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사냥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치게 된 나는 지난날의 실력을 발휘해 광렙 작업에 들어갔다. 참고로 내가 본서버에서 플레이 한 과거에 나를 아는 이들은 나를 ‘본부’라고 호칭했었다. 내가 그 정도로 인망을 얻고 있었다고 여기실 분들을 위해 솔직히 고백하자면 ‘본부’의 의미는 "本主(본주)+副主(부주)"로서, 혼자서 본주와 부주의 역할을 다 해내는 슈퍼 노가다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천상비는 타 온라인 게임에서 1~2위를 다투던 고수들의 총 집합장소라 할 수 있다. 혼자의 능력으로는 소위 말하는 '랭커'의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주를 구하여 같이 키우는 랭커들이 허다하다. 8시간씩 3교대로 돌리는 방주 형님을 한 분 알고 지내는데 예순이 넘는 부친을 부주 중 한 명으로 활용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천상비야말로 가장 노가다가 쉬운 게임이라는 데에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몹을 때리는 횟수가 누적되어 힘이 오르고 몹을 헛치는 횟수가 누적되어 무기 숙련도가 오르고 몹으로부터 맞은 타격치가 누적되어 맷집이 오르고 몹의 공격을 피한 횟수가 누적되어 민첩이 오르는 특이한 성장 방법을 천상비는 채용하고 있다. 또한 한번 몹을 클릭해서 공격하면 몹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될 때까지 싸우게 되는 자동 공격과 자신이 정해놓은 체력수치 아래로 체력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체력 회복제를 복용하는 자동 복용이 게임에서 지원된다.
이 시스템을 적절히 이용하면 어떻게 될까? 좋은 방어구를 착용하고 가장 약한 무기로 적당한 몹을 클릭해 놓으면 서너 시간 동안 딴 일을 하더라도 서로 1씩 때리면서 계속적으로 능력치가 올라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물론 PK나 선공 몹의 방해를 받지 않을 만한 자리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플레이를 해도 지치지 않는 아니 심지어는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플레이가 가능한 유일무이한 온라인게임이 바로 천상비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서로 1씩 때리면서 오랫동안 전투를 끄는 사람은 결코 랭커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 적당한 수준의 몹들과 전투를 해야만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깨어있는 시간동안에는 일반적인 전투를 하고 화장실에 가거나 친구를 잠시 만나러 나갈 때 혹은 퍼질러 잘 때 등에는 1대 1로 몹과 사이좋게 토닥이는 전투가 아주 요긴하게 쓰이곤 한다. 천상비에 대한 제반 설명을 하다 보니 사설이 좀 길어졌다. 아무튼 혼자서도 본주와 부주의 역할을 해내던 나인지라 테스트 서버에서의 광렙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를 뿌듯하게 한 것은 다름아닌 충분한 은전! 후배녀석에게 받은 5천만 은전으로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건포(회복량 400, 가격 8)나 호떡(회복량 850, 가격 18) 대신 가장 비싼 회복제인 고기(회복량 3900, 가격 110)를 먹어가며 사냥할 수 있었다. 물론 전투 중에 돈 걱정 않고 맘대로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본서버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즐거움이었다(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때마다 100만 은전이 주어지니 인맥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충분한 돈을 거머쥘 수 있다). |
그런데 객잔에 들러 음식을 사는 도중 뜻하지 않게 나는 잊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옥동자=: "거부기알 또 가진 사람 알면 연락해." ???: "엉 알겠어" (작자 註: 거부기알은 천년금구내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능공허도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주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옥동자=! 순간적으로 나의 뇌리에는 천존비동에서 그의 손톱에 쓰러져 간 나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져왔다. 바로 저 녀석을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나: 여기 좀 봐요. =옥동자=님, 저 기억해요?