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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문학의 뱀파이어, 게임은 어떻게 받아 들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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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스토리와 내러티브로 주목 받고 있는 화제작 ‘뱀파이어’ (사진출처: 스팀)
▲ 독특한 스토리와 내러티브로 주목 받고 있는 화제작 ‘뱀파이어’ (사진출처: 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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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게임들이 연일 출시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독특한 작품이 하나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뱀파이어 의사 ‘조나단’이 돼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괴사건을 조사하는 어드벤처 ‘뱀파이어(Vampyr)’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선량한 의사로서의 인간성과 피에 굶주린 괴물이라는 본능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선택을 이어가야 한다.

이처럼 흥미진진한 ‘뱀파이어’ 스토리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게이머라면 아마 비슷한 작품들이 더 있는지, 그리고 다른 뱀파이어 게임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흥미가 동했을 것이다. 이에 게임메카는 ‘뱀파이어’ 출시를 맞아 게임이 뱀파이어를 다뤄 온 역사를 간단히 짚어보는 기사를 준비했다. 이번 기회에 뱀파이어를 주제로 한 게임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게임이 뱀파이어를 묘사해온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사악한 괴물로 시작한 뱀파이어,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여성을 홀리고 살해하는 마귀로 묘사된 ‘루스벤’ (사진출처: 옥스포드 월 공식 홈페이지)
▲ 여성을 홀리고 살해하는 마귀로 묘사된 ‘루스벤’ (사진출처: 옥스포드 월 공식 홈페이지)

게임 속 뱀파이어를 다루기 위해서는, 뱀파이어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기 힘들다. 왜냐하면 게임이 뱀파이어를 묘사하는 내러티브는 문학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수용해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이 뱀파이어를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뱀파이어 문학이 변화해온 과정을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뱀파이어는 고대로부터 여러 민담과 시가에 등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엔터테인먼트 업계 표준이 된 뱀파이어 이미지는 의외로 근대에 확립됐다. 그 시초는 작가이자 의사였던 존 폴리도리가 1816년 출간한 고딕 소설 ‘더 뱀파이어(The Vampyre)’였다. 이 소설에는 매혹적인 신사지만, 실은 피에 굶주린 사악한 괴물 ‘루스벤’이 등장한다. 그는 주인공을 홀리고 여동생을 비롯한 주위 여성들을 유혹해 살해한 후 사라진다.

젊은 여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해 피를 빨아 죽이는 괴물 ‘카르밀라’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젊은 여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해 피를 빨아 죽이는 괴물 ‘카르밀라’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더 뱀파이어’는 이후 쓰여진 뱀파이어 문학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루스벤’이 보여준 뱀파이어 이미지는 1871년 ‘카르밀라(Carmilla)’, 1880년 ‘90년 후(After Ninety Years), 1897년 ‘드라큘라(Dracula)’ 등 다른 소설에서도 답습됐다. 이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뱀파이어를 매혹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부도덕하고 짐승 같은 욕망이 가득 찬 괴물로 묘사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고고한 귀족처럼 보이는 외관 뒤에 피에 미친 본성을 숨긴 마귀’ 이미지가 확립된 것이었다.

이 시기에 뱀파이어가 악으로 묘사된 이유 중 하나는 에로티시즘이었다. 고대로부터 뱀파이어는 정체를 숨긴 채 접근해 희생양을 유혹하고 피를 빠는 괴물로 묘사됐다. 이 피를 빤다는 행위는 자연 성적인 접촉을 연상시켰고, 19세기 많은 작가들이 이에 자극 받아 뱀파이어를 성적 착취자로 묘사했다. 이에 에로티시즘과 깊게 연관된 뱀파이어의 본성은 정숙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던 당시 유럽에서 사악함 그 자체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뱀파이어가 괴물인 건 맞지만, 억울한 점도 있다는 ‘드라큘라 테이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뱀파이어가 괴물인 건 맞지만, 억울한 점도 있다는 ‘드라큘라 테이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20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며 마귀로만 묘사되던 뱀파이어 이미지에도 변화가 생겼다. 당시 서구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으로 불안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이에 젊은이들은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사랑과 소통 등을 내세우는 히피 문화에 열광했는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성애(性愛)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도 관대해진 것이다. 20세기의 변화한 사회 분위기는 성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뱀파이어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1975년 소설 ‘드라큘라 테이프(The Dracula Tapes)’는 이러한 변화가 잘 반영된 작품 중 하나다. 이 소설에서는 ‘드라큘라’가 나름 인간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기 입장에서 원작 소설 사건을 회고한다. 소설 속 뱀파이어는 인간 피를 빨아먹는 괴물에, 서슴 없이 여성들과 간통을 저지르는 부도덕한 이미지를 이어간다. 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드라큘라’는 여성을 무조건 성적으로 착취하고 살해하는 마귀가 아닌, 자기 나름의 뒤틀린 방식으로 여성을 사랑하는 인간미 있는 불한당으로 재해석됐다.

