 지구의 ‘타이베리움’을 ‘트레숄더’로 빨아들여 최종 정화까지 완료해줬다.
▲ 처참한 점수를 받은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 (사진출처: 메타크리틱)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는 게임성 자체도 썩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지만, 이처럼 어이 없는 스토리로 엄청난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그 결과 메타크리틱 기준으로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는 64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기록했으며, 실망한 팬들의 분노로 유저 점수는 10점 만점에 2.1점이라는 비참한 성적을 받았다. 주된 감점 이유 중 하나는 물론 ‘실망스러운 싱글 캠페인’이었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이트’의 처참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EA는 한동안 ‘커맨드 앤 컨커’ 브랜드를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동일 세계관을 계승할 예정이었던 온라인게임 ‘커맨드 앤 컨커: 아레나’와 ‘커맨드 앤 컨커: 온라인’이 모두 개발 취소됨에 따라 사실상 ‘커맨드 앤 컨커’는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희망은 있을까, 아니면 덧없는 미련인가, 새로이 공개된 ‘노드’ 로고
▲ ‘커맨드 앤 컨커: 라이벌즈’ 스크린샷 (사진출처: EA 공식 트위터)
이후로도 EA는 나름 거대 브랜드인 ‘커맨드 앤 컨커’에 대한 미련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심지어 2018년 E3에서 ‘커맨드 앤 컨커: 라이벌즈’라는 모바일 게임을 발표했는데, 이 또한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그래픽과 단순한 게임성으로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EA가 ‘커맨드 앤 컨커’ 브랜드를 부관참시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는 EA가 ‘커맨드 앤 컨커’ 브랜드를 이어나갈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실제로 EA는 해외 게임전문매체 게임즈인더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커맨드 앤 컨커라는 브랜드를 다시 알리기에는 모바일 플랫폼이 가장 적합하다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커맨드 앤 컨커: 라이벌즈’를 발판으로 브랜드를 부활시킬 계획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 6월 29일 EA 공식 트위터에 갑자기 올라온 ‘노드’ 로고 (사진출처: EA 공식 트위터)
게다가 지난 6월 29일에는 EA 공식 트위터에 ‘노드’ 진영을 상징하는 전갈 꼬리 모양의 로고가 갑자기 올라오기도 했다. 일부 팬들은 곧 출시될 ‘커맨드 앤 컨커: 라이벌즈’ 홍보가 아니겠느냐 추측했지만, 일각에서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부활을 알리는 것일 수도 있다며 희망에 찬 기대를 보이고 있다.
과연 90년대 중반 RTS 제왕으로 군림했던 ‘커맨드 앤 컨커’는 돌아올 수 있을까? 만약 돌아온다면 이미 막장으로 치달은 ‘타이베리움’ 세계관은 과연 어떻게 정리될까? 아직은 조금 더 희망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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