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며 존대를 사용하였다. =옥동자=: 응? 머냐? 어쭈. 저 녀석이 반말을? 나: 천존비동에서 저 죽인 거 기억해요? =옥동자=: 어, 그게 너냐? 나: 왜 죽였어요? =옥동자=: 너 여자 아니지? 뜨끔! 그런데 왜 뜬금없이 여자인지는 묻는 것일까. 나: 왜요 여자는 게임 하면 안 되요? -.-+ 아…… 아무튼.. 남자임을 밝히기는 찝찝하지. =옥동자=: 너 못생겼지? 나: "-.-" 대화를 하고 있던 나는 점점 짜증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다짜고짜 반말에다가 저런 폭언을 -.-;; 아직도 대한민국에 저런 무대뽀 네티즌이 살아 숨쉬고 있다니. 옥동자: 적어도 내 얼굴 정도는 돼야지~ ㅋㅋㅋ 분노에 극도에 차오른 나는, 맞받아치기 위해 타이핑을 시작하였다. 나: 언제 봤다고 계속 반말을 하는 거지요? 그리고 제가 묻는 말에는 왜 대답을 안 해요? 겨우 다 친 후 엔터를 누르려던 순간 나는 화면 내에 이미 =옥동자=가 사라졌음을 발견했다(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아직 키보드를 보며 타이핑을 한다-.-;). =옥동자=에게 전음을 보낼까 하다가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다스리며 잊어버리기로 했다. 게임안에서 적을 만들면 피곤해지기 일쑤이다. 가까스로 분을 삭힌 나는 다시금 광렙을 위하여 사냥터로 향하였다. 열심히 호북성에서 가재와 혈와(핏빛 개구리)를 잡던 나는 며칠 후 조금씩 한적한 던전 도화림으로까지 사냥터를 넓혀 보았다. 문득,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 덩어리의 고기가 눈에 띄었다. '옷, 누가 고기를 떨어뜨려 놓았지?' 나는 잽싸게 고기를 줍기 위해 잰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충분한 돈을 가진 나에게 고기 몇 개는 별 의미가 없지만 그렇다고 '공짜'를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ㅎㅎ... 그런데 고기 위로 올라가고 화면 왼쪽 위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있었으니 '주울 수 없습니다' (가질 수 있는 무게 한계를 초과하였을 시 나오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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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아무래도 내가 가진 고기들을 좀 버려야 들을 수 있으려나 보군... 하며 고기를 몇 개 버려 보았다. '주울 수 없습니다' 나는 다시 고기를 모두 버리고 재 시도해 보았다. '주울 수 없습니다' -.-;;;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자존심의 문제였다. 나는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 땅에 내려둔 후, 다시 시도해 보았다. '주울 수 없습니다' 나는 다시 입고 있던 상의와 하의, 망토 등을 벗어서 옆에 내려놓은 후 시도해 보았다. 그 때, 누군가가 나무그늘 속에서 재빠르게 나타나 나의 소중한 금강석갑(방어력 158, 무게 -30%)을 들고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다급해진 나는 잽싸게 상의와 하의 등을 주워 쫓아갔다. 그러나 내가 졸랑졸랑 뛰어가는데 반해 상대는 능공허도를 사용하여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캐릭터 명은 저주 받아 마땅한 그 이름 =옥동자=였다(-.-). 그리고 전음으로 남겨지는 한 마디가 있었으니... =옥동자=: '팬티까지 벗지 그래? ㅋㅋㅋ'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전음으로 방주인 후배 녀석을 불렀다. 내 =옥동자= 녀석을 무림공적으로 만들고 말리라~ 그러나 철석같이 믿었던 뜻밖에도 후배 녀석의 답변은 전혀 엉뚱했다. 후배: 지금 그런 데 신경 쏟을 때가 아니야. 갑옷은 내가 딴 걸로 줄게. 이제 30분 후면 공성전이 시작한다구~ 형두 빨리 음식 챙겨서 준비해 공성전이 시작된다는 후배 녀석의 말에 나 역시 =옥동자=의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묘한 흥분감에 몸을 떨었다. 후배: 혹시라도 공성전에 대해 잘 모르면, 홈페이지 들어가서 내용 좀 살펴보고 와. 구체적인 작전 설명은 조금 있다가 할게. 아 그리고 10분 후에 방파 중앙지역으로 모여 여기서, 잠시 천상비의 공성전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하겠다. 각각의 지역에 성이 있어서 그 성을 소유하게 되는 타 게임과 달리 천상비의 성은 왕대협으로부터 이동이 가능한 '방파 중앙지역'을 거쳐야 입장가능하다. 방파 중앙지역에서 지도를 열면 8개의 방파성 위치가 나오는데 각각의 방파성 위치로 이동하면 존 로딩에 의하여 진짜 방파성으로 입장이 가능하게 된다(물론, 공성시간이 아닐 경우에 타 방파원은 방파 중앙지역까지만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뿐, 방파성 내에 입장이 불가능하다).