호화 캐스팅으로 원작보다 유명해진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호화 캐스팅으로 원작보다 유명해진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렇듯 19세기 고딕 문학에서 악의 화신으로만 등장하던 뱀파이어는 20세기 들어 나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악당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전후로 뱀파이어 문학은 피카레스크(picaresque, 불한당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 소설 장르)에서 다시 한 번 극적 전환을 겪었다. 이제는 아예 뱀파이어가 비극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뱀파이어는 피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면서도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괴물’로 묘사됐다.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있던 작품은 1976년 출간된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Interview with the Vampire)’였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이 원치 않게 뱀파이어가 되며 생기는 일들을 다루었다. 주인공 ‘루이’는 다른 뱀파이어에 의해 강제로 뱀파이어가 된다. 처음에 그는 하수도에서 시궁쥐 피로 연명하지만 점점 버틸 수 없게 되고, 이윽고 원치 않는 살인을 해 괴로워하게 된다. 하지만 오랜 삶 속에서 그는 점차 살인에 익숙해지고 인간성이 마모돼 냉혹한 존재가 되어간다.

‘섹시한 뱀파이어 주인공’을 내세워 큰 성공을 거둔 ‘트와일라이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섹시한 뱀파이어 주인공’을 내세워 큰 성공을 거둔 ‘트와일라이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뒤를 이어 뱀파이어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린 작품은 1981년 ‘굶주림(The Hunger)’, 1892년 ‘피버 드림’, 1984년 ‘나, 뱀파이어(I, Vampire)’ 등 꾸준히 출간됐고, 오늘날에도 ‘뱀파이어 다이어리’나 ‘트와일라이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뱀파이어는 더 이상 거짓으로 가득 찬 사악한 괴물이 아닌 섹시하고 관능적인 비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뱀파이어를 다루는 엔터테인먼트는 대체로 이와 같은 뱀파이어 문학의 흐름을 따라서 발전해왔다. 초기에는 연극과 영화가 뱀파이어 문학의 길을 따랐고, 이제는 게임에서의 뱀파이어 서사도 거의 같은 길을 밟아 발전하는 중이다. 업계에 따라서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다루는 구체적인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큰 궤에서 볼 때는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는 셈이다.

문학의 뱀파이어 내러티브, 게임은 어떻게 받아 들였나

‘더 카운트’를 비롯한 초기 게임은 뱀파이어를 단순한 마귀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더 카운트’를 비롯한 초기 게임은 뱀파이어를 단순한 마귀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초기 게임에서의 뱀파이어 서사는 앞서 언급한 문학의 변화를 그대로 따라갔다. 초창기 작품들은 뱀파이어를 불가해하고 사악한 마귀로만 묘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게임에서도 뱀파이어를 차츰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 악당으로 그리는 사례가 생겼고, 이제 ‘인간보다 인간적인 괴물’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고 있다.

최초의 뱀파이어 게임으로 꼽히는 작품은 텍스트 어드벤처 ‘더 카운트’다. 이 게임에서 주인공은 마을 주민들에게 의뢰를 받아 인근 고성에 사는 뱀파이어 백작을 퇴치하기 위해 보내진 인물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을 움직여 성 안을 탐사하고, 퍼즐을 풀며, 아이템을 모아 뱀파이어를 제거해야 한다. 여기서 뱀파이어는 철저히 퇴치해야 할 악으로만 묘사됐고, 그에 대한 인간적인 묘사는 일절 나오지 않았다. 초기 고딕 소설과 유사한 방식으로 뱀파이어를 그린 것이다.

