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PS VR 게임 '모탈 블리츠' (사진제공: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지난 4일, 국내 개발사의 첫 플레이스테이션VR(이하 PS VR)용 게임이 출시됐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의 ‘모탈 블리츠’가 그 주인공이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는 국내 몇 안 되는 콘솔게임 개발사다. 2002년 일본 석세스 사의 멀티플랫폼용 게임 '사이바리아 2' 외주개발을 거쳐, 국내 최초로 NDS, Wii 게임 기술계약을 체결하며 ‘마법천자문 DS’, ‘케이팝 댄스 페스티벌 Wii’ 등을 출시하며 15년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 ‘모탈 블리츠’를 통한 VR시장 진출 역시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에 출시된 '모탈 블리츠'는 반자동 이동 시스템을 갖춘 벨트스크롤 방식 건슈팅 게임이다. 지난 2011년 국내 최초 아케이드용 건슈팅 게임 '오퍼레이션 고스트'를 발매한 스코넥엔터테인먼트의 노하우를 살려 2015년에 기어VR로 첫 출시했고, 올해 초에는 롯데월드 VR테마파크에서 워킹 어트렉션 버전으로도 가동 중이다. PS VR 버전은 앞서 출시된 두 버전과는 하드웨어도, 게임 엔진도, 콘텐츠와 스토리도 각각 달라 엄밀히 말하자면 1, 2, 3편 정도의 차이가 있다.
VR 건슈팅에 기대하던 현실성이 그대로
‘모탈 블리츠’의 게임성을 가장 쉽게 비유하자면, 아케이드로 출시된 전통의 건슈팅 게임 ‘타임 크라이시스’ 시리즈를 생각하면 쉽다. ‘타임 크라이시스’는 스테이지 내에서 각종 장소로 이동하며, 엄폐물을 활용해 적의 공격을 피해 가며 적을 쓰러뜨리는 것을 골조로 한다. 여기서 엄폐는 발판 컨트롤러를 통해 조작하게 된다.
‘모탈 블리츠’의 가장 큰 특징은 이 엄폐 기능을 실제 움직임을 통해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PS VR의 포지셔널 트래킹 기술이 빛을 발한다. PS VR은 별도의 PS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의 현 위치(머리와 손 기준)를 추적한다. 따라서 엄폐를 위해 발판을 밟거나 버튼을 누를 필요 없이, 눈 앞에 보이는 엄폐물 뒤로 몸을 움직여 숨으면 된다.
▲ 엄폐물에 숨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재미가 쏠쏠하다(사진제공: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사실 본 기자의 게임 환경은 다소 고전적이다. 책상에 모니터와 기기 등이 놓여 있고, 1~1.5미터쯤 떨어진 의자에 편히 앉아 컨트롤러를 붙잡고 즐기는 식이다. 물론 PS VR게임은 원활한 동작인식을 위해 어느 정도 더 떨어져서 플레이하지만, 기본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그러던 기자를 의자에서 일으킨 것이 바로 ‘모탈 블리츠’다. 이 게임은 태생적으로 앉아서 즐길 수가 없다. 보통 엄폐물에 몸을 숨기려면 체감적으로 약 1m, 심할 경우 1.5m까지도 좌우로 움직여야 한다. 게임 상에서 허리쯤에 걸쳐 있는 엄폐물에 숨으려면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푹 숙여야 한다. 다가오는 장애물을 재빨리 피하려면 두어 발자국 정도는 스텝을 밟아야 한다.
일반 PC나 콘솔 슈팅 게임이 조이스틱이나 건 컨트롤러를 통해 손(또는 손가락)만 움직이는 데 그쳤다면, ‘모탈 블리츠’는 상체를 흔드는 위빙에서 앉아 쏴 자세까지 적극적인 모션을 동반하기 때문에 현장감의 수준이 다르다. 체력 게이지가 간당간당한 상태에서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부리나케 구석의 엄폐물로 숨어 체력을 회복시킬 때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실제 몸을 움직여가며 플레이하는 감각 자체는 굉장히 만족스럽다. ‘타임 크라이시스’ 신작이 VR로 나온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만, 취향 상 앉아서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귀찮게 느껴질 수는 있겠다. 주변 환경도 변수다. 기자가 플레이 해 본 결과, 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 가로세로 2m 이상의 일어서서 돌아다닐 수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즉, 좁은 방에 가구나 가재도구가 널려 있는 등 주변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게이머라면 ‘모탈 블리츠’를 즐기기엔 다소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 게임을 즐기려면 가로세로 2m 정도의 여유 공간은 필수다(사진출처: 게임메카 직접촬영)
어지러움 없는 그래픽과 직관적 디자인
‘모탈 블리츠’를 플레이하며 감탄한 것은 VR기기 특유의 어지러움을 최대한 억제시켰다는 점이다. 일단 그래픽적 면에서 언리얼엔진4를 사용한 완성도 높은 비주얼을 구현해냈다. 전체적인 게임의 밝기가 높은데다, 언리얼엔진4와 궁합이 잘 맞기로 유명한 SF세계관이 만나 상당히 깔끔한 느낌을 준다. 모니터 화면에 비해 해상도가 다소 떨어지는 VR기기의 특성을 배제하더라도 모탈 블리츠'의 그래픽 수준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지하철 흔들림이나 거대 폭발 등의 연출도 실감난다. 총기 타격감은 살짝 아쉬운 점이 있지만, 나머지는 꽤나 훌륭하다.