방파 중앙지역 각각의 방파성 로딩지역 바로 앞에는 문파석이 존재한다. 공격하는 방파(갑)의 방주가 공성시간이 되어 수비방파(을)의 문파석을 깨뜨리면 갑 방파원들은 을 방파성 내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문파석은 몇 분 후에 재 생성되므로, 딴 방파가 다시 문파석을 부수고 쳐들어올 수 있다. 즉 수비 방파는 1개지만 공격 방파는 다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방파성 내에 쳐들어가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거대한 성문이다. 성문은 중앙의 대문과 양 옆의 쪽문 2개로 나뉘어지는데 공격을 할 수 있는 자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비방파에서도 그 자리를 미리 차지하고 공격에 대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문을 부수고 성 내에 들어가면 이번에는 성 내에 분포된 4개의 방파 신물을 부수어야 한다. 신물은 각각 대장간, 공작소, 아서원, 연무장 앞에 위치하였으며 소유한 방파의 마크가 신물 위에 표시된다. 신물 4개를 모두 소유하였을 경우에만 최후의 관문인 방파의 현판 공격이 가능해진다. 현판은 방주만이 공격 가능하다. 여기서 문제는 신물 역시 몇 분이 지나면 재 생성된다는 것이다. 즉 수비 방파에 의해서 재 탈환될 수도 있고 혹은 공격해 들어온 제 3의 방파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여기서 진정한 전략성이 나타나게 된다-.-;;). 방주가 현판을 깨는 순간 성을 새로이 소유하게 된 방파원 이외 성내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방파 중앙지역으로 날아가게 되고 공성은 끝이 난다(공성이 끝난 방파는 다음 공성시간까지 재차 공격이 불가능하다). 방파 중앙지역에 모인 우리 방파원은 약 50명.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타 방파보다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방파 대화로, 후배 녀석은 폼을 잡으며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후배: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의 작전을 설명하겠소 짜식. 내 앞에서는 그렇게 아부를 떨던 녀석인데... 이 테스트서버에서는 그래도 제법 고수다운 풍모를 내는군.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도 혹시라도 중요한 내용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여 종이와 펜을 급히 갖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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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내가 앞장을 설 테니, 다들 잘 따라와 주시오. 그리고 중간에 나가지 말구요
그리고는 혼자서 열심히 문파석 쪽으로 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서...설마 이것으로 작전회의가 끝?? -.-). 그리고 나의 우려감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딴 방파원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방주인 후배 녀석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허망함에 혀를 차며 그 뒤를 쫓아가야 했다.
현판 앞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서너 방파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4분. 방주들은 문파석을 중심으로 둘러서고 많은 방파원들은 마치 그들을 호위라도 하듯이 둘러쌌다. 시간이 가까워 오자, 다들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했다.
"5" "4" "3" "2" "1!!!" 그리고 문파석 주위로 현란한 무공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방주들의 현판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과연 누가 먼저 문파석을 부수고 공성을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이번 공성전의 覇者(패자)와 敗者(패자)는 어떻게 갈릴 것인가? 나의 첫 번째 공성전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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