‘악마성 드라큘라’ 북미 버전 커버 아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악마성 드라큘라’ 북미 버전 커버 아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980년대 초반에는 ‘더 카운트’처럼 ‘괴물 뱀파이어’를 내세운 게임이 많았다. 1983년 나온 실시간 그래픽 어드벤처 ‘뱀파이어 빌리지’와 1986년 나온 텍스트 어드벤처 ‘드라큘라’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까지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는 ‘악마성 드라큘라(Castlevania)’도 1986년 처음 출시됐는데, 역시 최종 보스 ‘드라큘라’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뱀파이어가 된 악당’ 정도로 단순하게 묘사하고 과거, 목적, 동기 등은 거의 설명하지 않았다.

이윽고 1990년대 들어서는 게임도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른바 '피카레스크 뱀파이어’였다. 이들도 본질적으로 사악하고 인간을 해친다는 점에서는 앞선 세대의 뱀파이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세대의 뱀파이어는 보다 인간적이고, 매혹적이며, 이해할 수 있는 목적과 동기를 갖고 있었다. 뱀파이어 문학이 앞서 걸은 길을 게임도 따라 걷기 시작한 셈이다.

‘블러드 오멘’의 주인공 ‘케인’은 ‘더 카운트’의 뱀파이어와 달리 이유 있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블러드 오멘’의 주인공 ‘케인’은 ‘더 카운트’의 뱀파이어와 달리 이유 있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작품이 1996년 출시된 ‘블러드 오멘(Blood Omen)’이다. 이 게임은 개성 있고 사악한 주인공의 이야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주인공인 오만한 귀족 ‘케인(Kain)’은 악당들의 음모로 암살되고 뱀파이어로 살아난다. 처음에 그는 뱀파이어 상태를 치유할 방법을 찾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에게 이용 당하고 박해 받으며 인간이나 뱀파이어나 사악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믿게 된다. 결국 그는 뱀파이어로 남아 인간을 노예 삼는 제국을 건설한다.

‘블러드 오멘’의 스토리를 잇는 1999년 ‘소울 리버(Soul Reaver)’와 2002년 발매된 ‘블러드 레인(Blood Rayne)’도 각자 사연이 있는, 그러나 결코 선하다 할 수 없는 뱀파이어 주인공을 내세웠다. 그런가 하면 2000년에 발매된 성인용 미소녀 게임 ‘츠키히메(월희, 月姫)’와 2001년 출시된 ‘흡혈섬귀 베도고니아(吸血殲鬼ヴェドゴニア)’도 언급할 만하다. 두 게임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냉혹하고 외로운 뱀파이어 소녀와 엮이고, 그들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츠키히메’의 미소녀 ‘알퀘이드’는 사실 무시무시한 뱀파이어지만, 동시에 사랑스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츠키히메’의 미소녀 알퀘이드는 사실 무시무시한 뱀파이어지만, 동시에 사랑스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마침내 2000년대 중반부터 게임에서도 ‘인간적인 뱀파이어’ 주인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아마 TRPG ‘월드 오브 다크니스’를 원작으로 한 RPG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은 우연한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주인공이 뱀파이어 사회의 정쟁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었는데, 매 사건에서 얼마나 욕구를 참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는지에 따라 진행에 변화가 일어난다.

최근에 발매된 ‘뱀파이어(Vampyr)’도 비극 주인공으로서의 뱀파이어라는 도식을 따른 작품이다. 이 게임 주인공인 의사 ‘조나단’역시 불의의 사고로 뱀파이어가 되어버린다. 그는 의사라는 신분에 따라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뱀파이어로서 피를 마시고자 하는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또한 거리에 도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나 미치광이 뱀파이어 같은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일부 시민을 잡아먹어 힘을 길러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에서는 ‘인간성’ 수치에 따라 대화 선택지가 바뀌기도 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에서는 ‘인간성’ 수치에 따라 대화 선택지가 바뀌기도 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렇듯 게임에서 뱀파이어를 다루는 방식은 뱀파이어 문학의 내러티브를 따라 점차 확장되어왔다. 이제 게임 속 뱀파이어는 때로는 단순한 마귀로, 그리고 때로는 매혹적인 마성의 악당으로, 혹은 피에 대한 갈증과 인간성 사이에 고뇌하는 비극 주인공으로 폭 넓게 등장하고 있다.