어지러움 감소에 큰 역할을 한 점 중 하나는 바로 퀵 이동 시스템이다. 기존 건 슈팅 게임의 경우 한 장소에서 모든 적을 물리치면 다음 장소까지 카메라가 자동으로 이동하는데, VR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카메라가 움직이는 바로 이 부분이 가장 멀미를 심하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이에 ‘모탈 블리츠’는 이동 포인트를 조준해 순간 이동하는 방식을 채용했다. 이동 중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이벤트 연출을 포기해야만 했지만, VR 멀미를 잡았으니 살을 주고 뼈를 취한 느낌이다.
이와 함께 최근 FPS 게임들에서 볼 수 있는 시스템도 대거 도입돼 직관성을 높인다. 화면에 표시되는 체력이나 총알 수 등의 UI를 지양하고, 대신 총에 붙은 LCD 액정과 체력이 깎이면 채도나 낮아지는 화면 연출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AGC라고 이름 붙인 염력을 이용한 다양한 오브젝트 활용 액션이나, 체력이 고갈된 적을 붙잡아 펼치는 불릿 타임(Bullet Time)에 가까운 슬로우 액션도 수준급이다.
다만 공격받을 시 피격 방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어 별도로 표시되는 적 위치 탐지기에 의존해야 하는 점은 살짝 아쉽다. 위치 탐지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정면과 측면에서 동시에 적이 나타날 경우 내가 어디서 공격을 받고 있는지 아리송할 때가 몇 번 있었다. 익숙해지고 난 후에도 화면에 색색의 아이콘으로 표시되는 UI는 조금 거슬렸다. 최근 FPS들에서 많이들 채용하고 있는 피격 방향 표시 효과 등이 도입된다면 조금 더 직관적인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지 않을까.
▲ 체력이 고갈된 적을 붙잡아 마음껏 사격을 가하는 불릿 타임 연출(사진제공: 스코넥엔터테인먼트)
▲ 직관적 감각이 아니라 화면에 표시된 아이콘을 보고 플레이해야 하는 것은 단점(사진제공: 스코넥엔터테인먼트)
반복되는 레벨 디자인과 빈약한 스토리텔링
이 게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반복되는 레벨 디자인이다. 물론 미션에 따라 배경이나 적의 종류, 등장, 공격, 이동 방식 등이 조금씩 바뀌기는 하다. 문제는 한 미션 안에서 비슷한 장면이 계속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면 적 3~6명이 등장하고, 엄폐물에 몸을 피해가며 적을 쓰러뜨리고, 다시 다른 포인트로 이동하는 것이 미션 당 열 차례 이상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적의 등장이나 포지셔닝 패턴은 미션 당 2~3가지에 불과하고, 적 캐릭터도 얼마 되지 않아 계속 같은 적만 반복 상대하는 기분이 든다.
이에 따라 초반에는 그저 VR의 현실감과 듀얼 총기를 쏘는 재미에 빠져 있다가도, 게임 플레이 시간이 1시간이 넘어갈 무렵에는 급작스럽게 지루해진다. 게임을 재시작한 적이 없었는데도, 동료 기자가 “왜 10분 전이랑 똑같은 장면을 하고 있어요?” 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30분짜리 게임을 억지로 4시간 분량으로 늘려 놓은 느낌 탓에, 레벨 디자인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 비슷한 적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해서 나온다(사진제공: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스토리텔링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서 잠깐 ‘모탈 블리츠’의 배경 설명을 보면, 플레이어는 전직 통치국 정부 소속 정예부대 출신의 ‘유헤이’가 되어, 통치국의 테라토마(Teratoma) 말살 계획에 숨겨진 사악한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반군 소대를 이끄는 ‘레이첼’과 '맥스'와 함께 전투를 벌이며 스토리를 진행해 나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기자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런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배경 설명은 아예 없고, 미션 브리핑은 겉핥기로 진행돼 스토리를 능동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모탈 블리츠’는 한국어 메뉴 및 음성을 지원하는 국산 게임이다. 당연히 외산 게임에 비해 스토리 몰입도가 높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어째 성우들의 유창한 한국어 대사를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나 세계관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게임을 하다 보면 캐릭터들의 브리핑 내용이나 미션 목표 등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적을 쳐부수는 데만 집중하게 된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가 ‘모탈 블리츠’를 단편이 아닌 시리즈로 발전시킬 생각이라면, 지금의 스토리텔링 구조는 너무 빈약하다.
▲ 분명 한국어인데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스토리 브리핑(사진제공: 스코넥엔터테인먼트)
‘모탈 블리츠’는 아직 개척 단계에 있는 VR 건슈팅 게임 업계에서 확실한 게임성을 제시했다. 엄폐 시스템이 적용된 아케이드용 건슈팅 게임을 ‘타임 크라이시스 방식’이라 부르듯, 향후 VR 업계에서는 ‘모탈 블리츠 방식’ 게임이라는 말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물론 그러려면 크고 지속적인 흥행이 뒷받침돼야겠지만). 특히 보급률이 높은 기어 VR로 시작해 VR 어트랙션에 이은 PS VR로의 사업 확장 전개는 신시장에 뛰어들려 하는 국내 게임 개발사들에게도 좋은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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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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