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모니터화면으로 재현한다”는 아이디어는 일견 훌륭한 게임소재로 쓰일만한 구상이지만 윌라이트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당시 EA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 아이디어는 결국 ‘심즈’라는 천문학적인 베스트셀러로 귀결되긴 했지만 EA 중역의 고개가 조금만 더 갸우뚱거렸다면 윌라이트의 천재성은 심시티 시리즈에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당시로선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던 인생시뮬레이션 심즈는 “나만의 집을 만들고, 나만의 인테리어를 꾸미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게이머들의 호기심을 상상 이상으로 증폭시켰다. 아니, 그보다는 모니터 속에서 움직이는 ‘심즈’의 사생활을 자신이 가꾸고 그것을 엿보는 관음증적인 재미가 심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독일의 ‘로토비(Rotobee)'라는 한 게임개발사가 제작 중인 ‘싱글즈’는 이러한 관음증적인 요소를 극대화시킨 성인대상의 로맨틱한 인생시뮬레이션게임이다. 유럽에선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혼전동거’를 게임에 묘하게 매치시킨 싱글즈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만큼이나 자극적인 스크린샷의 공개로 개발과정부터 언론과 게이머들의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오고 있었던 문제작(?)이다.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낫다?
그러나
싱글들의 속사정은 각기 다르다. 커플이 되기 정말로 싫은 싱글도 있다. 반면 커플이
될 능력이 없어 싱글로 남아 있기도 한다. 사회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21세기 싱글들의 속사정, 그 해답을 ‘싱글즈’에서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게임은 독신을 주장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빈곤한 어느 화려한 싱글남녀인 마이크와 린다가 작고 허름한 아파트 한 채를 나누어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성격도 틀리고 살아온 환경도 틀린데다 취미생활과 애정관까지 독특한 이들의 별난 동거는 TV를 보는 것에서부터 사사건건 트러블을 일으키며 암초를 맞닥뜨리게 된다.
▶ 누가 제일 잘나가는 싱글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
마이크와 린다가 게임을 대표하는 주인공으로 내세워져 있긴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게임의 독특한 설정을 에피소드로 그려주기 위한 소재 중의 하나일 뿐, 게이머는 각각 성격과 외모가 다른 12명의 캐릭터를 선택해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터프하지만 편집증적인 증세가 심한, 매너와 위트가 넘치지만 지저분한 성격의 캐릭터 등 어느 하나 딱히 좋다고 볼만한 성격이 없는 외모와 스탯설정(?)을 끝내고 나면 게이머는 어느새 남모를 사랑을 갈구하는 화려한 싱글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싱글즈’에서 게이머가 할 일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아바타로 하여금 “최고의 사랑”을 이룩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유럽권의 게임인 만큼 그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우정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결실을 맺어내야 한다는 것이 지상 목표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를 연상시키듯 게임 속 캐릭터의 일상을 낱낱이 들여보게 되는 게이머는 아침을 차리는 일에서부터 화장실 가는 일, 직장생활, 음악연주, 청소, TV보기, 독서, 방 꾸미기, 대화하기, 애정행각(?) 벌이기 등 자신의 아바타가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정해줘야만 한다.
가령 아침을 어떤 식으로 차려줬느냐에 따라 동거 중인 상대의 기분은 달라지게 되며 직장에서 잔뜩 풀이 죽어 돌아온 상대를 어떤 말로 위로해줬느냐에 따라 애정도는 지속적인 변화를 보인다. ‘싱글즈’는 맥시스의 ‘심즈’와 상당히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보여주는데, 배고픔(Hunger), 편안함(Comfort), 체력(Energy, 수면도), 에로틱(Erotic) 등 캐릭터가 처한 상태를 나타내는 8종류의 수치가 화면 아래에 표시된다.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게이머가 취한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내용이다. 항상 최상의 만족도를 캐릭터들에게 선사할 순 없겠지만 경제상황과 조건을 잘 고려하여 평균 이상을 유지해야 파트너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에로틱 수치다. 성인용게임을 표방하고 있는 ‘싱글즈’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한 이 시스템은 동거 중인 상대와 얼마나 깊은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그 수치가 상승하고 감소한다. 성적인 요소가 게임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싱글즈’의 이미지를 타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까? 서구사회의 성인이 일상생활을 펼쳐나가는데 있어 이러한 이성과의 관계는 마치 의식주를 유지해나가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개념일 뿐이다. 따라서 포르노그라피를 주제로 삼은 일본의 몇몇 미연시게임을 ‘싱글즈’와 연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
단순히 대화만 나누고 가구만 옮겨대는 일상을 지속해나가는 것으로 게임의 재미가 유지되어 나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아바타와 주변환경을 꾸미는 것도 큰 재미요소임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플레이에 지루함을 느끼는 게이머를 위해 개발사는 작고 큰 사건을 곳곳에 삽입함으로서 게임플레이의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롤플레잉이나 시뮬레이션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미션’ 시스템을 뜻하는 것으로 갑작스레 주인공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제 3의 상대가 등장한다거나 뜻밖의 사고가 발생한다는 식으로 진행된다.
무엇보다 게이머로 하여금 이 게임에 이목을 집중시킨 요인은 심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미려한 3D그래픽일 것이다. 개발사가 목청 높여 부르짖는 ‘화려한 그래픽’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싱글즈’는 각각의 캐릭터가 3만여개가 넘는 폴리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변의 배경 역시 상당히 디테일하게 꾸며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두 게이머가 직접 카메라를 조정해 자신의 원하는 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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