‘뱀파이어가 된 당신의 선택은?’ 게임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뱀파이어 내러티브

뱀파이어로 살기 위해 누구를 희생시킬지 선택해야 하는 ‘뱀파이어’ (사진출처: 스팀)
▲ 뱀파이어로 살기 위해 누구를 희생시킬지 선택해야 하는 ‘뱀파이어’ (사진출처: 스팀)

그렇다면 게임에서의 뱀파이어 내러티브는 일방적으로 뱀파이어 문학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했을까? 물론 아니다. 게임이 뱀파이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문학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게임을 통해서만 즐길 수 있는 뱀파이어 내러티브도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만일 내가 뱀파이어가 된다면?’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이나 ‘뱀파이어’가 이러한 내러티브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뱀파이어가 돼, 사람을 해치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됐다. 피를 안 마시고 버티면 점점 쇠약해지다가 이성을 잃고 날뛰고, 그렇다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면 몸도 마음도 괴물이 되어간다. 그렇다면 플레이어인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리겠냐는 것이다.

‘엘더 스크롤’에서는 뱀파이어가 되면 힘을 위해 괴물로 남을 것인지,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사진출처: 스팀)
▲ ‘엘더스크롤’에서는 뱀파이어 질병에 전염되면 그대로 괴물이 될지 치료할지 선택하게 된다 (사진출처: 스팀)

사실 소설이나 영화에도 ‘어느 날 뱀파이어가 된다면’ 하는 내용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관객으로 앉아 지켜보기만 하는 이들 매체와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생각하고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게임 속 뱀파이어 내러티브는 작중 주인공이 뱀파이어가 되는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나 자신이 뱀파이어가 된다면’ 하는 상황을 전제한다. 내가 플레이하는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덕분에 게임 속 뱀파이어 내러티브는 보다 깊은 몰입의 재미를 준다.

이처럼 상호작용성에 기반한 뱀파이어 서사는 의외로 이미 많은 게임에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유도 높기로 유명한 RPG ‘엘더스크롤(Elder Scrolls)’ 시리즈도 ‘당신이 뱀파이어가 된다면?’ 하는 상황을 자주 제시한다. 플레이 중 플레이어는 우연히, 혹은 고의로 뱀파이어 질병에 감염될 수 있다. 일단 뱀파이어가 된 캐릭터는 다양한 권능을 얻는다. 하지만 동시에 매일 밤 피를 마실 것을 강요 받는다. 피를 마시지 않은 뱀파이어는 점점 약점이 생기고 흉측하게 변한다.

‘뱀파이어가 된 당신,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심즈 4’ 뱀파이어 확장팩 (사진출처: ‘심즈 4’ 공식 블로그)
▲ ‘뱀파이어가 된 당신,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심즈 4’ 뱀파이어 확장팩 (사진출처: ‘심즈 4’ 공식 블로그)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뱀파이어 상태를 저주로 간주하고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모험을 떠날 것인지, 매일 밤 남의 집에 숨어들어 몰래 피를 빠는 방식으로 살인을 최소화하며 버틸 것인지, 혹은 아예 괴물이 되어 피를 탐닉할 것인지 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게임에서 구체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이 다른 존재가 된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 외에도 ‘심즈(Sims)’ 시리즈 뱀파이어 확장팩, 어드벤처 게임 ‘초이스 오브 더 뱀파이어(Choice of the Vampire)’ 등 다양한 게임들이 이와 유사한 상호작용적 뱀파이어 서사를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욕구를 참고 인간성을 지킬 것인지, 괴물이 되어 자유롭게 해방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뱀파이어 서사는 게임 특유의 상호작용성이라는 특성과 잘 맞아 떨어지며, 덕분에 아직도 이 주제를 바탕으로 한 많은 게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게임이 뱀파이어를 다루는 방법,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게임으로 담아내기 힘든 내러티브를 담고자 시도하다 제작이 중단된 ‘월드 오브 다크니스 MMORPG’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게임으로 묘사하기 힘든 내러티브를 담고자 시도했지만, 제작이 중단된 ‘월드 오브 다크니스 MMORPG’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게임이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게임 속 뱀파이어 내러티브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뱀파이어 게임은 독창적인 내러티브를 만드는 대신, 소설과 영화가 확립한 내러티브를 차용해왔다. 이에 적지 않은 작품이 게임보다 소설이나 영화에 더 가까운 내러티브로 제작되거나, 원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맞았다.

그렇기에 최근 발매된 ‘뱀파이어’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보여준 ‘인간성과 뱀파이어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러티브를 오직 게임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상호작용성이라는 게임 고유의 특징을 활용해 소설 속 갈등을 ‘플레이어인 나 자신의 갈등’으로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다룰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는 첫 걸음이라 볼 수 있다. 향후 게임이 어떤 새로운 방법으로 뱀파이어를 다룰 것인지 주목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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